d라이브러리









모로코

현대문명과 이슬람문화의 공존

추억의 도시 카사블랑카에서는 이제 옛 멋을 찾아볼 수 없다. 그러나 고도 메디나와 공개시장 수크를 가면…

북으로 지중해에 면하고 남으로는 사하라사막에 면한 모로코. 이곳에서는 기원 전부터 베루베루(야만인이라는 뜻)라는 원주민이 살았다. 그후 B.C.8백년경 카르타고가 이 지역을 침범해 지배했다. 이이서 B.C.145~A.D. 439년까지는 로마제국의 영토였고 A.D.439~534년에는 북방에서 내려온 해적인 반달족이 이 지역의 패자였다.

마침내 A.D. 670년에 이슬람국가가 성립돼 여러 왕조를 거치게 되나 1900년대 초에 프랑스 보호령으로 전락, 프랑스의 지배를 받기도 했다.

카사블랑카는 현대도시로

모로코로 여행하는 가장 빠른 지름길은 서울-파리, 파리-카사블랑카 간의 항공편을 이용하는 것이다. 프랑스의 오를리공항에서 카사블랑카까지는 3시간 30분 정도 걸리므로 그다지 지루하지 않은 거리다.

비행기가 지중해연안을 선회하면서 카사블랑카의 모하메드 5세공항에 내릴 때까지 창밖으로 펼쳐지는 주마등같은 영상은 이국정취를 느끼기에 충분했다. 지중해의 검푸른 바다. 끝없이 전개되는 파란색 들판, 납작하고 하얀 농가, 풍요로워 보이는 농촌의 분위기가 계속 이어진다.

공항에서 카사블랑카 시내로 들어오는 동안 나는 다소 의외라는 감정을 숨길 수 없었다. 말로만 듣던 이 세계적인 도시에서는 이제 아랍의 전통적인 모습을 거의 찾기 어려웠다. 도시는 네모나고 높은 현대건축물들로 꽉 차 있었다. 안타깝게도 마음속에 그리던 아랍풍의 전통적인 분위기는 어느 곳에서도 찾아 볼 수 없었다.

이 추억의 도시 카사블랑카는 흑백영화 '카사블랑카'(험프리 보가드와 잉글리드 버그만이 주연이었던)를 통해 더욱 유명해졌다. 이제는 그 추억도 사라지고 바쁘게 살고 있는 지금의 모로코인들의 도시일 뿐이다.

고대 전통가옥이 있는 메디나의 거리도 보잘 것이 없다. 이 나라의 행정수도는 라바트다. 카사블랑카에서 라바트로 가는 도중 바다 저편에 웅장하게 서 있는 모스크를 바라보면서 이슬람민족의 깊은 신앙심을 연상해 보았다.

1912년 모로코의 공식 수도로 정해진 라바트는 메마르고 현대적인 카사블랑카와는 달리 녹지대가 많고 자연과의 조화가 잘 이루어진 건강하고 밝은 도시다.

이곳이 도시로 형성된 것은 10세기경이다. 당시 베루베루의 제다족이 부레그레그강 서안에 요새를 만들고 라바트(승리의 진영이라는 뜻)라고 칭한데서 비롯됐다.

「파라오궁전」이 로마의 거점으로

라바트의 가장 오래된 유적으로는 1천5백년 전에 건조된 로마시대의 유적인 셀라성벽을 꼽을 수 있다. 1195년 모하메드왕조가 이 성벽의 건설에 착수했다는 기록이 남아 있는 하산탑이 있다. 이 탑은 착공한지 4년 뒤 왕이 사망함으로써 완성되지 않은 채로 공사가 중단됐다. 그때부터 오늘 날까지 미완의 탑(높이 44m)으로 남아 있는데 앞쪽 넓은 광장에는 3백60개의 대리석주가 웅장하게 서 있다. 하산탑 정면에는 모하메드 5세의 묘가 있다. 그는 프랑스로부터 모로코를 독립시킨 사람이다.

라바트에서 훼즈로 가는 길은 숲이 매우 아름답다. 그 숲은 모두 코르크나무로 덮여 있었다. 8년마다 껍질을 벗겨 유럽의 포도주 생산국에 수출하는 데 모두 국유림이다. 잘 닦여진 아스팔트길을 따라 계속 달려도 눈에 띄는 것은 모두 올리브나무 뿐이다. 올리브 열매와 여기서 얻어진 올리브유는 모로코인들의 주식이며 수출의 달러박스다. 평균수명은 3백년이고 1천년까지 산 나무도 있다고 한다.

훼즈로 가기 전 메크네스에서 북상하면 가파른 구릉이 이어지는데 그 구릉위로 올라가면 그 끝에 '이드리스'라는 고도가 있다. 이 도시는 머레이 이드리스가 789년에 모로코 최초의 이슬람왕조를 건설한 곳이다. 지금도 옛 모습이 거의 변화없이 보존돼 구경할만 하다.

그 언덕으로부터 넓게 펼쳐진 평원쪽으로 3㎞ 정도 내려가면 '파라오궁전'이라고도 하고 '블루비스'라고도 하는 로마통치시대의 거점이 있다. B.C.145년~A.D.439년 동안 로마제국이 모로코를 지배할 때 이곳을 거점으로 삼았던 것이다. 블루비스는 모로코에 현존하는 최대의 유적이며 현재도 계속 발굴 중이다. 그 규모는 실로 엄청나다. 40헥타르(ha)의 부지에 여덟개의 성문과 40개의 탑이 있고, 신전을 비롯해 욕탕 교회 등이 벌판에 무수히 펼쳐져 있다. 한 눈으로도 당시 그 규모가 얼마나 대단했던가를 짐작할 수 있다. 그러나 이 거점은 이드리스의 침입으로 패망하고 말했다. 이 거대한 유적이 아직도 남아 있는 것은 목조유적이 아니라 석조유적이기 때문이다.
 

올리브밭 사이로 양떼를 모는 목동


세계 최고(最古)의 메디나, 훼즈

아랍권의 나라면 어느 나라나 도시내에 특별한 장소가 있다. 그중 하나가 메디나(Medina)인데 메디나는 신도시가 아니면 어느 도시에나 있다. 메디나는 고도(古都)라는 의미를 갖고 있는데 수백년 혹은 수천년간 크게 발전하거나 변하지 않고 고유한 전통을 고스란히 유지하고 있는 아랍인들만의 생활공간이다. 따라서 아랍인의 참모습을 보려면 반드시 메디나를 방문해야 한다. 모로코에서 가장 유명하고 규모가 큰 메디나는 훼즈에 있다.

훼즈는 이드리스 2세가 808년에 건설한 전형적인 이슬람도시다. 북쪽에는 고(古)도시 메디나가 있고 남쪽은 신도시로 구분되어진다. 여기에도 많은 유적이 남아 있다. 왕궁, 박물관, 부제루드문, 머레이 이드리스묘, 14세기에 건설된 최초의 신학교, 모스크 등 수없이 많다.

그중 가장 볼만한 곳은 그 유명한 메디나다. 세계 각국에 산재한 아랍권의 메디나 중에서 가장 오래되고 규모가 크며 건설된지도 1천년 이상된 명물이다. 꼬불거리며 어두컴컴한 미로(迷路)가 연속되기 때문에 들어간 길과 나오는 길을 도저히 구분할 수 없다. 이를테면 안내자가 꼭 필요한 곳이다.

1천년 전에 만들어진 이 메디나의 거리는 타임머신을 타고 과거의 세계로 돌아가 서있는 듯한 느낌을 준다. 아울러 이곳에서는 1천년 전의 가죽염색공장, 금속세공, 향료, 과일, 각종 식료품시장 등 모든 생필품이 자체 생산된다. 설령 몇년간 포위된 채로 전쟁을 치러도 이 성곽속에 거주하는 사람들은 큰 타격없이 살 수 있다고 한다.

아랍의 고유음식인 꾸쉬꾸쉬를 시식하기 위해 메디나거리에 있는 전통음식점을 찾았다. 먼저 빵과 수프가 나오고 이어서 콩요리 야채요리가 등장하고 마지막으로 그 음식점의 간판 요리가 나왔다. 쌀을 갈라서 올리브유에 볶은 밥 위에 홍당무 무 양고기 등을 스튜식으로 익혀 올려놓은 음식이 큰 접시에 담겨져 나왔는데 우리 입맛에도 잘 맞았다.

또 하나 아랍인들의 참모습을 엿볼 수 있는 곳은 '수크(Souk)다. 공개시장인 이곳은 서민들의 생활터전으로 각종 식료품과 일용품을 판매하는 장소다. 언제나 활기차고 열기가 넘치는 곳으로 구경거리가 무진장 있다.
 

세계적으로 유명한 훼즈의 메디나에서는 지금도 1천년 전의 피혁공장을 볼 수 있다.


3색의 조화, 마라케시

훼즈에서 마라케시로 가는 국도는 카사블랑카에서 훼즈에 이르는 길과는 달리 산악지역이어서 길이 험하고 매우 좁았다. 일반 여행객들은 이 길을 여행하지 않는다.

이 지역은 주변경관이 매우 아름답고 유목민의 생활을 엿볼 수 있고 산악 소수민족을 만날 수 있다는 이점이 있다.

베니메랄에서 마라케시로 가는 길은 넓고 순탄했다. 마라케시는 카사블랑카의 남쪽 23㎞ 지점에 있는 모로코의 제 2의 도시다. 이 도시는 남쪽 아드리스산맥의 순백색, 올리브의 녹색, 그리고 건물의 붉은 색이 3색의 조화를 잘 이루고 있다. 그 때문인지 관광객이 늘 붐볐는데 파리 직항노선이 있을 정도였다.

이 도시는 11세기 후반에 건립되었는데 역시 오래된 메디나의 거리가 볼 만 했다. 또 '테마엘 후나'라는 유명한 광장이 있다. 이 광장의 명칭을 번역하면 '죽은 자의 집합장소'라는 뜻이다. 실제로 이곳은 구시대의 공개처형장이었다.

현재는 모로코 사람들과 풍물을 한 눈에 볼 수 있는 무대와 같은 곳으로 유명하다. 약장사, 코브라 뱀놀이를 하는 사람, 노래 부르는 사람, 무언극하는 사람, 권투시합하는 사람, 갖가지 치장을 하고 물을 파는 사람, 곡예사, 토산품을 파는 사람 등이 광장을 꽉 채우고 있었는데 마치 극장의 무대를 보고 있는 듯한 느낌을 주었다.

이곳의 유명한 유적은 14세기 마린왕조가 건립한 이슬람건축의 최고걸작으로 알려진 '유세프 메델사'다. 이 건축물은 6백년된 최고(最古)의 목조건물인데 신학생들을 가르치는 곳이었다. 마라케시에서 1991년 새해를 맞은 나는 음식점에서 이곳의 전통음식인 양고기 바베큐와 포도주 그리고 전통적인 춤과 음악이 조화를 이루는 가운데에서 모로코의 밤을 즐겼다.
 

일종의 만물시장인 수크를 왕래하는 군중들. 이곳은 늘 활기가 넘치고 구경거리가 무진장 있다.
 

이 기사의 내용이 궁금하신가요?

기사 전문을 보시려면500(500원)이 필요합니다.

1991년 05월 과학동아 정보

  • 홍순태 교수

🎓️ 진로 추천

  • 역사·고고학
  • 문화인류학
  • 아프리카어문·아프리카학
이 기사를 읽은 분이 본
다른 인기기사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