포자식물중에서 가장 발달된 양치식물은 「공룡시대」의 대표식물이었으나…
양치식물(羊齒植物)이란 포자가 달린 식물중에서 큰잎(大葉)을 형성하는 식물을 말한다. 여기서 대엽은 소엽과는 달리 잎의 맥을 형성하는 관속이 원줄기와 연결돼 있다.
양치류는 포자식물중에서 가장 발달된 식물이며 지질시대의 이첩기(二疊紀) 말까지는(2억2천3백만년전) 식물계의 왕자였다. 키는 30m가 넘고 지름이 1m를 상회하는 커다란 양치나무들이 이때 무성하게 자랐고 그 밑에 공룡이 살기 시작했다. 당시 지구의 기후는 남북극 등 극지까지도 기온이 높고 습기가 많아서 양치식물이 무럭무럭 자랄 수 있는 환경이었다.
사라고사리는 어디에?
경상북도 칠곡군 왜관에 있는 금무봉(錦舞峯)에서는 1억2천5백만년 전에 '사라'라고 하는 나무고사리가 자라고 있었다. 지금은 살아있는 사라고사리를 볼 수 없으나 일본의 남부와 대만에서는 이와 비슷한 종류가 아직 남아 있다.
금무봉에서는 사라고사리가 화석상태로 발견된다. 개중에는 줄기의 지름이 20cm, 길이가 70cm나 되는 것들도 있었다. 비록 잎의 크기를 보여주는 화석은 발견되지 않았으나 줄기만으로 볼 때 오늘의 양치식물과는 비교할 수 없을 만큼 컸다는 것을 짐작할 수 있다. 사라고사리류가 번창했던 지역은 아열대와 열대지방이었다. 한결같이 온도가 높고 습기가 많은 환경이다. 따라서 지금처럼 건조하고 온도가 내려간 환경에서는 살아남기 어려웠을 것이다.
우리가 연료로 사용하고 있는 석탄도 지난날 이 지역에서 자라던 양치식물이 지각이 변동할 때 묻혀서 탄화(炭化)된 것이다.
먼지같은 포자로 번식해
꽃을 피우는 식물은 꽃이 생식기관이다. 이 식물들은 암술 수술 암꽃 수꽃을 따로 갖고 있으며 이것이 열매를 맺게 한다. 또 꽃가루를 바람에 날려 보내는 식물도 있다. 그런가 하면 화려한 꽃색깔로 벌레를 유도하는 식물도 허다하다. 이 식물들은 먹을 것을 벌레에게 주고 대신 자신의 꽃가루를 운반시킨다. 이처럼 식물들은 다양한 방법으로 종족을 유지시키고 있다.
그러나 포자식물의 번식은 꽃피는 식물의 번식법과는 전연 다르다. 꽃은 영양체에 붙어서 살지만 포자의 생식체는 영양체와 전혀 무관하게, 즉 독립체로서 생활하고 있다.
포자는 크기가 작아서 맨 눈으로는 보이지 않는다. 따라서 옛 사람들은 은밀히 꽃이 핀다고 생각해 양치식물을 은화식물이라고 불렀다. 또 몇몇 특수한 사람만이 양치식물의 종자를 볼 수 있다고 생각했다.
꽃가루는 바람에 날려서 한없이 날아가거나 벌레의 몸에 붙어서 이동한다. 따라서 만난 짝을 미리 예측하기란 극히 어렵다. 꽃가루를 받아들이는 암술은 수정할 만반의 준비를 갖추고 있으나 거기에 어떤 꽃가루가 닿을지는 미지수다. 단지 우수한 꽃가루와 수정되기만을 기대할 따름이다.
때로는 꽃가루가 사람의 호흡기로 들어갈 수가 있다. 이때 생기는 병을 흔히 꽃가루병(花粉病)이라고 한다. 우리나라에서는 꽃가루병에 대한 인식이 부족하다. 봄이 되면 유난히도 감기에 잘 걸리는 사람은 우선 꽃가루병을 의심해봐야 한다.
꽃가루는 꽃에서 나오는데 양치식물의 포자(胞子)는 어디서 나올까. 포자에 대한 옛이야기 한 토막을 소개한다. 옛날 어느 꽃집에서 관엽식물로 양치식물을 기르고 있었다. 이것을 산 손님이 며칠 후 찾아와서 꽃이 병에 걸렸다는 이유로 바꿔 갔다. 그러나 한달쯤 지나서 다시 바꾸러 왔다.
손님이 병이라고 여긴 것은 잎 뒤에 붙은 빈대같은 것이었다. 주인도 이것을 병이라고 생각했다. 그런데 나중에 알고 보니 그것이 바로 포자가 들어있는 포자주머니였다.
포자는 작아서 먼지같이 보이고 포자주머니 안에 들어 있다. 포자주머니는 여러개가 한데 모여 있는데 그래서 포자낭군 또는 낭퇴라고 한다. 낭퇴는 보통 벌레같이 보인다.
양치류의 일생
꽃을 피우는 식물의 경우 화서(花序)에는 많은 꽃들이 달려 있다. 반면 양치식물의 경우 포막이라는 덮개가 안에 있는 포자낭군을 위에서 가리고 있다. 그러나 어떤 양치식물에는 포막이 없다.
포자가 성숙하면 포자낭이 터져서 먼지같은 포자가 사방으로 퍼진다. 습기가 적당히 많은 땅에 포자가 떨어지면 오래지 않아 싹이 트는데 이 싹은 마치 잎같이 생긴 전엽체(前葉體)로 발달한다.
바로 이 심장형의 전엽체에서 암수를 가르는 생식기관이 생긴다. 성숙한 정자는 물속으로 헤엄을 쳐서 난세포가 있는 곳으로 간다. 이때 정자는 절대로 같은 엽상체를 향하지 않고 이웃 엽상체에 있는 난세포를 찾아간다. 이를 음미하면 근친결혼을 꺼리는 것은 사람 뿐이 아닌 것 같다.
정충에는 털이 있어 헤엄치기 쉽게 생겼으나 보통 나선상으로 회전해 목적을 달성한다.
암수의 핵이 합쳐진 것을 접합자(接合子)라고 한다. 접합자는 계속적인 세포분열을 통해 커지면서 뿌리가 돋아나고 잎이 자라서 우리가 볼 수 있는 커다란 식물체가 된다. 아무리 큰 식물이라 할지라도 이처럼 한개의 세포에서 출발한다.
자랄대로 자란 양치식물의 잎에는 한때 병소이거나 벌레라고 생각했던 것들이 생기기 시작한다. 즉 포자는 잎의 뒷면에 달리는 것이 보통이지만 잎 가장자리에 달리거나 잎의 일부 또는 전체가 포자낭이 될 수도 있다. 음양고비는 전자에 속하고 고비와 꿩고비 등은 후자에 해당한다.
이와같이 영양생장을 하면서 생식기관을 생산하는 것을 조포체(造胞體) 또는 영양체라고 부르고 포자가 떨어져서 싹이 튼 다음 새로운 접합자가 생길 때까지를 배우체(配偶體)라고 한다. 양치식물은 이처럼 조포세대와 배우체세대를 번갈아가며 자란다. 꽃이 피는 식물의 경우 배우체세대가 조포체세대에 포함돼 있다. 이 점에서도 두 세대로 나눌 수 있는 양치식물과는 현저히 다르다.
공룡과 운명을 같이하고
양치식물이 번성했던 시절에 자랐던 나무에는 나이테가 없다. 나이테는 온도차가 있을 때만 생기게 된다. 즉 식물이 자라고 있을 때와 자라지 못하고 쉬고 있을 때가 번갈아가며 있어야 나이테가 생성된다. 따라서 양치식물의 화석은 이첩기까지 온도의 변화없이 식물이 계속 생장했음을 시사하고 있다. 그리고 각 대륙에 서식했던 양치류의 종류도 제각각이었음을 암시해준다. 지금까지 찾아낸 양치류의 화석을 잘 관찰하면 다음과 같은 특색이 드러난다.
첫째 오스트레일리아 대륙에는 글로소프테리스(Glossopteris)가 자랐었고 우리가 살고 있는 아시아대륙에서는 자이간토프테리스(Gigantopteris)가 번성했을 것으로 추측된다. 그리고 우랄에서 시베리아를 거쳐 알래스카에 이르는 대륙에는 칼리프레리스(Callipteris)가 대표속으로 나타난다.
이처럼 한때 무성했던 양치식물이 사라진 것은 기후변동 때문으로 여겨진다. 거대한 체구의 공룡도 양치식물과 함께 지구 위를 누비다가 멸종했다. 그 당시의 화석을 보면 침엽수와 은행나무 등 건조에 간한 식물들만이 자랐다는 증거가 여기저기서 발견되고 있다. 이러한 증거들로 미뤄 보아 양치류와 공룡이 지구의 지배자 자리를 내놓을 무렵에 기후의 커다란 변동이 있었음을 짐작할 수 있다.
당시 엄청난 조산운동이 유럽을 중심으로 일어났다. 석탄기에서 이첩기 말기까지 사이에 맹렬한 조산운동이 일어난 것이다. 이때 북아메리카에서는 애팔래치아 변동이 일어났으며 우랄산맥 텐샨산맥 유럽중앙고지로부터 서부에 이르는 고지까지 엄청난 지각변동이 수반됐다. 이에 따라 산이 높아지고 계곡이 깊어졌으며 바다가 현저히 줄어들고 건조한 넓은 사막이 생겼다.
높은 산맥의 출현과 바다물의 후퇴로 인해 기후의 변동이 심해졌고 이 때문에 남극에서 북극까지 그야말로 살기좋은 온난한 환경 아래에서 무한정 자라던 나무고사리류 중에서 사라지는 종류가 많아졌다.
오스트레일리아 대륙에서는 대륙의 중심부에서 커다란 빙하의 흔적이 발견됐다고 한다. 그러나 빙하 후기에 닥쳐온 추위와 건조한 기후조건 하에서도 글로스프테리스는 살아 남을 수 있었다.
도전은 새로운 응전을 낳았다. 글로소프테리스에서 보듯이 추위와 건조에 견딜 수 있는 양치류가 생겨났다. 이러한 현상은 남반구와 북반구에서 똑같이 일어났는데 특히 북반구에서는 지역적인 차까지 있었다.
제주도의 고사리 피난처
제주도에는 고사리의 피난처가 생겼다. 햇볕이 잘 드는 곳에서 자라는 실고사리와 밭풀고사리는 숲 가장자리 등지에서 서식하고 있으나 대부분의 양치식물은 응달이나 숲속에서 자라고 있다. 또 남쪽의 거문도, 제주도의 비자림, 납읍의 상록수림, 섭섬, 물장울과 울릉도의 성인봉계곡 등은 양치식물이 자랄 수 있는 훌륭한 터전이 돼 주었다.
이런 곳들을 가 보면 인공적으로 양치식물을 가꿨다고 해도 곧이 들을만큼 잘 정리돼 있다. 바라보기는 좋으나 들어갈라치면 발디딜만한 틈새도 없다. 특히 일색고사리의 경우는 장관이다.
국내에서 양치식물의 서식지로 유명한 제주도를 찾아가 숲이 울창한 계곡에 들어가면 바위면까지도 노출된 것이 거의 없을 정도다. 이끼와 양치식물이 사이좋게 어울려서 바위면을 감싸고 있기 때문이다.
제주도에서 비자림의 울타리를 벗어나서 깊고얕은 동굴을 들여다 보면 각종 양치식물들이 여기저기서 보인다. 마치 사람들의 발뿌리를 피해 있는 것처럼 여겨지기도 한다.
제주도의 협재굴에서 3km정도 떨어진 곳에 소천굴이 있다. 필자는 어느 겨울 눈보라가 심한 날 이 굴을 찾아간 일이 있다. 밖은 추워서 모든 식물이 떨고 있었는데 굴안은 김이 자욱한 온실이었다. 이 굴안에 들어섰더니 돌토끼고사리 석위 및 도깨비고비가 문을 지키고, 누운괴불이끼 더부사리고사리 등이 바위면을 온통 점유하고 있었다. 이곳의 고사리들은 추위를 피해 굴속으로 들어온 등산객같이 보였다. 이러한 피난처가 있기에 우리나라에서 자라는 양치식물의 약80%가 제주도에서 서식한다.
지구상에서 자라는 양치식물은 1만2천종이고 우리나라에서는 2백29종과 21변종이 발견돼 있다. 우리 주변에서 흔히 볼 수 있는 양치식물 몇 종을 들어보면 다음과 같다.
걷는 고사리-거미일엽
첫째로 거미일엽은 옆으로 기어가는 거미같이 보인다. 그래서 거미일엽이란 이름이 붙었다. 잎은 마치 일엽초같이 생겼고 전체의 형태는 다리가 긴 거미가 붙어있는 것처럼 보인다.
거미일엽의 잎은 피침형이다. 즉 끝이 길고 뾰족하다. 잎의 끝이 땅에 닿으면 그곳에 뿌리를 내려서 새로운 양치류가 자라게 된다. 새로 생겨난 식물에서도 같은 현상이 나타나 마치 식물체에 발이 달려 옮겨다니는 것처럼 보인다. 이런 현상때문에 영어권에서는 거미일엽을 걷는 고사리(walking fern)라고 부른다. 실제로 절벽에 붙어있는 거미일엽은 조심조심하면서 먹을 것을 찾는 거미같이 보인다.
거미일엽이 걸어 다닌다면 일엽초는 바람을 타고 이동해 나무등걸이나 암벽에 자리잡는다. 잎이 갈라지지 않고 단순하며 한개씩 돋는다고 해서 일엽초란 이름이 붙었다. 일엽초중 한 곳에 정착한지 오래된 것은 꽤 넓은 군총을 형성하고 자라면서 속세를 바라본다.
절벽 타는 넉줄고사리
넉줄고사리라는 것도 주변에서 흔히 볼 수 있다. 넝쿨이 자라서 뻗어간다고 해서 넉줄고사리라는 이름이 붙었다. 이 고사리는 포자를 날려서 절벽을 타는 수완은 있어도 걸어다니는 재간은 없어서 바위틈을 타고 착실히 올라간다. 이 고사리는 자신의 근경이 마르지 않도록 제 몸을 비늘로 꽉 덮고 있으며 뿌리는 군데군데 내린다.
넉줄고사리는 밑부분이 잘려도 윗부분의 뿌리에서 수분과 양분을 흡수할 수 있어서 어떤 역결이 닥쳐와도 계속해서 절벽을 타고 올라간다. 무지한 사람들은 넉줄고사리의 덩쿨을 똘똘 말아서 자기 집의 처마 밑을 장식하기도 한다. 포자낭은 잎 가장자리에 있는 컵모양의 포막 속에 들어 있다.
이끼 틈에서 좀고사리를 가려낼 만한 실력이면 양치식물을 어느 정도 알고 있다고 자신해도 좋다. 좀고사리의 키는 2~10cm다. 잎은 작으나 뒷면에 포자낭군이 달려 있다. 이들은 보통 이끼 틈에서 자라고 있으며 잎의 세포는 2층 이상이다.
처녀이끼는 바위 면에 붙어서 마치 이끼류처럼 자란다. 이 양치류는 잎의 세포가 한층이기 때문에 투명하고 포자낭군은 잎 가장자리에서 조개처럼 잎을 벌리고 있는 포막속에 들어 있다. 이들중 늙은 것도 처녀이끼라고 부른다.
숲속의 빈 공간을 상당히 메우고 있는 관중은 열대지방의 소철숲을 방불케 한다. 한포기가 서 있어도 관중이라고 부른다. 이른 봄 솟아나는 관중의 새 싹을 보면 생명의 강한 힘을 느낄 수 있다. 비록 머리는 숙이고 있지만 쑥쑥 뻗어 올라오는 힘을 누가 감히 저지할 수 있으랴.
솔잎란은 분명히 양치식물의 일종이다. 난초가 아니면서도 이름 끝에 '난'이 붙은 것이 이채롭다. 이 식물은 뿌리가 없으나 바위틈에서 잘 산다. 또 잎이 없어도 몸통으로 광합성을 하며 오늘날까지 살아서 많은 포자를 생산하고 있다.
물속생활을 하다가 육지로 올라온 최초의 관속식물이 바로 솔잎란이라고 대다수의 학자들은 말하고 있다. 이들은 주로 제주도 남쪽바닷가의 바위 틈에서 자라고 있다.
충청남도 부여군 부여읍 부소산 백마강가에 위치한 고란사 뒤에는 고란정이라는 샘이 있다. 이 고란정 뒤 절벽에서 고란초가 한때 자랐었다. 이곳이 백제의 마지막 군주인 의자왕이 거느렸던 3천궁녀가 몸을 던졌던 낙화암이 아니던가. 관광객의 손을 탔기 때문인지 고란정 뒤 절벽에서 살던 고란초는 거의 사라졌으나 경내를 벗어나면 아직도 그 주변에서 고란초가 자라고 있다.
고란초의 포자의 싹이 트려면 습기가 필요하다. 따라서 고란초는 항시 냇가나 절벽에서 자라고 있다. 그들은 임진강가의 절벽에서부터 남쪽 섬에 이르는 냇가와 바닷가의 바위 틈에서 서식한다. 이 식물의 잎의 뒷면을 관찰하면 포자낭군이 특히 뚜렷하다.
국내에서 분포하는 2백50여 종류의 양치식물 중에서 천연기념물로 지정돼 특별히 보호하고 있는 것은 파초일엽 뿐이다. 섭섬에서 자라는 파초일엽이 천연기념물 제18호로 지정돼 있다.
파초일엽은 난대성 식물로서 섭섬이 이 식물이 자랄 수 있는 가장 북쪽 한계지점이라고 여겨진다. 이 양치식물은 보통 손고비 지느러미고사리 검정비늘고사리 솔잎란 등과 함께 자라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