d라이브러리









청소년상담 통신망 등대BBS 운영하는 현직교사 서영창

청소년상담 통신망 등대 BBS 운영하는 현직교사

"통신예절은 건전한 통신문화의 전제조건"

"컴퓨터통신을 하는 청소년이 수만명에 이르지만 이들이 고민을 속시원히 털어놓고 상담할만한 통신망은 없습니다. 학생들이 통신에 접속하는 시간대는 대개 밤늦은 시간으로 누군가에게 자신의 고민을 호소하고 싶을 때가 많습니다. '등대'BBS는 한밤중에 길잃은 배를 안내하는 등대처럼 이들의 고민을 들어주고 또 현직교사들이 상담에 응해 주기 위해 만들어졌습니다."

지난 1월부터 집에 사설BBS(전자게시판)를 차려놓고 컴퓨터통신으로 청소년 고민상담을 하는 서영창교사(40, 중앙여고)는 "컴퓨터에 빠져있는 청소년일수록 자신에 대한 고민이 많은 법"이라고 강조한다. 대개 공부는 잘 하지만 개인적이고 내성적이어서 주위에 털어놓기 어려운 고민을 간직하고 있는 경우가 많다고 한다.

BBS란 개인이나 단체가 비영리적으로 운영하는 사설통신망을 말한다. 대부분 집안에 PC를 호스트컴퓨터로 설치하고 전화 1, 2회선으로 회원들의 접속을 받는다. 89년부터 국내에 등장한 이러한 사설BBS는 현재 5백여군데가 있다. 하이텔 PC서브 등 상업적으로 운영되는 통신망에 비해 영세하지만 소규모로 운영되기 때문에 오히려 가족적인 친근함이 있다.

서교사도 집(서울 도봉구 방학동)에 PC 두 대와 모뎀, 그리고 전화 두 대를 놓고 등대BBS를 운영하고 있다. 현재는 996-2304 한 대만 가동되는데 접속시간은 밤 9시부터 새벽 6시까지. 누구든지 '이야기' 같은 백신프로그램으로 이 전화번호에 연결하면 등대BBS에 들어올 수 있다.
 

한밤중에 청소년들의 고민을 통신망을 통해 상담해주는 등대지기 서영창교사


통신 시작한지 1년만에 전문가로

서교사는 학교에서 역사과목을 가르친다. 컴퓨터 담당교사도 아닌 그가 컴퓨터를 처음 접한 것은 2년전인 90년 6월경. 40이 다된 나이에 컴퓨터를 배운다는 것이 쑥스럽기도 했지만 집에서 아이들을 가르쳐주겠다는 생각으로 학원에 등록했다. 열흘 정도 학원에 나가봤지만 별로 배울게 없어 혼자서 독학하던 그가 컴퓨터에 본격적으로 눈을 뜨게 된 것은 주위의 권유로 통신을 하게 되면서부터다.

당시로서는 비싼 모뎀을 사서 케텔(KETEL)에 접속한 그는 통신을 통해 필요한 것을 대부분 얻을 수 있었다. PC에 관한 지식, 새로운 정보, 교육용소프트웨어, 컴퓨터교육에 대한 문제점 등 통신을 하면서 그는 점차 '컴퓨터전문가'로 변신해간다. 이 무렵 그는 컴퓨터교사연구회(COCOS) 회원으로도 활동한다.

컴퓨터교육에 관한 세미나 중심으로 운영되던 COCOS가 91년초 케텔에 동호회를 개설하자 그는 초대 시솝(운영자)이 됐다. 컴퓨터를 시작한 지 1년도 채 못돼서 하나의 통신망을 운영하는 수준으로 발전한 것이다.

COCOS동호회 시솝을 하면서 그는 청소년들의 통신문화에 대해 많은 것을 생각하게 됐다. 파일을 압축해서 보내고 갈무리해서 내용을 보면 통신시간이 줄고 전화요금도 절약되는데 목적도 없이 통신망에 들어와 여기저기 기웃거리거나, 다른 사람과 채팅(대화)할 때 반말이나 욕설 심지어는 음담패설을 하는 청소년들이 늘어나는 것이 가슴아팠다. "건전한 통신문화가 정칙하기 위해서는 청소년들에게 상대방을 우선적으로 생각하는 통신예절부터 가르쳐야 되겠다"는 생각을 자주 하게됐다고한다.

등대BBS를 열게 된 또 하나의 동기는 학교에서 학생주임으로써 문제학생들을 자주 상담하면서 느낀 점 때문이다. 직접 얼굴을 마주 대하지 않고 컴퓨터통신으로 그들의 얘기를 듣는다면 좀더 허심탄회하게 고민을 주고받을 수 있지 않을까 하는 생각에서다.

상담용 데이터베이스 구축이 목표

'등대지기'(서영창교사의 ID)가 운영하는 등대BBS의 회원은 현재 1백20명 쯤된다. 중고등학생들이 대부분이지만 교사 대학생 직장인 등 다양한 사람들이 이 통신망에 가입해 있다. 회원으로 가입하지 않고 통신망에 접속해 게시판이나 상담실의 편지를 보고가는 학생들도 더러 있다.

등대BBS에 들어가면 맨처음에 로고화면이 나오고 이어서 공개상담실 비밀상담실 공개자료실 알뜰장터 우체통 모임방 등대문단 등의 메뉴화면이 나타난다. 공개상담실에 실린 내용은 누구나 볼 수 있지만 비밀상담실에 적힌 내용은 상담교사만이 본다. 그리고 그 답장은 우체통으로 배달된다. 등대BBS는 초창기에 '호롱불'이란 BBS프로그램으로 운영됐으나 5월부터 유닉스로 운영체제를 바꾸었다. 유닉스는 다중작업이 지원되기 때문에 채팅이나 주제토론이 가능하다고 한다. 아직 전화회선이 하나 뿐이어서 채팅은 지원되지 않지만.

지난 1월 통신망이 개설된 이래 접속건수는 2천건 정도 된다. 하루 평균 20명이 등대BBS에 들른 셈이다. 서교사네 건넌방은 밤새도록 학생들이 찾아와 자신들의 이야기를 털어놓고 간다. 등대지기 혼자서는 체계적인 상담이 어렵기 때문에 현직교사와 대학생 30여명으로 구성된 상담교사모임이 뒤를 받쳐주고 있다. 이 모임은 한달에 1, 2회 모여 청소년상담에 관해 회원들끼리 토론하는 식으로 진행된다고 한다. "상담할만한 경험이 많은 선생님들은 컴퓨터를 잘 모르고 컴퓨터를 잘 다루는 젊은 사람들은 상담경험이 적은 것이 문제지요."

서교사의 꿈은 청소년상담에 관한 데이터베이스를 구축하는 것. 학생들이 어떤 문제에 부딪쳤을 때 통신망에 들어와 자신의 고민을 털어놓고 스스로 이에 대한 상담을 할 수 있도록 미리 많은 자료를 컴퓨터에 기억시켜 두자는 것이다.

등대BBS에서는 올해 한글날을 기해서 ID를 한글이름으로 짓는 '한글별칭자랑대회'를 열었다. 민들레 한슬 달까치 조약돌 빛내리 푸른꿈 등등 좋은 이름이 많이 나왔는데 1등으로는 '나랏말씀'이 뽑혔다. 서교사가 기업들로부터 어렵게 마련해온 2백여만원 상당의 상품이 회원들에게 푸짐하게 나눠졌다고 한다.

"얼마전 통신을 하다가 성적으로 모욕당한 한 여학생이 자살했을 때 언론에서는 컴퓨터통신의 부정적인 면만을 부각시켰습니다. 어떤 집에서는 아이들이 통신을 못하도록 모뎀을 떼내기까지 했다고 합니다. 매스컴에서 PC통신을 무조건 나쁜 것이라고 몰아부칠 것이 아니라 통신예절에 대해 강조했더라면 하는 이쉬움이 남습니다." 컴퓨터세대로 커가는 어린 학생들사이에 건전한 통신문화가 정착해간다면 사재를 털어 등대지기를 계속 하더라도 아깝지 않다고 서영창교사는 말한다.

1992년 12월 과학동아 정보

  • 사진

    심재익 기자
  • 김학진 기자

🎓️ 진로 추천

  • 교육학
  • 심리학
  • 컴퓨터공학
이 기사를 읽은 분이 본
다른 인기기사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