머리좋기로 소문난 오랑우탄 침팬지 개도 따라 하지 못하는 인간의 말을 한낱 조류가 능숙하게 흉내낸다.
새가 말을 한다는 것은 예삿일이 아니다. 가장 사람에 가깝다는 영장목의 유원인중에서도 지능이 제일 높다는 오랑우탄이나 침팬지조차도 말하는 능력을 갖추지 못했다. 또한 아무리 훈련이 잘된 개도 말하기는 불가능하다.
지구상의 동물을 세분하면 분류학상 32문으로 나누는 것이 정설이다. 그중에서 대다수는 원생동물과 같은 원시형태의 동물이고 고등한 형태의 것은 척추동물이 대표적이다. 척추동물에는 파충류 양서류 어류가 있고 조류와 포유류도 포함된다.
그런데 이 척추동물 중에서도 조류만이 사육시의 교육정도에 따라 사람의 말을 흉내낸다. 말을 따라 하는 새는 수십종류가 있는데 이제 그 종류와 그들이 말을 배우는 원리를 알아보기로 하자.
1백여종의 앵무새가 말을 한다
지구상에는 약 8천7백여종의 조류가 있다. 학자에 따라 다소 다르기는 하나 조류는 보통 27목으로 구분된다. 이들은 다시 1백63과로 나누어진다. 그중에서 말 잘하는 새로 유명한 새는 앵무새다.
앵무새는 전세계에 3백28종이 서식하고 있는데 그중 50여종이 쉽게 말을 가르칠 수 있는 종이고 또 50여종이 언어수업이 가능한 종이다. 대개 앵무새는 적도권을 중심으로 한 지역에서 살고 있다. 남미산의 금강앵무류와 모자앵무류가 유력한 종이고 아프리카의 회색앵무류도 전세계적으로 널리 알려진 종류다.
또 하나의 말하는 새로 구관조를 꼽을 수 있다. 이 새는 동남아시아의 여러 곳에 분포하는 찌르레기과의 새다. 몇년 전 국내조류중에서 까치가 말을 한다 하여 화제가 된 일이 있는데, 필자의 경험에 의하면 까치보다 어치가 더 성능이 뛰어나게 말을 구사한다.
국내에서 흔히 관상용으로 사육하는 새인 사랑앵무와 왕관앵무도 말하기가 특기다. 이 새들을 생후 20일 전후해 어미로부터 분리, 인공육추를 하면서 가르치면 말을 한다. 단 사랑앵무는 수컷만이 말하는 능력을 소지한다. 하지만 수컷도 다양한 말의 구사는 하지 못한다. 수컷 사랑앵무는 보통 3, 4가지 말을 하는데 어릴 때부터 기르면 사람을 잘 따르기 때문에 애완조류로도 인기가 높다.
뜻을 이해하지는 못해
몇몇 새가 말을 하는 것은 사실이지만 어떤 뜻을 이해해 말하는 것은 물론 아니다. 다만 어릴 때부터 같이 지내온 사육자의 소리를 듣고 그 소리를 흉내 낼 소리를 그때그때 적절한 시기에 반복하는 일에 불과하다. 그래서 새에게 말을 가르칠 때 녹음기를 반복해 사용하면 새 나름의 개성이 없어질 뿐더러 적절한 시기에 말을 골라서 하지 못한다.
그러나 일상생활에서 자연스럽게 말하기를 배운 새는 뭔가 다르다. 전화 벨소리가 울리면 조건반사적으로 '여보세요'를 연발하고 누군가가 문을 노크하면 '누구세요'라고 응답하는 등 말을 적절하게 구사한다.
몇년 전 중국음식점 종업원이 필자의 집에 음식배달을 왔다가 닫힌 문을 사이에 두고 구관조와 실랑이를 벌인 일이 있었다.
"똑 똑 똑"
"누구세요."
"중국집에서 왔어요."
"누구세요."
"중국집에서 왔다니까요."
"누구세요."
"문열어 주세요. 중국집에서 왔어요."
배달소년은 골이 잔뜩 났다. 하지만 나중에 구관조의 소행임을 알고는 파안대소하고 말았다.
남의 소리를 흉내낼 수 있는 새는 야생에도 더러 있다. 어떤 사육도 받지 않은 야생의 새가 다른 종류의 새나 동물 또는 순간적으로 들은 사람의 소리까지도 흉내내는 것이다.
산야를 자주 헤매는 필자는 야생의 말하는 새와 만난 적이 있다. 경기도 가평인근 야산에서 아기우는 소리를 듣고 두려움반 호기심반으로 추적한 결과, 어치의 짓임을 확인하기도 했다.
생후 20일 전후부터 가르쳐야…
말을 배울 수 있는 대표적인 종류인 앵무새나 구관조의 경우, 알에서 부화된 생후 30일 이전부터 가르쳐야 소기의 성과를 거둘 수 있다. 욕심을 부리자면 생후 20일 전후가 더 확실하다. 야생의 세계를 전혀 경험하지 못한 상태에서 교육해야 집중력이 높고 말을 기억하는데 적극성을 띠기 때문이다.
생후 3개월 쯤 지난 새는 말을 가르치기가 어렵다. 그것은 그동안 성장하면서 불필요한(?) 여러가지 소리를 듣고 보아왔기 때문에 집중력이 떨어진 탓이다. 아마 이런 사실은 어린이들에 대한 가정교육이 얼마나 중요한가를 생각해 보면 쉽게 납득이 갈 것이다.
앵무새나 구관조같이 말을 쉽게 배울 수 있는 새는 국내산이 아니다. 따라서 원산지에서 어린 새가 수입돼 들어오는데 앵무새는 원산지가 남미나 아프리카로 수송거리가 멀고 수입경로가 길어서(대개 다른 나라를 통해 중계무역되기 때문에) 적절한 교육시기를 놓치기 일쑤다. 이렇게 고령의(?) 새가 수입되기 때문에 국내에는 말하는 앵무새가 드물다.
그러나 구관조는 어린 새가 원산지인 동남아시아에서 들어오므로 국내에서도 말 잘하는 구관조를 더러 볼 수 있다.
말하는 새는 조용한 곳에서 하나의 새장에 한마리만 넣어 기르는 것이 좋다. 그리고 원산지의 어미새가 공급하던 수준의 먹이를 인공적으로 제공해야 한다. 앵무새는 조 들깨 땅콩 따위를 가루로 만든 다음 체온 정도의 따뜻한 물에 반죽을 한 뒤 이것을 수차례 숟가락으로 떠 넣어주면 잘 받아먹는다. 이때 반죽의 정도가 먹이투여의 기술이다. 구관조는 콩과 쌀을 볶은 다음 가루로 만든 먹이를 좋아한다. 이 가루에 삶은 계란 노른자와 담수어의 가루인 어분을 적절히 배합하고 물로 반죽한 뒤 은행알 크기로 만들어 입속에 넣어주면 구관조에게는 최고의 음식이 된다.
어떤 새든지 밤에 잠자는 장소가 25~30℃의 따뜻한 온도로 유지돼야 소화가 원활해져 잘 자랄 수 있다. 깃털이나 주변이 불결하면 성장이 억제되고 특히 놀라게 하면 스트레스를 심하게 받는다.
어떤 말이든 수백번 반복해서 가르쳐야 어느 시기에 기억을 한다. 한번 기억한 소리는 아기들이 옹아리를 하듯 옹아리를 하다가 대개 3개월 쯤 지나면 말문이 열린다.
한 새장에 한 마리씩 넣고
한 새장에 여러 마리를 함께 수용하면 자기들끼리 친해져 주변이 산만해진다. 따라서 말배울 기회를 잃게 되므로 단독사육이 절대적으로 요구된다. 말을 배우기 시작한 새는 1년 정도 교육에 열의를 보인다. 순간적으로 욕설이나 나쁜 말을 하면 단 한번에 기억하는 경우도 있다.
한번 기억한 말은 평생 간직하기 때문에 말하는 새를 기르려면 말조심을 해야 한다. 사육사가 정서적으로 불안정하면 새들도 나쁜 말을 배우게 된다. 또 말배우는 새는 하루 한번 목욕을 시키고 적절한 사료공급 등 영양관리를 철저히 해주어야 한다. 실제로 건강이 나쁘면 말을 배울 수 없다. 또 주변 환경이 시끄럽거나 불안하면 안정이 되지 않아 말을 배울 수 없고 새장 역시 규격새장이어야 성장에 지장을 주지 않는다.
4백단어까지 구사하기도
말하는 새들이 친부모를 기억하지 못하는 생후 20일 전후부터 말을 가르치면 사람을 부모로 착각해 사람소리를 자기 본래의 소리로 알고 평생을 지낸다. 새들도 지능이 제각각이어서 같은 조건에서도 말을 잘하는 새와 못하는 새로 구분된다. 외국 기록이기는 하지만 4백단어까지 구사한 새도 있었다고 전한다.
국내에서 쉽게 말을 가르칠 수 있는 새는 구관조다. 하지만 외국에서는 앵무새를 한단계 위로 생각하고 동작이 재미있어서인지, 더 선호하는 경향이다. 이들 말하는 새는 인공적으로 기르기 때문에 관리만 잘 하면 야생상태보다 훨씬 더 장수할 수 있다. 앵무새의 수명은 30~40년이 보통인데 영국동물원에서 사육한 한 앵무새는 1백40년이나 살았다는 기록이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