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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성과학자들이 몰려온다

10년새 박사 2배, 공학학사 10배늘어

이미 이학계 전체 학생수의 30% 이상을 점유하고 있는 여성과학도들의 현재와 미래를 조명해보면…

이학계 대학에 다니고 있는 여성과학도의 숫자가 전체 이학계 대학생수의 30%를 웃돌고 있다. 약학과 과학교육과의 경우에는 절반이상이 여학생이고 생물관련학과에도 거의 반수를 여학생이 점하고 있다. 아직도 여학생의 진출이 적은 학과는 물리학과와 공대 정도인데, 그런 학과들도 '홍일점'시대를 청산한지는 이미 오래됐다. 물리학과에도 20% 가까운 여학생들이 등록한 상태이고 공대에도 적지않은 여학생들이 미래의 여성엔지니어를 지향하고 있다.

여성들의 이공계 대학 진학은 꾸준히 늘고 있는데 특히 1982년부터 시작된 대학의 졸업정원제는 그 기폭제가 되었다.

남녀비 8대 5로

"서울대 공대의 경우 77학번은 통틀어서 여학생 한명, 78학번은 3, 4명에 불과했어요. 하지만 요즘에는 어떤 과에 가도 여학생을 쉽게 만날 수 있습니다."

그래서 대학생활이 참으로 삭막했다는 한 서울대 공대 졸업생의 말이다.

"서울대 약대의 여학생 우위는 80년대 이후에 급속도로 이뤄졌습니다. 그 이전에는 신입생 80명중 여학생이 5, 6명 될까 말까 했지요. 하지만 요즘에는 여학생수가 반 이상으로 늘어나 다소 걱정스런 면도 있어요."

서울대 약대의 한 교수는 그 '걱정스런면'을 구체적으로 밝히지는 않았다.

"기초과학의 남녀 인력비율(대학)은 82년의 2대 1에서 90년대에는 8대 5로 조정됐습니다. 특히 기초과학을 전공한 여학생들의 대학원 진학률이 크게 늘었어요. 기초과학 관련학과의 석사과정 진학자가 80년대 후반 들어 초반에 비해 30% 가량 증원됐는데, 이는 여학생군단이 대거 몰려왔기 때문이지요."

숙명여대 김명자교수(화학과)의 분석이다.

졸정제세대가 대학을 졸업하기 시작한 85년부터 90년 사이의 통계를 보면, 생물학 관련학과를 나온 여학생의 숫자가 가장 많고 화학 수학 통계전산 물리학 지구과학의 순으로 그 뒤를 따른다. 또 남녀비율 측면에서 따져 봐도 생물학 관련학과의 여성우위(53%)가 두드러진다. 이어서 수학 42.3%, 화학 32.3%, 전산통계학 30.6%, 지구과학 33.6%, 물리학 21%의 여성점유율을 나타냈다.

"70년대에 이미 미국에서는 여성생물학자의 숫자가 남성보다 더 많아졌습니다. 분자 생물학을 비롯해 도전해 볼 분야가 많고 생물분야는 손이 '섬세해야' 좋은 결과를 얻을 수 있으므로 여성에게 적합한 학문이라고 생각합니다."

KIST 유전공학연구소 책임연구원인 유명희박사의 말이다. 유박사에 따르면 현재 유전공학연구소에는 두명의 책임연구원을 비롯해 여성과학자가 전체 연구인력의 약 20%를 점하고 있다고 한다.

대학이나 연구소에서 활동하고 있는 여성생물학자의 수는 90년말 현재 1백69명이다. 물론 이들이 모두 박사학위를 소지하고 있는 것은 아니고 전문대교수 중고등학교 교사 시간강사 등은 통계에서 제외됐다. 이 1백69명 중 66명은 대학, 1백3명은 연구소에 재직하고 있다(숙명여대 박영자교수 조사, 1991년 11월 30일).

생물을 전공한 여성이 선호하는 직장은 대학 출연연구소 병원 국립보건원 기업연구소 등이다. 그중에서 기업연구소는 아직까지 보수색채가 짙어서 여성의 접근이 매우 어려운 곳으로 통한다. 현재 여성생물학자의 진출이 비교적 활발한 연구소는 한국식품개발연구원 국립보건원 유전공학연구소 한국화학연구소 국립수산진흥원 럭키중앙연구소 제철 화학 중앙연구소 한국인삼연초연구소 등 이다.

올해 화학과 교수충원 많을 듯

"화학은 기초과학중 가장 활용범위가 넓습니다 그만큼 졸업한 다음에 진출할 수 있는 길이 다양하지요. 또 화학을 공부하면 유학 가기도 쉽습니다. 외국의 대학에서 화학조교를 많이 필요로 하기 때문에 그리 어렵지 않게 조교장학금을 따낼 수 있지요. 따라서 차분한 성품을 지닌 여성들이 더 많이 지원했으면 합니다."

화학연구소 염료연구실장인 오세화박사의 권유다. 화학연구소의 유일한 여성책임연구원인 오박사는 76년 미국에서 귀국한 후 KIST를 지원했으나 당시만 해도 불문율이었던 '여성은 안된다'는 벽을 넘지 못했다고 한다. 그래서 일단 경희대에 갔다가 화학연구소의 창립멤버(1978년)가 되었다. 요즘 같으면 화학연구소에 있다가 경희대로 자리를 옮기는 것이 일반적인 추세지만 70년대 말까지만 해도 대학의 실험설비 수준이 상대적으로 크게 낙후돼 있어서 대학교수들의 연구소 유입이 드물지 않았다.

오박사는 "화학박사가 되면 대학 출연연구소 기업연구소 등으로 진출할 수 있어요. 여성화학전공자가 교수 또는 출연연구소의 선임연구원이 될 가능성은 다른 학문에 비해 높다고 볼 수 있어요 특히 금년과 내년에는 대학에 화학교수 자리가 꽤 많이 날 것으로 전망돼요. 내년이 교육부가 전국의 화학관련 학과에 대해 평가하는 해거든요. 하지만 기업연구소에 취업하는 것은 훨씬 더 어렵다고 여겨집니다. 기업의 남자선호가 무척 심하게 때문이죠"라고 들준다.

대한화학회에서 펴낸 '화학인력총람'(1989년)을 보면 총 여성화학자(1백83명)중 대학에 몸을 담고 있는 사람이 57명, 연구소에 1백22명, 기업에 4명이 재직하고 있다. 여성화학자를 다수 수용하고 있는 연구기관을 꼽으면 총원의 약 15%가 여성연구원인 한국화학연구소를 비롯해 한국인삼연초연구소 표준과학연구원 제철화학중앙연구소 국립 공업시험원 유전공학연구소 국립보건원 럭키중앙연구소 롯데그룹중앙연구소 한국과학기술연구원 국립과학수사연구소 서울시보건환경연구소 한국식품개발연구원 등이다.

수학분야에서도 여성의 진출이 크게 늘고 있다. 1990년 말 통계를 보면 수학관련 학과에 다니는 여학생 수는 전국적으로 8천7백여명에 이른다. 엄밀히 말해 수학은 여성과 인연이 깊은 학문이다. 논리적이고 차분한 성격의 여성이 수학을 전공하면 대성할 수 있다는 말이다. 그 예로 수학의 노벨상이라고 할 수 있는 '필드상' 수상자의 면면을 보면 여성이 여럿 눈에 띄고, 국제수학올림피아드(IMO)에서도 중국과 옛소련의 여학생들이 연거푸 금상을 수상하는 등 눈부신 활약을 하고 있다.

그런데 국내에서는 여성수학도들이 대학을 마치고 학업을 중단하는 경우가 대부분이다. 실례로 90년 말 현재 대학원 석사과정에 재학중인 수학을 전공하는 여학생수가 2백38명이고, 박사과정중인 여학생은 55명에 불과하다.

현재 전국의 여성수학자는 42명 내외인데 그중 41명이 대학에서 후진을 양성하고 있다. 이는 여성수학자들의 진로가 극도로 제한돼 있음을 보여준다. 기업연구소는 말할 것 없고 수학관련 정부출연연구소가 전무한 실정이니….

"요즘 여학생들은 수학이나 물리학을 바로 인식하고 있어요. 그래서 과거보다 지원자가 크게 늘어난 상태입니다. 제가 공부할 때만 해도 여성이 물리학이나 수학을 전공하면 별난 여자로 취급했지요. 하지만 이제는 인식이 많이 달라져 '좋은 신부감'으로 여기지 않아요? 또 물리학의 경우 응용범위가 크게 넓어져 취업도 수월해졌어요. 요즘엔 여성 물리학도가 과학철학 응용미술까지 다루고 있을 정도입니다."

원로 여성물리학자인 이화여대 모혜정교수(53세)의 얘기다.

모교수는 "미국의 메이어박사와 중국의 우박사 등 세계적인 여성 물리학자가 많다"고 예를 들면서 "데이터의 분류와 분석, 실험 등은 섬세한 여성들이 더 잘해낼 수 있다"고 덧붙인다.
 

여성과학자들이 기초과학의 여러분야에서 활약하고 있다.


물리실험에서 남성우위 사라져

일반인들은 수학이나 물리학은 뉴턴이나 아인슈타인같은 천재들의 학문이라고 생각해 지레 겁을 먹는다. 특히 보통 여성들의 경우 그 공포심이 심하다고 할 수 있다. 실제로 중고등학교에 다니는 여학생들이 보편적으로 가장 자신없어 하는 과목이 수학과 물리다. 그 때문인지 물리학은 아직도 여학생들의 선호도가 제일 떨어지는 학과로 남아 있다. 그렇다면 정말로 물리학은 여성에게 잘 맞지 않은 학문인가. 이에 대해 모교수는 "실험능력은 오히려 여학생들이 더 나아 보여요. 특히 요즘은 실험이 전부 컴퓨터화 해서 남자들의 비교우위가 없어졌어요"라고 주장한다.

물리학은 크게 이론물리와 응용물리로 나뉜다. 이중에서 여학생들이 상대적으로 더 호감을 갖는 분야는 이론물리다. 실험하기 위해 밤을 지새는 경우가 드물기 때문이라고 한다. 그 대신 이론물리를 전공하면 대학외에는 취업하기가 쉽지 않다.

물리학 분야의 여성인력은 90년 말 현재 48명인데 그중 27명이 대학에, 21명이 연구소에 재직중이다. 여성 물리학자를 여러 명 수용하고 있는 연구소는 한국표준과학연구원 현대반도체연구소 정도. 표준과학연구원에는 현재 책임연구원인 정광화박사(진공연구실)가 소속돼 있다.

지구과학분야(지구 지질)를 전공한 여성과학자의 수는 90년 말 현재 8명뿐이다. 이중 대학에 재직중인 사람이 둘이고, 한국동력자원연구소에 3사람이 근무하고 있다. 지학분야에서는 기상 해양 환경 쪽으로 젊은 여성 인력이 다수 몰리고 있는 추세다. 90년 말 현재 지구지질 분야를 대학 학부과정에서 전공하고 있는 여학생의 수는 1천2백8명. 물리학 계열의 여학생 총수 3천3백90명보다도 훨씬 떨어지는 숫자다.

한편 통계학과 계산통계학과 응용통계학과 전산통계학과 전자계산학과 등을 포함하는 범(汎)전산통계 계열학과에는 90년 말 현재 7천1백37명의 여학생들이 적을 두고 있다. 또 대학원 석사과정에 1백61명, 박사과정에 23명의 여성이 재학중이다.

여성공학도 7% 수준

여성 전산통계학자는 모두 67명(90년말)인데 대학에 20명, 연구소에 39명, 기업체에 8명이 분포해 있다. 한국통신 한국전자통신연구소 대영전자통신연구소 시스템공학연구소 등에서 일하고 있는 여성 전산통계학자들이 많고 대학교수로의 진출도 상대적으로 수월한 편이다.

공학분야에서도 여성의 진출이 빠른 속도로 확대되고 있다. 공업계 여고가 이미 설립 인가를 받은 상태이고, 여대 안에 공과대학의 설치가 거론될 만큼 여성들의 공대기피증은 이제 옛말이 되었다. 여성 공학사의 경우 81년에는 전국적으로 1백99명을 배출하는 데 그쳤으나 90년에는 7%를 점하게 되었다. 여성 공학석사도 81년의 48명에 비해 90년에는 2천명이 쏟아져 나와 불과 10년 사이에 약 10배의 신장세를 보였다. 다시 말해 81년에는 공학학사의 2%만이 여성이었으나 90년에는 7%를 점하게 되었다(전체 공대생 대비). 여성 공학석사도 81년의 48명에 비해 90년에는 2백93명으로 늘어나 약 6배 증가 했으며, 여성 공학박사 인력도 10년 전(10명)과 후(40명)는 현격한 차이를 나타냈다.

공학의 여러 분야중에서 여성은 전자공학과에 가장 많이 지원하고 있다. 그 다음은 건축공학과(건축학과 포함) 화학공학과 컴퓨터공학과 토목공학과 재료공학과 자원공학과 기계공학과 순이다. 전기공학과 원자력공학과 항공공학과 등도 전국적으로 매년 40명 내외의 여성 엔지니어를 배출했다.

이공계 대학의 90년도 졸업생 통계자료를 보면 여성공학도 수(약 2천명)가 여성 기초과학도의 수(약4천9백명)의 약40%로 나타난다. 하지만 그 신장률에 있어서는 여성 공학도 쪽이 더 가파른 상승곡선을 그리고 있다.

"첨단의 공학이라고 할 수 있는 정밀공학 컴퓨터공학 등에 여학생들의 지원이 늘고 있습니다. 그러나 아직도 공장에서는 여성엔지니어의 입사를 꺼리는 것 같아요. 여학생들은 훨씬 적극적인데 말입니다."

서울대 공대의 유일한 여성교수이며 우리나라 여성공학박사 제1호인 박순자교수(59세, 무기재료공학과)의 말이다.

농학 수산학분야도 이제는 더이상 홍일점을 허용하지 않는다.

농업기술연구소의 천정욱박사는 "지금은 생명과학적인 접근이 농학분야의 주류를 이루고 있어요 따라서 생물학에 관심이 있는 여학생들이 한번 도전해 볼만 하지요. 앞으로 섬세하고 예리한 여성 농학자들이 다방면에서 활약하게 될 거예요"라고 기대섞인 전망을 했다.

여성 농학자들이 다수 재직하고 있는 곳은 농진청 산하인 농업기술연구소와 유전공학연구소를 비롯해 인삼연초연구소 한국화학연구소 작물시험장 등이다. 대학으로 진출한 여성 농학자는 한 손으로 꼽을 정도로 극히 드물다고 한다. 농업계통의 학과 중 여성의 점유율이 높은 학과는 식품영양학(96.8%) 원예학(47.8%) 임학(22.5%) 식품가공학 (35.8%) 등이다. 또 미술과의 접목을 꾀하는 조경학과와 농생물학과 농화학과 등으로도 여성진출이 활발한 편이다. 그런데 아직도 원예학을 화훼학으로 잘못 인식하고 입학원서를 쓰는 여학생도 더러 있다고 한다.
 

전자현미경을 다루고 있는 한 여성공학자


약대는 여학생이「접수」해

약학은 오래 전부터 꾸준하게 여성들의 인기를 끌고 있는 학문이다. 그 때문인지 80년대 초까지만 해도 여성박사하면 으레 약학박사를 떠올리곤 했다. 하지만 당시 남녀공학 대학교에 속한 약대에는 여학생 비율이 극히 적었다.

"최근에는 서울대 약대의 경우 여학생 비율이 거의 70%를 육박한다고 해요. 그만큼 여성들이 남성들의 자리를 많이 잠식한 셈이지요 그러나 계속해서 생명과학의 한 영역을 담당하고자 하는 여성약학자들에게 모든 상황이 나아졌다고 보긴 어려워요. 기업연구소의 남성선호경향이 여전하고 대학은 정원에 묶여있어 좀처럼 뚫기가 어려워요. 예로 서울대 약대의 경우 40여명의 교수 중 여성 교수는 단 한분(김영중 교수)뿐이고 제가 재직중인 서울대 천연물과학연구소도 10명의 교수중 저만이 여성입니다"라고 윤혜숙교수는 들려주었다.

여성 약학자들이 목표로 삼을 수 있는 곳은 제약회사연구소 국립보건원 화학연구소 등이다.

한편 가정계는 81년부터 88년까지, 가정학 식품학 의류학 순으로 인력을 배출했다고 한다(숙대 김명자교수의 '과학기술의 발달과 여성'이라는 논문참조). 그 8년간 배출된 가정계 총인력중 여성이 전체의 98%를 점유(2만5천3백45명), 가정대의 남녀개방이 일부 대학에서 이뤄졌음에도 불구하고 여성의 절대우위는 흔들림이 없음을 보여주었다.

또 8년간(81년~88년) 의학계 배출인력은 총 1만4천5백18명이었는데 그중 여성이 13.1% (1천8백96명)로 나타났다. 이는 약학의 여성화(70%)와는 현저히 대비되는 결과다. 그 기간중 간호학의 인력배출 상황을 살펴보면 역시 여성이 압도적(98.5%)이다. 유일하게 한 분야에서만 프랑스의 최근 국민투표 결과와 비슷한 남녀비율을 보여준다. 즉 사범계의 기초과학분야 인력비율은 남(49.1%)과 여(51.9%)가 거의 동수다.

여성박사의 대부분이 대학에 남아

아무튼 과학기술분야에서 여성 고급인력은 급속도로 팽창하고 있다. 특히 여성박사의 탄생은 이제 화제거리조차 되지 않을 정도.

지난해 한국과학기술단체총연합회가 발표한 '여성고급과학기술자현황'에 따르면 90년말 현재 박사학위를 받은 총 여성인력은 4백13명(의학제외)으로 10년 전에 비해 두배 이상 늘었다고 한다. 여성박사를 가장 많이 배출한 분야는 화학 물리 수학 영양학 등 이학 분야로 전체의 77.5%인 3백20명이 이학박사다. 그 다음은 약학 38명, 농학 17명 순이다. 또 공학분야는 7명, 보건학 6명, 교육학 5명, 간호학 3명 등으로 집계됐다.

이들 여성박사 중 3백77명(90% 이상)은 현재 대학에 재직중이라고 한다. 그만큼 대학강단은 예나 지금이나 여성 박사들의 확실한 목표가 돼 왔다.

70년대 말까지만 해도 이 꿈은 그리 어렵지 않게 달성됐다. 더구나 외국유학파라면 대학교수직을 얻는 일에 아까운 시간을 낭비 하지 않았다. 그러나 이제는 사정이 달라졌다. 외국의 유명대학에서 우수한 논문을 작성, 박사학위를 받은 여성이라 할지라도 아주 운이 좋아야 대학으로 직행한다. 대개는 몇년이 걸릴지도 모르는 시간강사 시절을 거쳐야 한다. 사실 이같은 어려움은 남성들에게도 똑같이 적용된다.

"제자들이 마땅히 갈 곳을 찾지 못하는 것을 보면 매우 안타까워요 우리 과에서도 3명의 여성박사를 배출했는데 아직 직업을 얻지 못했어요. 이렇게 고급인력의 취직이 어려운 것을 보면 과학기술 인력부족을 걱정하는 정부의 목소리가 웬지 공허하게 들립니다."

숙명여대 화학과 박영자교수는 현재의 과학기술 인력관리에 분명히 허점이 있다고 지적한다.

여성과학자들이 대학 다음으로 찾는 곳은 출연연구소와 기업연구소다. 출연연구소의 경우 채용과 승진에서 여성차별이 심하지 않지만 기업연구소의 문턱은 더욱 높은 것이 현실이다.

"세계적으로 모두 성차별을 하고 있습니다. 그중에서 우리나라가 가장 심한 편이지요. 그러나 여성의 사회진출에 대한 인식이 차츰 좋아지고 있으므로 여성들도 노력하면 얼마든지 정상급 과학자가 될 수 있어요" 라고 말한 한 여성과학자는 시대의 대세는 남녀평등이라고 단언한다.
여성과학자가 독자적으로 연구계획을 세우고 연구활동을 하려면 대학교수가 되거나 출연연구소의 책임연구원, 기업연구소의 총 책임자가 돼야 한다.

"바로 이런 점 때문에 대학교수가 되려고 아우성이지요. 물론 사회적인 인식도 교수선망을 부채질하고 있습니다. 그에 비해 연구소에서는 자기가 원하는 연구보다 떠맡겨진 연구를 우선적으로 해야 하므로 스트레스가 쌓이게 되지요. 하지만 연구소는 연구소 나름의 장점도 많아요 대학에서보다 더 철저하게 연구에 몰두할 수 있는 시설과 환경이 마련돼 있지요."

이렇게 말한 정광화박사는 자신은 연구소가 더 적성에 맞는다고 밝혔다.

자부심 결여가 문제

여성과학자에 대한 편견과 배타는 그 뿌리가 상당히 오래됐다. 그 예로 유럽에서도 여성이 대학입학허가서를 받은 것은 19세기 말 이었다. 또 과학학술원의 경우 여성의 진출을 오랫동안 금기시해 왔다. 천문학자인 마리아 윙클맨, 수학자인 소피 게르메인은 물론이고 그 유명한 마리 퀴리의 회원가입도 불허했을 정도.

그러나 19세기 말부터 미국과 유럽에서는 여성차별의 안개가 걷히기 시작했다. 그 상징적인 사건으로 1945년에 여성과학자 마조리 스티븐슨이 영국 런던왕립학술원의 회원자격을 획득했으며 이제는 거의 모든 분야에서 여성과학자들이 활약하고 있다.

그러나 우리나라 여성과학자의 경우 아직도 많은 핸디캡을 안고 있으며 유형무형의 불이익을 받고 있는 것이 사실이다.

박영자교수는 여성과학자의 진출을 가로 막는 걸림돌들을 이렇게 제시했다.

"여학생들의 자부심 결여가 우선 문제예요 학과성적이 남학생보다 앞서는 여학생도 스스로 자립심이 부족하다고 느끼며 다른 사람에 의한 자기비판을 잘 받아들이지 못합니다. 또 대중앞에서 자신의 주장을 내세우기 어려워하지요. 이같은 성향은 여학생들의 취업목표를 낮추는 결과를 초래하지요. 아울러 퀴리부인을 제외하고는 자신의 모델로 삼을 만한 여성과학자가 적다는 점도 여학생들로 하여금 자신의 목표를 낮추게 합니다."

사실 미국의 우수한 대학생들이 '노벨상쯤은 나도 받을 수 있다'고 자신하는 것은 대학내에 노벨상 수상자가 수두룩하다는 데도 원인이 있다.

가족의무, 즉 육아와 가사에 대한 부담도 여성과학자들을 움츠리게 한다. 하지만 오히려 결혼생활이 연구생활에 도움을 준다는 여성과학자도 적지 않다. 심리적인 안정이 연구의욕을 고취시킨다는 것이다. 흥미로운 점은 국내의 기혼 여성과학자들의 상당수가 같은 길을 걷고 있는 배우자의 '외조'를 받고 있다는 점이다. 서로 같은 학문을 하기 때문에 이해의 폭도 그만큼 넓어지는 것일까.
 

컴퓨터그래픽을 공부하고 있는 여성과학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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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92년 11월 과학동아 정보

  • 박태균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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