d라이브러리









[이소연이 만난 우주인] 우주의 아름다움을 아이들과 나눈 니콜 스탓

 

어린 소녀들과 젊은 여성들은 재미있고 불가능하다고 여겨지는 도전적인 일을 하는 다른 여성을 볼 필요가 있습니다. 저는 진심으로 제가 그것을 보여줄 책임이 있다고 믿었습니다. 
“Young girls and young women need to see other women doing interesting and challenging things-things they might think are impossible, I really believe I have a responsibility to be present and to show them what’s possible.”_니콜 스탓, 2017년 ‘포브스’ 인터뷰 中

 

 

“이제껏 만났던 우주인에 대해서 써보면 어때요?”

 

과학동아의 제안을 받고 순간 마음이 움직였다. 우주인으로서 경험한 일들을 기록할 수 있는 좋은 기회였다. 우주 비행 이후 여러 우주 관련 학회와 행사에서 선배 우주인을 만났고, 직접 이야기를 들으며 배울 기회도 많았다. 하지만 잘 할 수 있을까 하는 걱정에 용기를 못 내던 터였다.

 

‘그렇다면 누구의 이야기부터 시작해야 할까.’ 다음은 대상에 대한 고민이었다. 전 세계 우주인들이 모이는 우주인 모임(Association of Space Explorers)의 회원만 38개국 400명이 넘고, 그중 만났거나 인사했던 사람들이 200명은 족히 됐다.

 

세계 최초 여성 우주인 발렌티나 테레쉬코바(Valentina Tereshkova)의 얼굴도 떠오르고, 세계 최초로 선외 비행(EVA·Extravehicular activity)에 성공한 알렉세이 레오노프(Alexey Leonov)도 머리를 스쳤다(그는 러시아에서 나의 할아버지를 자처했다).

 

우주비행을 함께 했던 우주인들도 내겐 각별했다. 소유스호의 지휘관이었던 세르게이 볼코프(Sergey Volkov)부터 엔지니어인 올레그 코노넨코(Oleg Kononenko), 당시 국제우주정거장 지휘관이었던 페기 윗슨(Peggy Whitson)과, 지금도 태권도 하는 아들 사진을 보내며 안부를 전하는 개럿 레이스만(Garrett Reisman)까지. 하지만 오랜 고민 끝에 내린 첫 호의 주인공은, 가장 최근에 함께 이야기하고 프로젝트도 같이 한 미국항공우주국(NASA)의 여성 우주인 니콜 스탓이다.

 

 

 

 

“우주복 프로젝트를 함께 하지 않을래?”

 

2018년 10월 말 한국을 잠시 방문하기 위해 준비를 하던 중 니콜에게 e메일을 받았다. 니콜은 첫머리에 갑자기 부탁하는 e메일을 보내 미안하다고 하면서 ‘스페이스슈트 아트 프로젝트(Space for Art-Spacesuit Art Project)’를 함께 하지 않겠느냐고 제안했다. 니콜이 NASA 우주인에서 은퇴한 뒤 그림을 그리고 우주를 주제로 예술 활동을 하고 있다는 것은 알고 있었지만 함께 할 수 있다는 생각은 전혀 못 했다. 

 

평생을 공학과 함께했던 나는 우주에서 본 멋진 지구를 그림으로 표현해 내는 니콜이 항상 부러웠다. 많은 우주인들이 지구 귀환 후 ‘우주에서 지구를 내려다 볼 때, 또 더 먼 우주를 바라볼 때 어떤 느낌과 생각이 드는가?’라는 질문을 받는다. 하지만 대부분의 우주인들이 전투기 조종사이거나 과학자 또는 공학자인 덕분에(?) 느낌과 생각에 대한 표현이 서툴 때가 많다.

 

 

니콜은 그런 면에서 특별했다. 그는 최근 몇 년 동안은 병원에서 예술 치유 활동을 하면서 미국의 소아암 환자들과 함께 그림을 그리고, 그 그림을 이어 붙여 우주복을 제작하는 우주복 프로젝트를 하고 있었다. 그 우주복은 국제우주정거장(ISS)에 보내지기도 했다. 이는 많은 소아암 환자들에게 우주에 대한 영감과 희망을 심어줬다.

 

니콜은 내게 보낸 e메일에서 우주복 프로젝트를 미국 밖 다른 나라들로 넓혀가고 있다며, 한국 아이들도 함께 할 수 있도록 도와줄 수 있는지 묻고 있었다. 냉큼 답장을 보냈다. 그리고 과거에 기부와 자선활동을 같이 했던 가수 션 씨의 도움을 받아 연세암병원 병원학교 선생님에게 연락했다. 그땐 몰랐다. 그 경험이 내 삶에 얼마나 큰 교훈이 될 것인지.

 

 

“우주인은 꿈도 꾸지 않았다”

 

니콜과의 인연은 러시아에서 훈련을 받으면서 시작됐다. 2007년 7월 니콜과 나는 다른 러시아, 미국 우주인들과 함께 우크라이나 흑해 해상에서 생존훈련을 받았다. 우주인은 물론이고 여러 훈련 교관들과 러시아 해병대 구조팀, 그리고 러시아 해군 함정이 동원되는 큰 훈련이었다. 

 

 

수많은 사람들 가운데 니콜과 나는 몇 안 되는 여성 참여자였다. 그 덕분에 이야기도 많이 나누고, 훈련받은 것에 대해 서로 팁을 알려주기도 했다. 경험과 마음을 공유할 편한 선배가 있다는 것이 참 든든하고 좋았다.

 

마침 또 니콜은 나와 같은 공학자였다. 정확히는 내가 초등학교에 다니던 1988년부터 플로리다주에 있는 케네디 우주센터에서 엔지니어로 일한 대선배였다. 플로리다주에서 자란 그는 비행기를 자주 접했고, 하늘을 나는 것에 대해 관심이 많아 가족과 함께 공항으로 비행기 구경을 다녔다고 했다. 고등학교를 졸업하자마자 자가용 조종사 자격증을 땄고, 대학에선 항공우주공학을 공부했다. 이런 이력을 처음 들었을 때 나는 그가 왠지 어릴 때부터 우주인을 어렵지 않게 꿈꿨을 것이라 짐작했다.

 

하지만 우주인을 언제부터 꿈꿨는가 하는 질문에 그가 하는 대답을 듣고 깜짝 놀랐다. 우주인은 무언가 특별하게 태어난, 평범하지 않은 사람으로 느껴져 NASA에서 엔지니어로 일하는 동안에도 감히 꿈도 꾸지 않았다는 게 아닌가.

 

그런 그가 우주인이 되기로 결심한 건 우주인을 가까이에서 지켜볼 기회가 생기면서다. 우주인의 우주비행 모사 훈련 엔지니어로 일하며 의외로 많은 우주인들이 대부분의 시간을 지상에서 보내고, 엔지니어들과 유사한 연구를 하고 있다는 사실을 알게 됐다. ‘지상에서 하는 대부분의 일이 나랑 비슷한 것 같은데, 나도 우주인이 돼 우주비행을 할 수 있지 않을까’ 하는 생각이 자연스럽게 들었다고 했다.

 

묘한 동질감이 느껴졌다. 나 또한 ‘우주에서 다양한 실험을 수행할 사람으로 우주인을 선발한다는데, 내가 날마다 하는 일이 실험이면 나도 우주인이 될 수 있지 않을까’ 하는 생각에 우주인에 지원했기 때문이다.

 

 

 

“가족과 멀리 떨어지는 게 가장 힘들어”

 

니콜은 대부분의 훈련을 어린 아들과 함께 다녔다. 2007년 우크라이나 흑해 해상에서 생존 훈련을 받던 때만 빼면 말이다. 니콜은 2011년 2월, 마지막 우주비행인 우주왕복선 ‘디스커버리호’ 발사 전날 밤 가족과 함께 하는 자리에 나를 특별 손님으로 초대했다. 그 자리에서 남편인 크리스와 아들 로만을 만났다. 로만은 의젓하게 웃으며 우주로 가는 엄마에게 손을 흔들었다.

 

남편과 아들을 두고 몇 달 동안 우주로 가는 느낌이 어떨까. 니콜에게 이런 질문을 직접 하기까지는 오랜 시간이 걸렸다. 그는 우주인으로서의 시간 중 가장 어려운 부분이 어린 아들과 남편으로부터 멀리 떠나야 하는 것이었다고 답했다. 우주인이 되면 우주뿐만 아니라 미국 전역으로, 또는 전세계로 훈련을 떠나야 하기 때문이다.

 

니콜은 아들 로만에게 엄마가 어떤 일을 하고 있는지 이해시키기 위해 최대한 모든 훈련과 지상에서의 시간을 함께하려고 노력했다고 말했다. 로만이 일곱 살, 아홉 살일 때 국제우주정거장으로 우주비행을 떠났는데, 당시 로만이 본인도 지상 크루 중 하나라고 믿었을 정도로 말이다. 1년 전에 본 로만은 그새 훌쩍 자라 청년이 돼 있었다.

 

니콜의 남편인 크리스는 내가 국제우주대학(ISU· International Space University) 학생이 되기 전부터 국제우주대학의 교원으로 학생들을 가르치고 있었다. 그렇게 처음엔 학생과 교수로 만나 지금은 국제우주대학에서 함께 강의하는 동료가 됐다.

 

니콜의 발사나 훈련 중 만난 크리스는 세상 누구보다 니콜의 든든한 지지자였다. 니콜은 평소에도 본인이 하는 일을 잘 이해하고 지지해주는 남편에게 고마워했다. 본인이 멀리 떠나있는 동안 아들을 포함한 지상에서의 모든 일을 잘 챙겨주는 남편이 없었다면 우주인으로서 일하기 불가능했을 것이라고 말이다. 충분히 공감이 됐다. 주변에 많은 여성 과학기술인이나 우주인들이 가족의 지지를 받지 못해 힘들어하는 모습을 봤던 터라 더욱 그랬다.

 

 

선배이자 고마운 친구에게

 

“내가 요즘 이것저것 시도해보고 있으니까 기다려봐. 해보고 괜찮은 걸 발견하면 같이 하자!”

 

얼마 전에 니콜이 이런 말을 했다. 설사 그렇게 되지 않더라도 마음이 얼마나 감사하던지. 니콜과 크리스는 큰 의지가 되는 친구들이다. 서로 하고 있는 고민도 비슷하다. 과거 일하던 직장을 떠난 뒤의 진로와 삶, 가족에 대한 고민들이다.

 

 

그런 의미에서 연세암병원 병원학교에서의 경험은 니콜이 내게 준 큰 선물이라는 생각이 든다. 아이들과 함께 달에서 바라본 지구가 달 지평선으로 떠오르는 모습을 그리면서 많은 것을 느꼈다.

 

가녀린 손목에 주사바늘을 꽂고 주사병을 끌며 교실에 들어왔던 아이들은 누가 봐도 지치고 피곤한 표정이었다. 그런 아이들이 우주에 대해 상상하고 본인들이 그린 그림이 우주복으로 제작된다는 사실을 알고는 함박웃음을 지어보였다. 대여섯 살 어린이부터 고등학생까지 병원학교를 가득 채운 모습에 ‘우주는 누구와 함께 하든 희망과 꿈이 되는 곳’이라는 사실을 다시 한번 실감했다.

 

우주인이 직업이 돼 러시아에서 훈련도 받았고, 10년 전 국제우주정거장에서 과학실험 임무도 수행했고, 현재는 미국 실리콘밸리의 우주 스타트업과 함께 일하고 있으면서도, 우주라는 무한한 가능성이 얼마나 많은 곳에서 이용될 수 있는지에 대해서는 제대로 깨닫지 못했던 것이다. 앞으로 어떤 사람들과 어떤 곳에서 우주를 함께 할 수 있을까. 생각할 거리를 던져준 친구이자 선배, 니콜에게 이 기회를 통해 고마움을 전한다.

 

이 기사의 내용이 궁금하신가요?

기사 전문을 보시려면500(500원)이 필요합니다.

2019년 01월 과학동아 정보

  • 이소연
  • 에디터

    이영혜 기자

🎓️ 진로 추천

  • 항공·우주공학
  • 국제학
  • 사회학
이 기사를 읽은 분이 본
다른 인기기사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