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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이의 웃음소리에 허 생원은 주춤하면서 기어코 견딜 수 없어 채찍을 들더니 아이를 쫓았다.

“쫓으려거든 쫓아. 왼손잡이가 사람을 때려.”

줄달음에 달아나는 각다귀에는 당하는 재주가 없었다. 왼손잡이는 아이 하나도 후릴 수 없다.



(중 략)



“모친의 친정은 원래부터 제천이었던가?”

“봉평이라는 것만은 들었죠.”

“봉평. 그래, 그 애비 성은 무엇인구?”

“알 수 있나요. 도무지 듣지를 못했으니까.”

“그, 그렇겠지.”하고, 중얼거리며 흐려지는 눈을 까물까물하다가 허 생원은 경망하게도 발을 빗디디었다. 앞으로 고꾸라지기가 바쁘게 몸째 풍덩 빠져 버렸다.



(…중략…)



허 생원은 젖은 옷을 웬만큼 짜서 입었다. 이가 덜덜 갈리고, 가슴이 떨리며 몹시도 추웠으나, 마음은 알 수 없이 둥실둥실 가벼웠다.

“주막까지 부지런히들 가세나. 뜰에 불을 피우고 훗훗이 쉬어. 나귀에겐 더운 물을 끓여 주고, 내일 대화장 보고는 제천이다.”

“생원도 제천으로?”

“오래간만에 가 보고 싶어. 동행하려나 동이?”

나귀가 걷기 시작하였을 때, 동이의 채찍은 왼손에 있었다. 오랫동안 아둑시니같이 눈이 어둡던 허 생원도 요번만은 동이의 왼손잡이가 눈에 띄지 않을 수 없었다.


- 이효석의 ‘메밀꽃 필 무렵’ 중




장돌뱅이인 허 생원은 조 선달과 함께 들어간 술집에서 젊은 장돌뱅이인 동이가 술집 여주인인 충줏집에게 음란한 농담을 거는 장면을 본다. 그런 동이를 심하게 야단친 뒤, 허 생원은 미안한 마음에 술을 마시고 있는데 동이가 달려와 시장의 각다귀들(아이들)이 허 생원의 나귀를 괴롭히고 있다고 일러준다.



아이들을 쫓아내고 허 생원, 조 선달, 동이는 대화장을 향해 밤길을 걷는다. 달빛이 흐붓한 메밀밭을 지나며 허 생원은 젊었을 때 봉평에서 성 서방네 처녀와 낭만적인 하룻밤 인연을 맺은 일을 이야기하고 동이도 자신의 살아온 내력을 이야기한다. 친정이 봉평인 동이의 어머니가 남편 없이 동이를 길렀다는 이야기를 들은 허 생원은 동이가 자신의 아들일지도 모른다는 생각에 개울을 건너다 실족해 물에 빠지고 만다. 동이의 도움으로 무사히 개울을 건너온 허 생원은 동이가 자신과 같은 왼손잡이임을 알게 된다.



왼손잡이에 대한 사회적 시선

우리나라 뿐 아니라 세계적으로 왼손잡이는 금기의 대상이었다. 실제로 왼손을 쓰는 사람은 생활에 불편을 겪었을 뿐만 아니라 사회적으로도 무시당하기 일쑤였다. 소설 속에서도 그러한 시선이 그대로 나타난다.



이 소설에서 ‘왼손잡이’는 작품의 개연성을 높이는 중요한 암시를 한다. 과연 왼손잡이라는 점이 허 생원과 동이의 혈연관계를 보장하는 것일까. 영국의 한 조사에서 부모가 모두 오른손잡이일 경우에도 자녀가 왼손잡이일 확률이 9.5%로 나타났다. 부모중 한쪽만 왼손잡이일 경우는 19.5%, 부모가 둘다 왼손잡이일 때는 26.1%로 높아졌다. 이 확률을 보면 왼손잡이와 유전은 관련이 있다.



또 다른 연구에서는 인간에게 오른손잡이를 결정하는 D유전자와 그 돌연변이인 C유전자가 있다고 한다. 이 유전자들이 자녀에게 발현될 확률은 각각 같지만, 흥미롭게도 C유전자는 오른손잡이 왼손잡이를 결정하는 데 아무런 역할을 하지 못한다. 즉 부모로부터 각각 D유전자를 받을 경우(DD형)는 오른손잡이가 되는 반면 각각 C유전자를 받은 CC형은 오른손잡이나 왼손잡이가 될 확률이 반반이다. C유전자가 오른손잡이, 왼손잡이를 결정하는 데 영향을 미치지 못하기 때문이다. 이에 따르면 부모가 모두 왼손잡이인 경우 자녀가 왼손잡이일 확률은 30%이다. 부모 중 한쪽이 왼손잡이인 경우 자녀가 왼손잡이일 확률은 19%이다.



과학적 사실과 소설적 묘사의 이중주

결국 허 생원과 동이가 왼손잡이라는 점은 둘이 부자지간일 수 있다는 가능성을 나타내지만 확신을 주지는 못한다. 소설 속에서 ‘왼손잡이’라는 장치는 이야기의 개연성을 확보하고 미학적 요소를 채우는 데 기여한다.



그러나 과학에서 왼손잡이는 유전자가 만들어내는 통계와 확률의 결과다. 이 확률을 더 정확하게 측정하기 위해 유전학이 발전했다. 최근 영국 옥스포드대의 연구팀은 분자 정신분석학(Molecular Psychiatry)지에 게재한 논문에서 ‘LRRTM1 유전자’가 오른손잡이와는 다른 왼손잡이만의 특성과 뇌의 구조에 관한 단서를 밝혀줄 수 있을 것이라고 발표했다.











고려대 국어국문학과를 졸업하고 동 대학원을 수료했다.

현재 조동기 국어논술학원에서 언어영역과 논술을 가르치고 있다. 문학과 역사, 과학과 철학을 통합할 수 있는 연구에 관심을 기울이고 있다.

2010년 09월 과학동아 정보

  • 최규윤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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