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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묘한 서리의 세계

유리창에 피는 「꽃」


나무에 낀 서리


요즘의 기상현상중 가장 흔히 볼 수 있는 서리를 자세히 들여다 보면 한없는 신비함을 느낄 수 있다.

지구는 엷은 공기의 막으로 둘러싸여 있는데 우리는 이를 대기라 부른다. 바다 혹은 육지 등에 있는 물은 태양복사에너지를 받아 증발하거나 수증기로 변한다. 이 수증기는 대기중에서 냉각, 응결하게 되며 구름 비 눈과 같은 여러가지 강수현상을 일으키게 된다. 지표와 대기 사이에서 순환하는 물은 주변의 온도가 변화함에 따라 액체(물) 기체(수증기) 고체(얼음)상태로 변하게 되는데 자연계에서는 이런 상변화(相變化)를 많이 볼 수 있다.

여러가지 상변화 중에서 수증기가 물이 되는 과정을 거치지 않고 막바로 얼음으로 변하거나, 얼음이 곧바로 수증기로 변하는 현상을 승화라고 하는데, 추운 겨울 아침에 부엌 등의 유리창에 생기는 서리는 승화로 인해 발생되는 것이다. 즉 대기중의 수증기가 0℃ 이하로 냉각된 지면이나 물체표면 등에서 승화해 생긴 결정체를 서리라 한다.

온도변화에 따라 서리가 나타나므로 서리의 발생원인과 그 구조를 이해하기 위해서는 우선 지면부근의 온도에 관해 보다 자세하게 알아볼 필요가 있다.

서리는 일종의 승화현상

일반적으로 낮동안에는 태양복사에너지가 지면을 따뜻하게 데우는데, 일부는 지표면으로부터 대기로 방출되기도 하고 따뜻해진 지표면의 열을 땅속으로 전달하기도 한다. 또 다른 일부는 바람에 의해 확산돼 대기로 운송되기도 하는데, 이를 '현열전달'이라고 한다. 한편 습한 상태에 있는 보통의 지면에서는 토양수분의 증발로 인한 열의 소모를 볼 수 있는데, 이를 '잠열전달'이라 한다. 예를 들면 1g의 물이 증발할 경우에는 약 8백cal의 열을 소모하게 되는 것이다.

지중식물은 토양면과 비슷하게 열출입을 받게 되는데, 지면이나 식물표면의 온도는 이 열수지(熱收支)에 의해서 정해진다. 이를테면 들어오는 열의 양이 많고 나가는 양이 적으면 표면온도는 상승하게 되는 것이다. 야간에는 열출입이 주간과는 반대가 된다. 즉 태양으로부터의 열의 공급이 없는 대신에 역으로 지면이 열방출원이 되는 것이다. 스테판 볼츠만(Stefan Boltzmann) 법칙에 따르면 일반적으로 물체(흑체)는 그 표면 절대 온도의 4승에 비례하는 복사에너지를 방출하게 된다. 따라서 지표면은 절대온도가 약 3백K인 흑체로 볼 수 있으므로 그 온도에 상응하는 에너지를 방출하고 있다고 볼 수 있다. 단 지면과 같은 저온상태의 물체는 고온인 태양과는 달리 눈에 보이지 않는 장파(적외선 영역)로 복사를 행하고 있다.

아무튼 야간에 지면은 대기공간을 향해 열복사를 행하고 있으므로, 지표면 온도가 계속적으로 낮아지는 이른바 '복사냉각'현상을 볼 수 있다. 저온으로 떨어진 지면에서는 낮과는 반대로 열흐름이 나타나게 된다. 즉 땅속에서 땅표면으로의 열수송이 진행되는 반면, 대기에서는 바람의 주도로 지면으로의 열수송이 일어나며, 공기중의 수증기가 응결함에 따라 열이 지면으로 이동하게 되는 것이다.

그러나 구름이나 안개가 발생하면 지면으로부터의 복사냉각이 방해된다. 또 대기중에 수증기가 많거나 바람이 강하게 불게 되면 지면온도는 그다지 내려가지 않게 된다. 또한 열을 전달하기 쉬운 토양인 경우에는 땅속열이 지표면으로 잘 전달되므로 그다지 온도저하가 일어나지 않는다. 물론 이런 경우에는 서리가 생길 리 없다. 따지고 보면 짚더미나 쌀겨 위, 자동차 지붕 등에 서리가 생기기 쉬운 것도 지면으로부터의 열전달이 어렵기 때문이다. 식물의 잎도 마찬가지로 서리가 생기기 쉽게 돼 있다.
 

흐르는 냇물에 형성된 「어름꽃 」, 먼저 이슬이 맺힌 다음 어느점 이하로 내려가면 이슬이 동결돼 이런 동무(凍霧)가 된다.


서리에도 구멍과 길이 있다

지면 부근이 냉각하기 쉬운 조건, 즉 겨울철에 서리가 잘 생기게 하는 조건은 이렇다. 맑은 날 밤에 바람이 약하고 대기가 건조할 때, 또 일몰 후 장시간 경과된 아침녘이라 할 수 있을 것이다. 이와 같은 일기상태는 대륙에서 발생한 이동성 고기압이 우리나라 부근을 완전히 지날 때 일어나기 쉬우며, 서리발생의 주원인이 된다. 다시 말해 대륙에서 생성된, 건조하고 차가운 공기를 가진 고기압이 동진할 때 정체함이 없이 순조롭게 이동할 때 서리가 잘 생기는데 이런 이동성 고기압은 주로 봄 가을에 형성된다. 10, 11월이 되면 기온이 낮에는 따뜻하지만, 밤이 되면 추워지고 복사냉각도 커진다. 그러면 지면온도도 내려가 다음날 아침에는 서리가 내리는 것을 볼 수 있다.

서리결정의 종류에는 비늘형 바늘형 날개털형 부채형 외에 모양이 일정하지 않은 형이 있으며, 발생지형에 따라서도 서리길(공기가 흐르는 길을 따라 좁고 길게 형성되는 서리) 서리구멍(어느 한 곳에 냉기가 모아져 생기는 것) 가지서리(나무의 가지에 생기는 서리) 창서리(창가에 생기는 서리) 등으로 분류된다.

일반적으로 첫 서리 발생은 내륙지역이 연안지역 보다 늦고 도시지역은 교외지역보다 느리다. 서리로 인한 농작물 피해를 많이 볼 수 있는데, 송풍을 통해 상하의 공기를 혼합시키거나 연기를 지면 부근으로 치우치게 하거나 공기가열에 따른 승온법 등을 이용, 서리를 방지하기도 한다.

여러가지 서리종류 중에서도 겨울철 창가에서 흔히 볼 수 있는 창서리에 관해 자세히 알아보자. 눈이 많은 지방에서는 유리창에 생기는 서리를 서리꽃이라고 부르기도 한다.

창서리를 볼 기회 점점 줄어들어

겨울철 추운 아침 부엌이나 화장실의 창유리에 생기는 서리의 발생메커니즘은 다음과 같다. 기온이 -10~-15℃의 저온으로 떨어지면 밖의 공기는 얇은 투명 유리 한장을 통해 유리 안쪽으로 전달되고 실내의 따뜻한 공기나 수증기를 포함한 공기가 직접 유리창 안쪽 표면에서 승화, 응결함으로써 서리가 생성된다. 이때 생긴 서리를 보면 눈결정과 같이 확실한 대칭구조를 가진 가지형 육각형으로 생긴 것은 적고, 응집된 풀모양으로 길게 늘려져 있는 것이 많다. 최근의 주택구조와 난방양식의 변화로 인해 창서리를 볼 기회가 적어져, 창서리라는 말을 알고 있는 사람도 그렇게 많지는 않을 것으로 여겨진다.

이중창이나 실내온도가 높을 때 유리표면에 수증기가 응결, 이슬이 된 후 언 상태는 엄밀히 말해 창서리가 아니라 창얼음이라고 해야 할 것이다. 창서리는 유리표면에서 수증기가 승화, 응결된 결과이므로 유리 표면 상태에 따라 그 모양이 다양하다. 나카야 우키이 치로교수(전 홋카이도대학교수로 세계 최초로 인공설을 만듦)팀이 행한 연구결과는 영화로 촬영돼 '서리꽃'(Frost Flower)이란 제목으로 1948년 8월 노르웨이 오슬로에서 열린 국제설빙학회 제3회 총회에서 소개된 바 있다.

창서리는 유리표면에 부착돼 있는 얇은 먼지막의 성질에 따라 그 모양이 결정된다. 예컨대 유리표면에 파라핀 증기로 얇은 막을 입히면 유리표면의 영향을 직접적으로 받지 않고 공기중에서 생기는 눈결정과 유사한 모양을 갖게 되며, 기름을 얇게 바른 창표면에서도 같은 모양의 결정체가 얻어진다. 그러나 알코올 증기에 접촉하게 되면 서리는 만들어지지만, 알코올의 친수성(親水性) 때문에 서리결정의 모양은 붕괴되고 만다.
 

풀잎에 붙은 이슬. 밤에 기온이 이슬점 온도 이하로 내려가면 이슬이 맺히게 된다.

 

인공강우의 원리가 되기도

창서리를 만들 수 있는 유리를 잘 살펴보면 한가지 흥미로운 현상을 발견할 수 있다. 즉 -20℃ 정도에서도 얼지 않고 액체 그대로 남아 있는 과냉각물방울을 찾을 수 있다. 과냉각물방울은 같은 온도의 서리나 눈에 비해 포화증기압이 높으므로 창서리 주변에서 증발해 서리성장에 기여하게 된다. 이와 같은 물과 얼음의 포화증기압의 차이가 인공강우의 원리가 되는 것이다.

과냉각물방울이 모여 형성되는 구름에 요드화은이나 드라이아이스 등을 투입, 과냉각물방울의 일부를 동결시키면 물과 얼음의 포화증기압의 차이로 인해 동결된 물방울은 작은 빙점에서 눈결정으로까지 성장한다. 이 눈결정은 지상으로 내려오는 도중에 서로 부딪쳐 눈송이가 되기도 하고 융해되면 빗방울이 돼 떨어진다는 것이 바로 인공강우의 원리인 것이다. 기껏해야 창서리라는 단순한 생각을 하기 쉽지만 깊은 면에서는 이와 같은 자연의 섭리가 숨겨 있음을 알 수 있다.

끝으로 인공서리나 인공눈에 관한 문헌을 대할 때마다 자연과학을 연구하는 연구자의 한사람으로서 결심이나 신념만으로는 자연현상을 이해할 수 없으며 자연을 보는 것이 무엇보다도 중요하다는 것을 재삼 느끼게 된다.

1991년 11월 과학동아 정보

  • 이동인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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