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7백20편의 나무조각을 짜 맞추는 일은 세상의 어떤 퍼즐게임 보다 어렵다.

"신안해저보물선은 영화 '벤허'에 나오는 로마의 전함이나 바이킹들의 배와 같은 유형의 첨저선(尖底船)입니다. 고대의 선박중에서는 가장 발달된 형태지요. 이 배가 인양되기 전까지 서양학자들은 동양에 첨저선이 없다고 줄곧 주장했으므로 신안선의 출현은 선박사를 완전히 다시 쓰게 한 셈이지요."

현재 신안선 복원작업을 진두지휘하고 있는 문화재 관리국 목포보존처리소 이창근소장의 말이다.
여기서 간단히 고대의 선박사를 거슬러 올라가보자. 아마도 초기의 원시인들은 통나무를 타고 강을 건넜을 것이다. 그후 머리가 좀 깨면서 통나무의 가운데를 팠는데 이것이 통나무배다.

해충의 생태까지 파악하고

한동안 통나무배를 타고 다니던 원시인들은 그것을 조금 개량한 반구조선을 출현시켰다. 통나무를 반으로 쪼개 그중 하나를 배의 밑면으로 삼고, 나머지 하나를 다시 둘로 쪼갠 뒤 밑면의 양옆에 하나씩 붙인 것이다. 이같은 반구조선의 대표적인 예는 경주 안압지의 목선이다.

그러나 반구조선은 폭과 길이가 제한되고, 여럿이 탈수도, 멀리 갈 수도 없었다. 이런 한계를 극복하기 위해 제작한 것이 초기의 구조선인 평저선(平底船)인데 이름그대로 배의 바닥이 편평했다. 이 배는 오랫동안 한선(韓船)의 주류를 이뤘고, 이순신의 거북선도 평저선의 일종이라고 볼 수 있으나 배의 크기에 한계가 있다는 점이 최대약점이었다. 따라서 보급품을 많이 싣고 다녀야 하는 대양의 항해에는 부적합했다.

평저선에서 한걸음 더 나아간 것이 첨저선인데 용골(龍骨)과 격벽(隔壁)이 이 배의 특징이다.

다시 얘기를 신안보물선으로 돌려 보자. 현존하는 동양유일의 첨저선인 이 배는 세토막의 용골로 연결돼 총 연장이 30~40m에 이른다. 선체의 바닥에 놓인 용골은 인간의 척추에 해당하는데 배의 강도를 유지하고, 표류를 막아주는 역할을 한다. 한 토막(약 7~10m)의 무게가 3~5t에 달하는 용골 셋이 매우 특수하고 단단한 방식으로 접합돼 있다(접합 부위에 나무못이 교묘하게 박혀있다). 배의 옆면을 가로지르는 격벽의 1차기능은 배가 오그라들지 않고 제 모양을 유지하게 하는 것이다. 아울러 배에 작은 구멍이 뚫렸을 때 물이 과도하게 새는 것을 차단하는 역할도 한다. 신안선의 경우 흔히 갈비뼈에 비유되는 격벽(두께 11~12㎝)을 7, 8개 보유했던 것으로 여겨진다.

신안선의 옆면을 이루는 외판(外板)은 클링커식 이음(밑판 위에 윗판을 겹쳐 붙이는 방식)을 한 복판(複板) 구조를 보여주고 있다. 인체의 피부에 해당하는 외판에 부여된 첫번째 임무는 물의 침투를 막는 일이다.

"신안선을 제작한 조선기술자들은 해충의 생태까지도 파악하고 있었던 것 같아요. 배좀벌레(shipworm)에 강한 삼나무를 포판재(包板材)로 사용했을 정도니까요. 그들은 외판의 구조재 위에 두께 1~1.5㎝의 포판재를 붙여 구조재와 해수가 직접 접촉하는 것을 막았습니다. 항해가 끝나면 포판재만 교체하거나 그 위에 다시 새 포판재를 덧붙이는 방식을 채택했지요."

10년 이상 신안선과 동거동락해온 김용한연구원(목포보존처리소)은 건조당시의 기술에 놀랄 뿐이라고 얘기한다.
 

완도선의 20분의 1축소판. 이 배는 고려시대에 만든 평저선이다.


수심 20m의 뻘발에서 인양해

1970년대에 이미 신안보물선의 존재가 알려지고 도자기 동전 등 수많은 유물들이 건져졌지만 배를 물밖으로 끄집어내는 작업은 1981년에 시작해 1984년에 완료됐다.

해군에서 차출된 전문잠수부들이 이 인양작업에 투입됐는데 시야거리가 제로인 칠흙같은 평균수심 20m의 뻘밭에서 15°정도 기울어 있는 배를 건져내는 일이 결코 용이할 수 없었다. 동서남북이 전혀 구별되지 않는 것은 물론이고 잠시만 물속에 머물러 있으면 시속 2.5노트의 유속때문에 정신이 혼미해졌다고 한다.

배를 한꺼번에 들어 올리느냐(원형인양), 수중에서 절단해 토막토막 인양하느냐(해체인양)를 놓고 한동안 설왕설래했으나 최종적으로 해체 인양방식이 채택됐다. 따라서 해체시의 문제점인 원형유지의 어려움을 극복하기 위해 사전에 수중실측 사진촬영분류작업 등을 실시했다.

잠수부가 수중에서 선체를 절단한 뒤 각 조각을 밖으로 꺼내오면 곧바로 일련번호를 매겼다. 예컨대 '830628 Ⅳ 우 외판 11'식으로. 여기서 830628은 인양한 연월일을 가리키며, Ⅳ는 구역명, 우는 우현(右舷), 11은 외판의 11번째 조각임을 나타낸다.

나중에 이 조각들을 짜 맞춰본 복원관계자들은 이 번호매김이 8,90%의 정확도를 가질 만큼 거의 완벽했다고 놀라워 한다. 이는 인양에 참여한 잠수부들의 사명감이 대단했음을 보여준다.

5t짜리 크레인이 용골을 들어 올리면서 4년여에 걸친 인양작업은 마감됐다. 이로써 신안선은 14세기(1310~1350년 사이에 침몰된 것으로 추정)에 신안 앞바다에 가라앉은 후 7세기 만에 다시 빛을 보게 되었다. 이 배의 침몰원인에 대해서는 풍랑설과 좌초설이 팽팽히 맞서 있는데, 어쨌든 신안 앞바다의 기후가 가혹하고, 뻘 속에 깊게 박혀 밀폐(부식의 원인이 되는 산소공급이 거의 차단된 상태)돼 있었기 때문에 그 화려한 부활이 가능했을 것이다.

사실 중국과 일본의 앞바다에서 고대의 목선들이 침몰했을 가능성은 얼마든지 있다. 하지만 난파 후 오래지 않아 이들은 완전히 부식돼 사라져버렸을 것이다.

물론 신안선의 경우에도 세월이 흐르는 동안 많은 부분이 유실됐다. 실제로 신안 앞바다에서 인양한 배조각들은 전체의 40% 남짓에 불과하다. 전문용어로 말하면 회수율이 40% 인데, 이 정도면 원형을 복원하는데 있어 큰 어려움은 없다고 한다. 비록 선실과 갑판은 없어졌지만 핵심부분인 용골 격벽 등이 거의 완벽하게 회수돼 있는 상태다.

신안 앞바다에서 건진 판재는 모두 7백20편(片)인데, 그중에서 덧씌우기용인 포판재 2백23편을 제외한 4백79편이 구조재다. 물론 용골이나 격벽의 판재는 이 구조재에 속한다. 평균두께가 12㎝인 구조재는 소나무의 일종인 마미송으로 제작됐다. 그런데 이 마미송은 국내에서 발견되지 않는 수종이고, 주로 중국 남방에서 자라기 때문에 신안선이 중국의 조선기술자에 의해 만들어졌다는 설이 유력하다.

이처럼 7백20편이나 되는 나무조각을 짜 맞춰 배의 원형을 복원하는 일이 어떤 퍼즐게임보다 훨씬 어렵고 복잡함은 두말할 나위없다. 더구나 구체적인 조립작업에 앞서서 수행하는 보존처리작업은 한결 더 많은 시간이 요구되고 기술적으로도 상당히 어려운 일이다.
 

신안 앞바다에서 찾아낸 각종 유물들. 신안선은 하주(荷主)인 일본의 동복사(東福寺)로 가려다 침몰한 것으로 알려져 있다


수도물 수준으로 염분을 뺀다

보존처리의 첫 작업은 탈염처리부터 시작된다. 즉 목재에 묻은 소금기를 강제로 빼내는 것이다. 만약 이같은 처리를 생략해 버린다면 목재가 오랫동안 머금고 있던 소금기가 계속해서 표출돼 각종 부식을 일으키기 십상이다. 아울러 목재의 피로도가 커지기 때문에 원형복원 후 몇년 못가 그 대가를 톡톡히 치르게 될 것이다.

탈염과정은 기간이 문제가 될 뿐 기술적으로는 지극히 간단하다. 인양된 목재를 수조에 넣은 뒤 주기적으로 깨끗한 물로 갈아주면 된다. 다만 청수에 포함된 미지의 미생물이 목재에 새로운 타격을 가할 수도 있으므로 약간의 방부제를 물에 타 줘야 한다.

신안선의 판재들은 지난 84년부터 탈염처리과정을 거치고 있다. 아직도 이 과정은 지속되고 있는데, 관계자들은 이제 거의 정상수준으로 목재의 염도를 낮췄다고 말한다. 바닷물의 염도는 1만8천ppm, 수도물은 1백ppm 미만, 증류수는 5ppm 미만인데 수조의 염도가 수도물 수준까지 내려가면 탈염이 완성됐다고 볼 수 있다.

탈염이 끝나면 곧바로 보존처리작업에 들어간다. 이 작업의 요체는 소금기가 빠져 작은 스트레스만 받아도 뚝뚝 부러져 버리는 판재를 강인하게 바꿔주는 것이다. 그래서 흔히 경화처리(硬化處理)라고도 한다. 또 이 과정을 통해 매몰과정에서 큰 압력을 받아 휜 판재들이 원래대로 펴진다.

본격적인 경화처리를 하기 전에 판재의 현상태를 알아내는 일이 선행돼야 한다. 먼저 가는 생장추로 판재의 구멍을 뚫어 표본을 채취한 뒤 함수율과 부식정도를 점검해야 한다는 말이다. 그 결과 신안선 판재의 위에서 3㎝까지는 1백68%의 함수율을 보여 정상적인 마미송의 최대함수율(2백%)을 벗어나지 않았음이 밝혀졌다.

그러나 전체적으로 함수율이 2백50~6백%에 달해 판재의 부식을 진행시키고 있었다. 결국 판재에서 물을 빼내야 하는데, 단순히 건조만 시킨다고 해서 만사가 해결되는 것은 아니다. 물 대신 적당한 물질을 채워줘야 하는 것이다.

이렇게 물을 대체할 물질은 몇가지 요구사항을 충족시켜야 한다. 우선 판재의 강도를 유지하는데 도움을 주고, 판재에 모종의 화학적인 변화를 일으키지 말아야 한다. 또 사람에게 독성이 있어서도 안된다. 그러나 이보다 더 중요한 자격요건은 가역적(可逆的)으로 변화하는 물질이어야 한다는 점. 쉽게 말해 언제라도 원상으로 되돌릴 수 있는 물질이어야 하는데, 그 이유는 만일 물의 대체물질이 불가역적인 것이라면 나중에 보다 우수한 물질이 개발된다 하더라도 무용지물이 되고 말기 때문이다.

과거 일제시대에 석굴암의 외벽 돔부위에 콘크리트 처리를 함으로써 결로(結露)현상이 일어나는 것으로 알려져 있다. 여기서 문제가 되는 것은 콘크리트가 벽의 손상없이 떼내기 어려운(불가역적인) 물질이라는 점이다. 따라서 석굴암의 외벽에 이슬이 맺히면 안타까워 할 뿐 속수무책으로 그저 바라만 보고 있을 뿐이다.

석굴암의 예에서 보듯이 문화재의 보존처리를 할 때 사용하는 물질은 모름지기 가역적이어야 하는데, 현재까지 PEG라는 화학물질이 가장 이상적인 수분대체물질로 인정되고 있다. PEG는 물에 담가 놓으면 깨끗이 녹아버리기 때문에 신안선 판재의 경화물질로 선정됐다. 반면 에폭시수지의 경우, 경화능력은 뛰어나지만 한번 굳으면 다시 녹일 수 없어 선택되지 않았다.

가역적인 수분대체물질 집어 넣어

경화기술에 관한한 일본과 독일의 수준이 가장 앞서 있다. 그런데 두 나라의 PEG처리방법이 크게 다르다. 일본은 고분자량을 가진 PEG(고체상태)를 녹여 고농도로 처리하는 방식을 택하고 있고, 독일은 저분자량 PEG(액체상태)와 고분자량 PEG를 모두 활용하고 농도도 다단계로 나눠 처리하는 방식을 적용하고 있다.

목포보존처리소에서는 현재 독일식을 받아들여 경화처리를 하고 있는데, 94년까지는 용골의 경화처리를 마칠 예정이다. PEG용액이 담긴 수조에 판재를 집어넣은 뒤 장기간 기다려야 하는 이 경화작업의 성공여부는 PEG의 농도관리와 저분자PEG(PEG400)에서 고분자 PEG(PEG4000)으로 옮기는 시점에 달려 있다.

언제 경화작업이 완료될는지는 아직 미지수이지만 경화가 끝나는대로 배를 건조시킬 예정이다. 조립작업도 족히 수년은 걸릴 것이다. 이 조립광경은 공개리에 진행될 가능성도 있다. 일반인이 그 과정을 옆에서 지켜보는 것만으로도 교육적 효과가 크기 때문이다.
목포보존처리소는 원래의 모양과 가능한한 가깝게 조립하기 위해 축소모형배를 제작해 놓았다. 각종 문헌을 뒤지고 관련학자들의 자문을 구해 1/5 축소모형과 1/10 축소모형을 만든 것이다. 이 두척의 모형배는 모양이 조금 다르다. 특히 사라져버린 선실과 갑판의 형태는 제각각이다.

물론 이 모형에 이의를 제기하는 학자도 있다. 원로 조선공학자인 김재근박사는 "배의 길이에 비해 폭이 너무 넓고, 폭에 비해 깊이가 너무 낮게 제작됐다"고 지적한다. 이렇게 여러 전문가의 의견을 참작하고, 컴퓨터 시뮬레이션(simulation) 등을 적극 활용해야 원래의 선체에 보다 접근하리라는 것은 너무도 명확하다.

아무튼 해체인양을 한 배를 조립할 때 매우 중요한 모델이 되는 이 두척의 축소신안선을 제작하는 데에도 네사람이 4년이나 달라붙어야 했다.
"신안선이 건조되면 우리나라는 동양에서 유일하게 반구조선과 두 구조선(평저선과 첨저선)을 모두 복원한 국가가 됩니다. 즉 통일신라시대에 제작한 경주 안압지의 목선은 반구조선, 고려때(11세기) 만들어진 완도선은 평저선, 신안선은 첨저선을 대표하게 됩니다."

이창근소장은 이어서 완도선도 현재 목포보존처리소에서 복원작업을 거치고 있다고 밝혔다. 총 81편의 판재가 남아있는 완도선의 1/20축소판도 제작돼 있는데, 신안선과는 달리 포판재가 없다. 그 대신 겨울철에 선체의 표면을 불로 그을려 탄화처리함으로써 해충을 죽인 흔적이 나타난다.

"한국사람들은 너무 급한 것 같아요. 빨리 작업을 끝내라는 요구를 사방에서 받습니다. 그러나 너무 서두르다 보면 대사를 그르칠 수 있는 것이 문화재복원작업이라는 사실을 인식해야 합니다. 17세기경에 침몰한 스웨덴의 바사(Wasa)호의 경우, 진수하다가 수몰된 배이지만 복원기간이 1961년부터 1989년까지 28년이나 걸렸습니다. 거의 원형을 건져 올렸고, 인양지역 주변의 물도 맑고, 참나무로 만든 튼튼한 배인데도 말입니다."

이소장은 이렇게 한국인의 '빨리 빨리' 신드롬을 꼬집는다.
서양의 배는 주로 활엽수인 참나무로 제작됐고 동양 선박은 대개 침엽수인 소나무로 건조됐다. 구조가 복잡한 활엽수는 강도가 높아 다루기 쉬운 반면 침엽수는 물러서 취급하기가 까다롭기 때문에 그만큼 복원작업도 어렵고 긴 시간을 요구하는 것이다.
 

5분의 1로 축소한 신안선 모형, 길이가 6m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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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92년 03월 과학동아 정보

  • 사진

    윤기은 기자
  • 박태균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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