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① 말은 동물의 소리와 무엇이 다른가

언어란?

옛부터 언어의 본질에 관해서 여러 가지 논의가 되풀이되고 있다. 그러나 현대 언어학자들조차 언어에 대한 정의는 가지각색이다. 그것은 무슨 이유일까?

이미 고대부터 그리스의 철학자들은 언어의 본질을 해명하려고 노력했다. 이렇듯 언어에 관한 문제는 옛부터 우리의 마음을 사로잡아 왔고, 오늘날에도 누구나 알고 싶어하며 또한 이에 대해 한번쯤은 생각해 보았을 것임에 틀림없다.

그러면서도 '언어란 무엇인가?'라는 물음에 선뜻 대답할 수 있는 사람은 많지 않을 것이다. 그뿐 아니라 옛부터 언어의 본질에 관해서 여러 가지 논의가 되풀이되고 있는데도 현대 언어학자들조차 언어에 대한 정의는 가지각색이다. 이것은 무슨 이유에서일까? 여기에 대한 해답은 언어의 여러 가지 특징에 관한 다음 설명에서 스스로 찾게 될 것이다.

'언어란 무엇인가?'라는 물음에 대해서 "언어는 자기 생각을 상대방에게 전달하는 것"이라고 대답하는 사람이 많을 것이다. 이것은 상식적인 대답이지만 언어의 중요한 기능 하나를 지적하고 있다. 여기서 전달이 언어의 일차적 기능임을 부인할 사람은 없을 것이다.

생각을 상대에게 전달

그러나 '전달'이라는 개념은 우리가 얼핏 생각하는 것보다 대단히 복잡하다. 그리고 이 경우 '전달'이라는 용어는 그다지 적합하지 않다. 그러므로 이 용어 대신에 '커뮤니케이션'(communication)이라는 용어를 쓰기도 한다. 커뮤니케이션은 말하는 사람과 듣는 사람 그리고 전달 내용을 포함하는 활동이다.

따라서 '전달'이라는 용어는 마치 말하는 사람의 활동만을 의미하는 듯한 인상을 주어서 적당하지 않다. 언어의 일차적 기능인 '의사전달'은 이러한 뜻으로 이해돼야 한다.

동물이 내는 소리는 인간의 말소리와 다르다

동물도 상황에 따라서 일정한 소리를 내며 자기 의사를 전달하려는 경우가 있다. 이러한 뜻에서 동물에게도 정도의 차이는 있으나 어떤 전달수단이 있다고 할 수 있다. 그러나 동물이 내는 소리는 인간의 말소리와는 본질적으로 다르다. 그것은 인간의 말소리에는 분절(分節)이라는 특징이 있기 때문이다. 즉 인간의 말은 일정한 수의 어음이나 단어로 분석되는 것이다. 이것을 분절이라고 한다.

한편 동물의 경우에는 비록 소리에 의한 어느 정도의 전달활동을 하는 수가 있어도 그 소리는 분절성이 없고 한 덩어리의 외침에 지나지 않는다. 인간의 언어는 세계의 어느 언어를 보더라도 단음(單音)으로 분절되고 그들이 여러 가지로 결합해 수많은 단어와 문법요소를 구성한다. 그러나 분절될 수 없는 동물의 외침에는 그러한 뜻의 단어가 있을 리 없다.

언어기호는 표현과 내용이 결합한 것

'머리'는 한 언어기호인데, 여기에는 두 가지 면이 있다. 하나는 알기 쉽게 말해서 /머리/라는 소리의 면이고 또 하나는 '頭'라는 의미의 면이다. 전자를 '표현', 후자를 '내용'이라고 한다. 그러므로 언어기호는 표현과 내용이 결합한 것이다.

그런데 여기서 문제가 되는 것은 언어기호의 표현과 내용의 관계다. '頭'를 한국인은 /머리/(=머리), 영국인은 /hed/(=head), 프랑스인은 /tet/(=tête)라고 한다. 이렇게 동일한 내용에 대해서 표현이 각각 다른 것은 무엇을 의미하는가? 그것은 한마디로 말해서 '頭'를 부르는 언어습관이 각기 다르기 때문이다.

이와 같이 언어기호의 내용과 표현 사이에는 자연적이고 필연적인 관계가 있는 것이 아니라, 관습에 의해서 이렇게도 부르고 저렇게도 부르는 것이다. 내용과 표현의 이러한 관계를 '자의적'(恣意的)이라고 한다. 또한 언어기호의 자의성이라고도 한다.

개인적인 파롤과 사회적인 랑그

우리가 실제로 어떤 말을 할 때, 말하는 사람은 자기가 기억하고 있는 어휘 중에서 적절한 단어를 선택하고 또 선택된 단어를 일정한 순서에 따라서 연결시킨다. 모국어일 경우에는 이러한 심리적 활동이 무의식적으로 이루어진다. 그러나 우리가 익숙하지 못한 외국어로 작문할 때를 생각해 보면, 그러한 심리적 활동이 의식적으로 일어나고 있는 것을 알 수 있다.

이렇게 볼 때 구체적으로 말을 한 것과 그 말을 할 때 이용된 언어자료를 구별해서 생각할 수 있다. 기억하고 있는 언어자료를 편의상 언어목록 및 문법규칙이라고 한다면, 그러한 언어자료는 머리 속에 기억하고 있는 추상적인 것이다. 그리고 이 추상적인 자료를 이용해서 실제로 말하게 된다. 이때 주의할 것은 추상적인 언어자료와 구체적인 실제 발화(發話)를 구별해야 하는 것이다.

그리하여 언어학자 소쉬르는 언어자료를 랑그(langue)라 하고 구체적인 발화를 파롤(parole)이라고 불러 양자를 구별했다. 그러면 왜 이러한 두 가지 면을 구별해야 하는가?

한 언어사회의 구성원이 각기 기억하고 있는 언어목록이나 문법규칙은 모두 동일해야만 커뮤니케이션이 가능하다. 그런데 이 랑그를 이용해서 실제로 발화하게 되면, 개개인에 따라서 무수한 차이가 생긴다. 즉 파롤이다. 그런데 그 개개의 차이를 하나하나 개별적으로 모두 연구한다는 것은 도저히 불가능하다. 그러므로 개개 발화의 최대공약수라고 할 수 있는 것을 연구대상으로 할 수밖에 없는 것이다. 다시 말해 그 최대공약수는 추상적인 랑그에 해당하는 것이다.

이와 같이 언어학은 다양한 개인적 차이가 있는 파롤을 연구대상으로 할 수 없기 때문에, 랑그를 연구대상으로 한다. 또 랑그는 한 언어사회의 각 구성원 사이에 정해진 공통적 규칙이라고 할 수 있다. 따라서 파롤이 개인적인 것이라면 랑그는 사회적인 것이라고 할 수 있다. 이러한 뜻에서 언어의 사회성이 강조되고 있다.

태어나면서 지니는 언어능력

정상적인 언어습득에는 새로운 문장을 무수히 산출할 수 있고 또 그것을 들으면 즉각 이해할 수 있는 능력뿐만 아니라 잘못된 문장을 곧 식별할 수 있는 능력이 포함돼 있다. 이것이 곧 잠재적인 언어능력이다.

다시 말하면 인간에게는 모국어를 자유로이 구사할 수 있는 능력이 있는데, 이 능력은 추상적인 것이며 구체적인 언어활동의 배후에서 그것을 규제하고 있는 것으로 생각된다. 그리하여 언어능력(competence)과 구체적인 언어활동인 언어수행(performance)을 구별한다.
여기에는 다음과 같은 견해가 내포돼 있다.

인간은 언어의 구조에 관해서 이미 무엇인가를 알면서 태어난다. 즉 인간은 특이한 유전자 구조에 의해서 언어의 특징이 이미 들어 있는 심적 상태에서 태어난다. 그리고 그 최초의 심적 상태에 들어 있는 언어적 특징은 모든 인간언어에 공통된 것이라고 한다.

이렇게 태어나면서부터 지니고 있는 언어지식을 언어능력이라고 한다. 더 구체적으로 말하면, 태어나면서 인간의 뇌에 들어 있는 문장에 관한 지식을 언어능력이라고 본다. 이에 대해서 실제로 말을 하고 이해하는 것을 언어수행이라고 함은 위에서 지적한 바와 같다.

언어는 무질서한 집합체가 아니다

일반적으로 '체계'란 알기 쉽게 말한다면, 일정한 원리에 의해서 조직된 지식의 통일적 전체를 말한다. 그런데 언어는 여러 가지 요소의 단순하고 무질서한 집합체가 아니다. 다음의 한 예를 보기로 하자. 이것은 말소리에 관한 음운체계에 관한 것이다.

우리 말에는 여러 가지 음운이 있는데, 이들은 모두 체계를 이루고 있다. 그 한 예를보면, /ㅂ/ /ㅍ/ /ㅃ/는 모두 두 입술이 꼭 닫혔다가 터지는 양순파열음(兩脣破裂音)이다. 이는 그리고 모두 무성음이다. 그런데 /ㅍ/는 두 입술이 파열한 뒤에도 기류가 계속해서 나오는 이른바 유기음이라는 점에서 /ㅂ/ 및 /ㅃ/와 구별된다.

한편 /ㅃ/ 발음할 때 후두를 비롯한 발음기관이 긴장하는 이른바 된소리라는 점에서 /ㅂ/ 및 /ㅍ/와 분명하게 구별된다. 그런데 이러한 구별은 다른 파열음에도 있다. /ㄷ/ /ㅌ/ /ㄸ/는 모두 혀끝과 치조(齒槽)사이에서 파열이 일어나는 치조파열음이다. 또 /ㄱ/ /ㅋ/ /ㄲ/는 뒤혀와 연구개(軟ㅁ蓋)사이에서 파열이 일어나는 연구개파열음이다. 그런데 이들 파열음에는 /ㅂ/ /ㅍ/ /ㅃ/에서와 같은 관계가 있다. 이 관계를 도시하면 다음과 같다.


파열음 관계 도시
 

언어는 성과, 작품이 아니라 활동이다

19세기의 저명한 언어철학자 훔볼트(W.von Humboldt)는 "언어는 이미 이루어진 성과 혹은 작품이 아니라 하나의 활동"이라고 했다. 그는 또 이것을 "언어는 죽은 소산물이 아니라 오히려 산출활동으로 보아야 한다"라고도 했다. 그러므로 언어는 정적인 것이 아니라, 동적이며 다이내믹한 것이다.

그런데 언어에는 문장을 생성하는 규칙이 기저에 존재한다. 언어에서 고정돼 있는 것은 이것뿐이다. 이 문법규칙이 허용하는 한계 내에서 무한한 새로운 문장을 산출할 수 있는 것이다.

인간은 지금까지 들어보지도 못한 새로운 문장을 얼마든지 만들어낼 수 있다. 이러한 면에서 볼 때, 언어에는 분명히 창조적인 면이 있다. 그러나 여기서 주의할 것은 무수히 만들어낼 수 있는 문장은 모두 문법규칙에서 벗어날 수 없는 것이다. 그러므로 그 창조성은 '규칙에 의해서 규제된 창조성'이 된다.

언어의 정의 가지각색

위에서 언어의 몇 가지 특징을 살펴보았다. 언어는 이렇게 복잡한 요인이 얽혀 있는 것이다. 앞에서 '언어란 무엇인가?'라는 물음에 선뜻 대답하기 어렵고 또한 옛부터 언어의 본질에 관한 논의가 되풀이되고 있으면서도 현대 언어학자들조차 언어에 대한 정의가 가지각색인 이유를 여기서 스스로 찾게 될 것이다.

위에서 든 여러 가지 특징 가운데서 어느 것을 가장 본질적인 것으로 보는가에 따라서 정의가 달라지게 된다. 더구나 언어는 무형적인 것이다. 그 무형적인 것에서 본질적인 것을 추출한다는 것은 쉬운 일이 아니다. 따라서 어느 시대에 심리학에서 큰 영향력 있는 학설이 나타나 인접 학문에 영향을 미치면 언어학에서도 언어를 그러한 심리학적 관점에서 보려는 경향이 생기며 또 사회학의 영향을 받으면 언어의 사회성이 두드러지게 강조되는 경향이 생기는 것은 당연하다고 하겠다.

뿐만 아니라 각 언어학자의 이론적 배경에서 언어를 보는 관점이 달라지는 것도 당연하다. 그리하여 언어학에서 그 연구대상인 언어를 일정한 관점에서 미리 분명하게 규정한 학자가 소쉬르다. 그는 말하기를 "연구대상은 관점에 앞서서 존재하는 것이 아니라 일정한 관점에 의해서 대상이 만들어진다"라고 했다.

위에서 언어의 특징 몇 가지를 보았는데 우리는 이것을 통해서 언어가 심리학 생리학 사회학 미학 등 여러 학문과도 밀접한 관계가 있는 것을 알 수 있다. 이러한 점에서 근래 부각되고 있는 심리학적 연구 경향을 잠시 살펴보기로 하자.


언어는 심리학 생리학 사회학 미학 등 여러 학문과도 밀접한 관계가 있다.
 

인지과학과 밀접한 관계

언어는 문장의 집합이며 문법은 옳은 문장만을 산출하는 규칙의 체계라고 본다면, 그러한 규칙의 집합은 화자의 마음 속에 또는 뇌생리학적으로 뇌에 저장돼 있는가? 다시 말해, 우리들의 머리에 문법이 들어 있는가? 그렇다면 그것은 말의 산출과 이해에 있어서 어떤 역할을 하는가?

이런 문제가 제기되지 않을 수 없다. 그러나 이런 문제에 대해서는 아무도 이의를 제시할 수 없을 만큼 흡족한 해답이 없다고 보는 것이 옳을 것이다.

근래 심리언어학적 연구가 생성(生成)이론의 큰 영향을 받은 것은 사실이지만, 그렇다고 해서 모든 심리학자가 그렇게 보는 것은 잘못이다. 전통적으로 논의돼 온 많은 주제-언어와 사고, 언어와 기억 등-에 관한 연구도 계속되고 있는 점에 유의할 필요가 있다.

또 한편 근래 다음과 같은 연구 경향도 있다. 인간의 마음의 구조 기능을 해명하려는 것을 목표로 하는 학제적 연구를 인지과학(cognitive science)이라고 한다. 언어학에 있어서의 생성문법, 심리학에 있어서의 인지심리학, 기계공학에 있어서의 인공지능(artificial intelligence) 등의 발전과 더불어 인간 마음의 본질을 여러 각도에서 해명하려고 하는 미국에서 일어난 연구활동에 대한 총칭이라고 할 수 있다.

인지는 지각 판단 기억 언어사용 이해 등 인간의 마음이 관여하는 심적 과정과 그 산물에 대한 총칭이다. 그런데 생성문법에 의하면, 문법은 의식되지 않으나 인간의 뇌에 내재하는 지식의 일부이며 언어의 산출과 이해의 과정에서 이 지식이 사용된다고 생각되고 있다. 그러므로 문법연구는 인간의 마음 또는 뇌의 구조와 기능에 관한 연구의 일부라고도 할 수 있다. 이러한 점에서 언어학은 인지과학과 밀접한 관계를 갖게 된다.

이미 위에서 언어는 여러 학문 영역과 밀접한 관계기 있음을 알게 됐다. 그리하여 여러 각도에서 언어에 접근하려고 한다. 위에서 든 연구 경향 이외에 몇몇 예를 들면, 뇌신경과의 관계를 다루는 신경언어학 수리언어학 정보이론 기계번역 등의 분야가 활발히 연구되고 있다.

원숭이의 울음소리는 인간언어에 가까운가

원숭이의 울음소리는 있는 그대로의 감정 표현일까, 아니면 인간의 언어에 가까운 것일까. 영장류 연구자들은 오랜 세월 이 문제를 천착해 왔다.

동아프리카에 서식하는 벨벳원숭이 연구로 유명한 R. M. 세이파스(Robert M. Seyfarth)와 D. L. 체니(Dorothy L. Cheney) 박사는 교묘한 실험을 통해 이 원숭이들이 '언어'를 사용하고 있다는 사실을 명쾌하게 밝혔다. 두 사람은 원숭이들이 서로의 울음 소리를 '소리'가 아니라 '의미'에 의해 구분하고 있음을 실증해낸 것이다.

원숭이들은 여러가지 상황에서 소리를 내는데, 가령 포식자(捕食者)를 발견하면 큰 경고음을 내며, 다른 무리를 만나면 '우르르'(wrr)나 '쳐터'(chutter) 라고 소리를 낸다. 자기 무리 중 하나와 싸울 때는 위협하는 소리나 조금 다른 '쳐터' 소리를 낸다.

처음 원숭이나 유인원의 야외연구를 했던 연구자들은 그들의 울음소리와 인간의 언어는 전혀 이질적인 것이라고 생각했다. 인간의 발화(發話)는 의도적으로 제어되며 감정과 전혀 다르게 표현할 수 있고(예를 들어 인간은 무서워하지 않으며 공포에 대해 말할 수 있다), 뇌의 고차피질 영역의 활동에 관련된 것이라는 사실을 당연하게 생각하고 있었다. 반면 원숭이나 유인원의 발성은 비의도적인 색채가 강하고 감정을 강하게 느낄 때만 나타나며, 고차피질에 의한 제어는 적다고 생각했다. 즉 인간의 언어는 외계의 사물을 나타내고 있지만, 원숭이나 유인원의 울음 소리는 그 개체의 감정 상태나 절박한 행동을 나타내는 데 불과하다는 것이다.

소리를 의미로 받아들이는 벨벳 원숭이

1960년대 말 이러한 생각에 의문을 던지는 연구 결과가 두 가지 발표됐다. 1969년 네바다 대학의 가드너 부부는 '워쇼'라는 이름의 침팬지가 30가지를 넘는 수화를 외우고 있다고 발표했다. 이 침팬지는 수화를 사용해 사물을 지시하고 요구를 하는 언어 행위를 했던 것이다. 이에 대해 부정적 해석을 하는 연구자도 상당수 있었지만 영장류가 사인을 이용한 커뮤니케이션이 불가능하다는 그때까지의 전통적 사고에 물음표를 던지기에는 충분한 것이었다.

비슷한 시기 캘리포니아 버클리 대학에 있던 스트루세이커(Thomas Strusaker)는 1967년 동아프리카의 벨벳 원숭이가 표범 독수리 뱀 등 3종류의 포식자에 대해 다른 울음 소리(경고음)를 낸다고 발표했다. 어느 울음 소리도 가까이 있는 원숭이에게 명확한 도피반응을 유발한다. 가령 표범에 대한 울음에 원숭이들은 일제히 나무 위로 기어 올라간다. 독수리에 대한 경고를 들으면 하늘을 올려다보거나 덤불 속에 숨는다. 뱀에 대한 울음에는 뒷발 만으로 서거나 풀 속을 들여다본다. 결국 워쇼 침팬지와 마찬가지로, 벨벳 원숭이도 앞에 든 종류의 위험을 알리는 데 각기 다른 사인을 쓰는 것으로 보였다.

1977년 록펠러 대학의 말러(Peter Marler) 연구실의 일원이었던 세이파스와 체니는 이들 가설을 검증하기 위한 실험을 했다. 실험에는 스트루세이커가 일했던 곳과 같은 조건이 채택됐다. 이들은 우선 벨벳 원숭이의 울음소리를 녹음하는 일에 착수, 수개월을 보냈다. 각 개체가 표범 독수리 뱀을 만났을 때 내는 울음을 채취, 스피커로 이들 울음 소리를 재생해 들려줬을 때 원숭이들이 보이는 반응을 영상으로 기록했다.

결과를 분석해보면 이들 실험에서 원숭이들이 보인 반응은 스트루세이커가 자연 상태에서 관찰한 것과 거의 같았다. 스피커에서 들려오는 표범경고를 들으면 이들은 나무에 기어 올라갔고, 독수리 경고와 뱀 경고에도 마찬가지 반응이었다.

그러나 아직 원숭이의 울음 소리와 인간의 언어를 같은 것이라고 결론짓기에는 주의가 필요하다. 벨벳 원숭이의 경고음을 의미가 있는 신호라고 한 것은 그들의 일상생활에 있어서 그 경고음들이 쓰이는 방식에 근거한 말이다. 누군가가 낸 독수리 경고를 들으면 원숭이들은 일제히 독수리를 본 것처럼 반응한다. 이 행동은 실제로 독수리를 보지 않았더라도 원숭이의 마음 속에는 경고음 만으로도 하늘을 날고 있는 포식자를 '지시'하거나 혹은 '이미지를 불러 일으키는' 작용을 한다는 것을 의미한다.

그러나 이렇게 결론내리는 것은 약간 위험하다. 예를 들어 조건반사 실험으로 알려진 파블로프의 개의 경우, 벨소리가 고기의 이미지를 떠올려주는 것은 분명하지만 인간이 어떤 가구를 '의자'라고 부르는 것과 같은 지시물과 피지시물의 관계를 그 개가 이해했는지는 알 수 없다.

원숭이 울음 소리가 단순한 '소리'의 영역을 넘어 '언어'가 되는 것은 일종의 전환(轉換)이 생긴 때가 아닐까. 과거 펜실베이니아 대학에 있던 심리학자 프리맥(David Premack)이 말한 바대로 그 음성이 가진 본질이 '소리' 그 자체인 것이 그것이 지시하는 물체로 변했을 때 '음성'이 '언어'로 변하는 것이 아닐까.

벨벳 원숭이가 음성을 어떠한 기준으로 비교하고 있는가를 알기 위해 유아의 발화지각을 알아볼 때 자주 쓰이는 '순화(馴化), 탈순화법'을 이용했다. 이는 몇번이나 같은 자극을 받으면 순화(적응)돼 되어 그 자극에 대한 반응이 적어지고 결국 없어진다. 그렇게 된 상태에서 다른 자극을 준다. 그 자극이 순화된 자극과 다르다고 판단됐을 때 반응의 강도는 갑자기 회복된다. 두 가지 자극이 유사하다고 판단되는가, 다르다고 판단되는가를 알아볼 수 있는 것이다.

벨벳 원숭이가 음성의 유사도를 판단할 때, 그들은 음향적 특성, 의미적 특성 중 어느 쪽에 근거한 판단을 내릴까. 연구진은 다른 무리와의 영역 싸움에서 쓰이는 두 가지 울음 소리를 재료로 택해 실험을 했다. 하나는 '우르르'음으로, 다른 무리와 처음 만났을 때 내는 길고 강한 트릴음이다. 또 하나는 '쳐터'음으로, 두 무리간의 만남이 위협이나 추적, 투쟁으로 발전했을 때 내는 급하고 끼끼거리는 듯한 소리다. 두 소리가 지시하는 사물은 거의 비슷하나 음향적으로는 전혀 비슷하지 않다.

결과를 보면, 벨벳 원숭이는 각기 다른 음성을 음향적 특성뿐 아니라 의미에 근거해 구분한다는 점이 명백했다. 같은 개체의 우르르와 쳐터를 들려주면 원숭이의 순화는 이들 음성 사이로 전이됐다. 즉, 개체 A의 '우르르'에 순화된 원숭이는 같은 개체 A의 '쳐터'에도 반응을 보이지 않았다. 그러나 의미가 다른 울음 소리 간에는 순화가 전이되지 않았다. 즉, 개체 X의 표범 경보에 반응하지 않게 된 원숭이는 같은 개체 X의 독수리 경보에는 보통 때와 다름없는 강도의 반응을 나타냈다.

그러나 이 실험 결과가 원숭이의 음성이 사람의 언어와 같은 수준의 것임을 의미하지는 않는다. 사람의 언어에는 언어와 사물의 지시, 피지시라는 대응 관계 이상의 것이 포함돼 있다. 커뮤니케이션을 할 때 우리는 지식 신념 바람 등 상대방의 심적 상태까지도 느낄 수 있다. 또 우리는 이와 같은 심적상태가 갖가지 행동의 원인이 됨을 인식하고 있다.

동물의 커뮤니케이션에 대한 연구는 곧 동물이 어떻게 사고하는가의 문제와 연결된다. 벨벳 원숭이 연구로 알아낸 것은 영장류의 목소리는 반사적인 것뿐만은 아니라는 점이다. 주위의 개체들을 계산에 둔 상태에서 환경에 따라 다른 울음 소리가 선택적으로 외쳐지는 것이다. 인간의 언어와 마찬가지로, 원숭이 울음 소리도 여러 물체나 상황을 가리키는 기능을 가진다. 원숭이들도 음성과 그것이 지시하는 것, 혹은 그 개념들간의 관계를 인식하고 있는지도 모른다.

한편, 원숭이들의 커뮤니케이션이나 인지가 인간과는 어떻게 다른지도 조금씩 밝혀졌다. 인간의 커뮤니케이션은 행동의 원인이 되는 지식이나 신념, 동기에 영향을 주는 것처럼 돼 있으나, 아직까지는 원숭이들의 커뮤니케이션도 똑같다는 증거는 없다. 원숭이는 타자에게는 자신과는 다른 심적 상태가 존재한다는 사실을 인식하지 못한다. 그래서 다른 개체의 심적 상태를 바꾸기 위해 커뮤니케이션을 할 수는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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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93년 03월 과학동아 정보

  • 김방한 명예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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