옛부터 아름다운 항구도시로 알려져 왔으나 한편으로는 늘 공해와 수해를 입고 있는 곳이기도 하다.
이탈리아의 북동부, 아드리아해(Adriatic) 북안에 위치한 베네치아(Venezia, 영어로는 Venice라고 한다)는 1백18개의 섬들이 약 4백개의 다리로 이어지고 섬과 섬사이의 수로(水路)가 중요한 교통수단의 기능을 갖는, 독특한 시가지 구조를 가진 물의 도시다. 베네치아는 베네토(Veneto)주(州)의 주도(州都)이면서 '아드리아해(海)의 진주'라 불리는 아름다운 항구이며 역사깊은 도시로 유명하다.
3천8백m의 대운하
철도역인 산타루치아역은 섬어귀에 있다. 바다쪽 출구인 운하하구에 위치한 산마르코광장(Piazza di San Marco) 사이의 시내를 두군데로 나누며 역(逆) S자모양으로 달리는 약 3천8백m의 대운하(Canal Grande)와 1백60여개의 작은 운하가 있다. 베네치아 시가지는 자동차가 들어올 수 없어 다른 도시와는 색다른 느낌을 주는 곳이다. 또 베네치아는 셰익스피어의 희곡 '베니스의 상인'의 무대였던 도시이기도 하다. 영국의 화가 터너는 사파이어빛의 푸른 하늘을 배경으로 에메랄드빛 바다에서 솟아오른 장미빛과 흰색의 도시라고 묘사한 바 있다. 또한 베네치아는 이탈리아에서 로마(Roma), 피렌체(Firenze)와 더불어 가장 유명한 관광지이기도 하다.
대운하에서 펼쳐지는 곤돌라와 배의 축제 '레가타 스토리카'가 9월의 첫째 일요일에 거행되는데'아드리아해의 여왕'이란 베네치아의 영광을 흠뻑 느낄 수 있는 축제의 하루다. 화려한 의상을 입은 사람들이 중세를 흉내낸 배의 퍼레이드를 벌이면서 막이 오르고, 거리에는 축제의 분위기를 북돋는 음악이 울려 퍼지고, 운하의 주위에는 사람들로 넘치게 된다.
곤돌라경주가 축제의 정점이 돼 축제에 참가한 모든 사람이 흥분과 격정을 느끼게 한다. 이 곤돌라경주의 기원은 옛날에 집단 결혼식장에서 신부를 슬라브인들에게 빼앗긴 마을의 젊은이들이 신부를 다시 찾아 곤돌라에 태워 데리고 왔다는데서 시작됐다고 한다. 곤돌라와 보트가 생활수단인 이곳 사람들의 운하와 곤돌라와 보트에 대한 여러 감정이 집약된 축제라고 여겨진다.
노를 저어 움직이는 곤돌라
베네치아 시가지에는 자동차가 다니지 않아 우리가 생각하고 있는 택시나 버스가 없고 모터를 단 배가 모터택시와 모터버스의 역할을 하고 있다. 아직도 사람이 노를 저어 움직이는 곤돌라가 남아있어 물의 도시인 베네치아의 운치를 한층 더 느낄 수 있다.
유리세공업으로 유명한 무라노섬은 실제로 유리를 입김으로 불어 만드는 과정을 볼 수 있는 곳이고, 국제영화제 개최지 해수욕장 카지노로 유명한 리도도 베네치아에 포함돼 있다.
이곳의 역사는 A. D. 567년에 이민족의 침입에 쫓긴 롬바르디아(이탈리아의 북부지역)의 피난민이 만(灣)기슭에 모여 산데서 시작된다. 6세기 말에는 12개의 섬에 마을이 형성되며 이후 급속히 무역의 중심지로 성장해 간다. 역S자형의 대운하가 시가지 중심을 지나가고 운하하구에 장대한 산마르코광장(廣場)이 자리한 기본적인 도시형태는 산마르코대성당을 비롯한 교회 궁전 등과 더불어 13세기에 벌써 완성돼 있었다. 14세기에서 15세기 초에는 해양무역이 절정을 이뤘으며, 19세기 후반부터는 이탈리아 경제의 중심인 북부평야를 배후지로 하는 항구도시로 발전하게 되었다.
차츰 지반이 내려앉아
그러나 베네치아의 석조건물들은 나무 말뚝과 진흙 위에 지은 것이기 때문에 수세기동안 지반의 약함과 침강으로 인해 많은 어려움을 겪어 왔다. 이러한 사태가 급격히 악화된 것은 제2차세계대전 이후부터였다. 본토인 육지쪽에 공장들이 들어서고, 베네치아 개펄의 밑바닥에서 대량의 공업용수를 추출해 사용함으로써 이 지역의 지하수면이 낮아져 지반이 내려앉게 된 것이다. 또한 주변의 공장들이 공해물질을 배출해 대기와 수질을 오염시키고 있고, 이로 인한 주변환경의 변화로 산성비가 내리고 있는 실정이다.
베네치아에 서식하고 있는 수만마리의 비둘기들이 배설하는 배설물도 공해의 한 요인이 되고 있다. 끝없이 몰려오는 여행객에 의한 공해도 무시할 수 없는 요인의 하나다. 이러한 요인들은 베네치아의 많은 건물과 조각품들을 조금씩 침식해가는 악영향으로 간주할 수 있다.
이러한 요인 이외에도 지난 수십년 동안 근접한 아드리아해가 서서히 상승하고 있어, 이로 인한 피해가 날로 증가하고 있는 실정이다. 베네치아는 1971년부터 1985년 사이에 49번 홍수의 피해를 겪어야만 했다. 1966년 11월4일엔 해수면이 1백95㎝나 상승, 산마르코광장이 1백20㎝나 탁류에 뒤덮였던 적이 있다. 또 다른 극단적 예로는 해수면이 매우 낮아져 녹조류가 급격히 증가, 건조한 상태에서 도시의 암석들을 심하게 풍화시킨 적도 있다.
밀물 때면 물에 잠기기도
앞에서 설명한 바와 같이 베네치아의 수해의 원인으로는 두가지가 거론된다. 첫째로 지각(地殼)의 변동으로 인해 해수면이 상승하고, 둘째로 베네치아가 위치한 섬들의 기반이 침강하기 때문이다. 대홍수가 있었던 이후 1960년대 말부터 베네치아를 구출하기 위한 야심적 보존사업이 시작됐다. 세계각국에서 파견된 전문보호단체들이 베네치아의 건물들을 대기오염과 수해로부터 구출하는 각종 사업을 추진한 것이다.
베네치아를 만성적인 피해로부터 구하기 위해 조수의 높낮이에 의한 피해를 줄이는 작업과 폭풍등에 대한 대비가 착수됐다. 현재 이러한 '모세의 계획'의 일환으로 15m 높이의 거대한 뚝을 건설중에 있다.
이탈리아 정부는 베네치아와 그 주변 공장지대에 새로운 공업용수를 공급, 1970년대에는 베네치아의 함몰현상을 어느 정도 막을 수 있게 됐다고 한다. 개펄로 흘러 들어가는 강물을 직접 추출, 거대한 수도관을 통해서 공장지대의 공업용수로 공급한 것이다. 그 덕분에 이제는 지하수를 뽑아내지 않아도 된다. 따라서 지하수면도 원래의 수준으로 회복됐다. 그러나 아직도 1년이면 몇차례씩 밀물때 물에 잠기기 때문에 베네치아의 보존작업은 여전히 계속되고 있다. 현재 내해입구에 이동식 방조제를 건설하는 공사도 진행중에 있다.
「아드리아해의 여왕」
베네치아는 옛부터 아름다운 항구도시로 알려져 왔으나 실제로는 공해와 수해의 어려움이 많은 곳이다. 그러나 옛 영광을 간직한 도시로서 문화적 가치가 높은 곳임은 부정할 수 없는 사실이다. 베네치아 하면 베네치아의 중심이며 꽃이라고 할 수 있는 산마르코광장에 관한 얘기를 하지 않을 수 없다.
필자에게 유럽에서 연구할 좋은 기회가 주어져 베네치아를 방문한 적이 있는데, 진정 이색적인 도시였고 가볼만한 곳이라고 느꼈다. 산마르코교회 앞에 있는 산마르코광장은 전세계 여행자들이 즐겨 찾는 곳이다. 정면에 산마르코교회(Basilica San Marco), 그 오른쪽은 두칼레궁전(Palazzo Ducale), 그 앞에 있는 날개달린 사자상은 베네치아수호신이며 산마르코의 상징이다. 또 코레르박물관(Museo Correr)이 있고, 광장에는 4각의 대종루가 있는데 승강기로 위까지 올라갈 수 있다. 해양박물관(Museo Storico Navale)은 옛날에 베네치아가 '아드리아해의 여왕'이었다는 것을 증명해 주는 박물관이다.
카사노바와 에스프레소
또한 이곳에서 빼놓을 수 없는 곳으로는 산마르코광장에 면한 유명한 카페인 카페 플로리안(Caffè Florian)을 들 수 있다. 1720년에 창업한 뒤 2백70여년에 걸쳐 베네치아사람들이 사랑했던 곳으로 지금도 19세기 초기의 모습이 그대로 남아 있다. 이 고전적이고 우아한 분위기가 방문객을 매료시킨다. 이 카페가 갖는 독특한 분위기 때문에 많은 유명인의 발길이 끊이지 않는다고 한다. 18세기의 유명한 플레이보이 카사노바도 이 카페의 단골로, 도제궁전의 감옥에서 도망쳐 나온 뒤 이곳에 들러 에스프레소(커피의 일종)를 마쳤다고 한다. 그런가 하면 바이런이나 괴테 등 문학가들에게 사랑을 받은 카페이기도 하다.
옛 영광과 현재의 수해와 공해의 어려움을 동시에 안고 있는 베네치아가 영원히 아름다운 물의 도시로 보존돼 세계인의 사랑을 계속 받기를 바라는 마음 간절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