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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인간 오감(五感)을 기계에 이식

개념과 전망

컴퓨터 오디오 비디오 등 모든 전자기기들이 빠른 속도로 「멀티미디어 」를 향해 통합되고 있다. 이에 따라 세계적인 컴퓨터 가전업체들이 이 기술개발에 기업의 성패를 건 한판 승부를 준비하고 있다.

멀티미디어(multi-media)는 텔레비전과 컴퓨터에 이어 '제3의 문화적 충격'을 인류에게 던져줄 것이다.

전화가 발명되고 TV가 보급되면서 인간들은 '미디어의 세계'에 몰입해 들어갔고 이제는 누구나 '미디어'가 없는 세상을 생각할 수조차 없게 됐다. 컴퓨터 가전제품 정보통신 등 이른바 첨단문명의 이기들이 미디어를 중심으로 배치되고 있으며 급기야 인간의 오감을 기계에 이식한 '멀티미디어'로 통합되고 있다.

줄 베르느의 '달나라 여행'에서 스타워즈에 이르기까지 인간은 허구의 세계를 어김없이 논픽션으로 바꿔놓았다. 인간처럼 말하고 행동하는 컴퓨터를 영화속의 한 장면으로 보면서 가슴에 꿈을 키웠던 어린이는 그들이 미처 어른이 되기 전에 현실로 다가온 멀티미디어의 세계를 경험하게 될 것이다.

멀티미디어는 컴퓨터의 초소형화와 디지털통신기술의 발전, 그리고 가전제품의 컴퓨터화에 의해 탄생됐다.

최근 미국 애플사는 '필'이란 이름의 컴퓨터 조교를 일반에 공개했다. 나비넥타이를 맨 이 친구는 손바닥만한 컴퓨터안에 살면서 교수님의 모든 일을 도맡아 처리해주는 재주꾼이다. 강의시간 5분전이 뛰어든 교수님이 강의에 필요한 연구문헌을 찾아내라고 목소리로 지시하자 필은 컴퓨터네트워크를 통해 각종 데이터베이스(DB)를 뒤져 원하는 자료를 뽑아낸다. 이 컴퓨터조교는 강의실까지 따라들어가 학생들과 교수의 대화에 끼어들면서 그때그때 요청에 따라 적절한 도표와 데이터를 제공한다. 뿐만 아니라 교수님은 컴퓨터에 내장된 화상전화기능을 통해 친구들과 얼굴을 맞대고 잡담을 나눌 수 있으며 메모나 스케줄관리는 필에게 모두 맡기면 그만이다. 멀티미디어는 필처럼 하나의 기계에서 문자와 그림 소리 영상 등을 동시에, 그것도 사용자와 대화식으로 주고받음으로써 정보의 부가가치를 높이는 것이라고 정의내릴 수 있다.

독자가 구성하는 만화영화

스타워즈와 인디에나존스를 만들어 공상과학영화의 새 장을 열었던 조지 루카스는 얼마전 세계를 깜짝 놀라게 할 멀티미디어 게임을 만들었다. 일명 '룸'(LOOM)으로 불리는 이 PC용 게임소프트웨어는 주인공이 왕국을 지키기 위해 갖은 모험을 겪으면서 험난한 여행을 하는 과정을 그린 평범한 내용의 만화영화다.

그러나 이 게임에는 멀티미디어 소프트웨어의 첨단음성기술이 멋지게 구현돼 있다. 단순한 기계음 정도를 내는 종래 게임기나 PC와는 달리 이 작품은 21명의 출연자가 각각 다른 목소리로 이야기한다. 등장인물의 입술움직임과 음성을 동조시키고 그 위에 적합한 효과음과 배경음악을 덧씌움으로써 실감나는 게임을 즐길 수 있게 한 것이다. 더욱 놀라운 것은 이 게임안에 수많은 시나리오가 사전에 입력돼 있어 게임하는 사람의 취향에 따라 다양한 스토리의 모험극이 펼쳐지게 된다.

멀티미디어의 예를 한가지만 더 들어보자. 최근 해외토픽을 통해 가상현실(virtual reality)이라는 첨단기술이 소개된 바 있다. 머리에 이상한 헬멧을 쓰고 손에 큼직한 장갑을 낀 사람이 마치 판토마임을 하듯 움직이는 모습은 그 속사정을 모르면 무슨 짓인지 전혀 이해가 안된다. 그러나 이 장치에는 이미 엄청난 양의 데이터와 가상 시나리오가 입력돼 있어 눈과 손의 움직임에 따라 새로운 가상의 세계가 눈앞에 전개된다.
가상현실을 이용하면 실제로 집을 짓지 않고서도 사전에 충분히 입력된 데이터에 의해 집안에 들어가 볼 수 있다. 또 우주선을 타지 않아도 마치 우주를 항해하는 것과 똑같은 느낌을 얻을 수 있다. 즉 멀티미디어기술을 통해 인간의 감각기관이 총체적으로 구현하는 인식작용을 만족시켜 가상의 현실을 만들어내는 것이다. 눈치빠른 사람이라면 벌써 멀티미디어의 핵심이 '인간과 기계의 대화' 즉 상호작용(interaction)에 있음을 발견했을 것이다.

멀티미디어는 단순히 드라마나 게임 등 오락에 한정되지 않고 인간이 정보와 만나는 모든 영역에서 그 위력을 발휘한다. 컴퓨터와 TV 오디오를 한데 묶어 사용자가 각종 정보를 임의대로 편집 가공 출력할 수 있도록 하는게 멀티미디어시스템의 역할이다.

지금 미국 일본의 컴퓨터 가전업체들은 멀티미디어가 향후 컴퓨터와 가전산업에 일대 혁명을 불러일으킬 것으로 확신하고 사활을 건 연구개발작업에 한창이다. 이들의 주장은 이제 가전과 컴퓨터의 영역구분은 더이상 무의미해졌다는 것이다. TV VCR 전화는 물론 세탁기 토스터에 이르기까지 필요하다면 모든 가전제품에 마이크로프로세서와 소프트웨어가 내장될 것이다. IDC 같은 시장조사기관은 95년 멀티미디어 시장 규모가 5백억달러에 이를 것으로 예견한다. 물론 그 이후 멀티미디어시장의 성장속도는 PC의 보급률을 앞지를 만큼 엄청나게 빠를 것이라고 확신한다.

그러나 보다 완벽하게 인간과의 대화를 만족시키기 위해 해결돼야할 멀티미디어기술은 아직도 무수하다.

가령 VCR에서 나타나는 영상은 1초에 30장의 프레임(정지화면)을 연속적으로 넘겨야 자연스럽게 나타나는데 이를 컴퓨터모니터에 뿌려주기 위해선 약 40메가비트(MB)의 디지털데이터 저장용량이 필요하다. 따라서 40MB 하드디스크로는 고작 1초 정도의 영상을 나타낼 수밖에 없으며 6백MB용량의 콤팩트디스크(CD)에도 20초미만의 분량밖에 담을 수 없다. 결국 영상 음성 등의 데이터를 최대한 압축시켜 저장 재현하는 기술이 없이는 멀티미디어도 '빛좋은 개살구'에 불과한 것이다.
 

미국의 탠디사의 멀티미디어 PC제품들. 2천8백달러선에 팔리는 286기종에서 5천달러가 넘는 386기종까지 다양하다.


멀티미디어로 한판 승부

현재 컴퓨터업계에선 JPEG(합동사진전문가그룹)이 제정한 정지화상처리 압축기술과 MPEG(동화상전문가그룹)이 마련한 움직이는 영상의 압축기술을 대표적인 표준으로 설정해놓고 있으며, 이러한 표준에 입각해 영상압축칩의 개발이 활기를 띠고 있다. 그 한 예로 미국의 반도체전문회사 C큐브가 지난 90년말 JPEG에 맞춰 영상압축칩을 만들어 냈고 ITT사는 작년 9월 MPEG표준에 의거한 칩을 발표, 1백50달러에 팔고 있다.

그러나 현재 이 분야에 막강한 세를 장악하고 있는 업체는 IBM과 인텔이다. 이들은 지난 88년 세계 최초로 비디오와 음성을 압축하는 DVI기술을 공동개발, i750칩세트를 발표하고 현재 IBM의 '울티미디어'라는 제품에 장착해 판매하고 있다. 1백60대 1로 데이터를 압축해 CD 1장에 70분짜리 비디오를 집어넣을 수 있는 DVI기술은 현재 가장 저렴한 압축기술로 알려져 있다. 작년 10월 세계 최대의 컴퓨터전시회인 '컴텍스쇼'에 출품된 울티미디어는 기존 멀티미디어제품들이 갖지 못했던 비디오화면재생 및 포착기능을 발휘해 선풍적인 인기를 끌기도 했다.

여기에 동맹군으로 가세한 애플은 작년 7월 IBM과 전격제휴를 발표하고 매킨토시의 뛰어난 GUI(그래픽사용자환경)를 강점으로 갖춘 차세대 객체지향형 운영체제 '핑크'를 만들고 있다. 올해말경 IBM과 애플의 밀월로 태어날 '파워PC'는 비디오를 포함한 모든 미디어기능이 지원될 것으로 예상돼 컴퓨터업계의 비상한 관심을 모으고 있다.

IBM 인텔 애플 등 내로라 하는 컴퓨터업체들이 공동전선을 펴고 있는 적군은 그동안 PC시장을 독점해 오면서 일찍부터 멀티미디어 분야에 터줏대감으로 군림한 빌 게이츠의 마이크로소프트사다.

마이크로소프트의 빌 게이츠 회장이 멀티미디어사업을 펼치면서 내세운 기본원칙은 MS-DOS와 윈도우즈가 그랬던 것처럼 "업계 표준으로 승부를 낸다"는 것이었다. 이를 위해 마이크로소프트는 지난 6년동안 CD롬(CD-ROM) 및 멀티미디어 학술대회와 전시회를 주관해오면서 세를 넓혀왔다.

90년 드디어 마이크로소프트는 '멀티미디어PC'의 기본사양을 확정해, 오디오보드와 CD롬을 장착하고 윈도우즈의 멀티미디어 확장판을 운영체제로 하는 표준규격을 발표했다. 그리고 유명 PC업체인 탠디 등 11개사가 멀티미디어PC 표준을 따른 제품을 잇따라 선보여 멀티미디어시장을 선점하고 있다.

한편 태평양 건너편에는 가전왕국 일본이 미국을 압도하는 응용기술을 앞세워 멀티미디어 연구에 박차를 가하고 있다.

그중에서도 소니는 애플과 제휴, 포켓에 들어갈 정도로 작은 펜컴퓨터를 생산하고 있다. 이 컴퓨터에는 애플의 멀티미디어 소프트웨어가 내장될 것이며, 궁극적으로 소니가 겨냥하고있는 시장은 미국이다. 특히 데이터저장장치 등 주변장치에 강한 소니는 멀티미디어에 없어선 안될 CD롬과 대용량 광디스크를 개발하는데 총력을 기울이고 있다.

일본업체들과 탄탄한 협력관계를 맺으면서 멀티미디어 시장석권의 욕망을 불태우고 있는 업체로 유럽의 필립스가 있다. 가전제품기술을 바탕으로 필립스는 작년 10월경 TV에 연결해 사용할 수 있는 가정용 멀티미디어 'CD-I'플레이어를 선보였다. 이 제품은 가전부문의 멀티미디어표준화를 겨냥, 현재 거론되고 있는 대부분의 표준방안을 거의 그대로 수용했으며 음성 사진 그래픽 등을 모두 지원하고 있다.
 

멀티미디어 소프트웨어의 한 장면


소니가 컬럼비아를 인수한 진짜 목적

현 상태로 보면 멀티미디어의 주도권은 일단 미국이 쥐고 있는 듯하다. 그러나 조만간 일본이 태풍의 눈으로 부각되면서 멀티미디어시장의 주인은 바뀔 가능성이 높다. 그 이유는 멀티미디어의 핵심이 하드웨어나 운영체제의 보다 '무엇을 멀티미디어로 보여줄 것일가' 하는 내용(title)에 있기 때문이다.

즉 교육용으로 멀티미디어를 사용할 때 '호랑이'라는 내용을 설명하려면 기본문자자료는 물론 호랑이 사진과 영상비디오 울음소리 등이 필요하다. 그러나 막상 이러한 멀티미디어 자료를 수집하기란 보통 어려운 일이 아니다. 따라서 이런 원시자료를 대량으로 축적해놓은 방송국이나 영화사는 멀티미디어산업의 필수적인 요소가 되고 있다. 소니와 마쓰시타가 미국의 컬럼비아영화사나 MGM을 사들이는 목적도 바로 여기에 있다.

더구나 일본업체들은 이미 게임기 시장에서 멀티미디어에 관한 엄청난 노하우를 축적하고 있다. 세계게임기시장을 휩쓸고있는 닌텐도와 세가는 작년말에서 올 중반에 걸쳐 멀티미디어를 이용한 획기적인 게임소프트웨어를 내놓을 예정이다. 놀라운 것은 첨단기술이지만 연구소 골방에서나 쓰임직한 가상현실이 이미 이들 게임기업체에 의해 상품으로 개발돼 팔리고 있다는 것이다.

벌써부터 전문가들 사이에는 멀티미디어를 이용한 게임기의 상륙으로 일본의 문화적 침투가 본격화될 것을 우려하는 사람도 있다. 지금까지 들어온 일본 게임기보다 월등히 우수한 멀티미디어제품이 들어오게 될 경우 가뜩이나 심각한 왜색문화가 한층 기승을 떨치게 될 것은 불을 보듯 뻔하다.

이들 전문가들은 "우리나라도 PC 보급대수가 1백만대를 넘어서 게임 소프트웨어 정도는 능히 우리손으로 만들 만한 수준에 올라있다"고 지적하고 그동안 게임기시장을 건전치 못한 블랙마켓으로 치부해왔던 고정관념에서 탈피, 정책적으로 육성할 필요가 있다고 역설한다. 따라서 멀티미디어에 대한 기초연구를 튼튼히 하면서 재빨리 이를 상용화할 수 있는 체제가 마련된다면 우리나라도 가만히 앉아서 미일 업체들에게 시장을 내주지는 않을 것이라고 이들은 주장한다.

「G7」 과제에 포함돼

현재 국내 멀티미디어 연구는 걸음마단계이며 그나마 하드웨어개발에 편중돼 있는게 사실이다. 최근 정부주도로 추진되는 G7프로젝트의 하나인 지능형컴퓨터개발 과제안에 멀티미디어 PC개발사업이 포함돼 있다.

이 계획의 1단계 기본골격은 486PC를 플랫폼으로 해서 화상 음성 데이터압축기술을 중점개발, 원천기술을 확보한다는 것이다. 이 과제는 한국전자통신연구소가 주관이 되어 삼성전자 금성사 삼보컴퓨터 등 유명 컴퓨터업체들이 망라돼 있다.

한편 일부 기업에서는 세계적인 표준사양에 맞춰 멀티미디어 제품을 개발해놓기도 했는데 솔빛미디어가 지난해말 발표한 '판타지아'가 그 대표적인 예라고 할 수 있다. 이 시스템은 마이크로소프트가 발표한 윈도우즈 3.0 멀티미디어확장판을 기반으로 하고 있으며, 고성능 오디오의 음향을 재현하면서 컴퓨터작곡 편곡이 가능한 미디기능에다 VCR의 영상도 처리할 수 있다.

컴퓨터업계의 멀티미디어 바람을 타고 일부 출판사에서도 방대한 자료를 영상으로 재현해 주는 소프트웨어개발에 적극 나섰다. 한글성경과 각종 영어회화테이프가 CD롬으로 만들어졌고, 웅진미디어에서 한국민족문화대백과사전을, 동아출판사에선 32권짜리 백과사전이 각각 CD롬으로 출판할 예정이다.

이제 몇년후면 우리 주변에서 멀티미디어 제품을 일상적으로 대하게 될 듯하다. 학교 연구소에서 금융기관 및 관공서에 이르기까지 멀티미디어가 사용됨으로써 서비스가 대폭 향상될 수있는 분야는 셀수없이 많다.

그러나 멀티미디어는 수단일 뿐 그 자체로 목적이 될 수는 없다. PC는 연구소의 대형컴퓨터를 개인의 책상위에 갖다놓음으로써 컴퓨터 발전의 결정적인 전환점을 마련했다. 이에 비해 멀티미디어는 '사람과 사람을 연결하는 컴퓨팅'환경을 구현해 조직의 생산력에 혁명을 불러일으킬 것으로 기대되고 있다.

단순히 기술개발에만 집착해 서두르기보다는 멀티미디어의 본령을 넓게 보려는 인식의 확대가 멀티미디어를 갓 시작한 우리들에게 더욱 필요하다.
 

멀티머디어^멀티미디어를 가능하게 하는 하드웨어기술중 하나로 슈퍼칩을 들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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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92년 06월 과학동아 정보

  • 이규창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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