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50% 이상'을 목표로 내걸고 있는 고속전철 국산화. 과연 이 수치는 적정한가? 목표를 달성하기 위해서 우리는 어떤 준비가 필요한가?
우리나라에 처음 철도가 부설된 것은 1899년. 그로부터 1백년만에 대역사(大役事)경부고속전철사업이 시작되려는 시점이다. 지난 8월말 정부는 독일 일본 프랑스 3국에 경부고속전철의 입찰제의요청서(RFP, Request For Proposal)를 발송했고, 이에 따라 3국은 3개월 이내(11월 26일)에 입찰 제의서를 제출할 예정이다. 이를 토대로 평가작업(3개월 예정)을 마치면 사업주간국이 선정되고 사업은 본궤도에 오른다.
시속 3백㎞로 '서울-부산' 간을 2시간 이내에 주파하는 고속전철. 3분간격으로 1천명씩 하루에 50만명을 실어나를 수 있다는 초고속 열차. 경부고속도로 네개의 역할을 동시에 수행할 수 있다는 고속전철이 98년에는 우리나라에도 등장하는 것이다.
예산만봐도 엄청난 규모다. 총 5조8천억원. 이는 90년 가격이므로 개통 예정 연도인 98년에 이르면 10조원 가까운 액수가 될 것이란 전망도 나오고 있다. 규모에서 뿐만아니라 나라의 대동맥을 새로이 건설한다는 관점에서도 이 사업에는 국민의 관심이 집중되고 있다. 경부고속전철 계획 단계에서부터 지금까지 있어온 여러 논쟁들 '고속 전철은 과연 필요한가' '자기부상식인가 바퀴식인가' '국산 고속전철은 불가능한가' 'TGV인가 신칸센인가 아니면 ICE 인가' 등도 국민의 관심을 끄는데 큰 몫을 담당했다.
이제 남은 것은 독일(ICE) 일본(신칸센) 프랑스(TGV) 3국이 제출한 입찰제의서를 토대로 어떤 조건이 우리에게 가장 유리한가를 판단하는 일만 남았다. '어떤 조건이 유리한가'를 객관적으로 판단하는 일. 한마디로 표현은 가능하지만 이는 결코 쉽지 않은 일이다.
'판단의 잣대'는 크게 경제성과 기술성으로 나뉜다. 경제적 측면에서는 고속전철의 가격문제와 더불어 어느 정도의 차관을 어떤 조건으로 제공하는가가 주요 변수이며, 기술적 측면에서는 어느 나라의 고속전철이 기술적으로 우위에 있느냐는 점과 우리에게 어느 정도의 기술이전을 시켜주겠느냐는 조건이 포함돼 있다.
변수가 하나일 때는 판단하기가 쉽다. 그러나 큰 변수가 서너개 이상일 때는 객관적인 판단, 누구도 고개를 끄덕일 수 있는 명판결을 내리기가 쉽지 않다. 관점에 따라 중요함의 경중이 서로 다르기 때문이다.
재원을 걱정하는 측에서는 얼마나 싼 가격으로 들여오느냐는 문제와 5조8천억원이라는 돈을 조달해야 하므로 차관의 조건이나 규모가 1차적인 관심사고, 고속전철운행의 책임을 져야하는 철도청이나 교통부에서는 어느 차종이 기술적으로 신뢰성이 있느냐는 것이 눈앞의 문제다. 총 5조8천억원(1조 2천 억원은 차량비용, 4조 6천억원은 철로 건설 토목공사 비용)이라는 돈을 투자하는 국가사업인데, 이를 계기로 국내기술수준을 더욱 드높여 차후에 우리의 기술로 호남고속전철이나 동서고속전철을 놓고 해외수주사업을 독자적으로 수행해야 한다는 관점에서 '기술 이전'을 가장 중요한 변수로 생각하는 과학 기술자들의 목소리 또한 만만치 않다.
제3국의 판매권을 보장
'고속전철 국산화'. 너무나도 당연한 말이지만 여기에는 복잡한 의미가 중첩돼 왔다.
입찰제의 요구서에는 고속전철사업에 참여하는 외국 기업에 대해 각종 특허소유권 및 기술보호사항 등 모든 지적소유권에 대한 판권 보장을 요구하고 있다. 즉 이번 경부고속전철에서 이전된 기술로 우리가 어디에 고속전철을 팔아먹어도 상관하지 말라는 얘기다. 이 의미를 한꺼풀 더 벗기면 고속전철을 수출산업화해 앞으로는 이번 입찰에 응하게 되는 3국과 경쟁을 하겠다는 뜻이다.
기술이전을 하는 측 입장에서 보면 이른바 '호랑이 새끼'를 스스로 키우는 셈. 과연 이러한 조건을 내건 우리에게 진짜 알맹이를 전수해줄지는 미지수다. 따라서 주는 입장도 중요하지만 받는 입장에서 두눈 똑바로 뜨고 제대로 받아야 하는 점이 핵심이다. 기술이전은 눈감고 입벌려 떡 하나 받아먹으면 그만인 것이 아니다. 쌍방이 있어서 서로 조건이 맞아야 한다. 경우에 따라서는 주겠다고 해도 받지 못할 수 있고 꼭 받아내야 하는데도 감추는 수도 있다. 이것도 일종의 거래인 셈. 상대방의 기술수준을 파악해야 할뿐아니라 자신의 장단점도 정확히 알아야 한다는 뜻이다. 그런 의미에서 과연 우리는 지피지기(知彼知己)인가를 따져볼 필요가 있다.
기술이전면에 있어서 입찰제의요청서에는 좀 더 구체적인 표현이 들어가 있다. "계약 금액의 50%에 해당하는 자재 및 장비의 제작을 한국에서…"라는 표현이다. 즉 50%는 우리 손으로 만들어보겠다는 뜻이다.
애초에 이 부분은 '자재 및 장비의 제작'이 '작업'(works)라는 막연한 표현으로 돼 있었다. 50%에 해당하는 작업을 국내에서 한다는 말은 뜻 자체가 불분명하다. 극단적인 얘기로 모든 자재와 부품을 외국에서 들여와 국내에서 조립만 해도(그것도 50%만) 된다고 해석할 수도 있다. '껍데기 국산화'도 가능하다는 뜻이다. 결국 마지막 순간에 부처간 조정회의를 거쳐 이 조항은 '자재 및 장비의 제작'으로 바뀌었다.
이 회의에서는 처음 납품될 시제(試製)차 두대를 애초에는 100% 완제품으로 들여오기로 했으나, 그렇게되면 고속전철의 설계기술 등 핵심 노하우를 국산화하기 어렵다는 점이 제기됐다. 결국 시제차 두대도 우리 기업과 공동설계납품토록 변경했으며, 앞서 제기된 '작업'이라는 애매모호한 표현을 구체화시켰다. 그만큼 정부에서도 기술이전에 대한 의지를 보여준 것으로 해석할 수 있다.
숫자놀음의 허실
그렇다면 이 정도의 노력으로 국산화와 기술이전이 가능한가. 좀 더 구체적으로 논의 과정을 살펴보기로 하자.
먼저 50%라는 수치다. 현재 알려진 바로는 각 부처가 국산화율의 수치를 서로 다르게 주장했다고 한다. 과학기술처측이 70%, 상공부가 65% 이상의 국산화가 필요하다고 주장한 반면 철도청은 50% 안을 내놓았다는 것. 작년에 1차적으로 작성됐던 RFP에는 국산화율에 대한 표현이 연도별로 규정돼 있었고 이를 평균한 수치가 70% 였다. 그런데 이 안은 1차 RFP가 부실한 것으로 판단돼 1년을 연기해 새로 작성되면서 치열한 논의 끝에 철도청의 '50% 이상'안이 최종적으로 받아들여졌다.
그렇다면 왜 철도청은 굳이 국산화의 바로미터인 이 수치를 낮추려하는 것일까. 국산화에 대한 신뢰성문제다. 철도청의 한 관계자는 "일전에 중앙선에서 열차 탈선 사고가 났는데 열차와 열차를 연결시켜주는 커플러(coupler)가 국산만 다 깨졌다"고 말했다. 모든 운행의 책임을 져야하는 철도청의 입장에서 보면 어쩌면 당연한 반응이라는 생각도 든다. '승객의 안전'이라는 대의명분 앞에서 국산화율은 어쩔수 없이 20%나 곤두박질치는 수모를 당했다.
이 문제에 대해 과학기술자의 얘기를 들어 보자. 한국기계연구소 송달호 박사는 안타까운 얘기라고 전제한 후 다음과 같이 말했다. "국산화의 내용이 문제다. 겉모양(spec)만 조건에 맞았다고 국산화시켰다고 생각하면 곤란하다. 여러 조건에서 실제 사용했을 때 아무 문제가 없는 신뢰성 차원에까지 국산화가 이루어져야 한다. 그러려면 연구개발비를 더욱 많이 투자해 실질적인 국산화를 이룩해야 한다."
우리가 국산화라고 할 때 대부분 스펙기준이라는 것. 예를들어 자동차 업소버(absorber) 의 경우 우리나라 지형에서 아스팔트길이나 비포장도로를 달렸을 때 몇 ㎞나 견딜 수 있는지에 대한 수치는 나와 있지 않다. 그러나 이 제품은 외국의 설계도를 들여와 국내에서 제작된 '국산품'임이 분명하다.
정말 고속전철을 우리 기술화하자면 단순히 몇 %냐는 것도 중요하지만 국산화를 위한 연구개발투자가 심도있게 이루어져야 한다는 것이다.
부가가치 기준으로
수치에 대한 함정은 여러곳에 도사리고 있다. 그중에 대표적인 것이 국산화에 대한 개념. 현재 우리는 6,70년대 중화학공업 드라이브 정책을 추진할 때 사용했던 국산화율 계산방식을 따르고 있다. 자동차회사에서 국내의 부품회사로부터 부품을 사들여 자동차를 조립했으면 부품을 구성하는 세부부품의 국적을 따질 것없이 100% 국산화다.
타이어의 세부부품, 즉 베어링이나 고무 등을 수입했다고 해도 자동차의 국산화율에는 전혀 영향을 미치지 못한다. 그러나 자동차를 최종적으로 조립하는 회사에서 좀 더 실질적인 국산화율을 높이기 위해 직접 부품을 개발하고 그중 일부를 수입했다고 하면 오히려 국산화율이 떨어진다는 맹점이 있다.
우리의 국산화 계산방식이 철저히 부가가치 기준으로 산정되지 않고 있는데서 허점이 발생한다는 것이다. 가끔 이를 악용, 국산화율을 높이 발표해 각종 특혜를 독점하는 사례도 있다고 한다. 고속전철의 경우도 마찬가지. 실질적인 국산화를 달성하기 위해서는 일괄적인 국산화율을 책정하는 것보다는 세부적으로 기술이전 품목을 지정하고 철저히 부가가치 기준으로 따져야 한다는 것이다.
고속전철사업기획단의 한 관계자는 "국산화율과 세부 기술이전에 관련된 여러가지 논의가 있는줄 안다. RFP의 '50%'는 50%만 국산화하겠다는 뜻이 아니고 그 이상을 염두에 둔 것이다. 단서조항으로 50% 이상이면 더 좋은 점수를 주겠다고 해 놓았으니까 입찰제의서에는 수치가 높아질 가능성도 높다. 문제는 평가를 제대로 해내느냐는 것이다"고 강조했다.
무엇을 국산화 할 것인가?
그렇다면 과연 '무엇을 국산화할 것인가'에 대해 우리 준비는 어느 정도인가 살펴볼 필요가 있다. 앞에서도 언급했지만 기술이전도 '지피지기'가 전제 조건인 이상 우리의 준비태세가 어느 정도인지를 체크해야 한다.
이에 대한 공식적인 자료는 교통개발연구원에서 작성, 1991년 2월에 발표한 '정부 고속전철기술조사 최종 보고서'가 유일하다. 여기에는 연도별 국산화단계와 국산화 우선순위품목, 각 부문별 국산화율이 4,5페이지에 걸쳐 실려있다. 이에 따르면 국산화 우선순위는 기술도가 낮으며 가격이 높은 부품을 1순위로 하고 기술도가 높으며 가격이 높은 부품을 2순위, 기술도가 높으며 가격이 낮은 부품을 3순위로 정했다. 이 기준으로 따지면 국산화 우선도는 문 의자 창문 등 차체의 실내설비와 대차(臺車), 보조전원 등은 대부분 1순위이며 제동장치 주변환장치 ATC(열차 자동제어장치)등은 2순위, 고압전장품 중 팬터그래피와 일부 품목들이 3순위로 정해져 있다. 이중에서도 역시 기술적으로 어렵고 값도 비싼 ATC나 주변환장치 제동장치 쪽이 국산화의 핵심대상일 수밖에 없다.
고속전철은 크게 나누어 차량 카티너리(전기선 등) ATC(중앙 통제부인 CTC와 차량을 연결해주는 부분으로 자동으로 차량의 속도를 조절해 배차간격을 유지해 주는 장치)로 나뉜다. 이 세부분 중 차량 특히 제동분야의 국내기술이 떨어지고 있으며 ATC를 비롯한 전기분야는 국내 기술이 일정 수준에 도달해 있는 것으로 알려져 있다. 좀 더 구체적으로 살펴보면 차체 용접기술이라든가 대차 설계기술, 제동장치의 컴프레서 부분은 우리 능력이 뒤쳐지고 카티너리나 인버터 컨버터 등은 조금만 도움을 받는다면 국산화에 크게 어려움이 없을 것이라는 얘기다.
특히 전기통신관련 부문은 타산업에 미치는 파급효과도 무시할 수 없기 때문에 국산화의 의미도 그만큼 크게 부여할 수밖에 없다. 이외에도 언뜻 보기에는 별 것 아닌 것 같은 차량의 문이나 창문구조도 고속으로 터널 등을 통과할 때나 대항열차가 다가올 때 충격을 견뎌내야 하므로 비행기 이상 가는 구조를 가져야 하는 어려운 기술이다.
이러한 세부적인 평가를 떠나서 일부에서는 고속전철사업기획단에서 우리의 기술수준을 종합적으로 평가하지 못하고 있고 오히려 외국 3사가 더 정확히 우리 기술을 알고 있다고 주장한다. 그 근거로 경부고속전철기술조사보고서 내용중 국내기술에 대한 평가 작업이 피상적이라는 것을 들고 있다.
고속전철은 일종의 장치산업으로 수천 수만개의 부품이 들어간다. 그렇다면 하나 하나의 부품을 만드는 업체, 그 기술수준, 국산화할 때의 애로점 등을 파악했어야 할텐데 그렇지 못하고 큰 덩어리 별로 개략적이고 추상적인 검토만 돼 있다는 것이다.
실제로 종합적 국내기술수준을 평가하기 위한 전문기술단은 한번도 만들어진적이 없다. 앞의 기술조사서 중 인용한 기술이전 관련항목도 관련 기업측에 의뢰해 작성했을 뿐이다. 물론 기업측의 엔지니어들이 국내 기술수준을 가장 잘 알고 있다. 그러나 기업은 개별 사항에만 능통할뿐이며 속성상 기업의 이익에 배치되는 것은 100% 드러내놓지 않는 습성이 있다.
1980년대 중반 방위산업체인 H사에서는 한국형 전차에 사용되는 예열기(preheater)를 독일 회사에 단가 3백만원에 계약한 적이 있다. 그런데 이 예열기는 한국의 한 회사에서 단가 73만원에 독일회사에 팔아 넘긴 것. 스스로 만들고도 엄청난 돈을 외국사에 지불한 비극이 발생한 것이다. 물론 이는 극단적인 예이고 우리가 품질을 보증할 수 있는 검사기구를 갖지 못한 약점이 있었기 때문이기도 했지만, 종합적인 우리 실정에 대한 파악이 선행되지 않는다면 고속전철에서도 이러한 비극을 되풀이 하지 말란 법도 없다.
18개 단체에서 인원을 차출했다는 경부고속전철 사업기획단의 인적구성만 봐도 전문 기술인의 모습을 찾아보기 힘들다. 행정에 관련된 부서는 고사하고 기술에 관련된 차량국 전기국 건설국에 조차 전문기술인의 밀도가 약하다는 것을 관련자들은 공통적으로 지적한다. 이러한 추세로 본다면 내년 2월에 확대 개편될 고속전철 건설공단(현재 입법 예고 중)도 크게 기대할 수 없다는 것이 중론이다.
전문기술 평가단 구성 시급
이러한 인적구성으로는 3국의 입찰제의서 내용을 제대로 평가할지 의문. 따라서 전문 기술인력(정부출연연구소나 기업측 엔지니어를 포함)으로 수준높은 평가단을 구성하는 문제가 시급하다 하겠다. 여러가지 복합적 요소를 종합적으로 평가하려면 일관된 견해를 가져야 하는데 그러려면 각분야의 기술자들을 하루 빨리 모아 교육시켜야 하는 어려움도 따른다.
더군다나 '지피지기'가 필수적인 상황에서 프랑스나 일본 독일은 우리의 사정을 꿰뚫고 있으니 어려운 싸움이 아닐 수 없다. 지금까지 우리가 겪어온 몇가지 사례(지하철 원자력발전)에서 알 수 있듯이 선진기술국이 핵심기술을 선뜻 내주지 않는다는 것은 자명한 일이다.
고속전철 국산화와 관련해 주의깊게 살펴볼 것은 '우리손으로 가능하지 않겠느냐'는 움직임이다. 지난 7월18일 교통개발연구원 주관으로 63빌딩에서 개최됐던 '경부고속전철건설의 효율적 추진방향' 심포지움에서 패널토의자로 참가했던 현대정공 철차영업담당 강재탁 상무는 "고속전철이 반드시 시속 3백㎞ 대여야만 하는가는 회의적이다. 국내 기술진으로 시속 2백㎞ 정도는 충분하다"고 밝혔다. 이 발언은 단지 한 개인의 생각만은 아니었다. 작년 10월 일단의 국내 엔지니어들이 주축이 돼 2백50㎞(최고속도)수준의 고속전철을 우리가 주관해서 만들겠다는 움직임이 있었다. 전제조건은 새로이 철도를 놓는다는 것. 현재 우리의 경부선은 회전반경이 4백m로 좁기 때문에 1백50㎞이상 속도를 내기는 거의 불가능하다. 현재 고속전철의 건설기준은 최소반경이 7천㎞다. 또한 구배(오르막의 정도를 나타내는 척도)도 15/1000이하이기 때문에 속도를 내는데 큰 장애물은 없다.
이들의 주장은 시속3백㎞ 이상은 총체적인(total) 접근이 필요하기 때문에 현재 국내의 기술수준으로 불가능하지만 2백50㎞ 정도는 한번 도전해볼만하다는 것. 2백50을 목표로 해 조금 못미친 2백부터 시작하더라도 점차 높여가면 되지 않겠느냐는 생각이다. 이들 움직임은 현실성이 없다는 이유에서 곧 바로 제압됐다. 현재 이들도 시기상 이미 이런 주장을 하기에는 때늦지 않았느냐는 생각에서 별다른 움직임을 보이지 않고 있다.
그러나 '완전 국산화'주장이 다소 현실성이 모자란다손 치더라도 이런 자세가 아니고서는 '국산화율 몇%'는 허공의 뜬구름 이상이 아니라는 점을 명심해야 한다. 우리의 첫 철도(경인선 1899년)를 외국인 손에 맡긴 것은 어쩔수 없었다고 해도 1백년이 지난 이 마당에 또다시 외국인의 손에 나라의 동맥을 맡겨야 하겠느냐는 다소 감정적인 외침을, 기술부족으로 무역적자 1백억달러에 시달리는 이 시점에서 다시 상기해 봐야 할 것이다.
좀 더 미래를 보는 눈이
기술도입과 관련 반드시 짚고 넘어가야 할 문제가 있다. 그것은 도입된 기술을 활용해 새로이 제품을 만들었을 때 판로가 있느냐는 점이다.
기술을 파는 입장에서는 각종 사탕발림으로 현혹시킨다. 프랑스나 일본 독일에서는 경부고속전철에서 자기네들이 선정되면 공동으로 세계시장을 향해 무한정 뻗어나갈 수 있다고 말한다. 동남아 미국시장은 물론 유럽과 아시아를 잇는 유라시아철도의 참여도 단골메뉴로 등장한다. 일부 언론에서도 '고속전철의 수출산업화'를 한층 부추기고 있는 것도 사실이다.
그러나 이에 대한 판단은 냉정해야 한다. 고속전철에 맞는 구간은 3백㎞에서 6백㎞다. 그 이상은 비행기와 경쟁이 안된다. 유라시아철도는 정치적 의미는 있을지언정 경제성은 없다. 미국 대륙도 마찬가지다. 최근 프랑스 TGV가 미국 남부지방(휴스턴 달라스 뉴올리안즈)에 새로이 고속전철을 수주 했지만, 아메리카 대륙은 아직도 비행기가 장악하고 있다.
현실적으로 닥친 문제, ICE냐 TGV냐 아니면 신칸센이냐는 질문을 과학기술자들에게 하면 아주 일반적인 얘기 이외는 입을 다문다. 기술성에서 신칸센이 조금 떨어지기는 하지만 각 종류마다 특색이 있기 때문에 어떤 열차를 채용하더라도 크게 문제가 없다는 것이다. 다만 입찰제의서에서 제시된 것을 올바른 잣대로 측정해 평가점수를 정확히 매기는 것이 중요할 뿐이라는 얘기다.
현재 드러나 있는 각국의 장단점은 대개 다음과 같다. TGV는 속도가 빠르고 가격도 싸겠지만 무역적자를 기록하고 있어 차관면에서는 별무신통일 것이며 기술이전에도 인색할 것이라는 예상이다. 신칸센은 기술 수준이 조금 떨어지지만 현재 동북선 일부 구간에서 시속 2백60㎞까지 냈고 현재 2백95㎞/시 짜리 차량을 시험하고 있다. 특히 차관은 최고의 무역흑자국이므로 유리한 조건을 제공할 것이라는 추측이 가능하다. 특히 일본은 스페인과 미국에서 프랑스에 패배한 쓰라린 경험을 갖고 있어(특히 스페인에서는 응찰가격을 프랑스보다 현저하게 낮게 써냈음에도 패배했음) 절치부심하고 있다. 그럼에도 기술이전 문제에 관한 한 전통대로 짜게 나올 것으로 예상된다.
독일의 ICE는 첫 개통시기가 지난 6월. 따라서 운행경험에 있어서는 신칸센이나 TGV에 미치지 못한다. 시험운행때 문짝이 날라가고 화장실에 문제가 있었다는 얘기도 들린다. 하지만 기술적 수준에서는 최고라는데 이의를 다는 사람이 없다. 광통신시스템을 채택했고 자기진단기능이 뛰어나며 터널에서의 소음이나 충격음 처리가 완벽에 가깝다는 평. 특히 기술이전 문제에 있어서 두나라와는 달리 적극성을 띨 것이라고 예상하고 있다.
이외에도 각 나라는 정치경제적인 조건도 공공연하게 내세우고 있다. 재일교포의 법적 지위문제라든가 EC시장 개방에 관련된 조건들이 바로 그것이다.
고속전철과 관련해 과학기술자들은 기술 이전문제나 기술적 변수가 최우선의 선택기준이 돼야 한다고 생각하지 않는다. 이외에도 가격이나 차관 등 고려해야 될 상황이 많기 때문이다. 그러나 최소한 과학기술자들의 판단이 뒤집힐 때는 납득할 수 있는 근거를 공개해야 한다고 주장한다.
고속전철 국산화문제는 보다 실질적인 차원에서 내용있는 결실을 보기 위해 철저한 준비와 연구개발투자가 절실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