스트레스가 항상 나쁜 결과를 낳는 것은 아니다. 오히려 적정량의 스트레스는 일을 추진하는데 활력소가 된다.
스트레스라고 하면 먼저 어떤 생각이 떠오를까.
노이로제 초조감 위궤양과 같은 심신증, 혹은 혐오스런 상사나 안하무인의 부하, 번거로운 예의범절과 과중한 업무량 등 여러가지 괴로운 이미지들이 머리속에 떠오를 것이다.
이들은 분명 스트레스와 관계가 있지만 스트레스 그 자체는 아니다. 노이로제와 같은 심신증은 스트레스가 나쁜 영향을 끼친 증상이며 보기 싫은 상사나 부하, 과중한 업무량 등은 스트레스 반응을 일으키는 요인이 되는 것으로 스트레서(스트레스원)라고 한다.
그러면 스트레스란 도대체 무엇이가. 한마디로 말해 스트레서와 스트레스증상 사이에 있는 '어떠한 기구'라고 표현할 수 있다.
인간이 어떠한 자극을 받게 되면 번쩍 정신이 들고 전신에 긴장감을 느끼며 심신이 흥분과 긴장상태에 있게 된다. 그 긴장은 좋은 결과를 이끌어 낼 수도 있고 공격성을 띠는 경우도 있다.
예를들어 기억하고 싶지 않은 과거의 실수가 문득 생각난다든가, 문화가 전혀 다른 외국에 갔을 때, 달성하기 힘든 목표를 강요당할 때는 그 내용에 관계없이 똑같은 긴장이나 흥분, 불안 등이 심신에 나타난다. 바로 이 생리적인 반응의 과정을 스트레스라고 한다.
자극에 대한 반응
그러면 이러한 스트레스가 왜 생기는 것일까. 이는 우리가 외부로 부터의 자극에 적응하여 생존해 가기 위해서다.
고무공을 예로 들어보자. 고무공은 손가락으로 누르면 움푹 들어간다. 그리고 그와 동시에 본래의 상태로 되돌아 가기 위해 손가락을 밀어내는 힘이 작용한다.
스트레스란 이와같이 특정 스트레스원에 의해 어떤 문제가 발생하면 그와 동시에 복원력이 작용하는 일련의 과정이다.
우리가 자극을 받았을 때 도전력과 의욕이 생기는 것은 인체의 복원력이 적당한 에너지로서 발휘되기 때문이다. 이런 의미에서 스트레스는 자극에 적응하기 위한 에너지를 발생시킨다고 할 수 있다.
일반적으로 스트레스라고 하면 좋지 않은 것으로만 생각한다. 친구와의 이별 좌천 인간관계의 갈등 등으로 생기는 긴장과 불안 등이 스트레스 과정은 분명히 유쾌한 것은 아니다.
그러나 행복을 느끼는 일 역시 스트레스과정에서 발생하는 것이다. 결혼 승진에 따른 긴장과 흥분도 역시 스트레스의 결과이기 때문이다. 이와같이 스트레스는 이를 받는 사람의 상태와 스트레스원의 내용에 따라 쾌적할 수도 불쾌하게 느낄 수도 있다.
적당량의 스트레스는 필요
그렇지만 아무리 좋은 스트레스원이라고 해도 너무 기쁜 나머지 심장발작으로 생명을 잃는 일도 있듯이 반드시 우리들의 심신에 유용하다고는 할 수 없다. 또는 업무량이 스트레스원이 되어 그 사람의 의욕을 자극하는 경우가 있는가 하면 중압감으로 느껴져 만성 불안이나 우울감, 위궤양과 같은 증상을 초래하는 경우도 있다.
어째서 똑같은 스트레스가 이렇게 상반된 결과를 낳는 것일까. 이는 스트레스 그 자체가 아닌 스트레스의 강도와 양, 혹은 개체와의 관계에서 발생하는 스트레스 정도에 달려있기 때문이다.
적당한 양은 우리의 심신을 자극하고 수행능력을 향상시키나, 그 양이 너무 많으면 근육과 심장에 통증이 생기거나 긴장한 나머지 사고력이 쇠퇴하거나 만성적인 불안으로 인해 질병이 유발된다. 이 스트레스 정도를 스트레스 수준이라고 한다. 스트레스 수준에 스트레스원이 첨가되면 그 자극의 크기에 따라 상승하고 그 스트레스원이 제거되면 다시 저하하여 원래의 상태로 되돌아간다.
스트레스 수준의 변화는 매우 미묘하기 때문에 상승과 저하는 무의식중에 반복되고 있다. 상승상태가 커지면 지나친 긴장과 피로감으로 나타난다. 우리는 보통 이 징조가 나타나면 휴식을 취하여 자연스럽게 균형을 유지한다. 그러나 이런 증상을 무시하고 스트레스 수준이 높은 상태로 방치해 두면 점차 스트레스 증상조차 느끼지 못하게 되어 마침내 질병이라는 형태로 나타난다.
지나치게 높은 스트레스 수준이 문제가 되는 것처럼 지나치게 낮은 스트레스 수준도 우리의 능력을 손상시킨다. 욕탕에 들어갔을 때와 같은 느긋한 상태로 힘든 업무를 감당할 수 없다. 다시 말해서 일을 수행하는 데 있어서 지나치게 높거나 낮은 스트레스 수준은 바람직하지 못하다는 것이다. 즉 최적의 스트레스 수준만이 개인의 수행능력을 향상시킨다.
따라서 스트레스관리는 어떻게 불필요한 스트레스원을 제거하고 최적 스트레스 수준을 유지하느냐가 주요한 과제다. 스트레스관리의 목적은 그 최적의 상태에서 당신 자신이 얼마나 자신을 실현하는가, 어떠한 가치를 발견하는가, 얼마나 자기답게 보다 잘 살아가느냐에 있다.
싸울까 도망갈까
좋든 나쁘든, 스트레스는 현대를 상징적으로 나타내는 말로서 사용되고 있다. 그렇지만 스트레스가 현대 사회에서만 존재하는 것은 아니다. 먼 옛날부터 있었으며 인간만이 아니라 동물에게도 있다.
현재 우리가 경험하고 있는 것과 똑같은 스트레스가 발견된 것은 수십만년전 유인원에서 인류로 진화한 때부터의 일이다. 그 무렵 우리 선조는 맹수와 치열한 생존경쟁을 하면서 죽느냐 사느냐의 기로에 서 있었다. 예를 들면 수렵 도중, 수풀 맞은 편에 맹수를 발견하자 그의 대뇌피질은 '위험! 위험!'의 신호를 내고 전신이 긴급 경계상태로 들어간다. 심장은 빨리 박동하고 산소를 많이 받아 들이기 위해 호흡은 빨라진다. 이 모든 경계자세가 준비되면 창을 한손에 들고 생존을 위한 싸움을 시작한다.
현대에 사는 우리들에게 짐승이 공격해 오는 일은 없지만 책임업무량과 중압감에 인해 일어나는 스트레스 반응도 기본적으로는 이와 다름없다. 스트레스반응이 자주 Fight or Flight Response(싸울까 혹은 도망갈까의 반응)이라고 불리는 것은 이 때문이다. 그리고 이러한 반응능력 덕분에 우리 인류는 환경에 적응해 현재의 번영을 이룰 수 있었다.
그러나 오늘날은 상황이 조금 다르다. 대부분의 경우, 완전한 싸움도 도피도 할 수 없는 채 부단히 경계자세를 취하고 있는 형편이다. 아무런 해결책도 없이 스트레스 수준만 계속 상승해 버린다.
기술의 진보라는 점에서 우리 인류는 놀라울 정도의 발전을 이루어 왔다. 그러나 스스로 만들어낸 진실된 과학기술 변화의 가속화에 대응해가기 위해 우리가 취하고 있는 대응법은 훨씬 시대에 뒤떨어져 있다.
지금이야말로 스트레스에 대한 새로운 대응법, 즉 우리 자신이 만들어낸 기술의 진보, 환경의 변화에 어울리는 주체적인 대응이 요구되고 있는 시점이다. 이제는 스트레스에 지배되는 편에서 스트레스를 조절해 가는 편에 서야 한다. 예전 우리 선조와는 달리 그 스트레스를 정확히 이해하여 자기자신을 관리해 가는 능력은 현대인의 필수조건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