언제부터였는지 이제 와서는 잘 모르겠다. 너는 초음파에 영 잡히지 않아서 한동안 우리를 애태웠거든. 분명 아기집은 잘 생겨있는데, 네가 보이질 않는다는 거야. 혹시나 몰라서 오줌 검사를 하고 피 검사를 하면 분명 임신이라고 나오는데 말이지. 네 형체가 명확하게 초음파 검사에 잡히기 시작한 건 15주가 지난 다음이었어. 의사선생님도 이런 경우는 거의 없다며 고개를 갸웃하시더라. 하지만 그때는 그런 게 하나도 중요하지 않았어. 네가 건강하다는 이야기를 듣고 나는 산부인과에 누워서 울음까지 터뜨렸거든.
태동을 처음으로 느낀 건 돼지갈비를 먹고 있었을 때였어. 내가 삼인분을 혼자 다 해치우는 동안 네 아빠는 고기 두 점을 먹고 우물쭈물 하고 있었지. 그때 뱃속에서 네가 꿈틀거리더라. 나는 먹던 돼지고기를 떨어뜨리고 눈이 휘둥그레져서 네 아빠에게 얘기를 했어. 네 아빠는 깜짝 놀라서 무릎으로 기어 내 옆에 와서는 배에 손을 가져다 댔지. 하지만 너는 네 아빠를 위해서 다시 한 번 움직여주진 않았고, 아빠는 그날 내내 배에 손을 대고 있다가 잠들 때까지도 내 배를 끌어안고 잠들었어.
너는 나를 그리 고생시키지 않고 태어났단다. 초음파로는 여전히 잡혔다 안 잡혔다 했지만, 진통이 시작된 지 얼마 되지 않아 머리가 보였고, 자연스럽게 내 몸 밖으로 밀려나왔어. 무통주사도 고려했는데, 생각보다 진통시간이 짧아서 언제 주사를 놓을지를 고려할 겨를도 없었어.
네가 막 태어났을 때는 세상이 지금만큼 편리하지는 않았지. 네가 태어나던 날은 눈이 너무 많이 내렸단다. 네 외할머니는 병원에서 필요한 물건들을 눈 때문에 사러 나갈 수가 없어서 한참을 발만 구르고 계셨어. 나는 창밖에 쏟아지는 눈을 바라보며 어렴풋하게 신열에 달뜬 상태로 작은 너를 품에 안았다. 너는 내 품에서 작은 손발, 작은 얼굴로 가만히 잠이 들어있었지. 그때 너는 아무 것도 하지 않아도 됐고, 나는 너 대신 모든 것을 할 수 있었어. 그런 시절만 계속되었더라면 괜찮았으려나.
너는 어릴 때부터 조금 노인네 같은 구석이 있었단다. 다른 아이들이 유튜브 동영상으로 아동용 애니메이션을 보겠다고 길거리에서 울음을 터뜨리는 나이가 되어도, 한 번도 그런 떼를 쓴 적이 없었지. 너는 내가 보는 옆에서 묵묵히 텔레비전을 함께 보기는 했어도 휴대폰 게임을 하겠다고 나를 졸라대지는 않았단다.
네가 좀 더 나이가 들고 어린이집에 가게 되었을 때, 휴대폰 게임보다는 네가 찰흙으로 공작을 하는 걸 더 좋아한다는 걸 알게 되었다. 너는 곧잘 찰흙으로 여러 가지 형상들을 만들어서 내게 보여주곤 했었지. 처음에는 밥그릇이나 책 같은 단순한 것들만 만들더니 조금 더 주물럭거리고 나서는 곧잘 기린이나 말, 사람까지도 제법 그럴싸하게 만들어내곤 했어. 네 아빠와 나는 네가 커서 훌륭한 조각가가 될 모양이라고 얘기했었지. 네가 어릴 적에 만들었던 찰흙조각들을 내가 다 찍어서 웹드라이브에 앨범으로 만들어놨던 거, 너도 기억하지?
사실 너는 찰흙 말고도 손으로 하는 건 대부분 잘 했단다. 학교에 들어가고 나서는 고무판으로 판화를 만드는 것도 아주 잘 했고, 그림도 잘 그렸지. 돈이 없어서 학원 같은 건 제대로 보내준 적도 없는데, 어느 날 너는 방과 후 교실에서 우쿨렐레를 배워왔어. 그 다음날부터 너는 하루 종일 우쿨렐레를 쳤지. 여름에 어울리는 악기라고들 하던데, 너는 봄, 여름, 겨울할 것 없이 늘 그 조그마한 현악기를 끼고 살더라. 처음에는 아주 가벼운 동요 같은 것만 연주할 수 있었는데, 머지않아 최신 유행하는 가요까지 어떻게든 다 연주해내는 네가 어찌나 신통했던지. 네 아빠도 나도 음악에는 영 재능이 없었던 사람들이라 어쩌다가 우리한테서 저런 아이가 태어난 걸까 신기해한 적도 많단다.
그래도 네가 좋아하는 것들은 최신 유행 가요보다는 늘 좀 더 예스러운 것들이었어. 맞지? 네가 클래식 음악을 좋아하는 건 그런 예스러운 성격에 잘 어울렸지. 신디사이저 소리보다는 기타 소리를, 기타 소리보다는 피아노 소리를, 피아노 소리보다는 파이프 오르간 소리를 좋아했지. 네가 그렇게 음악을 좋아하니, 사무실 경리 수정 씨가…… 수정 이모 기억하지? 너한테 연주한 소리들을 합성할 수 있는 프로그램을 깔아서 태블릿 PC를 선물하기도 했었잖아. 너는 고맙습니다, 하고 받더니만 잘 쓰지는 않더라. 아니, 솔직히 말하자면 네가 그 태블릿 PC를 건드리는 것도 본 적이 없어. 수정 씨한테는 네가 잘 쓰고 있다고 말했지만.
그때까지만 해도 나는 운전을 잘 했어. 어릴 적에 너는 내 유니폼을 걸치고는 나도 이 다음에 크면 엄마처럼 멋있는 버스 운전사가 될 거라고 했었지. 좀 더 멋있는 직업들이 많은데 왜 하필 버스 운전사가 되려고 하느냐고 내가 웃으면, 너는 버스 운전사가 제일 멋있다며 눈을 휘둥그렇게 떴어. 나이를 먹으면 아마 그런 생각은 하지 않게 될 거라고 생각했지. 버스 운전사가 멋지긴 뭐가 멋지니.
나는 네가 초등학교 고학년이 되면 텔레비전에 나오는 아이들처럼 내 버스를 타게 되면 고개를 숙이고 뒷자리로 휑하니 도망가진 않을까 생각했는데, 엄마가 창피하다고 소리라도 지르진 않을까 생각했는데, 도리어 네 친구들이 내 버스를 타면 큰 소리로 지연이 어머니 안녕하세요, 인사를 해서 놀랐었지. 너는 친구들에게 내가 버스 운전사라는 걸 숨기지도 않았고, 내 버스를 타면 애들은 죄다 불러 모아서 “우리 엄마”라고 소개했어. 그런 걸 생각해보면 정말 넌 버스 운전사가 멋있다고 생각한 걸지도 모르겠다.
이렇게 얘기하니 네가 너무 좋은 딸이었던 것만 같네. 넌 좋은 딸이었던 것만큼 아주 속도 많이 썩힌 딸이었지. 고집은 또 오죽이나 셌던지. 나도 고집 센 편이긴 하지만 어디 네 고집에 당하겠니. 지금 생각해 보면 우리 엄마가 ‘꼭 너 닮은 딸 낳아서 고생 좀 해 봐야 된다’는 말이 얼마나 너무하는 말이었는지. 너는 네가 싫은 건 무슨 일이 있어도 절대로 안 하던 아이였지. 주변에서 뭐라고 하건, 선생님이 혼을 내건, 내가 너를 붙잡고 화를 내건.
그 무슨 실험이었더라…… 네가 마지막까지 안 해가서 과학 선생님이 나한테 전화 하게 한 그거 있잖아. 빛의 밝기를 감지해서 위도가 어떻게 차이 나는지 확인하는 실험이었지. 그러려면 조도를 인지하는 어플리케이션을 써야 한다면서. 네가 스마트폰이 아직 없다고 하자, 선생님은 너한테 따로 태블릿 PC를 빌려주면서까지 해 오라고 했는데, 결국엔 네가 수업시간에도 수업이 끝난 다음에도 그 숙제를 하지 않아서 선생님이 무척 화가 났지.
나라도 화가 날 것 같더라. 그 정도로 정성을 기울여 줬으면 못해간다는 변명이라도 좀 제대로 하던가. 왜 안 했느냐는 질문에 대답도 제대로 하지 않으니 선생님 입장에선 열불이 터질 법도 하지. 오죽했으면 나한테 전화를 다 거셨겠니. 왜 숙제를 안 해 가느냐는 내 말에도 너는 제대로 대답을 하지 않았어. 그때 네가 중학교 1학년이었던가. 사춘기를 타나보다 생각했지. 선생님 말에 이어서 내 말까지 무시하는 것 같아 소리를 지르다가, 이래선 안 되겠다 생각하고 방문을 닫고 나와 버렸어.
하기 싫은 건 그렇게까지 안 하면서도, 너는 얼마나 사랑스러운 딸이었는지. 나는 네게 그렇게 소리를 지르고 들어와서 잠들어버렸는데 너는 새벽 네 시 첫 차를 운전해야 하는 날 위해서 아침을 차려놓았더라. 첫 차 운전할 때는 아침 먹어본 적도 거의 없는데. 그러려면 새벽 두세 시에는 나왔어야 할 것이고. 너는 방 밖으로 나오지 않았지만 나는 네가 아마도 잠들지 않았으리라고 생각했어. 그리고 깨끗하게 밥을 다 비웠지. 네가 담아놓은 반찬 하나하나도 모두 먹었어.
네가 민망할까봐 너한테 말은 안 했지만 네가 끓여놓은 미역국에서는 대기업의 맛이 나더라. 네 나름대로는 열심히 숨긴다고 숨겼겠지만, 편의점에서 사왔을 미역국 포장지를 난 결국 보고 말았지. 별 생각 없이 출근을 하고 난 다음, 배차 돌리려고 들어왔을 때 사무실 수정 씨가 웃으면서 말을 꺼내는 바람에 알았어. 그날이 내 생일이었다는 걸. 네가 과학 숙제를 하지 않아서 내가 소리를 질렀을 때, 너는 미역국을 미리 사두고 있었을까. 그날 나는 네게 고맙다는 말 대신에 아침 잘 먹었다고만 말했지.
그래도 네 아빠 살아있을 때는 내 생일까지 잊어버리고 살지는 않았을 텐데. 네 아빠가 그런 점은 참 괜찮은 사람이었어. 매번 생일마다 정말 별 것도 아닌 것들이라도 꼭 챙겨주곤 했거든. 장미 한 송이나, 조금 비싼 서양 초콜릿 세트 같은 거라도. 뭐, 형편이 괜찮을 때는 목걸이 귀걸이 세트 같은 것도 받아본 적이 있지. 진주로 된 거였는데. 그래, 네가 언젠가 나 몰래 귀걸이만 하고 나갔다가 한 쪽만 잃어버린 그거 맞아.
너는 아마 기억을 못 하겠지만, 그날 그거 사려고 백화점에 갔다가 널 잃어버려서 우리 둘이서 아주 혼비백산을 했잖니. 분명 선물도 잘 샀고, 같이 밥 먹자고 식당 코너에 간 사이에 네가 사라져 버렸어. 백화점 식당 코너, 그 복작거리는 곳에서 네 이름을 불러대며 젊은 부부가 소리를 지르고 있으니 주변 사람들도 안쓰러웠겠지. 네 인상착의를 물어보는 사람들이 있더라. 그러다가 널 보았다는 사람들도 있었고.
우리는 네 옷차림을 설명하면서 물어물어 간신히 널 찾아갔는데, 어처구니가 없게도 넌 미아센터 자동문 앞에 철푸덕 주저앉아 있었어. 그날 내가 널 끌어안고 얼마나 울었던지. 나는 정신이 하나도 없어서 생일 선물 같은 건 챙기지도 못하고 너만 꼭 붙들고 집에 왔는데, 잠들기 전에 네 아빠가 생일 선물을 쇼핑백에서 꺼내서 화장대 위에 놓아두더라고. 귀여운 사람이었지.
그렇게 섬세한 아빠 성격을 닮아서 그런 거였을까, 넌 아무래도 좀 유난스러운 애였어. 네가 좋아하는 것들이라곤 모조리 다 ‘요즘’ 건 아니었잖아. 뭔가 하나가 생기면 쉽게 버리지도 않고, 온갖 잡동사니를 집에 쌓아놓기만 하는 성격이었지. 뭔가 하나에 푹 빠지면 다른 건 돌아보지도 않고 말이야. DVD 플레이어도 아니고 VCR을 버리면 안 된다고 하지를 않나. 요즘 애들은 넷플릭슨지 그런 것도 잘만 보던데 너는 어디서 웬 VHS 테이프들을 들고 와서 이걸 보겠다고 조르는데 대체 그런 건 어디에서 구한 건지. 조만간 플로피 디스크도 가져오겠다 싶더라니까.
좋아하는 책도 그렇지. 세계 명작 같은 걸 좋아했으면 차라리 괜찮은 취향이라고 생각했을지도 모르겠는데. 네가 그 책을 처음 산 게 아마 초등학교 6학년 때 아니니. 허버트 조지 웰즈의 『투명인간』 말이야. 이름도 어려운 작가를 이제 나까지 다 알고 있잖니. 청소년용 판본으로 산 그 책이 다 해질 때까지 마르고 닳도록 그 책만 읽어대다가, 나중에는 온갖 판본으로 그 책을 사 들였지. 영어공부가 되겠지 싶어서 조금 기대하기도 했지만, 영어 원서까지 사기 시작했을 때는 솔직히 조금은 질리더라.
어디 그것뿐이니. 1930년대에 만들어진 <;투명인간>; 영화부터, 투명인간이 주제기만 하면 닥치는 대로 영화를 모아댔잖아. 남자 애들이 어릴 때 공룡이나 괴수에 빠지는 경우야 많다고 하지만 투명인간에 빠져서 하루종일 투명인간만 보는 애는 적어도 한국에서는 네가 유일할 거다. 아니, 투명인간이니까 뭘 볼 수도 없잖아. 온갖 종류의 투명인간이 네 책장과 비디오장에서 살인을 하고 사랑도 하고 자기 힘에 도취되어서 끔찍한 일도 벌이고…… 다른 애들이 벽에 아이돌 포스터 붙일 때 너는 온갖 종류의 투명인간 포스터를 붙여두었지. 그런 걸 아마 오타쿠라고 하는 거, 맞지?
아마 우리 집에 돈이 좀 더 많았다면 같은 투명인간 팬이라도 좀 더 좋은 것들을 구할 수 있었을 텐데. 낡아 떨어질 때까지 책을 읽고서도 버리지 않고 꽁꽁 싸매두는 걸 보면 엄마는 괜히 미안하곤 했어. 집에 돈이 없으니까 이렇게 유난스럽게 구는 건가 생각도 하고.
……미안한 건 미안한 거고, 유난스러운 건 유난스러운 거지. 너는 혼자서 꼭 19세기에 사는 사람 같았단 말야. 아마 나만 그랬겠니. 네 친구들도 네 그 유난스러운 성격 챙겨주느라 모르긴 몰라도 고생 많이 했을 걸.
하지만 그런 것치곤 너는 정말 친구가 많았어. 걸핏하면 친구들을 우르르 끌고 집에 들이닥쳐서 퇴근한 나를 당황하게 만들곤 했었잖아. 그렇게 많은 애들이 너를 좋아했던 건, 아마 다정스럽고 시원시원한 네 성격 때문이었겠지. 언젠가 집에 놀러온 네 친구…… 왜 있잖아, 초등학교 5학년 때부터 친했던. 그래, 명은이. 네가 명은이랑 대화하는 걸 듣고 나는 정말 깜짝 놀랐다.
“이거 지문 등록 해야 된다며?”
“니가 좀 하지?”
“아, 맨날 나만 시켜-”
“응?”
명은이는 투덜거리면서도 네 부탁을 들어주더라. 내가 놀랐던 건 네가 너무 자연스럽게 명은이에게 뭔가를 시키는 것처럼 보였기 때문이야. 혹시 네가 다른 곳에서도 저러나, 아무리 친한 친구라고 해도 너무 예의 없는 건 아닌가, 명은이가 가고 나서 너한테 한 소리 해야 하나 생각하고 있었어. 그런데 너와 명은이의 대화는 금세 다른 곳으로 옮겨갔지. 명은이가 반에서 좋아하는 남자애에 대한 거였는데. 수학여행 때 어떻게 남자애들한테 같이 놀자고 말할지에 대한 얘기라 나는 너희가 귀여워서 들으면서도 피식피식 웃음이 났어. 그런데 이번엔 네가 먼저 말하더라.
“걱정하지 마, 내가 다 알아서 해 줄게. 내가 들어가면 절대 안 걸린다니까. 백퍼.”
누가 듣기에도 그 계획에서 가장 위험한 역할은 남자애들 숙소로 몰래 잠입하는 역할이었는데, 너는 아주 용기 있게 그 일을 자임하더라구. 나는 늘 네가 유난스러운 애라고만 생각했는데, 친구들 사이에서는 생각보다 쿨하고 털털한 타입일지도 모르겠다는 생각이 들더라. 아, 내가 엿들으려고 한 건 아니야. 절대로. 너희가 너무 큰 소리로 얘기했다구. 그래서 그때는 잘 잠입해서 재밌게 잘 놀았으려나. 내가 너희 선생님에게 전화 받은 건 없으니, 아마 성공적으로 들어간 거겠지?
너 같은 애도 별로 없었을 거야. 보통은 초음파로 검사하면서 아들인지 딸인지 다 알게 되기 마련인데, 너는 워낙 초음파에 잘 안 잡혀서 딸인지 아들인지를 마지막까지 알기가 어려웠어. 너는 어릴 때라 잘 기억나지 않겠지만, 그래서 널 위해서 산 아동용품들은 색깔도 무늬도 다 뒤죽박죽이야. 나는 딸이 태어나면 함께 할 것들과, 아들이 태어나면 함께 할 것들을 항상 같이 생각해야 했단다. 그래서 네가 태어났을 땐 결국 여러 가지를 같이 했지. 뛰어놀고, 전쟁놀이 하고, 소꿉놀이 하고, 그림책 따라서 드레스 입고 연극도 하고.
그래서 네가 다른 사람들이 예민할 법한 부분에선 전혀 예민하지 않고, 대부분 무던하게 지나갈 부분에선 유난히 예민하게 군다는 생각이 들 때마다 나는 혹시 딸인지 아들인지 모르고 낳아서, 그렇게 키웠던 너의 어린 시절이 문제였을까 하는 생각을 한 적이 있었어. 우리가 사이 나쁜 모녀는 아니었지만, 그렇다고 우리 둘이서만 살 붙이고 사는데 안 싸울 수도 없었잖니. 때로는 별로 사달라는 것도 없고 원하는 것도 없이 무던하고 착한 딸인 것 같다가, 가끔은 정말 이해할 수 없는 이유로 소리를 지르고 화를 내기도 했어.
작년 그 날 기억하니? 네가 학교에 가져가야 한다던 그 책 말야. 집에 받을 사람이 없어서 택배를 내 회사로 돌려놨는데, 내가 깜빡하고 안 들고 집에 돌아왔었지. 다음 날 필요한 거라고 어찌나 성질을 내고 소리를 지르던지. 내가 잘못하긴 한 거고, 너한테 미안하다고도 했는데 네가 눈물까지 글썽이면서 화를 내는 바람에 나도 울컥 화가 났었어. 우리 그때 같이 소리지르고 싸웠지.
“돈 주면 되잖아, 하나 더 사오라고!”
“애들 다 학원 다닌다고! 지금 누가 같이 서점을 가 준다고 책을 사 와!”
“너는 손이 없냐, 발이 없냐. 혼자선 서점도 못 가?”
너는 입술을 꽉 깨물고 시근덕거리더니 네 방문을 쾅 닫고 들어갔지. 컴퓨터로 뭘 한참 두드리는거 같더니만 다시 방문을 열고 나왔어.
“명은이가 오늘 학원 안 간대. 책 살 돈 줘.”
기가 막혀서 너한테 신용카드를 집어던졌지. 너는 휑하니 카드를 들고 나가버렸고. 다음날 아침에 식탁 위에 있는 신용카드와 영수증을 보고 나는 조금 실소를 했어. 아주 작정을 하셨더구만. 책만 산 게 아니라 명은이한테 피자도 한 턱 쏘시고, 디저트로 아이스크림까지 드시고 말야. 싸운 김에 아주 엄카데이를 만끽하셨던데.
솔직히 얘기하자면 그날은 나도 많이 우울했어. 정기적으로 받는 교통교육 시간에 사장이 그러더라. 이제 돈 들여서 우리 교육 시켜서 뭐 하겠느냐고. 자동주행이 도입되기 시작했을 무렵이었지. 사장은 적극적으로 자동주행을 도입하겠다고 이미 선언을 해 놓은 상황이었고, 그것 때문에 맨날 노조랑 싸우고 회사 분위기가 아사리판이었어. 엄마는 또 사무실 수정 씨랑 워낙 오랫동안 친했잖니. 사무실은 그래도 어쨌든 회사 편이거든. 수정 씨는 경리과장이니까 당연히 잘리지 않겠지만, 자동주행 들어오면 나야 파리 목숨이지. 그거 생각하니까 교육 끝나고 사무실에 들르고 싶지가 않더라구. 그렇다고 네 책을 일부러 안 가지고 오려고 한건 아닌데…… 네 책 말고도 사무실에 들러야 할 이유가 많았지만 도무지 발이 안 떨어지더라.
그래, 나는 너를 사랑해. 너도 당연히 알겠지. 우리가 싸우고 울고 화를 낼 때조차도 우리 둘다 알고 있잖아. 너는 내 가장 귀한 꼬리고, 나는 널 위해서라면 무엇이든 할 수 있었어. 세상에서 널 제일 잘 아는 사람은 아마 나일 거야. 그렇게 믿었지.
어떻게 마지막 순간까지도 모를 수 있었을까. 나는 정말 상상조차 하지 못했어.
자동주행 버스 안에 있는 운전사가 된 지 3개월 째였지. 자동주행 버스에 운전사가 왜 필요하겠어. 승객들이 버스에 오르면 나는 괜히 부끄러웠다. 날 알아보는 네 친구라도 올라탔을 때면 그만 버스 안에서 사라지고 싶을 때도 있었어.
명목은 자동주행이 에러를 일으킬 수 있는 가능성을 얘기하면서 버스 운전사들을 그 자리에 앉혀둔 거였는데, 하는 소리지. 정말로 에러를 일으킬 가능성이 걱정되었다면 컴퓨터라고는 기름때만치도 모르는 버스 운전사들을 거기 앉혀뒀겠어? 버스 운전하는 프로그래머를 고용해야지. 누가 봐도 그냥 한꺼번에 버스 운전사들을 자르면 너무 불만이 클 것 같으니까 일단은 앉혀둔 거였어. 어떤 사람들은 자존심이 상한다구 냉큼 택시 운전으로 갈아 타는 경우도 있던데, 나는 그럴 생각도 안 들더라. 버스가 자동주행이 먼저 적용된 건 노선이 정해져 있기 때문이지. 택시라고 그렇게 안 되겠어? 조만간 가야 될 장소만 입력하면 택시도 그렇게 될게 뻔한데, 그 짧은 기간 동안 자존심 좀 세워보겠다고 택시 운전으로 갈아 타?
오히려 걱정되는 건 평생 운전밖에 안 했는데, 앞으로 어떻게 해야 할지였지. 너 고등학교 졸업하고 대학 들어가고 취직할 때까지 생각하면 못해도 오륙 년은 더 일해야 할 것 같은데. 운전 안하고 다른 일을 해야 할까. 그러면 무슨 일을 하는 게 좋을까. 아무 일도 안 하고 멍하니 운전대 앞에 앉아서 시간을 보내면서, 내가 아무 영향도 미칠 수 없는 핸들을 빙빙 돌리면서, 나는 그런 생각들을 했어. 정 할 게 없으면 파출부를 하던가 식당에서 설거지라도 해야겠지만, 평생 한 게 운전인데. 너무 억울하고 분하더라.
네가 내 버스 앞으로 지나간 건 그때였어. 신호등이 없는 횡단보도였고, 차들이 많이 다니지 않는 도로다보니 너는 별 생각 없이 지나가려고 했을 거야. 내가 널 늦게 발견한 게 문제였지. 네가…… 어떻게 네가 하필이면 거기 있었을까. 장애물이 있으면 오십 미터 밖에서도 속도를 늦춘다던 최신 시스템은 네 앞에서는 무용지물이었어. 버스는 너 같은 건 마치 이 세상에 처음부터 없었던 것처럼 속도를 내서 널 향해 돌진하기 시작했어.
너무 늦었지.
너와의 거리가 얼마 남지 않았을 때에야 나는 상황을 인지했어. 이 버스에도 비상정지기능은 있었단다. 나는 반도체가 들어가 있어서 사람의 손가락을 인지한다는 무슨 센서에 황급하게 손을 가져다 댔지만, 버스는 내 손가락도 없던 것처럼 아주 자연스러운 평상 속도로 달려갔어. 나는 그 순간 내가 원망스러웠어. 이런 센서들은 언제나 나를 한 번에 인식하는 적이 없었어. 동사무소에 가서도 덕분에 지문 인식을 하기보다는 민원창구를 찾아갔고, 기계는 영 다루기 어렵다며 2G 폰을 쓰고 있었지. 회전 자동문은 중간에 갇힐까봐 무서워서 한 번도 이용해 본 적도 없는데 비상정지 센서라고 제때 작동할 리가 없었지.
그 도로에서 낼 수 있는 최대속력은 시속 육십 킬로미터였어. 직접 운전을 할 때는 곧잘 잊어버리던 숫자였지. 하지만 컴퓨터는 그런 걸 잊지 않잖니. 계기판에는 60km/h라는 글자가 흔들리지도 않고 또렷하게 박혀 있었어. 그리고 그 속도로 네 몸에 부딪혔지. 네가, 너의 교복 치마가, 네 가방이, 내 삶의 전부가 시속 60킬로미터로 포물선을 그리며 날아갔어. 너의 존재도 나의 손가락도 인지하지 못하던 버스는 심하게 차체에 충격이 가해지자 그제야 문제를 인식하고 비상벨을 울리며 멈췄어. 승객들이 웅성거리던 소리, 차에서 울리던 사이렌 소리, 나는 울부짖으며 앞문으로 뛰어내려서 너를 붙잡았는데 내 손 사이로 흘러내리던 빨간 네 피가 따뜻했던 것이 지금도 꿈처럼 몽롱하다. 나는 분명 울었던 것 같고, 비명을 질렀던 것 같은데 사실은 제대로 기억나는 것이 아무 것도 없어.
내 손에 감싸인 네 얼굴…… 어딜 가나 알아 볼만큼 코와 입매가 나를 똑 닮은, 이산가족이 돼도 이웃들이 찾아줄 거라고 우리가 농담하곤 했던 네 얼굴이 눈을 감은 채 있었어. 아무리 네 이름을 불러도 다시는 뜨지 않을 눈꺼풀. 너는 코와 입매만 나를 닮은 게 아니었던 거야. 그러지 않았으면 좋았을 것을, 나는 너를 너무 나와 닮은 아이로 낳아버렸어. 내가 네 엄마가 아니었더라면, 그 버스는 네 앞에서 얌전하게 멈췄을 텐데.
온갖 언론들이 자동주행 시스템이 안전한지에 대해 연일 보도를 해댔어. 그러면서 너와 내 이름은 수많은 지면에 오르내렸지. 얼마나 신기하고 재미있는 사연일까. 자동주행 버스에 타고 있던 전직 버스 운전사인 엄마가, 자기 딸을 치는 자동주행 버스를 멈추지도 못하고 비극을 맞이하고 말았다니. 수많은 기자들에게 전화가 오고, 어떤 사람들은 장례식장까지 찾아와서 뭘 물어대더라. 기분이 어떤지, 자동주행 시스템에 대해 어떻게 생각하는지, 딸이 왜 죽었다고 생각하는지.
네 친구들이 장례식장에 가장 많이 찾아온 건 둘째날이었어. 너는 어디서 무슨 친구는 그렇게도 많이 사귀었는지. 수많은 아이들이 와서 날 붙잡고 울고 갔어. 명은이도 둘째날에 왔더라. 무슨 말도 제대로 못하고 내 손을 잡고 띄엄띄엄 우는데, 참을 수가 없는 죄책감이 밀려왔다. 어째서 나만 몰랐을까. 네 많은 친구들은 너를 위해서 대신 센서를 인식해 준 경험이 있더라. 대신 문을 열고, 대신 연락을 취하고, 대신 영상을 찍고, 대신 녹음을 하고…… 네가 했던 수많은 말들이 그제야 제자리를 찾아서 흘러갔어.
뉴스에서 앵커가 또박또박 정갈한 어투로 발음하는 네 이름은, 마치 흐트러짐 없이 박혀 있던 시속 60km를 보는 것만 같았어. 명은이는 네가 원체 센서에 잘 반응하지 않는 아이였다고 인터뷰를 했더라. 한 토막 정도로 가볍게 편집된 명은이의 말투는 중학교 때나 지금이나 누가 들어도 바로 알아들을 수 있는 어눌한 말투였어.
“걔가- 쪼끄말 때부터 워낙에 그런 게 있었어여. 스마트폰도 못 쓰구- 자동문도 걔 앞에서는 안 열려서- 같이 가서 누가 열어줘야 되구- 감시? 감시하는 센서 같은 거 있잖아요. 그런 것도 다 걔만 인식을 못 하구- 맨날 자기가 투명인간이라구 했어여.”
싸늘하게 식은 시신이 되어서조차 너는 센서에 인식이 잘 안 되더라. 아니, 그건 사실 기계가 고장난 것이겠지. 그냥 불에 태우는데 무슨 센서 인식이 필요하겠어. 하지만 이상하게도 화장하는 동안 네 이름만 자꾸 전광판 위에서 깜빡거렸어. 다른 사람들이 통곡을 하고 쓰러지는 와중에도 나는 네 이름이 전광판 위에서 없어질까봐 무서워서 손을 꼭 쥐고 있었지. 넌 이미 없는데, 네 이름이 지워지는 게 뭐 별 거라고.
엄마는 이제 더 이상 버스 운전사가 아니야. 네가 늘 멋있다고 하던 그 유니폼을 이제 입지 않지. 회사는 퇴직금을 지불했어. 하지만 이 돈으로 맛있는 음식을 사 줘야 할, 학교에 보내야 할, 대학교에도 보내야 할, 너는 이제 여기에 없어.
자동주행 시스템을 개발한 회사는 보상금을 주길 거부했어. 모든 시뮬레이션을 다시 돌리고, 블랙박스를 확인하고, 시스템 로그를 분석해봤지만 시스템에는 오류가 없었다는 거야. 외부적 요인이었을 것이고, 그 외부적 요인은 운전석에 앉아있던 내가 일으켰을 거라는 게 회사의 주장이야. 이렇게 말하면 복잡하게 들리겠지만, 조금 단순하게 말하면 내가 널 죽였다는 거겠지. 하지만 너는 죽었고, 나는 비상정지를 하지 못했어. 어쩌면 더 많은 사람이 죽을지도 모른다고 많은 사람들에게 말했지만 이제 내 말은 잘 들리지 않는 것 같아. 네가 죽고 나서도 자동주행 시스템은 잘 돌아가고, 너 이후엔 아직 죽은 사람도 없지.
그래, 어쩌면 너랑 나 같은 사람은 이 세상에 우리 둘밖에 없을지도 몰라. 우리야말로 있을 수가 없는 현상이고, 잘못 태어난 사람들일지도 모르지.
어떤 사람들은 네가 악마로 점찍어서 태어난 존재라 센서가 반응하지 않았던 거라고도 하더라. 하나님이 우리 민족을 위해 너를 죽음으로 이끌어주신 거라면서. 또 어떤 사람들은 너처럼 센서가 인식하지 못하는 사람이랑 연애 한 번 해 보면 좋겠다고, 요즘 세상에 그런 사람이랑 섹스하면 투명인간이랑 섹스하는 거 아니냐면서 낄낄대는 젊은 남자애들도 있더라.
나는 매일 아침 네 방을 치워. 네가 모아둔 책과 비디오들을 정리하고, 포스터에도 먼지가 앉지 않게 관리를 하지. 언제든 네가 이 자리에 돌아오기만 하면 되도록. 그리고 나서는 손글씨로 쓴 피켓을 들고 집을 나선단다. 비가 많이 오거나, 아주 덥거나, 아주 추운 날도. 자동주행 시스템을 통과시키는 기준을 훨씬 더 높게 잡아달라고, 센서가 없이도 사람들을 오갈 수 있게 해달라고, 무궁화 모양 뱃지를 달고 내 눈앞을 지나가는 사람들에게, 차들에게 매번 말하지만 아무도 귀 기울여 들어주지는 않더라. 사람들 눈과 귀에도 센서가 생기기 시작한 걸까.
오늘은 저녁에 네 방을 치웠어. 평소보다 깨끗하게 치웠어. 아마 다시는 우리 집으로 돌아오지 못할 테니까. 폭탄은 구하기 어렵지 않더라. 폭탄을 파는 사람들은 센서 같은 건 거의 없는 곳에서 만나려고 하더라구. 상당히 많은 양을 사기는 했어. 돈이 모자라지는 않았어. 평생 운전만 하고 살았으니 회사에서 나온 퇴직금이 적지는 않았거든.
아무도 없는 한밤중이라도 조금만 노력하면 이 건물 안에 들어가는 것쯤이야 일도 아니지. 내가 여기 있다는 걸 저 둔감한 센서들이 알 리가 없으니까. 폭탄을 사서 가방 안에 넣어두고, 나는 네 방에서 『투명인간』 한 권을 꺼내 처음부터 끝까지 읽었단다. 사람들은 계속 투명인간을 미워하더라. 이제 엄마는 세상 모든 사람들이 미워하는 투명인간이 될 거야.
하지만 그걸 기억해야 해.
내 딸은 이 둔감한 센서보다 훨씬 센서티브했단다. 아무렴.
이서영
주로 환상소설이나 운동권소설 혹은 환상적운동권소설을 써 왔다. 단행본으로 앤솔로지 ‘이웃집 슈퍼히어로’와 칼럼집 ‘일 못하는 사람 유니온’, 단편집 ‘악어의 맛’이 있다. 환상웹진 ‘거울’에서 활동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