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교통사고 원인분석 이것만은 알아두자

운전자 필수 과학 상식

도로에서 양복을 차려 입은 사람들이 멱살잡이를 하고 고함을 치는 장면을 흔히 볼 수 있다. 만약 교통사고의 원인을 과학적으로 밝혀낼 수만 있다면 그런 볼썽 사나운 꼴은 안봐도 될텐데…

요즘 도로에서는 자동차들이 충돌 또는 추돌하는 장면을 흔히 볼 수 있다. 그곳을 지나다 보면 거의 예외없이 멱살잡이와 고함이 오가곤 한다. 사실 불과 몇해 전까지만 해도 교통사고가 나면 목소리 큰 사람이 이긴다는 말이 공공연하게 통용되고 있었다.

너나없이 자신의 과오는 인정하지 않고 상대방의 탓으로만 돌리는 교통사고 현장에 나가보면 누구의 과실이 더 큰가를 파악하기 어려운 경우가 허다하다. 결국 이때는 범죄수사를 하듯이 좀더 과학적으로 접근해야 그 원인을 소상히 밝혀낼 수 있다. 자, 이제부터 교통사고가 났을 때 보다 합리적이고 과학적인 증거를 통해 원인분석을 하는 방법을 알아보자.

일반적으로 사람들은 교통사고 현장을 조사하고 그 결과를 분석하면, 사고발생의 원인을 쉽게 밝혀낼 수 있을 것이라고 생각한다. 그런데 실제로는 자료를 갖고 있어도 교통사고가 왜 일어났는가를 제대로 설명하지 못하는 경우가 예상외로 많다. 이처럼 교통사고의 원인을 명쾌하게 밝혀내지 못하는 까닭은 교통사고 자체가 지니고 있는 고유한 특성 때문이다.
 

끔찍한 교통사고 현장. 승용차가 트럭과 버스 사이에 끼어 박살이 나 있다.


똑같은 사고란 없다
 

(표) 도로상에 나타나는 여섯가지 사고의 흔적
 

사람들은 흔히 "같은 종류의 교통사고가 매일 되풀이되고 있다"고 얘기한다. 물론 어느 면에서는 이 말이 맞는다고도 할 수 있다. 그러나 실제 교통사고를 한건한건 비교해 보면 같은 종류의 교통사고란 결코 발생할 수 없음을 금세 알게 된다.

방금 눈 앞에서 일어난 교통사고가 이전에 발생했던 교통사고의 복사판이 될 수는 절대 없다. 나중에 그와 똑같은 사고가 다시 일어나지도 않는다. 따라서 교통사고를 조사할때는 이 유일무이한 상황이 벌어진 현장에서 관련이 있음직한 모든 자료를 조사하고 수집하는 일이 가장 중요하다. 사실 현장에서 분석에 필요한 자료를 충분히 수집하지 못하면 사고를 제대로 분석하기 어려워지고 사법적인 판단을 내릴 때에도 아주 엉뚱한 결과가 나올 수 있다.

어떤 교통사고이든 간에 도로교통체제의 3대요소인 도로 자동차(오토바이 자전거 포함) 교통인(운전자 보행자 승객 등)은 '약방의 감초'다.

이 3대요소 가운데에서 주체는 물론 사람이다. 그러므로 사고관련자들로부터 자료를 수집하는 일이 무엇보다 중요하다. 대개 이 일은 교통경찰을 비롯한 몇몇 전문조사가에 의해 이뤄진다. 그러나 사람이 사람을 상대로 하는 일인 만큼 조사결과(수집자료)의 신뢰성 여부에 대한 이의가 제기되는 경우가 많은데 이에 반해 도로(사고장소)나 차량파손상태를 조사하는 것은 훨씬 객관적이고 과학적이다.

방금 사고가 일어난 도로를 한번 점검해보자. 과연 여기에서 어떤 실마리를 찾을 수 있을까. 교통사고 조사과정에서 관련자들이 가장 많은 관심을 보이는 것은 도로상에 나타난 사고의 흔적이다. 왜냐하면 이를 통해 차량의 충돌전 속도를(스키드마크 또는 운동량보존의 법칙을 활용해서) 추정할 수 있고, 관련차량의 중앙선 침범이나 횡단보도 앞 일시정지 위반 등 법규위반 사실을 밝혀낼 수 있기 때문이다. 또한 사고를 재현(reconstruction)하는데 있어서도 도로에 남은 흔적은 구심적인 역할을 한다.

특히 야간 사망사고인 경우에는 도로의 사고흔적이 절대적으로 중요하다. 그 사고를 체험했거나 목격한 사람이 한명도 없으면 오직 도로상에 나타난 흔적만이 사고발생과정을 추론하게 해준다.

도로에서 교통사고가 발생하면 일반적으로 (표)에 제시한 여섯가지 흔적중 적어도 한가지 이상, 대체로 서너가지의 결과를 남기게 된다.

도로를 다 살펴 본 뒤에는 차량의 파손상태를 점검해야 한다. 일반적으로 사고차량 조사는 파손부위 사진을 몇장 촬영함으로써 끝내는 경우가 대부분이다. 하지만 중대사고이거나 도로상의 흔적만으로 사고재현이 어려울 때에는 차량파손상태에 대해 정밀하게 조사분석한다. 특히 요즘에는 제동정지거리를 짧게 하기 위해 급제동할 때 바퀴가 완전히 잠기지 않게 하는 ABS(antilock brake system)제동장치를 장착한 차량이 늘어나고 있고 개인용 컴퓨터가 널리 보급됨에 따라 차량파손상태를 측정함으로써 사고당시의 속도를 컴퓨터로 추정하는 방법이 미국 일본 등 선진국에서 널리 활용되고 있다.

차량파손상태를 조사하는데 있어서 주의깊게 살펴야 할 항목은 다음과 같다. 먼저 파손형태를 관찰하고 최대충격방향, 파손면적 및 깊이, 타이어상태, 등화(燈火)필라멘트상태, 출입문의 잠김정도, 제동장치 이상유무 등을 점검한다.

직접접촉파손이란 사고차량이 다른 대상(다른 차량 보행자 노변구조물 탑승객 등)과 직접 부딪친 부위에 생긴 파손을 말한다. 이때는 눌러 붙은 페인트, 타이어고무, 포장재료, 나무껍질, 보행자의 옷조각 또는 신체조직(핏자국), 시멘트나 콘크리트 가루 등이 차량에 남게 된다.

일반적으로 차량끼리 부딪쳤을 때의 직접접촉파손 부위는 선명하게 긁힌 자국과 아주 촘촘하게 주름잡힌 형태로 나타난다. 요즈음 운행되는 차량의 전면유리는 거의가 접합유리이기 때문에 충돌시 또는 급제동시 보행자나 차량내부의 탑승자 또는 기타 단단한 물체 등과 직접 강하게 부딪쳤을 때에는 거미줄 형태(spider web)의 금이 나타나게 된다. 따라서 유리에 이런 금이 나 있으면 직접파손 상태임을 알 수 있다.

한편 차량이 어떤 물체와 충돌했는데 직접 부딪친 부위가 아닌 곳에 엉뚱하게도 파손이 생기는 경우도 종종 있다. 즉 충돌의 여파로 주변부가 구부러지거나 휠 수 있다. 특히 측면충돌인 경우에는 반대부위에 파손이 생기기도 하는데 이런 경우들을 가리켜 간접파손이라 한다. 자동차에 접합유리를 끼운 경우, 충격으로 인해 차체가 비틀리면 체크무늬 형태로 금이 간다. 따라서 이런 무늬가 나타나 있으면 간접파손 상태임을 알 수 있다.

아무튼 차량이 받은 손상이 직접접촉파손(contact damage)이냐, 간접접촉파손(induced damage)이냐는 사고를 분석할 때 중요하게 취급된다. 왜냐하면 충돌차량 상호간의 정확한 위치를 판정하고, 충돌상황이 두번 이상 있었는가를 판정하는데 큰 도움이 되기 때문이다.

또 사고를 정확하게 재구성하려면 충격력의 방향을 조사해야 한다. 차량과 차량이 충돌, 최대로 맞물릴 때를 가리켜 최대접촉상태(maximum engagement)라고 하는데, 이때 두 차량간에 최대의 힘(충격력)이 작용하게 된다. 이 최대의 충격력 또는 그 작용하는 방향을 스러스트(thrust)라고 하는데, 따라서 두 차량의 스러스트 방향은 정반대가 된다.

최근에 들어와서 컴퓨터를 이용한 차량충돌사고 분석기법이 잇따라 개발되고 있다. 대표적인 컴퓨터활용 사고분석기법으로는 미국 도로교통안전청(NHTSA)에서 개발한 CRASH3(Calspan Reconstruction of Accident Speeds on the Highway)을 들 수 있다. 교통사고 원인분석 작업에 컴퓨터가 활용되면서부터 스러스트의 방향판정이 아주 중요하게 취급되고 있다.

스러스트의 방향을 잘 나타내 주는 차체부위로는 헤드라이트 범퍼 바퀴 그리고 강한 금속부위를 들 수 있다. 그러나 차체의 약한 부위는 충돌시 충격력이 어느 방향으로 작용했는지 구분이 가지 않을 정도로 심하게 변형돼 버리기 때문에 스러스트의 방향측정에 별 도움을 주지 않는다.

차량파손부위를 보고 스러스트의 방향을 판정하려면 상당한 정도의 지식과 경험을 갖고 있어야 한다. 더욱이 사진만을 갖고 판정할 때에는 전문적인 지식과 세심한 주의가 요구된다. 일반적으로 차량파손사진을 찍을때는 변형이 비교적 적은 모서리 등을 축으로 해 전후좌우에서 네장 이상 찍는 것이 바람직하다. 그렇지 않고 파손부위만을 정면으로 찍게 되면 스러스트의 방향을 판정하는 일이 불가능해질 수도 있다.
교통사고 현장의 노면에 긁힌 자국이나 패인 자국이 있을 때에는 관련차량을 주의깊게 살펴서 차량의 어느 부분과 부딪쳤는가를 확인해 두는 것이 좋다.

때에 따라서는 차량을 들어 올리거나 뒤집어야 하는 번거로움이 따르겠지만, 노면상의 흔적과 대응되는 차량의 부위를 찾아내면 사고당시의 차량위치를 정확하게 판정할 수 있다.

사고차량의 타이어와 림(rim) 사이에 풀잎이나 작은 돌조각 등이 끼어 있을 때에는 사고지점 도로의 노견을 살펴야 한다.

차가 무사히 달리고 있을 때에는 타이어와 림 사이에 이물질이 끼는 경우가 거의 없다. 그러나 급핸들조작을 함으로써 옆미끄럼(YAW마크가 증거)현상이 나타나 바퀴와 노견의 측면이 심하게 부딪치면 노견의 잔디나 작은 돌조각 등이 끼게 된다. 이는 바퀴의 옆부위(sidewall)와 노견간의 마찰이 엄청나게 커져 순간적으로 타이어와 림 사이의 틈이 벌어지기 때문이다.

스키드마크나 YAW마크를 남긴 타이어에는 마모된 흔적이 나타나 있기 쉬우나 몇차례 더 구르고 나면 지워지는 것이 보통이다. 시멘트 포장도로와 같이 비교적 단단하고 거친 노면에 스키드마크나 YAW마크를 남긴 타이어의 마모흔적은 그런대로 오래간다. 흔한 경우는 아니지만 노면에 스키드마크가 있었는지 없었는지 명확하지 않을 때에는 타이어의 마모된 흔적으로 사고당시 차량의 급제동여부를 판정할 수 있다.
 

외줄 스키드마크. 일반의 예상과는 달리 스키드마크가 한개뿐인 경우도 많다. 그러나 이 경우에도 스키드마크를 남기지 않은 바퀴에 제동이 걸리지 않았다고 단언할 수는 없다.


깜박이도 중요한 단서

현재 우리나라에서는 사고차량의 깜박이에 대한 조사를 거의 실시하지 않고 있다. 그러나 사고차량의 등화조사, 다시 말해 깜박이의 작동여부를 알아내는 일은 매우 중요하다. 사실상 깜박이의 작동여부만 제대로 밝혀내도 사고의 책임자를 가려낼 수 있다.

좌회전 차량과 그 반대방향으로 직진중인 차량이 충돌했을때, 직진차량 운전자가 "좌회전 신호를 보내지 않았다"고 주장하는 경우를 예로 들어 보자. 이 경우 등화조사를 실시하면 모든 것이 확연해진다. 만약 좌회전 깜박이의 전구가 파손되지는 않았으나 충돌시의 충격으로 필라멘트가 우그러들었다면 사고당시 좌회전 깜박이에 불이 들어온 상태였을 것이다.

이같은 판정근거는 다음의 네가지 등화조사 요령을 보면 쉽게 이해할 수 있다. 대개 깜박이의 파손은 콜드쇼크(cold shock) 콜드브레이크(cold break) 핫쇼크(hot shock) 핫브레이크(hot break) 등 네가지 형태로 나타난다. 그중 콜드쇼크는 깜박이가 점등되지 않은 상태에서 충돌했으나 전구는 깨어지지 않고 필라멘트만이 파손된 경우에 발생한다. 이때 필라멘트의 끊어진 부위가 은빛으로 빛난다. 콜드브레이크는 깜박이가 점등되지 않은 상태에서 충격을 받아 전구가 깨지고 필라멘트는 그대로 남아있거나 파손된 경우에 생긴다. 이때도 필라멘트의 끊어진 부위가 은빛을 발한다.

한편 핫쇼크는 깜박이가 켜진 상태에서 충격을 받아 필라멘트가 엉키거나 우그러들었으나 전구는 깨어지지 않은 경우에 발생한다. 즉 필라멘트가 열을 받아 물러진 상태에서 강한 충격을 받았기 때문에 우그러든 것이다. 또 깜박이가 켜진 상태에서 충격을 받아 전구가 깨지면 필라멘트가 산화하는데 이런 경우를 가리켜 핫브레이크라고 한다. 전구에 금만 갔을 때에는 필라멘트가 서서히 산화되므로 필라멘트의 일부가 남아 있을 수도 있으나, 전구가 완전히 파손된 경우에는 산화된 텅스텐가루만 남아 있기 십상이다.

여기서 한가지 주의해야 할 점은 등화조사가 완전히 끝나기 전에 점등가능여부를 확인하기 위해 스위치를 넣는 일은 절대 삼가야 한다는 것이다. 만일 필라멘트는 끊어지지 않았는데 전구가 깨어진 상태라면, 스위치를 넣자마자 순간적으로 필라멘트가 산화돼 핫브레이크와 구별할 수 없게 된다. 그러면 사고당시의 깜박이 점등여부를 판정하는 것이 불가능해진다.

이밖에도 조사가 필요한 항목은 수두룩하다. 예컨대 안전벨트 상태, 출입문 및 창문상태(특히 탑승자가 밖으로 튕겨나간 경우), 변속기어레버의 위치, 속도계, 타코미터(tachometer), 핸들상태, 계기판상태, 제동장치상태 등을 살펴야 한다.

교통사고의 해석은 사실적인 자료로부터 출발한다. 따라서 사실적인 자료가 많을수록 해석은 쉽게 이뤄지고 신뢰도도 높아진다.

어쩌면 이 작업은 어린이가 즐기는 그림조각짜맞추기놀이와 유사한 성격을 지녔다고 볼 수 있다. 흩어진 여러 자료중 하나를 기준삼아(그림조각인 경우, 모퉁이조각) 한건의 사고발생과정을 재구성해 나간다(그림조각인 경우 호랑이모습). 이때 일부자료가 빠질 수 있으므로(그림조각 몇개를 잃어버리는 경우) 전체적인 맥락(그림조각의 전체윤곽)이 중요하다.

새로운 첨단장비가 활용되고

교통사고의 원인분석을 제대로 하려면 그 담당자의 사고방식이 아주 유연해야 한다. 어떤 고정관념에 사로잡혀 앞뒤가 꽉 막힌 사람이라면 그 작업에서 일찌감치 손을 떼야 한다는 얘기다.

"사고해석을 하는 사람의 최대자질은 풍부한 상상력(통찰력)이다." 이 말은 교통사고 조사분석학의 아버지라 불리는 미국 노스웨스턴 대학 교통연구소 베이커박사(J.Stannard Baker)의 지론이다.

최근에는 교통사고 해석의 신뢰도를 높이기 위해서 컴퓨터, 사고현장촬영용 특수카메라, 가속도측정기, 노면마찰계수측정기 등을 이용하고 있다. 특수한 경우에는 실제로 차를 충돌시키는 실험을 수행하기도 한다. 그러나 전체 교통사고의 90%이상은 30m 줄자 30㎝자 삼각자 계산기 컴퍼스 각도기 종이 연필 등만으로 해석하고 있는 실정이다. 물론 이것들도 잘만 활용하면 웬만한 사고의 원인을 파악하는데는 별 손색이 없다.

교통사고해석에 최신 기자재를 동원한다 할지라도 기초입력자료가 사실자료가 아닌 경우에는 그 결과는 무의미한 것이다. 국내의 사고해석 사례를 보면, 과학적 지식의 결여때문에 잘못된 결론에 이른 경우보다 사실과 주장을 구분하지 못하는데서 일을 그르치는 경우가 더 많다.
요컨대 사고해석의 모태는 수집된 자료다. 따라서 사고해석의 신뢰도를 높이려면 무엇보다 현장조사를 철저히 해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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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92년 02월 과학동아 정보

  • 홍성민 연구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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