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무정류자 모터 개발로 일어선「기술벤처」대표 정영춘

국내외특허 35건, 로열티만 연 10억원

 

첨단과학기술시대에 뒤떨어지지 않으려면 한우물을 파 '전문발명인'이 돼야 한다는 게 그의 지론이다.
 

중고등학교 대학교에서 초청연사로 불려갈 때마다 그는 '간판'이 아닌 '창조적인 정신의 연마'를 당부한다. 그의 화려한 경력을 설명하는 상장앞에서


과학동아가 92년 들어 새로 마련한 '우리시대의 발명가' 코너에 첫번째 인물로 선정된 정영춘씨는 만나기 전부터 그 독특한 이력때문에 적잖이 호기심을 불러 일으키는 이였다.

'정영춘(鄭榮春)
개인연구소장 코리아스엔(S.N)대표 고졸 대통령표창 전(前)KAIST연구원 삼성전자기술고문'

한국발명특허협회를 통해 얻은 그의 짤막한 신상소개서에는 상식이나 통념으로 쉽게 읽히지 않는 부분이 있었기 때문이다. 한국의 내로라하는 발명가 중 한사람이니 대통령표창이야 그럴 법한 일이라 치더라도 고졸(高卒)의 학력으로 석·박사학위소지자도 그 관문을 통과하기 어렵다는 KAIST(한국과학기술원)의 연구원을 한 일이나 은퇴한 전문엔지니어, 교수 등이 초빙되는 것으로 알려진 대기업의 기술고문을 맡고 있다는 사실이 쉽게 믿기지 않았다.

기자의 상상력을 최대한 발휘한 결과 수십년 현장경험을 통해 달인(達人)의 경지에 이른 장년기의 기술전문가를 그려볼 수 있었지만 그조차 여지없이 깨지고 말았다. 인터뷰 시간을 잡기위해 미리 전화를 걸었을 때 "제가 정영춘입니다"하는 수화기 저쪽의 목소리는 틀림없는 젊은이의 것이었기 때문이다.

58년 목포산(產). 우리나이로 따져 설흔넷이지만 실제로 만나본 그는 자기회사의 사장이란 직함조차 어색해 보일만큼 젊었다. 어떻게 해서 이렇게 빨리 한국발명계의 주목받는 인물이 되었느냐는 질문에 그는 전람회에 발명품을 선보이기 위해 6개월간 학교과학실서 먹고 잤던 광주일고시절 추억담을 꺼내며 "어떤 일에 미친다는 것은 좋은 일 아니냐. 요즘은 뭔가에 미친 사람이 너무 적은 것 같다"고 얘기의 물꼬를 튼다.

직업적인 발명가로서는 소장(少壯)축에 들만큼 젊은 나이지만 사실 정씨의 발명이력은 결코 짧은 것이 아니다. 이미 까까머리 중학생시절 집의 부엌 한칸을 개조한 것이나마 자기연구실을 가졌고(지금의 회사명인 S.N은 74년에 만든 꼬마연구실 이름을 그대로 따다 붙인 것이다) 대학입학을 '유보'하면서까지 10년 가까이 오늘의 자신을 있게 한 무정류자모터(brushless motor)개발의 한길을 고집스레 걸어왔기 때문이다.

단지 나이가 적다는 이유가 아니더라도 정씨는 자신이 '젊은 발명가'답게 과거와는 다른 모습의 발명가상을 새로 만들어내야 하리라는 생각을 갖고 있다. 그 첫째가 바로 '전문발명인'이 되는 것. 아이디어가 떠오른답시고 이것저것 집적대서는 현대처럼 거대장비와 세분화된 첨단과학기술 지식이 동원되는 시대에 결코 제 몫을 해내는 발명가로 살아남을 수 없다는 것이 그의 주장이다.

언행일치라고, 그는 국민학교 시절 선물로 얻은 조그만 광석(光石)라디오가 전파를 잡는 것에 한없이 신기해하고 '나도 이런 것을 만들어보겠다'는 결심을 한 이래 줄곧 자신의 연구과제를 전기·전자에 국한해왔다. 무정류자모터, 무접점식 형광등, 형광등 조도조절장치등 자타가 공인하는 그의 성공작들 이름만 훑어보아도 정씨의 '일로매진'을 확인할 수 있다.

그는 학교수업 수준을 뛰어넘는 문제에 궁금증이 생기면 대학교과서나 관련 전문서적들을 뜻이 통할 때까지 읽고 전파상아저씨로부터 대학교수까지 자신의 의문을 풀어줄 수 있는 사람이라면 누구든 스스럼없이 매달려 조언을 구했다고 한다. 83년 그가 대학도 아닌 고등학교 졸업의 학력으로 군복무기간조차 1년이나 남겨놓고도 국책과제인 '무정류자서보모터'(brushless servo motor) 개발팀 연구원으로 KAIST에 발탁된 것은 이런 '한우물 파기'로 축적된 그의 실력이 객관적으로 인정된 예가 아닐 수 없다.

마음먹은 일은 어떻게든 해내고야 마는 그의 강한 집념은 군대생활에도 적잖은 에피소드를 남겼다. 80년 4월 공군기술병 하사관으로 자원입대할 당시 그는 은사와 함께 전국과학전람회에 출품할 작품을 만들다 완성을 보지 못한 상태였다. 정식 배치도 받지않은 훈련병시절, 혹독한 하루일과를 끝내고도 그는 취침시간에 유일하게 불이 켜져있는 화장실에서 졸음을 참아가며 못다 끝낸 설계도를 그려 밖에 계시는 선생님께 내보냈다.

이런 사실은 결국 훈련소교장의 귀에까지 들어가 '2개월간훈련기간유급' 이라는 단서조항을 붙인 것이긴 했지만 참모총장 허가로, 전람회가 끝날 때까지 1개월간의 휴가를 얻을 수 있었다. '사병으로 훈련기간 중 1개월간 휴가는 아마 자신이 군 역사상 최초였을 것'이라는 정영춘씨는 "다행히 특상을 받아 면목이 섰고 애당초 유급이라던 훈련기간도 면제돼 뜻이 있는 곳에 길이 있다는 말을 실감했었다"며 호탕하게 웃는다.
 

얼핏보기엔 승승장구로 줄달음쳐온 것 같지만 그에게도 라면으로만 끼니를 때우며 재기를 노리던 어려운 시절이 있었다. 작업실서 잠깐 포즈를 취했다.


발명품 기업화 시켜야

'전문발명인'못지 않게 그가 중요하게 여기는 또 하나의 과제가 바로 발명품의 기업화문제. 그 자신은 발명가가 '돈벌이'라는 의미에서의 직업이 될 수 없으며, '발명이 미래라면 사업은 현실'이라고 생각하지만 세상에 태어난 발명품이 뜻도 못 펴 본채 죽지 않으려면 기업화가 될 수 있는 단계까지 어린아이 기르듯 보호하고 다듬어야 한다는 뜻을 강하게 품고 있다. 그가 이런 생각을 갖게 된 데는 나름의 쓴 경험이 크게 작용했다.

몇년전 자신의 무정류자모터 아이디어를 어느 중소기업에 넘겨 그 기업이 언론에 대대적으로 홍보를 하고 정부로부터 벤처 캐피털(venture capital) 육성자금까지 받아냈지만 기술개발보다는 사세확장에 더 투자를 한 결과 모터가 제대로 세상에 나오지도 못한 채 회사는 회사대로 부도를 맞았다. 이 일이 있은 후 그는 특히나 전문적인 기술이 요구되는 모터만큼은 사업화의 주체나 시기가 좋을 때까지 자신이 직접 만들어 기업에 공급하겠다는 뜻을 굳혔고 그 결과 1,2년 후면 수요업체의 주문개발계약에 따라 무정류자 모터를 생산하는 그 소유의 기업이 탄생하게 된다.

정영춘씨의 발명품 중에서도 가장 주목받고 있는 무정류자모터란 무엇인가. 고가의 전기제품에 주로 사용하는 직류(D.C.) 모터는 전자기력의 인력과 척력의 원리를 적용한 것으로, 각각 N극과 S극을 띤 고정자와 회전자의 밀고 당김을 구동의 원리로 삼는다. 그런데 회전자가 계속해서 움직이려면 고정자의 극을 그와 반대되는 것으로 바꿔줘야 하는데 이때 외부로부터 전기유입이 필요하며 그 전달은 정류자(brush)를 통해 이뤄진다. 그러나 전기가 흐르다보니 필연적으로 스파크가 생기고 구조상 소음도 커서 극도의 신뢰성이 요구되는 군사무기 등에는 이 모터를 대체할 정류자없는 미래형이 일찌감치 요구되고 있었다.

독일에서 20년전 이 분야가 최초로 연구되기 시작했고 뒤를 이어 미국 일본도 참여했지만 현재까지는 특수목적 외에 상업용으로 시판되는 나라가 없다. 정씨는 자신이 발명한 10여종의 무정류자모터가 제어계통을 단순화해 가격을 낮추었기 때문에 일본기업과의 경쟁에서도 밀리지 않을 것으로 자신한다.

대입 재수생시절 과학관에 계시던 옛 은사의 부탁으로 전시용 자기부상열차모형을 만들기 위해 자료를 찾다가 무정류자모터의 아이디어를 얻었다는 정영춘씨. 결국 떠오른 아이디어를 미루어놓지 못해 주위의 강권과 만류에도 불구하고 대학입학을 유보했던 그는 이제 국내특허 30건 국제특허 5건에 삼성 금성 등 국내 굴지의 기업들에까지 자신의 특허실시권을 주고 로열티를 받는 굵직한 발명가가 됐다.

그의 회사는 내년이면 로열티만도 매년 10억원정도를 회수하는 본격적인 기술생산, 판매회사가 된다. 발명가는 더 이상 '거리의 몽상가'일 수 없으며 첨단과학기술시대이므로 창조적 정신의 전문발명가가 더욱 필요하다는 정씨의 야심찬 소망이 실현된다면 우리 발명계는 21세기를 상징할만한 또 하나의 발명가상(像)을 갖게 되는 것이리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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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92년 01월 과학동아 정보

  • 사진

    김희철 기자
  • 정은령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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