맥스웰은 수식으로 전자기파를 예언하고 헤르츠는 전기와 자기가 본질적으로 같다는 사실을 실험으로 확인해냈다.
전기의 전(電)을 나타내는 한자를 보면, 비 우(雨)자 밑에 번뜩이는 번개를 나타내는 꼴을 아울러 표현하고 있다. 옛부터 번개는 낯익은 현상이며 겨울에 털옷을 입고 벗을 때 번뜩이는 정전기도 낯익은 현상이었다. 그러나 그 실체를 밝히기에 이른 것은 그리 오래된 일이 아니다. 더구나 자기가 전기의 다른 모습임을 알게된 것도 역시 오래지 않다.
자기의 자(磁)를 나타내는 한자 역시 그 유래가 흥미롭다. 돌석(石)변에 자애 자(玆)를 곁들인 것인데 '자'자는 엄마 젖에 매어달린 두 아기를 나타낸 것으로 곧 돌등에 당기는 기운이 있는 것을 가리키는 글자다. 동양에서는 옛날부터 자석을 지남철로 부르며 남북방향을 가리키는 연장으로 이용해 왔다. 이렇듯 전기와 자기는 각기 다른 성질을 지닌 것으로 옛날부터 알려져 왔으나 그들의 본질을 밝힌 전자기이론이 확립됨으로써 비로소 빛과 통신에 쓰이는 전파 X선 방사선이 모두 전자기파의 한 갈래라는 사실이 정리됐다. 나아가서 이 이론은 상대성이론의 기초를 마련해 주기에 이른다.
이 전자기이론의 기원을 더듬어 보자.
17세기에 이르러 독일의 물리학자 오토 폰 게리케(Otto von Guericke)는 정전기를 연구하는 방편으로서, 유황으로 공을 만든 뒤 손아귀에 넣어 돌림으로써 정전기를 띨 때 종이조각이나 천조각이 이 공에 들러 붙는 것을 살피게 된다. 그는 이 공에 매어둔 실 또한 당기는 힘을 지니는 것을 보고 놀랐는데 이것이야말로 최초의 정전기 발생장치이자 전기의 흐름을 보이는 첫 실험이라 하겠다.
전하의 발견
이후 과학자들은 이런 실험을 거듭하면서 물체를 서로 비비면 자석과 같이 서로 당기든가 밀치는 성질을 갖게 됨을 알게 된다. 가령 고무를 털가죽에 문지르면 이 고무는 명주에 문지른 유리조각을 당기지만 명주에 문지른 두 유리조각은 서로 밀침을 봤다. 결국 마찰에서 이른바 두가지 전기짐, 곧 전하(電荷)가 생겨남을 알게 된 것이다. 고무에 생긴 전하는 음전하라고 했고 유리의 전하는 양전하를 띠었다고 부르기로 했다.
1785년과 1786년에 이르러 프랑스의 물리학자 쿨롱(A.Coulomb)은 음양전하사이에 있는 힘을 바로 나타내는 물리법칙을 밝히기에 이른다. 곧 뉴턴의 중력법칙처럼 이 힘은 두 전하의 곱에 비례하고 두 전하사이의 거리제곱에 반비례한다는 것이다.
사실 음양전하라는 이름은 미국의 B.프랭클린이 전기를 물에 비유하면서 물체가 중성이상으로 전하를 지니면 플라스, 곧 양이고 보통이하가 마이너스, 곧 음이라 생각해 붙인 것이다. 그 유명한 연 실험에서 플랭클린은 연이 비구름 속에 들자 연줄의 올이 곤두서면서 그 줄끝에 단 열쇠와 쥔 손가락 사이에서 번갯불이 튀는 것을 살폈고 번개와 전기가 한가지임을 실증했다.
이제는 익히 알려진 사실인 바 물체를 문지를 때 양전하를 띤 핵둘레의 음전하가 떨어지면서 음전하를 잃은 것은 양전기를 띠게 되고 음전하를 얻은 것은 음전기를 띠게 되는 것이다. 이 정전기현상은 전하가 움직여 흐르면서 생기는 전기역학 현상으로 설명된다.
L.갈바니(Galvani)는 이탈리아 볼로냐대학의 해부학 교수였는데 1780년에 우연히 개구리 다리실험에서 전류효과를 살피게 된다. 갈바니가 개구리를 칼로 쨀 때 옆에서는 조수가 정전기실험을 하고 있었는데 번갯불이 튈 때마다 개구리 다리가 꿈틀거리더라는 것이었다. 나중에 밝혀졌듯이 유도전류가 칼에 흐르면서 그 전류가 다리신경을 자극해 다리가 꿈틀거린 것이다. 곧이어 1800년에 파비아대학의 물리교수였던 A.볼타는 놋쇠나 쇠같은 두가지 다른 쇠붙이와 습기의 화학작용을 통해 전기의 흐름, 즉 전류가 생기는 것을 알게 되고 이윽고 축전지를 발명하게 된다.
그는 은숟가락과 주석조각을 혓바닥에 놓고, 두 쇠붙이를 전선으로 이었을 때 '새콤한 맛'이 나는 것을 실험으로 알아내 전류를 처음으로 '맛 본' 사람이 됐다. 여기서 그는 축전지를 발명하게 된다. 이 전류를 쉽게 얻는 축전지 덕분에 전류실험을 쉽게 할 수 있게 되면서 중요한 여러가지 전기성질이 밝혀지게 된다. 가령 G.S.옴(Ohm)은 전류가 흐를 때 물질에 따라 저항이 다르다는 것을 알아냈고, 그 후 문명발달을 이끈 여러가지 이기(利器)들이 이 저항에서 생기는 열을 이용해 탄생하게 된다.
전자기유도로 일취월장
그런데 전기에너지를 열에너지 외에 역학적 에너지로 바꿔주는 새로운 전기성질이 그 무렵에 밝혀지게 된다. 곧 전기와 자기의 관계가 연구되기 시작한 것이다.
1807년에 H.C.외르스테드(Oersted)는 오랜 실험끝에, 전류가 흐르는 전선에 가지런히 자침을 놓자 이 전선에 수직한 쪽으로 자침이 도는 것을 발견했다. 이 발견이 있은 지 한해 뒤에 A.M.암페어는 가지런히 놓인 두 전선에 전류가 같은 쪽으로 흐르면 서로 당기고 거꾸로 흐르면 서로 밀침을 발견한다. 곧 전선둘레에 자기가 생김을 알아낸 것이다.
그렇다면, 이번에는 '자기의 변화로 전기를 만들어낼 수는 없을까'하고 사람들은 궁금증을 갖기 시작했다.
드디어 1830년에 J.헨리, 그 다음해에는 패러데이가 자기의 변화로 전류를 얻을 수 있는 것을 알아냈다. 이 현상을 전자기 유도라고 일컫는데 이로 말미암아 전자기학은 더욱 알찬 발전을 이룩하게 된다. 이 원리를 이용해 역학적에너지, 곧 물이나 김의 힘으로 전자기에너지를 얻을 수 있는 길이 트이게 되고 반대로 전자기에너지를 이용해 역학적 에너지를 얻을 수도 있는 기본원리가 마련된다. 한편 실험으로 밝혀진 이 모든 사실을 J.C.맥스웰은 네 수식으로 묶어냈다.
J.C.맥스웰은 1831년 영국에서 태어났고 어렸을 때 신동으로 인정받았다. 수학과 어학에 재주가 뛰어났으며 이미 17살때 왕립학회에서 자신의 논문을 발표했다. 케임브리지대학 졸업논문에서 토성의 고리가 티끌이 모여 생긴 것이라는 주장을 했고 이 논문으로 그는 상을 탔으며 이것은 그 뒤에 천문관측으로 확인이 된다. 한편 기체를 이루는 티끌의 충돌로 열과 온도와 압력의 관계를 설명하는 업적을 남기기도 한다.
이렇듯이 수학에 남다른 재주를 지닌 맥스웰은 마침내 전기와 자기를 하나로 묶는 전자기학의 기본 방정식을 정립하기에 이른다. 그는 이들 수식의 풀이로 전자기 파동이 있음을 밝혀냈고 그것은 광속으로 움직이며 빛 역시 전자기파임을 예언한 것이다. 가령 전기의 들(electric field)에 변화가 있으면 그 둘레에 자기의 들(magnetic field)이 생기며 이 자기의 들에 변화가 있으므로 그 둘레에 전기의 들이 생기게 돼 이들이 줄줄이 퍼져가면서 전자기파가 생긴다는 것이다.
이 이론에서 예언된 전자기파 곧 전파는 헤르츠 등이 실험으로 실증하게 되고 곧 무선통신에 이용하게 된다. 이 과정에서 전기와 자기는 어떠한 상태에서 즉 어떠한 기준으로 보느냐에 따라 전기가 자기로 또는 자기가 전기로 보이게 되며, 그 둘은 본질에서 서로 다르지 않다는 사실이 밝혀진다. 그래서 어떤 이는 맥스웰의 전자기 이론이 대통일이론으로 가는 둘째 길목이라고 말하기도 한다.
그런데 맥스웰에게는 한가지 의문이 생긴다. '소리는 공기나 물체라는 매질을 통해 그 진동이 퍼져가며 물결은 물이라는 매체를 거쳐 퍼져가는데 그렇다면 전자기파라는 파동 역시 어떤 매체를 거쳐 퍼져가는 것이 아닐까?'하는 것이다. 그는 이 가설상의 매체를 에테르라고 불렀다. 매질이 있다면 퍼져나가는데 시간이 걸릴 것이므로 맥스웰은 에테르의 존재를 밝히려면 그 안에서 빛이 느리게 퍼짐을 보이면 된다고 생각했다.
그러나 이 실험은 지극히 어려웠다. 광속은 지구 적도 둘레를 1초동안에 일곱바퀴반이나 도는 빠르기이다. 실험실 안에서 그 빛이 한쪽으로 갈 때와 돌아올 때 갖는 빠르기의 차이를 재기란 쉽지 않은 일이었다.
하지만 1887년에 미국의 물리학자인 A.A.마이켈슨(Michelson)과 E.W.몰리(Molrey)라는 두 사람은 간섭계라는 장치를 써서 이 까다로운 실험을 해냈다. 그 결과 광속은 매질의 운동상태와 무관함을 밝혔고 결국 에테르는 없는 것으로 판정이 된다. 그러나 빛의 속도는 어째서 그것을 재는 기준틀의 운동상태와 무관하느냐 하는 것은 여전히 풀리지 않은 수수께끼로 남아있었다.
우리가 잘 알다시피 기차 안에서 움직이는 물체의 속도는 기차 안에서 잴 때와 기차 밖에서 잴 때 다르지 않은가? 이 수수께끼를 풀어준 이가 바로 아인슈타인이다.
에테르를 단서로 상대성이론 출현
아인슈타인은 열여섯에 취리히 공대에 지원했지만 현대어와 동식물학 시험성적이 나빠 낙방한다. 독학으로 이 공부를 다시 하고 다음해에 입학한 아인슈타인은 여기서 H.민코브스키라는 수학자를 만난다. 이 민코브스키는 임종때 "상대성이론이 탄생하는 이때 죽다니 딱한 일이다"라고 탄식했다는 일화를 남긴 사람이다. 아인슈타인은 이 수학자의 수학강의에서 상대성이론의 밑천을 얻게 된다.
대학을 졸업한 아인슈타인은 베른에서 특허국 직원으로 일한다. 그는 업무상 특허를 받으려고 신청한 발명품의 기본개념을 곧바로 알아채야 했고 이래서 과학실험의 이론가치를 알아내는 비상한 재주를 지니게 됐다고 한다. 또 과학기기를 만드는 취미도 갖게 됐는데 그에게는 이것이 바둑이나 장기를 두는 것과 같은 놀이구실을 하게 된다.
이렇게 하여 스위스에 있은 몇해동안에 아인슈타인은 여러편의 훌륭한 과학논문을 쓰게 됐고, 그중 하나가 스물여섯살때 쓴 '특수상대성이론'의 내용을 담은 글이었다. 이 논문에서 아인슈타인은 첫째로 에테르란 없는 것으로 단정한다. 둘째로 절대공간이란 없으며 모든 운동은 상대적이라고 주장한다. 마지막으로 광속이란 어떻게 재든 일정하다고 했다. 이 이론의 결과는 모든 길이가 움직이는 쪽으로 줄어든다는 것이다. 이렇게 줄어든 자로 광속을 잴 때 그 광속이 일정하려면 시간이 느리게 가야만 한다. 즉 움직이는 기준틀에서는 시계가 느리게 간다는 것이며 이런 결론은 여러가지 실험을 통해 확인됐다.
이런 성질을 바탕으로 이룩된 상대론 역학은 또 한가지 놀라운 결론을 내린다. 물체의 질량이 빨리 움직일수록 무거워진다는 것이다. 또한 질량은 에너지와 같다는 것을 밝혀 질량과 에너지는 우주의 두 얼굴이 아니라 한 얼굴의 두 모습일 뿐임을 증명했다. 질량 곱하기 광속 제곱이 에너지(E=${mc}^{2}$)라는 유명한 공식에 따르면 1g의 물질에는 2천5백만㎾/시라는 어마어마한 에너지가 들어있다. 바로 이 원리를 이용해 핵 에너지로 발전을 하기에 이른 것이다.
곧이어 1932년에 미국 물리학자 C.D.앤더슨(Anderson)은 안개상자에서 우주선(cosmic ray) 실험을 하면서 전자와 질량은 같으나 양전하를 띤 입자인 반(反)전자를 발견한다. 이는 우주선의 전자기파가 원자핵에 쬐어들면서 그 빛에너지가 전자-양전자라는 한쌍의 질량입자로 바뀐 것이며, 이와 반대로 음전자와 양전자가 만나면 빛에너지로 바뀌면서 아인슈타인의 공식을 그대로 뒷받침하고 있다.
마지막으로 덧붙일 이야기는 이 상대성이론에 따르면 공간과 시간은 동등한 차원이라는 것이다. 이렇듯 전자기이론은 상대론을 낳았고 그뒤에 발달한 양자이론과 양자 전기역학도 이 전자기 이론을 모태로 삼았다. 현대물리학은 이들을 바탕으로 전자기 힘 외에 두가지 핵 힘(센 핵힘, 여린 핵힘)을 규명해내면서 물리학의 궁극 목표인 대통일 이론 연구의 기초를 닦게 된다.
VHF와 UHF, 어떻게 다른가
요즘처럼 리모콘식의 텔레비전이 보편화되기 이전, 채널식의 수상기에는 각각 VHF용과 UHF용의 두개 채널이 달려있어서 많은 사람들이 이 낯선 이름에 익숙해지는 계기를 마련했다.
VHF(Very High Frequency)와 UHF(Ultra High Frequency)는 전자기파를 주파수라는 기준으로 분류할 때 서로 다른 대(帶)로 분류되는 전파의 종류들. 전자기파를 이렇게 주파수 별로 구분하는 이유는 주파수에 따라 전자기파의 전파(propagation) 방법이나, 성질이 달라지기 때문이다. 분류의 편의상 30㎑를 기준으로 해서 10배마다 한 구역씩으로 나눈다.
VHF는 초단파(SW, Short Wave)라고도 불리는데 직진성이 강하고 방향선택성(지향성)도 뛰어나다. 이런 장점때문에 텔레비전 방송에 이용되는데 우리나라에서는 AFKN방송인 채널 2가 54㎒를 쓰는데서부터 시작해 채널13이 2백16㎒까지를 쓰며 그 사이에 라디오 FM 방송이 일부구간(88~108㎒)을 점유하고 있다.
VHF방송에 12개의 채널이 정해진 것은 임의적인 것만은 아니다. 공중에서 하나의 전파가 이동할 때 다른 전파와 부딪쳐 혼신, 감쇄 등의 현상이 나타나지 않으려면 독점적으로 사용하는 주파수 구간이 있어야 하는데 이를 흔히 주파수 대역(帶域)이라고 부른다. 우리나라의 VHF 한 채널당 주어진 독점적인 주파수대역은 6㎒. FM 방송이 쓰는 영역 등을 빼고 VHF 채널로 실제 사용할 수 있는 영역이 모두 72㎒이므로 이를 6으로 나눈 결과 12개 채널이 생긴 것이다.
그러나 앞으로 방송국이 더 생긴다해도 VHF 12개 채널이 다 생기는 일은 기대하기 어려울 것이다. 이론적으로는 6㎒씩이 독자영역이지만 실제 전파가 이동하는 과정에서는 인접한 두 영역이 서로 간섭할만한 위험이 항시 도사리고 있기 때문이다. 따라서 sbs가 신설될 때도 선택할 수 있는 채널은 기존의 2, 7, 9, 11, 13번 채널의 옆자리를 피할 수 있는 4와 6 둘 뿐이었다.
이렇게 VHF의 자원이 한정돼 있기 때문에 새 자원으로 UHF에 눈을 돌리게 된다. 사실 수도권 시청자들은 과거 교육방송이 VHF로 방영됐을 때 잠깐 이 방송을 접할 수 있었지만 지방 시청자들은 UHF방송에 훨씬 익숙해 있다. VHF는 한정된 지역까지는 깨끗한 화면을 쏘아보내지만 멀리까지는 닿지 못하는 단점이 있다. 따라서 VHF방송을 지방에 보낼 때는 남산 송신소에서 이를 마이크로파로 바꾸어 쏘게 되고 이를 받아들이는 지방에서는 UHF로 전환해서 받게 된다.
UHF로 바꾸는 이유는 서울에서 쏘아보내는 VHF 중 남은 부분과의 간섭을 막기 위해서다.
한편 UHF를 보기 위해서는 VHF와는 다른 전파잡이 그물 즉 안테나를 달아야 한다. 모든 안테나에는 각각이 잡을 수 있는 최적주파수가 있는데 시판되는 안테나는 대부분 채널 7이상(1백60㎒)에 맞춰져 VHF안에서도 높은 쪽(100㎒이상)을 최적으로 삼기 때문이다. 따라서 UHF용의 안테나를 따로 달아야 하며 VHF 채널 안에서도 2, 6 등 낮은 쪽을 보기 위해서는 로우(low)밴드 안테나를 설치해야 선명한 화면을 즐길 수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