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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 유전병 치료의 새 시대 열어

인조 염색체

이미 효모의 인조염색체는 거의 완성된 상태이고 이제 인간의 인조염색체 개발을 위해 총력을 기울이고 있다.

생물체의 특징적인 형질들이 자손에 충실히 유전돼 종족의 연속성을 유지하는 것은 세포 내의 염색체가 복제돼 후대에 전해지기 때문이다. 사람은 사람을 낳고, 개는 개를 낳는 까닭도 사람에게 사람의 염색체가 전해지고 개에게 개의 염색체가 전해지기 때문이다. 즉 사람을 개같지 않고 사람답게 만드는 것이 바로 인체염색체들로 구성된 인체게놈(genome)이다.

생물체의 형태나 기능을 나타내는 유전형질들은 각각 그의 해당하는 유전자로부터 비롯된다. 1865년 멘델은 유전의 법칙성을 발표하면서 이런 사실을 처음 제안했다. 그후 1903년 서튼은 유전자가 세포핵의 염색체에 들어 있다는 이른바 염색체설(說)을 제창 했다. 이로써 생명현상 중에서 가장 중요한 현상중의 하나인 유전현상을 유전자와 염색체로 설명하는 유전학이 20세기 생물학을 화려하게 장식하기 시작했다.

20세기 중반에 이르러 염색체를 구성하는 단백질과 DNA 중에서 DNA가 유전자라는 사실이 새롭게 알려졌다. 1953년 왓슨과 크릭은 이중나선형인 DNA의 입체화학구조를 밝혀냈다. 그후 70년대에 이르러 DNA를 절단하고 연결해 복제 증폭시키는 방법들과 염기서열을 결정하는 방법들이 개발되면서 소위 유전공학의 시대가 열리게 되었다. 즉 유전자 DNA를 인위적으로 조작할 수 있게 됨으로써 생물체에 새로운 형질을 도입시킬 수 있게 된 것이다. 예를 들어 병충해에 잘 견디는 식물이나 보통 쥐보다 훨씬 큰 쥐(슈퍼 마우스)가 DNA재조합기술을 통해 만들어 졌다.

그러나 지금까지의 유전공학은 단위유전자와 몇개의 유전자를 가진 비교적 작은 DNA(수천 내지 수만 염기쌍 정도)를 다루는 데 그쳤다. 실제로 오랫동안 학계의 관심이 온통 어떤 유전자가 어떤 기능을 갖는가를 밝히는 데 쏠려 있었다. 작은 DNA를 다루는 것이 큰 염색체를 다루는 것보다 상대적으로 용이했기 때문에 DNA에 대한 연구가 보다 활발하게 이뤄졌던 것이다.
 

(그림 1) 인조염색체의 제작과정
 

복제원 동원체 말단소립이 필수적

그러나 20세기를 마무리 지으면서 그간에 축적한 DNA재조합기술을 이용, 단위유전자가 아닌 단위염색체를 조작하기 시작했다. 이로써 21세기에 꽃피우리라고 예상되는 유전공학 생명산업의 기반기술 개발에 보다 근원적으로 접근하기에 이르렀다.

고등생물의 유전자들을 무수히 함유하고 있는 염색체는 단위 유전자보다 엄청나게 크다. 또한 인체세포에는 46개의 염색체가 있고, 멘델이 실험한 완두의 세포에는 14개의 염색체가 존재한다. 또 요즘 발생학 연구에 많이 쓰이는 초파리의 세포는 8개의 염색체를 갖고 있다.

염색체의 성질중 흥미로운 것은 이들이 복제돼 두배가 된 후 다시 세포가 둘로 분열될 때에도 똑같이 나눠지는 것이다. 세포분열이 일어나는 유전현장에서 보여주는 염색체의 이같은 능력은 실로 경탄할만 하다.

염색체는 어떻게 자신이 두배로 복제되는 시기를 알아낼까. 또 분열시에는 어디로 가야 하는지를 어떻게 아는 것일까. 만약 이 과정이 제대로 이뤄지지 않으면 엄청난 결과가 발생한다. 뭔가 잘못돼 염색체가 한개 더 생기면 죽거나 병신이 된다. 그렇다면 염색체의 어디가 잘못돼 그렇게 되는 것일까.

이러한 물음들에 대한 답을 얻으려면 염색체가 정확히 복제되고 자세포(子細胞)에 정확히 균등분리되는 과정에서 어느 부위가 중요한 역할을 하는가를 먼저 알아야 한다. 최근 이러한 부위만으로 구성된 작은 인조염색체가 등장해 학계의 큰 주목을 받고 있다.

인조염색체란 염색체의 기본적 성질을 갖추면서 복제와 분리가 잘 이뤄지도록 한 것이다.

염색체의 복제와 분리과정에서 세가지 부위가 꼭 필요하다. 하나는 복제원인데 이곳에서 DNA의 합성이 시작된다. DNA는 두 개의 나선형 가닥이 꼬여있는 상태다. 이 두가닥이 풀리면서 각 가닥이 모형이 돼 그와 상보적(相補的)인 새 가닥이 합성된다. 이리하여 똑같은 두개의 이중나선 DNA가 생기게 된다. 즉 세포분열에 앞서서 염색체의 수가 두배로 증가하는 것은 이같은 DNA의 복제에 따른 것이다.

복제는 DNA의 특정한 염기열에서만 시작되기 때문에 이 복제원 염기열이 있는 DNA만이 복제가 가능하다. 그런데 일반적으로 염색체들은 매우 크고 복제과정이 느리기 때문에 한 염색체에 여러 개의 복제원 염기열이 존재한다. 말하자면 여러 곳에서 동시에 복제가 이뤄지게 된다.

두번째로 꼭 필요한 부위는 동원체(centromere)다. 이곳은 세포분열을 할 때 방추사(spinde fiber)들이 부착되는 DNA 부위다. 동원체는 대체로 염색체의 한 가운데 위치하지만 중심에서 약간 벗어나 있는 것도 허다하다. 마지막으로 필요한 부위가 염색체의 말단에 있는 말단소립(telomere, 말단을 뜻하는 그리스어 telos 에서 따옴)이다. 이것은 일정한 염기서열이 여러차례 반복해서 연결돼 있는 염기열의 하나인데 염색체의 끝 부분 유전자가 복제과정에서 누락 됨을 방지하기 위해 특수한 메커니즘으로 보존돼 있다.
 

(그림 2) 염색체의 분배
 

효모의 장점

세포분열 과정을 수없이 반복하면서도 염색체가 계속 보존되는 데 있어서 이 세가지 염기열들의 기여도는 절대적이다. 이에 관한 연구가 지금까지 가장 잘 돼 있는 생물체는 효모(yeast)다. 효모는 비록 단세포(하나의 세포로 구성된) 생물이지만 여러가지 측면에서 다세포 고등생물의 성질을 많이 보유하고 있다. 아울러 대장균과 같은 미생물을 다루듯이 쉽게 다룰 수 있기 때문에 연구대상으로 적합하다. 뿐만 아니라 자연발생적인 염색체 유전변이가 세포분열 10만번에 한번 일어날 정도로 염색체의 복제 분리가 매우 정교하게 이뤄지고 있다.

복제원 동원체 말단소립이 모두 짧고, 그 염기서열이 정확히 밝혀진 생물체는 지금까지 효모 뿐이다. 그 세포 하나에는 16개의 염색체가 있는데, 제일 작은 것은 30만 염기쌍 정도이고 2백만 염기쌍이 넘는 것도 있다(인체 염색체의 평균크기는 수억염기쌍으로 이보다 훨씬 크다). 특히 효모의 경우 복제원 동원체 말단소립 등 중요한 부위들의 크기가 수백 염기쌍 정도지만, 다른 고등생물의 경우에는 수백만 염기쌍 정도 될 것으로 예상된다.

효모의 복제원이 처음 밝혀진 것은 1979년 미국 스탠퍼드대학의 데이비스(Davis) 교수팀에 의해서였다. 그때 이 복제원 DNA 조각에 연결된 DNA가 세포내에서 효모염색체와는 별도로 자유롭게 복제되는 것이 관찰됐다.

이렇게 자유로이 복제되는 것을 플라스미드(plasmid)라고 하는데, 이것을 관찰해 보면 대개 원형(圓型)의 DNA가 끝없이 이어져 있다. 다시 말해 양끝이 있는 선형(線型)의 염색체와는 외관부터 다르다. 이 플라스미드는 세포 분열시에 자세포(子細胞)로 분리되지 않고 모세포(母細胞)에 남아있는 경우가 많다. 따라서 이 복제원은 복제는 얼마든지 가능하지만 염색체를 분리시키는 데에는 솜방임을 곧 알게 되었다.

그후 1980년에 미국 산타바바라 소재 캘리포니아주립대학의 클라크(Clarke)와 카본(Carbon)이 효모의 동원체를 찾아냈다. 동원체를 포함하고 있는 플라스미드가 세포분열시 거의 완벽하게 (99 %정도) 자세포에서 분리된 것이다. 그후 효모의 16개 전 염색체에서 동원체를 찾아내 그 염기서열을 비교한 결과, 서로 매우 유사하다는 사실을 알아냈다. 동원체는 방추사를 형성하는 미소관(microtubule)들이 달라붙는 부위다. 따라서 이것이 없는 염색체는 방추체에 부착될 수 없기 때문에 자세포로 분리되지 못하는 것으로 추정하고 있다.

효모의 말단소립은 그로부터 수년 후에 미국 버클리 소재 캘리포니아주립대학의 두 연구원(Szostak Blackburn) 그리고 시애틀 소재 프레드 후치슨 암연구센터의 두 연구원(Dani Zakian)에 의해 거의 동시에 발견 됐다. 염색체를 선형으로 유지하려면 말단소립이 반드시 있어야 한다.
 

(그림 4) 동원체와 미소관
 

대형 DNA를 다룰 수 있게 돼

이렇게 세 요소들을 모두 발견한 후 학자들은 마침내 복제원 및 동원체를 포함한 선형 DNA의 양끝에 말단소립을 연결해 아주 조그만(1만1천 염기쌍 크기) 인조염색체를 제조했다. 이는 가장 작은 효모염색체 크기의 4%도 안되는 것이었다. 그런데 예상과는 달리 이 소형 인조염색체는 복제는 잘 되지만 분리되는 정도가 동원체를 포함하고 있는 플라스미드보다도 훨씬 못했다. 그후 인조염색체의 크기를 5만염기쌍 이상으로 키우면 분리가 잘 이뤄짐을 알게 되었다.

이처럼 수천 염기쌍 정도의 기본 염기열에 5만 염기쌍 이상의 대형 DNA를 적절히 삽입시키면 원활하게 복제 분리되기 때문에 모든 유전형질들이 제대로 유전된다. 그동안 수천 염기쌍 크기의 DNA를 다루던 유전공학이 이로써 수십만 염기쌍 크기의 대형 DNA를 다룰 수 있게 된 것이다. 작은 유전자가 조밀하게 모여 있는 하등생물의 게놈과는 달리, 사람과 같은 고등생물의 유전자는 수십만 염기쌍 정도로 큰 것이 많고. 따라서 광범위하게 널려있는 DNA 조각들이 재조합을 통해 서로 연결되는 경우도 생긴다. 아울러 염색체 전체의 변이에 의해서 일어나는 유전현상도 관찰할 수 있게 된다. 이처럼 대형 DNA를 다를 수 있게 된 것은 참으로 큰 의미를 갖는다.

더욱이 현재 초대형 국제공동연구사업으로 추진되고 있는 인체게놈 연구에 있어서 수없이 많은 작은 DNA조각들의 순서를 결정하는 것보다는 적은 수의 큰 조각들의 순서를 결정, 염색체지도를 작성하는 것이 상대적으로 쉽기 때문에 모두들 효모의 인조염색체를 활용하고 있다.

최근 인체염색체의 말단소립이 밝혀짐으로써, 이제는 동원체를 찾는데 많은 학자들이 열을 올리고 있다. 대체로 효모의 염색체와 유사하다면, 이 발견만 해내면 인체의 인조염색체를 만들 수 있기 때문이다. 이 인조염색체가 본래의 인체염색체와 더불어 사람 세포 내에서 복제되고 자세포에 유전된다면, 원하는 DNA를 인체염색체에 삽입시키지 않고도 인조염색체에 실어서 발현시킬 수 있고 나아가 유전시킬 수도 있게 될 것이다.

사실 염색체에 어떤 물질을 삽입하는 일은 극히 어렵다. 특정위치에 넣기도 어려울 뿐 더러 어디에 넣어야 할지도 전혀 모르는 상태다. 따라서 인체 인조염색체의 개발은 유전자치료의 큰 장애요인을 제거하는 셈이다.

물론 생명현상은 현재 이해되고 있는 것 보다 훨씬 더 복잡한 것이다. 염색체의 기능도 그 점에 있어서는 마찬가지다. 따라서 하나의 인조염색체가 세포에 첨가됨으로써 생명현상에 어떤 차질이 빚어질 수도 있다. 그러나 이를 극복할 수 있는 방법도 찾을 수 있을 것이다.

지난 20년동안 주로 유전자를 기본단위로 삼아 DNA를 조작해 왔다. 이제는 대장균의 게놈을 조작하는 일은 비교적 수월하게 하고 있다. 대장균의 게놈은 4백 70만 염기쌍 크기의 염색체 DNA가 한개의 원형을 이루고 있어서, 동원체나 말단소립 없이 복제원만으로도 복제와 분리가 가능했다. 따라서 염색체에 따로 특정한 유전자를 주입하지 않아도 원하는 유전형질을 전할 수 있었고 또 어느 유전자가 게놈의 어디에 있는지가 비교적 잘 알려져 있어서 특정위치에의 삽입도 용이했다. 그러나 이제는 인조염색체의 개발로 인해 고등생물에서도 염색체 차원의 조작이 가능해진 것이다. 이로써 대형 DNA의 유전자조작이 보편화되고, 고등생물의 형질 변화를 동반하는 유전을 인위적으로 유도하는 일이 가능해질 전망이다.
 

(그림 5) 동물세포의 분열과정^이 분열과정을 본따 인조염색체를 만들어내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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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92년 04월 과학동아 정보

  • 강창원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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