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국내배출 '천문학 박사 1호' 박홍서 천문대장

"별관측은 과학대중화의 지름길"

천문학은 모든 자연과학의 아버지. 그럼에도 불구하고 국내천문학계는 조금 위축돼 있다고 할 수 있다. 천문학계에 새바람을 불러 일으킬 천문대 박홍서대장을 만났다.

91년 말 우리나라 천문대는 큰 홍역을 앓았다. 독립된 천문우주과학연구소가 연구소 통폐합에 따라 표준과학연구원의 부속기관으로 전락(?)하고 만 것이다. 한마디로 독립된 연구소를 운영하기에는 연구성과가 눈에 보이지 않는다는 것이다. 천문학자들은 국립천문대의 위상이 급전직하 위기에 몰리자 머리를 맞대고 여러가지 방안을 연구했으나 뾰족한 묘안이 없었다.

당시 천문학회장이었던 교원대 박홍서 교수(51)는 교수직을 유지한 채 한국표준과학연구원 천문대장으로 겸임 발령을 받았다. 상처받은 천문학 연구자들의 마음을 어우르고 재도약을 위한 발판을 마련하라는 무언의 지시였다. 이 지시는 외부에서 내린 것이 아니라 천문학자들 스스로가 내린 결정이라고 할 수 있다.
 

올해 과학의 달에는 천문대가 주축이 돼 규모가 큰 「스타 페스티벌」을 개최할 예정이라고 밝히는 박홍서대장


외도에 나선 교수님

그로부터 1년 2개월이 지난 시점에서, 청주(교원대) 대덕(천문대) 서울(집)을 오가며 정신없이 보내는 박홍서 대장을 집으로 찾아 갔다. 첫인상은 연구기관의 책임자라기보다는 텁텁한 시골학교 선생님. 곧바로 천문대 일이 어떠냐고 물었다.

"가르치는 일만 하다가 처음으로 조직 일을 해보니 상당히 어렵데요. 저에게는 외도라고 할 수 있을텐데··· 더군다나 시기도 어려웠고 능력도 뛰어나지 않아 마음고생을 많이 합니다. 지금까지는 수습과정을 밟는 심정으로 업무 파악에 주력했습니다."

-천문대가 무슨 일을 하는지 일반 국민들은 잘 모르고 있는 것이 사실입니다. 천문대의 역할이랄까요, 하는 일을 중심으로 말씀해주시지요.

"우선은 천문학 연구가 중심이 되겠지요. 성운 성단이나 별을 관측한 것을 바탕으로 자연과학으로서 천문학을 연구하는 일을 의미합니다. 천문대는 천문학자들이 갈 수 있는 유일한 연구기관입니다. 그 다음에는 국민생활과 직간접적으로 관련이 있는 천문현상을 미리 예상해 알려주는 일이 있습니다. 예를 들면 역서를 발간하는 일 등이 되겠지요. 이 일을 좀더 적극적으로 한다면 일식이 일어난다든가, 혜성이 접근한다든가 특이한 천문현상이 일어났을 때 직접 천문대가 나서서 학생이나 일반인들에게 관측할 수 있는 기회를 제공할 수도 있겠지요."

-외부적으로 나타나는 가시적인 성과는 어떻습니까.

"사실 그 부분이 천문학 연구기관의 딜레마입니다. 91년의 연구소 평가 때도 연구성과가 문제가 됐으니까요. 천문대는 다른 연구소와는 달리 첨단과학기술의 결과물들을 쏟아내지 못합니다. 오히려 망원경이나 여러 관측기구들을 사용하는 곳이라고 하는 편이 나을 것입니다. 돈을 벌어들이기보다는 자꾸 돈을 사용하는 기관이란 셈이지요. 결과물이라야 연구논문 정도니 다른 정부 출연 연구기관에 비하면 효율적인 측면에서 크게 떨어지지요."

이야기 도중에 매우 난처한 표정이 역력하다. 천문학 연구를 다른 첨단과학과 동일한 잣대로 측정하려는 데에 대한 거부감 반, 그래도 국민의 세금을 쓰는 데에 대해 무엇인가를 보답해야 된다는 부담감 반이 엇갈려 있는 듯하다. 그의 말이 이어진다.

"기초과학이란 그런 것이니까 마냥 이해만 해달라고 할 수도 없고, 뭔가 우리도 당장 사회에 기여해야 하지 않을까 고민을 많이 했습니다. 그래서 내린 결론이 '과학문화적인 접근'을 해야 한다는 것입니다.
 

「교육」으로 인연을 맺은 박홍서 천문대장 부부


과학문화적인 접근

'과학문화'란 표현에서 설명이 길어진다. 천문현상은 학문적 지식이 없는 사람도 관심이 많다. 밤하늘의 반짝이는 별은 천문학자들의 독점물이 아니다. 어린 학생들이 청백색의 시리우스를 보고 과학자의 꿈을 키울 수도 있고, 젊은 처녀 총각이 앉아 견우별과 직녀별에 얽힌 사랑이야기를 나눌 수 있다. 나이 든 아저씨가 오리온성운의 화려함에 넋을 잃을 수 있으며, 어머니가 아들에게 별의 일생을 이야기 하면서 '만물은 변한다'는 진리를 가르칠 수도 있다.

"과학자를 키우는데는 여러가지 방법이 있습니다. 전공을 불문하고 어렸을 때 별을 보면서 과학자의 꿈을 키운 사람이 많을 것입니다. 동기를 유발하는데는 천문현상이 적격입니다."

박홍서 대장의 설명대로 '별보는 일'이야말로 국민 생활의 과학화에 아주 좋은 소재다. 아무리 칠판에 황도 백도를 그리고 설명을 해도 이해하지 못하는 학생이라도 초롱초롱 빛나는 별들을 보면서 지구와 달, 그리고 태양이 어떻게 운동하는가를 설명하면 금방 이해한다. 천문대가 요즘과 같은 과학기술 사회에서 과학대중화에 기여한다면 나름대로 역할을 충분히 수행하는 것이라는 얘기다.

-과학문화적인 접근을 하는 데도 구체적인 방법이 필요할텐데요.

"이제까지 하지 않은 것은 아니지만 천문대가 앞장서서 정기적인 공개관측회를 가질 예정입니다. 과학의 달에 1년에 한번 가지는 관측회를 연중 수시로 개최하는 과학캠프로 바꾸고, 중고등학교 교사들과 연계해 학교창고에서 먼지를 뒤집어 쓴 채 썩고 있는 망원경을 끄집어 낼 수 있는 방안을 모색 중입니다. 현재 공사가 한창 진행되고 있는 보현산 천문대 입구에 있는 국민학교 하나가 학생수가 줄어들어 폐교 위기에 놓여 있는데 여기를 1박2일의 과학캠프 장소로 사용할 생각도 해봅니다."

이외에도 천문대에서 보증하는 쓰기 편리한 표준망원경을 보급하는 방안을 생각 중이나, 돈이 관련된 문제라 쉽지 않을 것이라고 고민을 털어놓았다.

평생을 교육기관에서만 근무하던 '선생'인지라 학교교육의 현황에 대해서는 정확히 파악하고 있었다. 그가 소개하는 에피소드 하나. 어느날 국회의원들이 시골 일선 학교에 나와서 교실에 있는 지구본을 보고 "지구본이 왜 삐뚤어져 있느냐"고 묻자 학생들이 "저 만지지 않았어요"라는 답을 했다는 것이다. 담임선생님은 "들어올 때부터 그랬다"고 하고 교장선생님은 "국산이 다 그렇죠"라고 얼버무렸다는 얘기다. 조금은 과장된 이야기겠지만 학생들이 "만지지 않았어요"라는 답변이 나오는 한 과학교육의 미래는 암담할 수밖에 없다.

-보현산 천문대의 1.8m 망원경은 전파망원경 설치 이후 우리나라 천문학사에 획을 긋는 큰 사건이라고 할 수 있는데, 현재 진행 상황은 어떻습니까.

"세계적인 수준이 5m를 넘어 10m에 육박하고 있으니까 거기에 비하면 보잘 것이 없지요. 하지만 60cm 소백산 망원경에서 3배의 도약을 하는 셈이니 천문학자들 모두 기대가 큽니다. 프랑스에서 제작 중인 주망원경이 올 8월말에 들어오면 10월 중에 세팅을 완료하고 망원경의 성능 조정시험을 1년 정도 거친 후에 94년 말부터는 공개할 예정입니다. 주망원경 이외에 태양망원경과 자동망원경을 설치하려고 합니다."

-내년이면 우리나라에 국립천문대가 탄생한 지 20년이 됩니다. 특별한 행사라도 계획하고 있는 것은···.

"20년이면 성년인데 독립하지도 못하고 있다는 것이 안타깝습니다. 전혀 업무가 상이한 표준과학연구원에 얹혀 있는 더부살이를 빨리 벗어나야겠지요. 외국과 교류할 때도 천문대의 위상 때문에 곤란한 점이 한두가지가 아닙니다. 20주년을 맞아서 알찬 국제학술대회를 하나 계획하려 합니다. 최근에는 우리나라에도 우수한 학자들이 많이 배출돼 천문학 전 분야에 전공자가 골고루 퍼져 있습니다. 천문대에만도 박사 17명을 포함해 47명의 연구원이 있지요. 이들의 연구성과를 모으는 계기를 만들어야지요. 또하나 대학 천문대를 활성화해 지역 사회에서 천문학의 저변을 확대하는 방안도 협의해볼 예정입니다."

고등학교 때 아마추어햄을 하다가 천문학을 하게 됐다는 박홍서 대장은 국내에서 배출한 천문학 박사 1호. 65년 서울대 천문기상학과를 나와 연대에서 84년에 쌍성연구로 학위를 받았다. 좁은 천문학계에 학연을 중시하는 풍토를 불식하는 데도 박대장은 적격이라고 할 수 있다. 서울대 조교 시절에 망원경 조작을 도와주다가 실습온 이화여대 과학교육과 여대생과 결혼했고 그 이후로 부부가 모두 교육분야에만 종사해왔다. 현재 자신의 위치를 외도라고 표현하면서, 이 외도가 조금이라도 천문학 발전에 도움이 됐으면 좋겠다는 희망을 피력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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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93년 03월 과학동아 정보

  • 김두희 기자
  • 사진

    전민조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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