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화마 잡는 골목대장, 골목소방차

화재 잡으러 구석구석 누벼라



“작다. 그러나 강하다. 자신보다 몸집이 큰 차와 비교해도 뒤지지 않는다. 큰 차가 갈 수 없는 길을 요리조리 누빌 수 있다. 큰 차에서는 볼 수 없는 ‘신기술’도 탑재했다.  가격은 절반에 불과하다.” 새로 나온 소형차 광고가 아니다. 올해 서울시가 개발해 동작소방서와 종로소방서에 배치한 ‘골목소방차’ 이야기다. 기존 소방차와 달리 도로에서 흔히 볼 수 있는 12인승 승합차를 개조해 만들었다. 작으니까 화재 진압이 어려울 거라고? 천만에 말씀. 작은 고추가 맵다. 현대식 건물과 목재로 만든 문화재에 화재 발생 시 초기에 진압할 수 있는 기술이 추가됐다. 어렸을 적 골목을 주름잡았던 골목대장을 연상시키는 골목소방차의 신기술을 찾기 위해 낱낱이 분해해봤다.


[2008년 2월 10일, 숭례문이 화재에 불타고 있는 모습. 기와 밑에 있는 강회층이 물의 진입을 막아 불을 조기에 진압하지 못했다.]

2008년 2월 10일 오후 8시 50분, 우리나라 국보 1호 숭례문에서 연기가 치솟았다. 누각 2층 지붕에서 발생한 화재. 목재가 타면서 불은 빠르게 번졌지만 국보 1호라는 상징성 때문에 소방관들은 적극적으로 화재에 대처할 수 없었다. 오후 9시 30분, 불길이 사그라지는 듯 했다. 하지만 화마는 건물 내부에 숨어있었다. 소방관은 숭례문 현판을 잘라내고 본격적인 진화에 나섰지만 불씨는 줄어들지 않았다. 전통 목조건물의 기와 밑에는 누수를 막기 위해 생석회와 마사토를 섞어 굳힌 두께 12~15cm의 ‘강회층’이 있기 때문이다. 강회층은 콘크리트처럼 단단하게 굳어 물이 새는 것을 막는다. 숭례문 내부에 있는 목재는 계속해서 타들어갔지만 물은 강회층에 막혀 불까지 닿지 못했다. 다음날 오전 1시 54분, 숭례문은 폭격 맞은 건물처럼 무너지고 말았다.

화재로 무너진 숭례문… 두 번은 없다

이종문 소방재난본부 장비팀장은 숭례문이 무너진 다음날부터 목조 문화재에 불이 났을 때 초기에 진압할 수 있는 방안을 찾기 위해 뛰어다녔다. 문화재에 손상을 입히지 않으면서 강회층처럼 딱딱한 부분을 뚫은 뒤 내부로 물이나 이산화탄소를 넣어 화재를 진압할 수 있는 기술이 필요했다. 처음 눈에 띈 것은 스웨덴에서 만든 ‘미분무관 통장치’였다. 건물에 작은 구멍을 뚫고 내부로 이산화탄소나 물을 넣는 장비다. 하지만 가격이 비싸고 우리나라에서도 유용하게 사용할 수 있는지 확신이 서질 않았다.

2010년 10월 1일, 부산 우신골든스위트 주상복합건물에서 화재가 발생했다. 건물 밖을 감싸고 있는 강화유리, 알루미늄 복합판넬 때문에 내부에서 발생한 화재를 초기에 진압하기 어려웠다. 강한 충격으로 벽을 깨트리면 산소가 급격하게 내부로 유입돼 불길이 치솟는 ‘백드래프트’ 현상이 발생해 외벽에 접근한 소방관이 다칠 수도 있다. 과제가 하나 더 늘었다. 문화재 뿐 아니라 현대식 건물을 둘러싸고 있는 강한 벽을 뚫을 수 있는 장비가 필요했다.

다행히 2010년 11월, 국내 중소기업이 미분무관통장치를 개발했다. 가격은 수입제품의 5분의 1에 불과한 3000만원 수준. 이 장치는 물 90%에 10%의 연마제를 섞은 혼합용액을 지름 2cm의 노즐을 통해 250bar의 고압으로 쏠 수 있다. 대기압의 250배에 해당하는 압력이다. 연마제는 산화알루미나 입자로 이뤄져 있는데 물과 함께 발사되면서 외벽에 지름 2cm 가량의 작은 구멍을 만든다. 구멍이 작기 때문에 산소가 급격히 유입되지 않아 백트래프트 현상이 발생하지 않는다.

실험 결과, 일반적으로 현대식 건물에 사용하는 강화유리는 5~8초, 이중방화문은 20~25초, 두께 10mm의 철판에 구멍을 뚫는데 걸리는 시간은 40초에 불과했다. 목조로 만든 문화재 건물의 기와를 뚫는데 걸리는 시간은 5~10초, 강회층과 비슷한 10cm의 콘크리트를 뚫는데 걸리는 시간은 25초였다. 이 팀장은 “장비의 효과를 극대화 하려면 기존의 커다란 소방차보다 작은 차량에 장착하는 것이 나았다”고 말했다. 극심한 교통체증을 피해갈 수 있고 좁은 골목길도 누빌 수 있는 새로운 소방차가 필요했다. 결국 시중에서 판매하고 있는 12인승 승합차를 뜯어냈다. 뒷좌석을 일부 떼어내고 300L의 물탱크와 함께 이 장치를 설치했다.





이산화탄소 소화 시스템 개발

벽에 작은 구멍을 뚫고 건물 내부에서 발생한 화재를 진압할 때는 물보다 이산화탄소를 사용하는 것이 효과적이다. 내부를 볼 수 없기 때문에 화재가 발생한 지점에 정확히 물을 뿌리기 어렵기 때문이다. 이산화탄소를 건물 내부에 주입하면 산소 농도가 낮아지는데 16% 이하가 되면 불은 사그라진다. 이 팀장은 “화재를 빨리 진압하기 위해서는 미분무관통장치의 노즐을 벽에 붙여 구멍을 뚫은 뒤에 같은 노즐로 이산화탄소를 넣는 기술이 필요했다”고 말했다. 소방재난본부는 여러 대학 교수와 한국소방산업기술원 전문가들과 함께 기술 개발을 시작했다.

2011년 11월, 연구팀은 벽을 뚫는 장치와 이산화탄소 소화 시스템을 결합하는데 성공했다. 총처럼 생긴 ‘관통관창’에는 두 개의 방아쇠가 있다. 하나의 방아쇠만 담기면 물과 연마제가, 두 개 모두 당기면 이산화탄소가 노즐을 통해 뿜어져 나간다. 승합차의 남은 뒷좌석을 떼어내고 20kg의 이산화탄소가 담긴 커다란 통 4개를 추가로 설치했다. 1분에 1.33kg의 이산화탄소를 한 시간 동안 쉬지 않고 배출할 수 있는 양이다. 이 팀장은 “이산화탄소뿐 아니라 물을 뿜을 수도 있어 다양한 화재 진압에 사용할 수 있다”고 설명했다.

하지만 이것만으로도 부족했다. 숭례문의 경우 물의 침투를 막는 강회문의 두께는 12~15cm 정도. 현재 개발한 노즐의 길이는 약 2cm로 구멍을 낸다 하더라도 내부로 노즐이 들어갈 수 없다. 최소 15cm 이상의 기다란 노즐이 필요했다. 이 팀장은 “노즐만 길게 늘이면 될 줄 알았는데 그게 아니었다”며 “노즐의 지름과 길이를 조금만 바꿔도 이산화탄소나 물 분사에 문제가 생겼다”고 말했다. 이산화탄소는 잘 분출되는데 벽을 뚫는 연마제가 노즐 내부에서 막히거나 반대의 경우가 발생했다. 결국 3개월 동안 노즐의 지름과 길이를 조금씩 바꿔가며 분사 실험을 반했다. 이 팀장은 “실험 결과 노즐 지름 1.9mm, 길이 17cm에서 이산화탄소, 물과 연마제가 섞인 물질 모두 시원하게 분사되는 것을 발견했다”고 말했다.

개발한 기술 모두를 12인승 승합차 안에 담았다. 야간 화재진압을 위해 지붕에 서치라이트를 설치하고 발광다이오드(LED)로 된 전광판을 달아 ‘화재진압’ 등의 글씨를 표시했다. 골목 소방차의 가격은 약 9600만원. 기존 소방차 가격인 1억 9000만원의 절반에 불과하다. 뒷좌석 공간이 부족해 물은 약 300리터 밖에 없지만 주변에 있는 소화전에 50m 길이의 호스를 6개나 연결할 수 있어 반경 300m내에서 발생한 화재 진압도 가능하다.

서울시 소방재난본부는 골목소방차 두 대를 골목이 많은 동작구와 경복궁 등 목재로 된 문화재가 많은 종로구에 시범 배치했다. 이 팀장은 “숭례문 화재와 같은 안타까운 일이 더 이상 발생하지 않기를 바라는 마음에서 골목소방차를 개발하게 됐다”며 “고층건축물의 외벽, 컨테이너, 특수구조물에 화재가 발생했을 때도 사용할 수 있다”고 밝혔다. 서울시는 골목소방차를 노원, 광진 등 서울 동북지역과 강동, 송파 등 동남지역에 추가 배치할 예정이다. 작은 고추의 매운 맛으로 화재를 빠르게 진압하는 골목소방차의 활약을 기대해 보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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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2년 5월 과학동아 정보

  • 원호섭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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