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폐수에서 전기 얻는 일석이조의 미생물연료전지

화석에너지 고갈과 지구온난화로 친환경 대체에너지에 대한 관심이 높아지면서 연료전지가 주목받고 있다. 연료전지란 연료를 산화시킬 때 나오는 화학에너지를 전기에너지로 바꿔주는 전지다. 연료전지가 일반 화학전지와 다른 점은 외부에서 계속 연료를 공급받아 이를 산화시켜 전기를 생산한다는 점이다.

연료전지는 어떤 연료를 쓰느냐와 함께 산화반응을 촉진하는 촉매로 뭘 쓰느냐에 따라 여러 종류가 있다. 현재 개발되고 있는 연료전지 대부분은 수소나 메탄올을 연료로 하고 백금 같은 귀금속을 촉매로 해 작동한다. 그런데 10여 년 전부터 새로운 유형의 연료전지가 주목받고 있다. 바로 살아 있는 미생물을 촉매로 쓰는 미생물연료전지(Microbial Fuel Cell, MFC)가 그 주인공이다.

 



 

국내 과학자들 연구가 물꼬 터

 

미생물을 이용해 전기를 만드는 첫 시도는 1912년 영국 더럼대 마이클 포터 교수의 대장균 실험으로 거슬러 올라간다. 그러나 전류 생산이 매우 미미한 수치였기 때문에 주목을 받지는 못했다.

1960년대 구소련과 유인우주선 개발을 경쟁하던 미국은 우주선에서 발생하는 유기성 폐기물을 처리하기 위한 대안으로 미생물연료전지에 주목했다. 우주인이 우주선에서 생활하면서 나오는 폐기물을 우주 외부로 배출하거나 지구로 다시 가져오기 어렵기 때문에 우주선 내부에서 이 폐기물을 완전히 분해하기 위한 방법으로 미생물연료전지를 연구했다.

초기 미생물연료전지는 효율이 매우 낮았는데, 이는 세포 안에서 연료를 산화시켜 얻은 전자를 효율적으로 전극에 전달하지 못했기 때문이다. 1970~1980년대 과학자들은 미생물과 전극(음극) 사이에 전자전달을 매개하는 전달매개체(mediator)를 이용하면 미생물의 대사과정에서 얻은 전자를 효율적으로 음극부 전극으로 이동시킬 수 있음을 알았다. 이 전자전달 반응이 미생물연료전지의 전기생산능력을 향상시키는 데 매우 중요한 요인이었다. 그래서 이 시기에는 미생물연료전지에서 사용할 수 있는 미생물의 종류와 인공전자전달매개체를 선별하기 위한 연구가 주로 이뤄졌다.

포도당처럼 단위 무게당 에너지 생산성이 상대적으로 큰 탄수화물을 연료로 쓰기 위해 대장균, 프로테우스균, 슈도모나스균 등을 이용했다. 참고로 미생물연료전지 음극부는 산소가 없는 조건이어야 하는데, 산소가 있을 경우 발생한 전자를 다 잡아먹기 때문이다. 따라서 미생물연료전지에는 산소가 없는 환경에서 살 수 있는 혐기성미생물이 쓰인다. 전달매개체로는 티오닌, 메틸 비올로겐 같은 분자가 사용됐다. 이런 분자는 미생물의 세포벽과 세포 외막을 통과해 세포 내부의 전자 전달 시스템에서 전자를 받은 뒤 세포 밖으로 방출돼 전극에 전달할 수 있다는 특징이 있다.

하지만 전달매개체는 세포 내부에서 환원된 뒤 100% 세포 밖으로 방출되지 않고 일부가 세포 내에 축적되기 때문에 어느 순간 전달매개체가 부족해진다. 따라서 주기적으로 전달매개체를 공급해야 했다. 게다가 세포 내부에 축적되는 전달매개체 분자는 대부분 벤젠고리를 가지고 있는 유기화합물로 일정 농도 이상에서는 미생물 세포에 독성을 보이기 때문에 사실상 수 주 동안만 작동할 수 있었다. 미생물연료전지 실용화 연구의 큰 장벽인 셈이다.

그런데 우리나라 과학자들이 전달매개체를 이용한 미생물연료전지의 근본적 한계를 극복하는 데 성공했다. 1990년대 중반 한국과학기술연구원(KIST) 김병홍 박사팀은 철이나 망간 같은 금속의 산화물을 환원시키면서 생장할 수 있는 금속염환원세균을 미생물연료전지의 바이오촉매로 사용하고자 하는 연구를 시도했다. 금속염환원세균은 세포 표면에 분포하는 산화환원형 전자전달 효소를 이용해 금속산화물을 환원시킨다. 따라서 이런 미생물을 이용하면 굳이 외부의 전달매개체를 사용하지 않더라도(무매개체) 미생물연료전지를 작동할 수 있을 것으로 판단했다.

김 박사팀은 당시 금속염환원세균의 모델 미생물이던 쉬와넬라균(Shewanella)을 이용해 무매개체형 미생물연료전지를 구성했다. 연료(미생물의 먹이)로는 젖산을 공급했는데, 젖산 소모량과 전기생산량에 상관관계가 있음을 확인했다. 이 연구는 무매개체형 미생물연료전지를 구현한 세계 최초의 사례로 기록됐다.

그 뒤에도 김 박사팀은 두 가지 방향에서 미생물연료전지 연구를 주도했다. 첫째로는 폐수를 처리하는 데 미생물연료전지를 쓸 수 있는지 조사했다. 보통 폐수에는 다양한 형태의 유기물이 들어 있는데, 폐수의 오염물질을 생물학적 방법으로 처리하는 과정이 곧 유기물을 완전히 산화하는 과정이기 때문이다. 만약 미생물연료전지 형태의 생물반응기를 폐수처리용 시스템에 적용하는 데 성공한다면 폐수처리와 함께 전기에너지도 얻을 수 있다. 김 박사팀뿐 아니라 현재 전 세계 여러 연구팀이 이 분야의 연구를 진행하고 있는 이유다.

두 번째는 미생물연료전지에서 발생하는 전기신호가 폐수에 존재하는 유기물농도와 비례할 것이라는 점에 착안해 ‘생물학적 산소요구량(BOD)’ 측정용 바이오센서를 개발하는 연구다. 필자도 BOD센서와 관련된 연구 분야에서 여러 논문을 발표한 바 있는데, 미생물연료전지형 BOD센서는 별도의 유지관리 없이 수년 이상 작동할 수 있다. 반면 기존에 BOD를 측정하기 위한 표준 방법(5일 BOD)은 한 시료를 측정하는 데 5일이 걸리고 누가 측정하느냐에 따라 같은 시료에서도 30% 이상의 오차가 난다. 현재 미생물연료전지형 BOD센서는 국내에서 실용화에 성공해 제품으로 판매되고 있다.

현재 미생물연료전지 연구는 폐수나 폐기물을 처리하면서 동시에 전기를 생산하는 설비의 실용화를 목적으로 진행되고 있다. 폐수처리 시설이 소모하는 전력의 일부를 미생물연료전지로 공급함으로써 경제성을 확보하고자 하는 연구가 시도되고 있다.

최근 호주에서는 중형 규모의 미생물연료전지를 구축해 맥주제조공정에서 발생하는 폐수를 처리하고 전기를 얻는 가능성을 시험했다. 여기서 생성된 최대 전류밀도는 전극면적대비 0.5W/m2, 부피대비 8W/m3로 기대치에 크게 못 미치는 수준이었지만 약 6개월간 진행된 시험가동에서 실험실 규모의 연구에서 벗어난 실제 규모의 시스템을 가동해 실용화를 향한 첫 걸음을 내딛었다는 데 의의가 크다.2009년에는 미국 캘리포니아 나파밸리의 포도주 양조장에서 포도주 제조에 사용하지 못하는 하급 포도를 연료로 이용한 미생물연료전지를 시험 가동했다. 이 연구는 미국 펜실베이니아주립대 브루스 로건 교수팀이 주도하고 있는데, 향후 그 연구결과에 대한 관심이 매우 크다.
 

 


장기간 가동하며 기상관측센서에 전력 공급할 수도



미생물연료전지를 이용한 다른 응용분야로 오염저니(底泥, 퇴적물)에서 전기를 획득하고자하는 연구가 진행되고 있다. 이를 퇴적물형 미생물연료전지라고 부른다. 유기물에 오염된 수계(하천이나 저수지)에 분포하는 퇴적물에 미생물연료전지의 음극부 전극을 장착하고 양극부 전극을 최대한 공기층에 노출하도록 구성한다. 퇴적물에 들어 있는 미생물이 유기물을 분해할 때 발생하는 전자가 전선을 따라 음극부로 이동하면서 전지가 작동한다.

퇴적물형 미생물연료전지는 퇴적물에 포함된 유기물 농도가 낮고 전극 주변으로 유기물이 확산되는 과정이 상대적으로 느리기 때문에 폐수나 고농도의 특정한 유기물을 이용해 작동하는 미생물연료전지보다 상대적으로 전류밀도와 전력밀도가 낮다. 하지만 한 번 설치하면 별도의 유기물을 공급하지 않아도 되고 계속 장시간 가동할 수 있다. 미군 해군성연구소에서는 해양 및 기상관측에 사용되는 측정 장비와 센서의 전력 공급원으로 사용하기 위한 연구를 진행했다.

퇴적물형 미생물연료전지의 경우 음극부 전극과 양극부 전극만으로 이뤄져 있기 때문에, 별도의 통으로 된 반응기와 양이온 교환막으로 구성된 폐수처리용 미생물연료전지에 비해 구조가 단순하다. 또한 유기 퇴적층이 존재하는 수생태계 어느 곳에나 설치할 수 있는 장점이 있다.

최근 필자의 연구팀은 유기물이 극심하게 오염된 환경에서 사용할 수 있는 부유형(floating) 미생물연료전지를 개발한 바 있다. 이 시스템은 전기 생산 장치보다는 유기물이 오염된 수계에서의 정화장치로 사용하기 위해 개발했으며 최근에는 부유형과 퇴적물형을 조합한 융합형 시스템도 개발했다.

미생물연료전지가 폐수처리와 동시에 전기에너지를 발생시킨다는 측면에서 매우 매력적인 연구임에는 틀림없다. 물론 미생물연료전지에서 획득할 수 있는 에너지의 크기는 현재 대체에너지의 개념과는 거리가 있다. 그러므로 현재의 에너지 위기를 직접 해결하기 위한 방법이 되기는 어려울 것이다. 하지만 현재의 에너지 위기 해결과 대체에너지 개발에 있어 포괄적인 개념을 도입할 필요가 있다. 즉 대체에너지 개발이라는 직접적인 방법이 반드시 필요하지만, 사용하고 있는 에너지를 보존하고 재사용하기 위한 방법도 필요하다. 이 경우 미생물연료전지는 폐수나 폐기물처럼 처리과정에서 에너지 투입이 필요한 대상으로부터 오히려 에너지를 회수할 수 있기 때문에 에너지 보존 방식의 하나로 발전돼야 할 것이다.

2010년 05월 과학동아 정보

  • 장인섭 광주과학기술원 환경공학과 교수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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