9월 15일 저녁 반달이 별과 숨바꼭질을 펼친다. 은하수를 배경으로 쪽배 같은 반달이 국자 모양의 별무리에 속한 별 하나를 품었다가 내놓는 것이다. 달 바로 옆에서 별 하나가 깜찍하게 빛나는 모습을 감상해보자.
‘푸른 하늘 은하수 하얀 쪽배엔 계수나무 한 나무 토끼 한 마리….’ 어린 시절 누구나 한번쯤 불렀을 법한 동요 ‘반달’의 가사다. 한가위를 1주일 정도 앞둔 가을 저녁 이 노래가사처럼 은하수에는 하얀 쪽배 같은 반달이 뜬다. 물론 은하수의 모습은 달빛에 대부분 가려지겠지만. 신기하게도 이때 은하수를 배경으로 등장한 반달은 별 하나를 품었다가 내놓는다. 마치 쪽배에 타고 있는 토끼 한 마리를 찾아왔다가 떠나가는 친구처럼.
2등성이 올해 성식 최고 기록
지구에서 가장 가까운 천체는 달이다. 태양과 여러 행성들은 달보다 멀리 있으며 무수히 많은 별들은 이들보다 더 먼 곳에서 빛나고 있다. 때문에 우리가 보는 달의 저편에 있는 별들은 달에 가려 보이지 않게 된다. 이처럼 달이 별을 가리는 현상을 ‘성식’이라 한다.
이론적으로 성식은 항상 일어날 수 있다. 그러나 우리의 관심을 끄는 성식은 아주 가끔 일어난다. 밤하늘에서 달이 지나가는 길을 ‘백도’라 하는데, 이 길 주변에는 밝은 별들이 여럿 위치하고 있다. 그 중 대표적인 별이 전갈자리의 안타레스, 처녀자리의 스피카, 황소자리의 알데바란, 사자자리의 레굴루스 같은 1등성이다. 이처럼 밝은 별이 달에 가려지는 성식은 몇년에 한번씩 일어날 정도로 매우 드문 현상이다. 때문에 이런 성식은 많은 관측가들의 표적이다.
올해의 경우 안타깝게도 1등성이 가려지는 멋진 성식은 일어나지 않는다. 대신 1등성보다 어두운 2등성이 가려지는 현상이 오는 9월 15일에 일어난다. 올해 중 가장 볼 만한 성식이다.
9월 15일에 펼쳐지는 성식에 대해 좀더 자세히 알아보자. 당연히 이 날의 주인공은 달과 달에 가려지는 별이다. 먼저 9월 15일의 달은 월령 8.4일로서 반달(상현달)을 조금 지난 모습이다. 성식은 이날 저녁에 일어나는데, 이때 달은 여름철 은하수가 빛나는 궁수자리 주변에 자리한다.
궁수자리는 남서쪽에 위치하지만 초저녁에는 상당히 고도가 높아 관측에 그리 무리가 없다. 이날 저녁 달에 가려지는 별은 바로 궁수자리에 있는 시그마(σ) 별이다. 성식이 일어나는 이날 저녁에는 달이 바로 옆에 있기 때문에 시그마 별을 찾기가 어렵지 않을 것이다.
국자모양 여섯 별 중 하나
일단 궁수자리의 시그마 별부터 찾아보자. 사실 성식이 일어나는 9월 15일 저녁에는 아직도 하늘이 충분히 어두워지지 않는데다, 밝은 반달 탓에 궁수자리의 전체 모습을 보기는 쉽지 않다. 그러므로 1주일 전쯤인 9월 7일을 전후해 달이 없을 때 밤하늘에서 미리 궁수자리를 살펴보는 방법이 좋겠다.
궁수자리는 여름철 은하수의 한가운데 위치한, 여름을 대표하는 별자리다. 물론 가을에 접어든 9월에도 궁수자리와 은하수는 날이 충분히 어두워진 후부터 자정 무렵까지 관측할 수 있다. 궁수자리를 찾기 위해 먼저 여름철 은하수를 살펴보자.
9월 초저녁 여름철 은하수는 하늘 높이 가로지른다. 백조자리의 데네브, 거문고자리의 베가, 독수리자리의 알타이르가 이루는 여름철 대삼각형에서 시작된 은하수는 남쪽으로 내려갈수록 점점 더 진해진다는 사실을 알 수 있다. 가장 뚜렷한 은하수의 모습은 독수리자리 아래쪽 방패자리에서부터 궁수자리와 전갈자리에 이르는 지역이다. 사계절과 전하늘을 통틀어 은하수의 모습이 가장 절정에 달한 영역이다. 우리 눈에 은하수가 이곳에서 이처럼 뚜렷이 보이는 이유는 무엇일까. 우리은하의 중심이 바로 이 방향에 존재하기 때문이다. 따라서 궁수자리 영역에는 수많은 성운과 성단이 다른 영역에 비해 월등히 많으며 배경 별들도 훨씬 더 밀집돼 있다.
우리은하의 중심 방향인 궁수자리는 그리스신화에서 활을 쏘는 반인반마의 센타우루스족으로 표현된다. 하지만 우리나라에서는 궁수자리의 아래쪽이 지평선에 가려 잘 보이지 않는 관계로 그 모습을 완전히 그리기에 다소 무리가 있다. 이 별자리는 서양에서는 주전자로 더 잘 알려져 있고, 동양에서는 궁수자리의 일부가 남두육성으로 잘 알려져 있다.
궁수자리의 동쪽을 이루는 별들을 잘 이어보면 여섯 개의 별들이 국자 모습을 하고 있다는 사실을 깨달을 수 있다. 이 별들은 북쪽하늘에 있는 북두칠성보다 규모가 작긴 하지만 그 모습이 대단히 유사하다. 이런 이유로 이 여섯개의 별은 오래 전부터 남두육성이라는 이름으로 불려 왔다. 여름철 은하수는 이 남두육성 국자에서 쏟아진 물과 수증기처럼 하늘을 가로질러 흐르고 있다.
남두육성의 국자 머리 쪽에서 세번째 별이 바로 궁수자리의 시그마 별이다. 이 별은 남두육성을 이루는 여섯 별 중에서 가장 밝다.
관측 적기는 달에서 나온 30분 간
9월 15일 저녁이 되면 반달(상현달)이 조금 지난 달이 남쪽 하늘 낮은 곳에 위치한다. 그리고 점차 날이 어두워지면서 달 주변에 별들이 하나둘씩 눈에 들어온다. 달 바로 옆에 붙어 있는 별이 바로 시그마 별이다. 성식은 배경에 고정된 별에 대해 달이 움직이며 별을 가렸다가 다시 내보이는 현상이다. 달은 하늘의 별에 대해 동쪽(왼쪽)으로 움직이므로 달에 가려지는 현상인 성식은 달의 왼쪽에서 시작된다. 즉 상현달의 경우 달이 어두워 보이지 않는 쪽에서 별이 가려지고 별이 다시 나타날 때에는 달의 밝은 부분으로 나타난다.
궁수자리의 시그마 별이 달에 가려지는 시각은 서울을 기준으로 오후 5시 50분이다. 이 시각에는 아직 해가 지지 않는 때이므로 별은 보이지 않는다. 그러므로 별이 달에 들어가는 모습을 관측하기 어렵다. 시그마 별이 달에서 다시 나타나는 시각은 오후 7시 17분이다. 이 시각은 해가 진지 약 40분 뒤다. 물론 하늘이 완전히 어두워지지 않아 맨눈으로는 별을 보기 어렵다. 하지만 쌍안경이나 천체망원경으로는 쉽게 확인할 수 있다.
별이 달에 가려져 있는 시간은 약 1시간 30분으로 이 사이에 별은 달의 중앙부근을 통과한다.
전문적인 관측가에게는 별이 달에서 나타나는 시각과 위치 등을 측정하는 일이 대단히 중요하지만, 초보자에게는 그보다 달과 별이 어울린 모습이 더 멋진 흥미를 불러일으킨다. 성식 당일에는 달이 별에서 나온 직후부터 약 30분 동안 달 주변을 유심히 살펴보자. 달 바로 옆에 별이 붙어 있는 모습을 맨눈으로도 볼 수 있다. 점차 어두워져 가는 남색 하늘을 배경으로 달과 별이 어울린 풍경은 누구나 감탄사를 터트릴 만한 멋진 모습이다. 하늘이 우리에게 선사하는 한가위 선물 중 하나가 아닐까.
은하수의 정체
밤하늘에 구름처럼 보이는 은하수는 우리은하의 나선팔에 밀집돼 있는 별들의 모습이다. 은하수는 까만 밤하늘에 우윳빛으로 뿌옇게 흘러간다고 해 서양에서는 ‘Milky Way’라고 불려 왔다. 우리나라에서는 미리내라고 불리기도 했다.
우리의 태양은 접시 모양의 납작한 우리은하의 나선팔 한쪽 가장자리에 위치한다. 따라서 우리은하가 이루는 평면 방향으로는 많은 별들을 볼 수 있다. 밤하늘에서는 이들이 바로 은하수로 보인다. 은하수는 온하늘을 한바퀴 휘감고 있다. 반면 우리은하 평면에 수직방향으로는 상대적으로 적은 별들만 볼 수 있다. 즉 우리 은하의 극 방향으로는 별들이 다소 성기게 존재한다. 이 방향이 바로 밤하늘에서는 머리털자리와 처녀자리 방향이다.
우리은하의 나선팔 부근에는 수많은 별들과 별들 사이의 성간가스가 밀집돼 있으며, 이들은 우리에게 산개성단이나 구상 성단, 또는 성운으로 나타난다. 반대로 별이 성긴 방향으로는 훨씬 더 멀리까지 볼 수 있기 때문에 우리은하 밖에 존재하는 수많은 외부은하들을 관찰할 수 있다. 이런 이유로 밤하늘에 뚜렷한 은하수가 그려지는 여름철과 겨울철에는 천체망원경으로 성운과 성단을 많이 볼 수 있고, 가을철과 봄철에는 외부 은하를 관측하기 쉽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