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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 핵실험 무엇이 문제인가?

해체시대의 핵무기

핵실험이 중단돼야 핵무기 경쟁시대는 명실상부하게 막을 내린다.

오토 한이 핵분열을 발견한 이래 원자력은 인류의 에너지자원으로서 많은 기여를 해 왔다. 우리나라 1년 전기발전량의 절반을 원자력발전소에서 공급한다는 사실을 수긍할 때 만약 이 원자력이 없었으면 우리가 이 정도나마 경제를 유지할 수 있었을까, 세계 석유전쟁은 어떤 결과를 낳았을까 하는 우려를 해본다.

지구상에 존재하는 대부분의 기술은 생활의 편리함을 도모하기 위해 개발됐다가 나중에는 무기에 이용된 것이 특징이었다. 반면 핵분열기술은 처음부터 인간을 살상하기 위해 개발됐다는 것이 다른 기술과의 차이다.

잘 알다시피 핵실험이란 핵무기를 개발하거나 사용하기 전에 폭탄이 제대로 작동되는지 실제로 폭발시켜 보는 것이다. 이런 측면에서 핵실험은 핵무기 개발의 핵심과정이므로 그 의미가 매우 크다고 하겠다.
 

미국 네바다사막의 핵실험장. 라스베가스에서 북서쪽으로 약 1백km떨어진 지점ㅇ에 있다.


1천 8백여회의 핵실험

최초의 핵실험은 지금으로부터 46년 전인 1945년 7월 16일 미국의 뉴멕시코주 아라모 고르도 실험장에서 있었다. 약 20KT(KT는 킬로톤, 1KT는 TNT 1천t의 폭발량)급 플루토늄탄으로 된 이 시제품은 그로부터 3주후 일본 나가사키에 투하된 원자폭탄과 같은 것이었다. 이보다 며칠 전에 투하된 우라늄탄의 핵실험장은 바로 히로시마였다. 즉 핵 실험없이 히로시마에 처음 투하한 것이었다.

2차 세계대전이 끝나고 1949년에 소련, 1952년에 영국, 1960년에 프랑스, 1964년에 중국이 차례로 핵실험에 성공함으로써 핵보유국가 대열에 진입했다. 그리고 마지막으로 인도가 1974년 핵실험을 한 뒤 공식적으로 핵무기 개발을 포기함으로써 핵실험만 성공시킨 준핵국(準核國)으로 남게 되었다. 그러나 기존 핵보유국들은 원자폭탄으로 만족하지 않았다. 미국은 1950년 원자폭탄의 수천배 위력을 가진 수소폭탄을 태평양의 비키니 섬에서 실험했으며, 소련도 3년 후 같은 실험에 성공했다. 이러한 방식으로 중성자탄 순항미사일 그리고 다탄두탄(MIRV)에 이르기까지 핵무기가 경쟁적으로 개발됨에 따라 핵실험 또한 끊임없이 계속돼 왔다.

1989년 말까지 실시된 핵실험 횟수는 1천8백20여회에 이르며, 이중 미국이 9백21회, 소련이 6백42회, 영국이 42회, 프랑스 1백80회, 중국이 34회 실험했다. 모든 실험은 대기권과 지하에서 수행됐으며, 1963년 이후에는 지하에서만 실시됐다. 대기권 핵실험은 많은 죽음의 재를 세계에 뿌리는 등 그 영향이 너무나 심각했다. 당연히 많은 국가들이 핵실험 중단을 요구했고 미국과 소련은 1963년 대기권 실험을 포기할 수 밖에 없었다. 그 영향이 핵실험을 한 국가의 국민 뿐만 아니라 인접국가에도 그리고 그 지역을 지나가던 선박에게도 미쳐서 많은 사람이 피해를 입었기 때문이었다. 핵실험의 규모란 폭탄의 폭발량을 뜻하는데 대개 이 규모는 수메가t(${10}^{6}$t)에서 수백t의 사이였으나, 1974년 이후부터 1백50KT 이상의 핵실험은 금지됐다.

핵물질의 효능을 평가하기 위해

무려 2천회나 되는 핵실험을 한 목적은 무엇이며, 어떤 이유로 계속될 수 밖에 없는가를 살펴볼 필요가 있다. 일반적으로 인정하고 있는 핵실험의 목적은 여섯가지 정도다.

첫째 신형 핵무기를 만들거나 기존의 핵무기를 개량하기 위해서 핵실험을 한다. 히로시마에 떨어진 우라늄탄은 핵실험을 거치지 않고 곧바로 인류에게 사용된 경우다. 히로시마에 투하된 우라늄탄은 포탄형(gun type) 반구형태의 우라늄이 양쪽으로 분리된 상태로 있다가 결합하면 폭발) 원자폭탄으로 그 구조가 간단하며, 지금의 핵무기에 비해 대단히 원시적인 핵폭탄이었다. 따라서 이 무기의 폭발력은 모의실험(시물레이션, 어떠한 현상을 수치적인 계산으로 표현해 그 결과를 예상해보는 방법)만을 통해서도 충분히 알 수 있었기 때문에 따로 사전실험을 할 필요가 없었다.

그러나 중성자탄 다탄두탄(MIRV, Multiple Independently Reentry Vehicle) 등 오늘날의 핵무기는 그 구조가 대단히 복잡하고 정밀해서 설계가 완벽하다고 하더라도 제작과정에서의 조그만 실수도 용납되지 않는다. 따라서 고도로 발달된 컴퓨터 기술에도 불구하고 실험을 통하지 않고서는 완전한 성능을 보장받지 못한다. 특히 핵물질의 효율성을 평가할 때에는 핵실험이 필히 요구된다. 핵물질의 효율성이라는 것은 핵탄두에 장착된 핵물질이 분열 또는 융합할 때 이론적으로 방출할 수 있는 에너지의 양과 실제로 폭발시켰을 때 방출되는 에너지량을 비교한 수치다. 이 비율은 핵탄두의 중량과 직결되며, 설계가 조금만 변경돼도 차이가 생기므로 이 다음에 핵탄두를 개랑할 때 필수적인 자료가 된다.

둘째 핵탄두의 운반체에 대한 적합성 평가에 핵실험이 필요하다. 하나의 핵탄두가 개발되면 그것을 여러가지 방법으로 발사할 수 있다. 즉 미사일에 실어서 운반할 수도 있고, 전투기에 실어서 떨어뜨리는 방법, 함정에서 발사하는 방법 등 발사방법이 얼마든지 있을 수 있다. 그런데 핵탄두는 너무나 정밀하고 작동이 복잡하므로 각 경우별로 실험해 보지 않을 수 없다. 핵탄두가 예상하지 않은 목표로 가서 무고한 시민을 살상하거나, 표적에 도달하지 못한 상태에서 폭발되거나, 도달해도 불발하거나 또는 아무도 모르는 곳으로 날아가 버릴지도 모르는 일이기 때문이다.

셋째 핵탄의 효과 평가다. 핵탄두를 개발하면 먼저 컴퓨터로 그 탄두의 폭발력을 계산하는 것이 상식이다. 그러나 폭발시 발생되는 열 방사능 폭풍 등을 완전하게 예측하는 것은 불가능하다. 왜냐하면 인간이 생각 할 수 있는 요인들만을 컴퓨터에 입력, 폭발력을 계산하므로 실제 폭발시의 사정들을 모두 반영할 수는 없기 때문이다.

넷째 안전성 검사다. 즉 우발적인 사고에 의한 핵탄두의 폭발을 방지할 목적으로 부착하는 안전장치의 작동여부를 확인하기 위해 핵실험을 행한다.

다섯째 저장중인 핵무기의 신뢰도 평가다. 미국과 소련에는 1958~1960년에 걸친 핵실험 중지기간 사이에 제작된 핵무기가 많이 저장돼 있다. 또 제작한지 수십년이 지난 핵무기의 경우, 핵물질의 변화나 부식 또는 기타 부수장치들의 작동여부를 확인해야 한다. 그러나 실제로 이 이유로 핵실험을 행하는 경우는 거의 없다.

마지막으로 평화적인 목적의 핵실험이다. 흔히 PNE(Peaceful Nuclear Explosion)라고 하는데 석유나 천연가스의 배출을 유도하기 위해 또는 핵역학적인 실험 등을 목적으로 하나 실례는 거의 없다.

따라서 처음 세가지는 핵무기의 개발과 개량에 관련된 사항이며, 그 다음 세가지는 핵무기의 유지 및 기타 목적과 관련된다. 말하자면 핵실험의 주된 목적은 핵무기 개발 또는 개량이다. 즉 기존의 핵무기를 유지하기 보다는 주로 핵무기 경쟁에서 뒤떨어지지 않기 위해 핵실험을 하는 것이다.

이제 핵실험의 도덕성에 관해 살펴보자. 핵무기 경쟁이 잘못돼 핵전쟁이 일어나면 전쟁 당사국 뿐 아니라 온 인류가 멸망하게 된다. 핵무기는 그만큼 무서운 무기다. 그렇다면 핵무기 경쟁을 위해 행해지는 핵실험은 전 인류의 생명을 위협하는 부도덕한 행위라고 말할 수 있다. 여기다가 핵실험에 따른 환경오염을 생각하면 더욱 부도덕한 짓이다.

원래 무기의 도덕성은 차별성 원칙과 비례성 원칙이라는 두개의 원칙을 가지고 따진다. 차별성 원칙이란 전쟁이 불가피하게 발생했다 하더라도 사용되는 무기가 전투원과 민간인을 구별, 전투원만 살상하는 것이라야 한다는 뜻이다. 비례성 원칙이란 전쟁의 목적에 비례하는 무기만을 사용해야 한다는 뜻이다. 예를 들어 파리를 잡기 위해서는 파리채만 사용하면 되는데도 도끼를 사용 한다면 이는 비례성 원칙에 어긋난다.

핵무기는 이 두가지 조건에 모두 불합격이다. 핵무기는 그 폭발효과가 너무 커서 군인이나 민간인이나 할 것 없이 무차별적으로 죽음을 당한다. 아울러 현재 미국과 소련이 가지고 있는 핵무기는 너무나 많아서 일단 핵전쟁이 일어나면 승자도 패자도 없이 전인류가 멸망하게 된다. 즉 비례성 원칙에 어긋난다. 미국과 소련이 지니고 있는 핵무기는 약 4만5천개로 세계 핵무기의 97%를 차지 한다. 이들 핵무기의 파괴력은 2차대전중 사용된 모든 무기의 약 6천배이며, 13만명의 사상자를 낸 히로시마 원폭 1백20만개에 해당한다. 이 핵무기의 5%만 사용하더라도 인류가 멸망할 수 있다.

대기권에서 핵실험을 하면 네가지 영향을 받는다. 먼저 열과 바람은 폭발지점 부근의 모든 것을 파괴하며, 다음으로 대량의 방사능은 넓은 지역을 오염시키고 생태계를 파괴한다. 그리고 오염된 곳은 오랫동안 생물이 살 수 없게 된다. 네번째 요인은 전자기 영향인데, 전파를 방해하고 핵실험 영향권 내에 있는 전자장치를 파괴한다. 핵폭발이 고공에서 발생할수록 그 영향은 더욱 크며, 대기권 핵실험의 가장 나쁜 영향은 물론 방사능 오염이라고 할 수 있다.

지하 핵실험도 문제점 많아

1954년 3월 1일 태평양의 마샬군도에서는 거대한 핵폭발이 있었다. 미국이 15MT(메가톤)급 수소폭탄을 비키니섬에 있는 지상 7피트(약 2백10㎝)높이의 산호톱 위에서 폭발시켰다. 이 핵실험의 이름이 '브라보'인데 핵실험이 있은지 몇분 후에는 높이 약 25㎞의 거대한 버섯구름이 생기고, 인근 해역에서 조업중이던 어선이 곧바로 방사능오염이 되면서 승무원들이 피폭됐다. 이어서 나머지 섬들 방향으로 바람이 불어 방사능은 폭 96㎞, 길이 5백30㎞에 이르는 지역을 오염시켰다. 이때 오염된 지역은 우리나라 전역에 해당하는 넓이다.

특히 바람이 불어가는 방향으로 약 30㎞는 심각하게 오염됐으며 하늘에서는 하얀 낙진이 눈처럼 계속 떨어지고 있었다. 일반적으로 7백라드(rad)의 방사능이 3일간 지속되면 인간은 사망하는데 비키니섬은 물론이고 롱게라프환초(atoll) 아이링나환초가 모두 7백라드 이상으로 오염되고, 론게리크환초까지 일부 오염됐다. 당시 그 섬의 주민들은 모두 노출됐기 때문에 2백여명이 피폭됐으나 론게리크환초에서 방사능 관측을 하던 미국 과학자들은 준비한 장비 덕분에 방사능을 막을 수 있었다. 마샬군도에서는 지금도 희생자가 발생되고 있다고 한다.

한편 프랑스는 1966년 이후 대기권 실험을 44회, 지하핵실험 1백15회를 남태평양 폴리네시아군도의 조그마한 환초에서 실시했다. 그 영향은 실로 대단했다. 섬을 비롯해 인근 해역을 회생불능으로 만들었으며, 생태계의 오염으로 프랑스령 폴리네시아는 자급자족하던 식품의 80%를 수입하게 되었다. 이 결과로 프랑스는 1972년 국제사법 재판소에 제소됐으며, 1975년부터 대기권 실험을 중단하고 지하핵실험으로 전환했다.

소련은 1962년까지 62회의 대기권 핵실험을 한 것으로 보고되고 있으나, 그 결과는 거의 알려지지 않고 있다. 중국도 1974년까지 16회의 대기권 핵실험을 했다.

대기권 핵실험이 넓은 지역을 오염시키는 것에 비하면 지하핵실험은 그 피해가 거의 없다고 봐도 될 정도로 미약하다. 지하핵실험이 환경에 미치는 영향은 지층의 변화와 방사능 오염이라고 볼 수 있다. 지층의 변화는 단층발생 지반균열 및 함몰의 형태로 나타난다. 1968년 미국 네바다주에서 1.1MT급을 실험한 적이 있는데 얼마후 12㎞ 이내에 수백개의 지진이 나타난 것으로 확인됐다. 1970년 네바다에서 행한 1MT급 핵실험의 영향으로 1백㎞ 떨어진 라스베가스에서 빌딩의 벽이 금가고, 창문이 깨어지는 지진이 발생된 적도 있었다.

지하핵실험으로 인한 방사능 오염은 핵실험 직후에 바로 일어나는데, 대부분의 방사능은 지하동굴이 함몰되면서 고열에 녹은 유리질 속에 갇히며, 극소량이 가스로 빠져나온다. 지하핵실험의 문제점은 외부에 노출되지 않으므로 핵무기 경쟁국의 개발현황을 파악하기 어렵다는 데 있다. 아무리 작은 규모의 핵실험이라도 거의 탐지는 할 수 있지만 그 규모를 판단하기에는 한계가 있기 때문이다.

지구에서 발생되는 지진은 대개 지하 7백㎞ 이내에서 발생되며, 그중 90% 이상이 지하 10㎞ 보다 아래에서 발생된다. 지진의 절반 이상은 바다에서 일어나며, 지진이 발생될 수 있는 지역도 제한돼 있다. 그런데 인간이 팔 수 있는 깊이는 불과 3㎞ 이므로 지하핵실험을 행할 수 있는 위치는 매우 한정돼 있다고 볼 수 있다. 지진계로 정밀하게 지진파를 측정하면 인공지진의 지진파는 자연지진에 비해 진폭이 초기에만 크게 나타남을 알 수 있다. 또 핵폭발에 따른 지진파의 진동수가 인공폭발시의 진동수보다 훨씬 많다. 따라서 인공지진과 자연지진 그리고 핵폭발과 TNT 폭발을 쉽게 구분할 수 있다.

오늘날 지진탐지기는 세계 곳곳에 설치돼 미국과 소련이 서로를 감시하고 있으며, 지하핵실험을 하면 무인지진탐지기에 의해 그 지진파가 기록되고 인공위성을 통해 미국의 중앙통제소로 자동 송신된다. 핵실험을 한 지점과 깊이 및 크기는 지진파의 특성을 이용해 파악할 수 있는데, 그 오차율이 대략 30% 라고 한다.

핵무기의 위력은 상식적인 상상을 초월할 정도다. 1메가톤(MT)급 수폭의 폭발력은 TNT 1백만t을 일시에 폭발시킨 것과 같다. 1백만t이란 얼마나 많은 양인가. 아무리 생각해도 짐작이 가지 않을 것이다. 서울 인구가 1천만명이라고 할 때 1인당 TNT를 1백 kg씩 나누어 줄 수 있는 양이다.
 

미국 네바다 지하 핵실험장 입구


이 수소폭탄이 폭발하면 중심에 1천만℃ 가 넘는 고온의 불덩이가 생기면서 그 내부의 모든 것은 마치 녹아버리듯이 탄다. 이 불덩이는 직경이 2.4㎞에 이르고 수십 ㎞ 밖에서 이 섬광을 본 사람은 순간적으로 시력을 잃게 되며, 60㎞ 밖에서도 태양보다 훨씬 밝게 보인다. 폭발지점으로부터 약 10㎞ 이내에 있는 사람은 3도 화상을 입고 옷은 불에 타며 그 주변으로 거대한 화재가 확산된다.

핵무기의 잔혹성을 더욱 나타내는 것이 방사능과 방사선이다. 이것은 인명피해를 확대시키며, 오염된 지역은 오랜 세월이 지난 후에도 쉽게 회복이 되지 않는다. 방사선은 핵폭발 직후 수십초 이내에 방출되는데 폭풍의 중심부근에서 2천라드 이상 쏘인 사람은 중추신경이 파괴돼 2,3일 이내에 사망하고, 약 5㎞ 밖에 있었던 사람이면 4백~5백라드를 쏘여 일주일 안에 사망한다. 이보다 더 바깥에 있었을지라도 수십~4백라드의 방사능을 받게 된다. 그러면 구토 빈혈 탈수증 탈진 탈모 등의 현상이 즉시 나타나며, 조혈세포가 파괴되기 때문에 백혈구의 부족으로 저항력이 저하돼 병에 쉽게 감염된다.

그리고 높이 18㎞까지 치솟는 버섯구름과 함께 하늘로 상승한 방사능 물질은 생각보다 훨씬 더 광범위한 지역으로 퍼져 생태계와 수원지를 오염시키며, 이 오염된 지역에서 살고 오염된 음식을 먹은 사람들에게 2차적인 피해를 유발한다. 이 방사성 강하물(Fall Out)이 바로 '죽음의 재'다. 이 방사능은 1차적으로 바람과 함께 즉시 확산된다. 초속 10m의 바람이 분다고 할 때 1시간 후에는 36㎞ 지점에 도달하고, 2시간 후면 72㎞까지 퍼진다. 폭발지점으로부터 1백 ㎞지점에 있더라도 그곳에서 오랫동안 노출돼 있으면 치명적인 방사선량을 쏘이게 된다. 이 영향은 무려 1천㎞까지 확산된다. 과거 중국에서 대기권 핵실험을 실시했을 때 편서풍을 타고 한국 및 일본에까지 방사능이 날아온 적이 많았다.

마지막으로 전자기장(EMP, Electric Magnetic Pulse)의 영향을 들 수 있다. EMP는 핵폭발시에 순간적으로 발생되는 저주파의 전자파인데 이 전자파가 전기장치나 송수신장치에 닿으면 수천~수만V의 고전압을 발생시킨다. 이 고전압은 전기장치의 반도체 트랜지스터 IC LSI를 파괴하므로 통신시스템에 대혼란을 가져온다.

1962년 미국과 소련의 관계는 쿠바 미사일사건으로 극도로 경색돼 있었다. 미소는 이 냉전 분위기를 완화시킬 필요성을 인식했고, 그 일환으로 대기 해저 우주에서의 핵실험을 금지하는 조약을 이듬해 8월 6일에 조인했다. 이것이 부분핵실험금지조약(PTBT, Partial Test Ban Treaty)이다. 이 조약은 같은 해 10월 10일에 발표되고 87년까지 1백16개국이 가입했으며, 한국도 회원국이다.

 

핵실험 광경을 직접 보면서 아주 먼곳에서도 보호안경을 써야 한다. 만약 이 안경을 착용하지 않으면 장님이 된다. 환경에 미치는 영향을 고려해 70년대 이후에는 대기권 핵실험을 실시하지 않고 있다.


핵무기 감축량은 5%에 불과해

당시 미소는 이미 지하핵실험을 준비하고 있었는데 핵국인 프랑스와 중국 그리고 비핵국인 파키스탄이 이 조약을 반대했다. PTBT가 지하에서만 핵실험을 행하도록 규정함으로써 방사능 낙진으로 인한 환경오염과 인간의 피해를 줄이는데는 기여했지만, 이 조약이 시행된 후 미소의 핵실험 횟수는 더욱 증가했다. 또 핵보유 가능국들은 핵실험을 굳이 할 필요가 없었으므로 PTBT가 핵실험을 중단시키거나 핵확산을 방지해 주는 역할은 하지 못했다.

PTBT 시행 후에도 핵실험을 전면중단하자는 논란이 계속됐다. UN총회에서도 핵실험의 전면중단을 요구하며 미소의 태도를 비난했다. 특히 비핵국들은 실험을 중단하거나 실험의 규모 및 횟수를 제한할 것을 주장 했는데, 미소는 이를 계속 주시해오다가 1974년 7월 3일 새로운 조약에 조인함으로써 한계핵실험금지조약(TTBT, Threshold Test Ban Treaty)이 체결됐다. 이 조약에서는 핵실험의 규모를 1백50KT로 제한하고, 미소는 핵실험장의 위치, 그 실험장의 지질특성, 핵실험 수행 후 실험한 위치를 서로 통보해주기로 돼 있다.

이 조약이 초기의 메가톤급 전략무기의 실험제한에는 효과가 있었지만, 다시 전략무기의 정확도를 높이고 폭발량이 1백50KT이하인 다탄두탄으로 전략핵을 개량함으로써 TTBT의 효과는 무용지물이 되었다.

핵실험을 완전히 중단시키자는 제안, 즉 비핵국들이 처음부터 제시한 안이 전면핵실험금지조약(CTB, Comprehensive Test Ban)이다. 브라보 수소폭탄 실험 이후 미국은 50년대 후반부터 이에 관심을 갖고 소련과 포괄적인 토의를 추진해 왔다.

미국은 CTB를 추진할 경우 무인장비만 갖고서는 소련의 핵실험을 검증하는데 한계가 있었기 때문에 CTB에 반대했다. 또 핵실험을 계속해서 소련과의 기술적 격차를 더 벌여놓고 싶어 했다. 한편 소련은 미국과의 기술격차가 가속화되는 것을 원치 않았기 때문에 처음에는 CTB의 추진을 찬성했다. 그러나 1960년 소련 지역에서 미국 정찰기 U-2기가 격추되는 사건이 발생한 뒤 미국의 핵무기 현대화와 맞서 경쟁할 것을 결심하고 CTB를 거절했다. 그후 CTB는 유명무실해졌다. 1980년대 중반에 미국과의 핵경쟁에서 한계를 느낀 소련은 다시 CTB의 추진을 요구했으나, 미국은 새로운 핵방어 계획인 SDI(Strategic Defense Initiative)를 추진중이었기 때문에 이를 수락하지 않았다.

CTB는 아직도 결말을 보지 못하고 있다. 만약 CTB가 추진된다면 핵실험은 완전히 중단될 것이고 그 결과로 핵경쟁은 극히 제한될 것임이 틀림없다.

핵실험의 문제점은 핵실험으로 인한 환경 오염보다는 핵실험이 핵무기 개발의 주요 과정이므로 핵실험이 계속되는 한 핵무기 경쟁은 중단되지 않는다는데 있다. 지난 해에 핵무기비확산조약에 관한 평가회의가 있었다. 핵무기비확산조약이라는 것은 현재 핵무기를 가진 나라 이외의 나라가 핵무기를 개발하는 것을 방지하기 위한 국제적인 약속이다. 이 회의에서 핵무기를 보유하지 않은 나라들이 핵실험의 전면중지를 요구했다.

최근 미국과 소련이 핵무기의 감축을 추진 한다는 좋은 뉴스가 들리고 있다. 비록 줄어드는 핵무기의 양이 5% 밖에 되지 않지만 그것이 발단이 되어 인류를 더 이상 볼모로 삼는 일이 없어지기를 기대한다.

1991년 11월 과학동아 정보

  • 김민석 선임연구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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