왜 하필이면 캄브리아기에 이르러 생물들이 「폭발적 번성」을 하게 됐을까?
지구는 태양계에서 뿐만 아니라 우리가 관찰할 수 있는 범위내의 우주에서 유일하게 생물이 살고 있는 곳이다. 왜 지구에만 생물이 있는가. 생물은 언제부터 지구상에서 살기 시작했을까. 옛날에도 현재와 같은 종류의 생물들이 살고 있었을까. 만일 옛날의 생물들이 지금과 달랐다면 어떠한 과정을 거쳐서 현재에 이르렀을까. 우리 인간이 품고 있는 생명에 대한 의문은 끝이 없다.
현재까지 알려진 지구상의 생물 종류는 1백50만종 정도다. 그러나 학자들은 아직 알려지지 않은 종류가 족히 이 수치의 3~5배는 될 것으로 추정하고 있다. 다시 말하면 현재 지구상에는 6백만~9백만종의 생물들이 살고 있는 셈이다. 이처럼 많은 종류의 생물들이 동시에 지구상에 나타났다고 보기는 어렵다. 실제로 화석기록을 보면 오래된 암석일수록 산출되는 화석의 종류도 적고 형태도 단순한 것이 보편적이다.
지금으로부터 약 46억년 전 우리의 지구가 태양계를 구성하는 하나의 행성으로 탄생했을 무렵 지구표면의 온도는 1천℃이상으로 매우 뜨거운 상태였다. 이렇게 뜨거운 상태에서 생명체가 존재했을 가능성은 거의 없다. 지구탄생 후 처음 수억년 동안에 일어난 원시지구의 진화과정을 통해 지구표면은 어느 정도 식게 되었고 대륙과 해양이 형성되기 시작하면서 지구상에는 많은 변화가 일어나게 된다. 아마도 지구상의 최초의 생명은 이 과정에서 발생했을 것이다. 지구의 대기조성이나 해양환경이 생명이 탄생하기에 적절한 조건을 갖췄거나, 아니면 지구 바깥에서 이미 만들어진 생명체의 씨앗(?)이 지구에 들어와서 생물의 모습을 만들었을지도 모른다.
화석기록에 따르면 지금으로부터 약35억년 전에 광합성을 하는 단세포 원핵생물(原核生物, 세포질과 핵이 분리돼 있지 않고 유전물질인 DNA가 조직화돼 있지 않은, 단순한 세포로만 이뤄진 생물, 예를 들면 박테리아나 남조식물)이 출현했을 것으로 보인다. 또 약20억년 전 무렵에는 단세포 진핵생물(眞核生物, 여러가지 기능을 담당하는 기관, 예컨대 핵 미토콘드리아 색소체 등이 세포질과 구분되고 내부구조가 복잡한 세포로 이뤄진 생물. 박테리아와 남조식물을 제외한 지구상의 거의 모든 생물은 진핵생물이다)이 존재하기 시작한 것으로 알려져 있다. 좀 더 복잡한 다세포 생물이 언제 처음으로 출현했는지는 확실히 밝혀져 있지 않지만 이들이 지구상에서 번성하기 시작한 것은 지구가 탄생한지 40억년이 지난 후였다.
진화론의 걸림돌로 작용해
지질시대 구분에 있어서 가장 중요한 시점인 선(先)캄브리아시대와 캄브리아기의 경계, 다시 말해 선캄브리아시대와 고생대의 경계는 단단한 광물질의 껍질 또는 골격을 가진 다세포 동물(후생동물) 화석의 산출유무로 정해진다. 방사성 동위원소를 이용한 절대연령측정을 통해 선캄브리아시대와 캄브리아기의 경계는 약5억7천만년 전으로 밝혀졌다. 실제로 이 시점을 기준으로 삼았을 때 그 양편의 화석 산출양상이 다르다. 캄브리아기 이후의 암석에서는 매우 다양한 화석이 산출되는 반면 캄브리아기 보다 오래된 암석에서는 화석의 산출이 적다.
이처럼 캄브리아기 퇴적층에서 갑자기 많은 후생동물(後生動物)화석이 산출된다는 사실은 지질학에서 설명하기 어려운 문제중의 하나다. 일찌기 찰스 다윈(Charles Darwin)이 '종의 기원'(The Origin of Species)을 저술했을 때에도 캄브리아기에 들어서면서 나타났던 생물의 '폭발적 번성'은 그의 진화이론을 설명하는데 가장 커다란 걸림돌이 됐다. 다윈은 이 문제에 대한 해답으로 캄브리아기 퇴적층 아래에는 퇴적기록으로 남지 않은 부분이 있기 때문이라는 약간 궁색한 설명을 했다. 하지만 최근의 연구에 따르면 선캄브리아시대의 퇴적층이 쌓인 후 퇴적작용의 중단없이 곧바로 캄브리아기 퇴적층이 쌓인 곳이 많다고 한다. 아울러 선캄브리아시대 퇴적층에서도 후생동물 화석이 전혀 산출되지 않는 것은 아니라는 증거들이 속속 등장했다.
무척추동물의 조상
캄브리아기 초에 단단한 골격을 가진 무척추동물화석이 갑자기 많이 산출된다는 사실은 분명 그 이전에 어떠한 형태로든지 조상이 될 수 있는 동물이 존재했다는 것을 의미한다. 20세기 후반에 들어와서 6억년 전 무렵의 후생동물 화석들이 세계 여러 곳에서 보고됐다. 이 화석들을 보통 에디아카라 동물군(Ediacara fauna)이라고 부른다. 에디아카라 화석의 특징은 단단한 껍질 또는 골격을 갖고 있지 않다는 점이다. 이는 비교적 얕은 바다에 살았던 생물들이 빠른 퇴적작용으로 인해 매몰됐음을 보여준다.
호주의 에디아카라 화석군에서 보고된 생물종은 비교적 다양하다. 예컨대 자포동물에 속하는 해파리류와 산호의 일종인 바다조름류, 환형동물 그리고 소속을 정확히 알 수 없는 것들이 다수 발견됐다.
에디아카라 화석이 산출되는 퇴적층 아래에는 항상 빙하퇴적물이 있다. 약7억년 전과 6억년 전 사이에 쌓인 것으로 알려진 빙하퇴적층은 전세계적으로 넓게 분포돼 있으며, 따라서 이 기간은 매우 추운 빙하시대였을 것으로 추정할 수 있다. 아마도 이 빙하시대는 지구의 자연환경에 중요한 변화를 주었을 것이다. 약6억년 전의 빙하기가 끝나면서 기후는 다시 온난해지고 그 결과로 빙하가 녹으면서 대륙의 낮은 부분은 바다의 침입을 받기 시작했을 것이다. 이때 대륙의 낮은 부분에 형성된 얕고 넓은 바다는 생물들이 살기에 적합한 장소가 됐을 것이다. 많은 학자들 사이에서 이 에디아카라 동물군은 후생동물들이 다양해지기 시작하는 첫 단계로 인정되고 있다. 그러나 훨씬 더 다양한 후생동물이 나타난 것은 그로부터 약 3천만년이 지난 후인 5억7천만년 전에 이르러서다.
껍질파와 비(非)껍질파가 공존하고
캄브리아기가 시작하는 시점인 5억7천만년 전은 단단한 골격을 가진 생물의 화석이 처음으로 출현한 시기다. 생물들이 단단한 골격을 갖게 됐다는 사실은 지구상에 새로운 종류의 생물이 나타났다는 것을 의미한다.
캄브리아기 처음 1천만년을 대표하는 생물은 소형패각화석(small shelly fossils)과 고배류인데 흔히 이 기간을 토모시언(Tommotian)시대라고 한다. 소형패각화석은 대부분이 원추형 또는 관모양이고 크기는 1mm미만으로 매우 작다. 그 껍질은 인산염 광물로 이뤄져 있다. 이들과 현생동물과의 관계는 분명하지 않지만 아마도 연체동물이나 갑각동물에 속할 것으로 간주되고 있다. 고배류는 외견상 해면동물과 비슷하지만 구조적으로는 해면동물과 다르며 석회질 골격을 가진다.
토모시언시대의 다음은 애타배니언(Adtabanian)시대인데 이때 여러 종류의 새로운 동물이 출현한다. 그 시대의 대표적 생물은 삼엽충 완족동물 극피동물이다. 그중에서 삼엽충은 토모시언시대를 제외한 캄브리아기 전기간중 가장 번성했던 생물이었으므로 캄브리아기를 가리켜 '삼엽충의 시대'라고도 부른다. 삼엽충은 절지동물에 속하는 생물인데 매우 복잡한 형태를 보여준다. 여러 개의 마디로 이뤄진 등껍질은 머리 몸통 꼬리로 나뉘며 배면에는 촉각과 다리가 달려 있다. 크기는 수mm에서 수십cm에 이른다.
삼엽충은 탈피를 통해 성장하게 되므로 탈피한 후 남긴 껍질이 무수하게 화석으로 남아 있다. 이들중에는 캄브리아기의 해저를 기어다니면서 생활했던 종류도 있었고 어떤 종류는 물 속을 헤엄치면서 다니기도 했다.
애타배니언시대의 동물이 토모시언시대의 동물과 현저하게 다른 점은 크기가 무척 크다는 점과 형태에 있어서 현생생물에 가깝다는 점이다. 또한 대부분의 토모시언 동물들은 캄브리아기 동안에 지구상에서 사라져 벼렸지만 애타배니언 동물들은 지속적으로 발전, 캄브리아기 이후에도 고생대의 생물계를 지배했다.
애타배니언시대 이후 생물의 다양한 번성을 보여주는 놓은 예는 캐나다의 중기 캄브리아기(약5억3천년전) 퇴적층인 버제스셰일(Burgess Shale)에서 발견된 기묘한 형태의 다양한 화석들이다. 버제스셰일에서는 약1백20종의 화석이 보고됐다. 이중 약40%는 삼엽충을 포함하는 절지동물에 속하고, 25%는 환형동물 그리고 나머지 35%는 다른 생물들과 관련이 있는 것으로 알려져 있다. 그곳에서 발견된 상당수의 표본은 껍질을 갖고 있지 않아서 육질부의 세부 형태를 잘 보여준다. 이 화석들을 통해 캄브리아기에는 껍질을 가진 동물들 뿐만 아니라 화석기록으로 남기 어려운 연약한 육질부로만 이뤄진 많은 종류의 생물들이 공존했음을 알게 되었다.
생물의 골격은 어떻게 생겨났을까?
캄브리아기 시작과 함께 단단한 골격을 가진 생물들의 화석이 갑자기 나타나는 까닭은 아직 만족스럽게 설명되지 않고 있다. 현재 많은 생물들은 자신의 활동을 통해 광물질로 이뤄진 골격이나 껍질을 만든다. 생물의 골격을 이루고 있는 광물의 종류는 약40종으로 알려져 있지만 상대적으로 중요한 종류로는 방해석과 아라고나이트 같은 탄산염광물, 인산염광물 그리고 규질성분이 꼽히고 있다.
생물의 조직으로 골격이 형성되면 아마도 생물체의 크기가 증가하는데 도움을 줄 수 있었을 것이다. 생물의 몸체가 커지면 다른 동물의 공격으로부터 살아남을 가능성이 크기 때문에 생물의 크기 증가와 골격형성은 방어 목적에 따른 적응일 수 있다.
연체동물이나 완족동물은 연약한 육질부를 석회질로 이뤄진 두 개의 조개껍질(貝穀, shell)이 감싸는 형태를 취하고 있다. 아마도 다른 육식동물의 공격으로부터 자신을 방어하기 위해 단단한 껍질을 지니게 됐을 것이다. 다른 한편으로는 조개껍질 내의 환경을 일정하게 유지함으로써 급변하는 주변환경으로부터 보호받으려는 의도도 숨어 있을 것이다. 한편 땅을 파고 사는 동물(환형동물이나 절지동물 등)의 경우, 좀 더 효과적으로 퇴적물을 뚫기 위해서는 연약한 육질부로 직접 파기 보다는 단단한 껍질을 이용해 파는 편이 훨씬 용이했을 것이다.
알다시피 삼엽충은 등부분이 단단한 껍질로 이뤄져 있다. 여러개의 다리는 등껍질과 연결돼 있다. 아마도 등껍질에 연결된 긴 다리는 삼엽충의 이동을 원활하게 하는 기능을 수행했을 것이다.
생물골격의 형성은 생물의 종류와 환경에의 적응방법에 따라 무척 다양한 양상으로 나타났을 것으로 추정된다. 도대체 왜 여러 종류의 생물들이 매우 짧은 기간(캄브리아기)동안에 거의 동시에 골격을 형성시켰을 까. 선캄브리아시대 말에서 캄브리아기 초로 넘어가는 시기에 전세계적으로 영향을 주었던 어떤 환경적(또는 생태학적) 변화가 있었기 때문일까.
자외선으로부터 보호받기 위해
어떤 학자들은 약6억년 전 빙하시대가 끝나면서 조성된 해양환경의 커다란 변화 때문이라고 주장하고 있다. 빙하시대의 해수온도가 낮아져 석회질 성분의 용해도가 커졌는데 빙하기가 끝난 후 해수온도가 증가하면서 바다 속에 녹아 있던 많은 양의 석회질 성분들이 생물의 골격형성에 사용됐다는 생각이다.
또 어떤 학자들은 육식동물의 공격으로부터 방어하기 위해 생물의 골격이 형성됐다고 주장한다. 육식동물이 언제 처음으로 지구상에 출현했는지는 아직 명확히 알 수 없지만 적어도 중기 캄브리아기의 버제스셰일 화석중에 여러 종류의 육식동물이 존재한다는 사실은 잘 알려져 있다.
만일 선캄브리아시대의 동물이 모두 초식성이었다면 보호목적의 단단한 껍질은 필요하지 않았을 것이다. 그러나 선 캄브리아시대가 끝날 무렵에 육식동물이 출현했다면 많은 동물들은 자신들의 생존을 위해 껍질 또는 골격을 필요로 했을 것이다.
또 다른 학자들은 대기중의 산소함량과 관련지어 설명하기도 한다. 선캄브리아시대 말인 약6억년 전의 대기의 산소함량은 현재의 약10% 정도였을 것으로 추정하고 있다. 그러므로 대기중의 오존량도 훨씬 적었을 것이고 따라서 오존층이 형성돼 있지 않았기 때문에 태양으로부터 쏟아져 들어오는 생물에게 치명적인 자외선으로부터 보호받을 수 없었을 것이다. 이를테면 생물의 껍질형성은 유해한 자외선으로부터 보호받기 위한 적응의 결과라는 얘기다. 그들은 또 생물의 골격이나 근육을 만드는 필수적 성분인 콜라겐(collagen)을 합성하려면 충분한 산소가 필요한데 아마도 캄브리아기 초에 이르러서야 대기중의 산소함량이 콜라겐 형성을 가능하도록 하는 수준에 도달했을 것이라고 주장한다.
또 다른 학자들은 골격을 가진 생물의 출현은 진화하는 과정에서 자연스럽게 발생할 수 있는 것이므로 골격을 지닌 생물의 출현에 특별한 의미를 부여할 필요가 없다는 견해를 표명하기도 한다.
캄브리아기 초에 나타났던 생물의 폭발적 번성은 선 캄브리아시대 말에 에디아카라 동물군이 나타난 이후 새롭게 형성된 온난한 해양환경 아래에서 생물이 급격하게 발전했던 기간을 의미할 뿐이라는 생각이다. 일반적으로 한 생활공간에서 충분한 영양분이 공급되기만 하면 생물의 수와 다양도가 처음에는 급격히 증가하지만 어느 한계에 도달하면 그 증가추세가 급격히 둔화된다는 사실은 잘 알려져 있다.
선캄브리아시대 말과 고생대 기간에 관찰된 해양동물 화석종의 증감을 나타낸 곡선을 보면 흥미로운 사실을 발견할 수 있다. 즉 캄브리아기 초에 급격한 수의 증가를 보인다음 증가추세가 일단 둔화되는 기간을 거친다. 그후 오르도비스기에 또 한번의 급격한 생물종의 증가가 나타나고, 그 이후로는 고생대 전기간을 통해 거의 평형상태를 이루게 된다.
강원도 지방에서 캄브리아기 화석 발견돼
우리나라의 강원도 남부에 넓게 분포된 캄브리아기 지층에서도 많은 동물화석이 발견됐다. 비록 캄브리아기의 시작 부분인 5억6,7천만년 전의 지층은 아직까지 알려져 있지 않지만 그보다 약간 후에 쌓인 퇴적층들은 여러 곳에 존재한다. 특히 강원도 영월부근에 분포된 약5억3천만년~5억1천만년 전 사이에 퇴적된 캄브리아기 퇴적층에서 잘 보존된 삼엽충화석이 다수 나오고 있다. 그런데 삼엽충의 머리 몸통 꼬리가 모두 붙어서 발견되는 경우는 매우 드물며 대부분은 각 부분들이 분리된 상태로 산출된다.
실제로 캄브리아기 동안에 우리나라의 강원도 일대는 비교적 얕은 바다로 덮여 있었으며 이 바다는 삼엽충 완족동물 등 무척추동물들이 살기에 적합한 장소였다. 이들 삼엽충에 대해 자세히 연구하면 캄브리아기 동안에 우리나라 주변은 어떠한 모습을 하고 있었는가를 밝혀낼 수 있을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