인간이 만물의 영장일 수 있는 것은 발달된 두뇌의 덕이다. 우리 몸무게의 2%에 불과하지만 인간 심신의 사령탑 역할을 하는 두뇌에 대해 알아보자.
인간의 뇌는 매우 특이한 모양을 하고 있다. 뇌를 크게 나눈다면 거대한 대뇌와 그것을 받쳐주는 줄기에 해당하는 뇌간(중뇌 연수 간뇌), 뇌간에서 척추 속으로 늘어뜨려진 척수, 뒤쪽으로 돌출된 소뇌로 구성되어 있다. 크기로 비교하면 대뇌 약 1천4백g, 뇌간 약 2백20g, 척수 약 25g, 소뇌 약 1백30g이다.
뇌는 몸무게의 2%에 불과하지만 허파가 들이마시는 산소의 20%, 그리고 심장에서 펌프질하는 피의 5분의 1을 요구한다. 뇌는 산소와 피를 지속적으로 공급받아야 하며 단 몇 분이라도 공급이 중단되면 중대한 손상을 입고 신체의 일부 또는 전부가 마비되며 심하면 사망한다.
고등 동물일수록 체중에 비해 뇌가 크다
동물은 척추동물의 단계가 되면 온몸에 산재해 있던 작은뇌(신경절)가 신체의 등쪽으로 모이며, 척추 속에 척수라고 하는 한가닥의 커다란 뇌를 만들게 된다. 그 척수의 앞 끝부분이 더욱 비대해져 마침내 뇌다운 뇌를 형성한다. 이 척수라는 뇌의 발달에 의해 어류는 바다를 제패했다.
어류에서 양서류, 양서류에서 파충류로 진화하면서 뇌도 조금씩 커져간다. 여기에서 소뇌는 도리어 퇴화된 것처럼 보인다.
하등한 동물일수록 뇌에 비해 척수가 무겁고 고등한 동물일수록 체중에 비해 뇌가 크다. 이는 동물이 진화됨에 따라 통합 작용이 척수에서 뇌로 옮겨지고 있음을 나타낸다.
사람의 경우 신생아의 뇌 무게는 4백g이지만 태어나서 3살까지, 4-7살까지, 그리고 10살 직후까지의 3단계를 거쳐 발달되며 20살쯤에서 완성된다. 완성된 성인의 뇌무게는 남자가 1천4백g, 여자가 1천2백50g 쯤이다. 뇌의 무게는 키와 거의 비례하며 지능이나 성격에는 직접적인 관계가 없다. 또 몸무게에 대한 뇌무게의 비율이나 대뇌반구의 표면에 있는 주름의 많고 적음도 지능이나 성격의 기준이 되지 못한다. 예를 들면 향유고래의 뇌는 9천9백g이나 되며 돌고래의 뇌에는 사람보다 더 주름이 많다.
남의 고통은 알아도 자신의 아픔은 모르는 뇌
사람이 느끼는 온갖 고통은 뇌를 통해서 느껴지지만 막상 뇌 자신은 칼로 잘려지더라도 아픔을 느끼지 못한다. 그러므로 뇌 수술은 환자에게 일체 마취를 하지 않은 채 실시되는데, 그렇기 때문에 뇌를 연구하는 학자들은 뇌의 특정 부위를 전기로 자극함으로써 그 반응을 관찰할 수 있다.
한 곳에 살짝 전기를 통하면, 오랫동안 잊어버렸던 국민학교 2학년 담임선생님을 볼 수(?) 있다. 또 다른 곳을 자극하면, 자장가 가락을 듣게(?) 된다. 이러한 방법으로 대뇌의 어떤 곳이 무슨 기능을 담당하고 있는지 알 수 있다.
인간의 뇌는 신경 세포인 뉴런이 약 3백억개가 집합된 거대한 정보 처리용 컴퓨터다. 다른 동물에 비해서 인간이 가진 뇌의 특징은 대뇌가 극단적으로 크다는 것이다. 대뇌는 뇌의 75%를 차지하며 표면은 대뇌 피질이라는 주름으로 돼 있다. 이 주름을 펼치면 표면적이 신문지 한면 크기나 된다.
인간의 뇌는 원래 무수 신경(수초가 없는 신경)을 주역으로 하는 아날로그형 컴퓨터이고 그 일부가 유수 신경(신경 섬유가 수초로 싸여있는 신경)으로 진화되어서 디지털형 컴퓨터를 덧붙인 구조로 되어 있다.
최근 들어서는 인간의 뇌를 모델로 한 컴퓨터가 만들어지려 하고 있다. 뉴로 컴퓨터(neuro computer, 신경의 기본 단위를 neuron이라 한다)라고 일컬어지는데 미국과 일본이 개발경쟁을 벌이고 있다. 종래의 디지털 컴퓨터는 정확한 프로그램을 부여받기만 하면 순서에 따라 맹렬한 속도로 계산을 한다. 이에 비하여 뉴로 컴퓨터는 아날로그적으로 대강의 것을 기억했다가 정보를 순식간에 직관적으로 판단한다고 한다.
파괴된 시냅스는 부활한다
뇌와 컴퓨터 모두에게 극히 중요한 요소로서 기억 기능이 있다. 컴퓨터의 경우는 기억 장치가 붙어 있지만 뇌의 경우는 기억이 어떻게 이루어지고 있는지 아직 확실히 알려져 있지 않다. 학계에서는 신경세포기억설과 신경회로 기억설의 두 가지 설이 있다.
신경세포 기억설은 기억이 뇌를 구성하고 있는 신경 세포 자체에 의해 이루어진다는 것으로 신경세포의 유전 정보에 의해 기억 물질을 생성해낸다는 것이다. 그러나 기억 물질의 발견이 이루어지지 않아 이 이론은 쇠퇴되고 말았다.
신경회로 기억설은 신경 섬유의 배선에 의한 '신경 섬유 시스템'에 기억이 보존된다는 설로 기억의 필요에 따라서 뇌 속에 새로운 신경회로가 형성된다는 것이다. 동물 뇌의 파괴 실험을 통해 기억의 중추가 되는 대뇌 변연계에서 파괴된 시냅스(신경의 접속부)가 부활한다는 것이 확인된 바 있다.
뇌는 심장과 같이 주기적이고 조직적인 전압을 생성하는데 이 전압을 기록한 것이 뇌전도이다. 정상적으로 뇌 전도는 주파수와 진폭이 다른 α, β, θ, δ파의 4가지 파로 구성된다.
■ α파 : 주파수는 8~13㎐, 진폭은 50mV이다. 이 파는 눈을 감고 쉬고 있을 때, 즉 뇌가 각성하지 않은 상태에서 나타난다. 눈을 뜨면 β파로 대치된다.
■ β파 : 14~30㎐, 5~10mV의 파형을 갖고 있으며 뇌의 전역에서 잘 관찰된다. 깨어있는 상태, 정신적인 활동이나 긴장 하에서 볼 수 있다.
■ θ : 4~7㎐, 불규칙적인 진폭을 가지며 어린아이에게서 볼 수 있고 어른에서는 관찰이 안 된다.
■ δ파 : 0.3~3㎐, 20~200mV의 파형이며 수면 중에 나타난다. 어른의 경우 δ파가 수면 이외의 상태에서 나타나면 병리적 상태(뇌종양 간질 정신박약)를 의미한다. 뇌파는 생리적으로 수면과 각성 상태를 연구하는데 이용되며, 임상적으로는 뇌의 이상 상태를 알아내는데 쓰이고 있다.
뇌의 손상은 치명적이다?
뇌기능이 완전히 정지되어 회복 불가능한 상태가 되는 것을 뇌사라고 한다. 이때 뇌의 기능에는 대뇌반구의 기능 이외에 뇌간의 기능도 포함된다. 뇌사는 인간의 죽음과 같은 뜻이 아니고, 보통은 뇌사 다음에 죽음이 온다. 심장이식 수술에는 가능한 한 신선한 심장이 필요하기 때문에 심장 제공자의 죽음을 판정함에 있어서 뇌사로 정하려는 움직임이 있다.
1968년 8월 세계의사회 총회에서 채택된 장기 이식에 관한 선언(시드니 선언)에서는 첫째, 심장 제공자에 대한 죽음의 판정은 뇌파 측정기 상의 뇌파의 정지(뇌사)로 결정해야 한다. 둘째, 제공자의 죽음을 확인하는 데에는 2명 이상의 의사가 입회하여야 하며, 뇌사의 결정에 참여한 의사는 이식 수술에 관여해서는 안된다고 하였다.
그러나 뇌파 측정만으로는 뇌간의 기능 정지를 판정 할 수 없고, 뇌사의 판정도 질병의 종류나 진도에 따라 기준이 달라진다. 그러므로 판정 기준에 대한 검토가 필요하다.
뇌종양 뇌외상 혈행 장애 등 뇌질환의 증상에서 보면 ①깊은 혼수, ②양쪽 동공의 퍼짐, 동공의 빛에 대한 반사 기능 소실, ③호흡 정지, ④뇌파의 평탄화, ⑤ 혈압의 급격한 저하와 그에 따른 저혈압, ⑥이상 다섯가지 조건이 6시간 후에도 동일한 상태에 있는 것 등 여섯 가지 조건이 판정 기준이 된다.
뇌는 손상을 입으면 재생되지 않으므로 치명적인 상태가 될 수 있다. 그러나 다음과 같은 사실은 뇌의 또 다른 면을 보여주고 있다.
먼저 피니스 게이지라는 미국 노동자의 경우다. 그는 굴착 작업을 하던 중 우발 사고로 철창이 머리 앞부분에 박혀 전두엽에 심한 상처를 받았으나 기적적으로 생존했다. 그 사람은 시각 청각 기타 감각 언어 등은 정상적으로 수행되었지만 인품은 대단히 변하였다. 사고 전에는 이성적이고 충실한 사람이었으나 사고 후에는 생각 없고 감응력도 없는 사람이 되었다. 인간성이 사고로 인하여 근본적으로 변화를 일으키게 된 것이다.
그는 이같은 사고에도 불구하고 1961년 74세로 자연사할 때까지 12년간이나 살았다. 그가 죽은 뒤 그의 두개골과 두개골에 박혔던 철창은 하버드 의대 박물관에 보관되어 있다.
다음은 미국 의학 전문지 '뉴잉글랜드 저널 오브 메디신'에 실린 사람의 경우다.
매사추세츠 종합 병원 응급실에 만취돼 정신을 잃은 상태로 입원한 이 사진의 주인공은 단층사진 촬영 결과 머리 속에 5㎝ 길이의 못이 발견돼 의료진을 경악케 했다. 9시간 뒤 정신을 차린 이 남자는 "12년전 심한 우울증에 빠져 못을 박는 총으로 양눈 사이를 쏴 자살을 시도한 적이 있다"고 말했다고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