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둥형 탑형 원뿔형 피라미드형 바위들이 그 자태를 뽐내고 있는 세계의 정원
중부 터키의 네브쉐히르주(州)안에 있는 카파토키야(Kapatokiya)는 기암 괴석으로 유명한 곳이다. 그 주변에는 괴레메 아바노스 위르귑 카이막르 젤베 등 크고 작은 도시와 마을이 위치하고 있다. 해발고도 4백m에 불과하지만 만년설이 덮여 있는 에르지예스산과 하산산 사이에 있는 카파토키야는 '아름다운 말'(馬)이란 의미를 지난 곳이다.
터키의 수도인 앙카라에서 동쪽으로 2백74㎞ 떨어져 있는 카파토키야까지 시원한 고속도로가 뚫려 있는데 유일하게 이 고속도로를 통해서만 그곳까지 갈 수 있다.
페르시아와 비잔틴을 거치고
카파토키야는 선사시대의 네오리티크(Neolitique)시대까지 거슬러 올라가는 장구한 역사를 자랑하고 있다. 그후 고대의 히타이트 프리그 킴메를문명을 거쳐서 중세에는 아수르 리디아 우랄투르 페르시아제국의 지배를 각각 받게된다. 근세에는 비잔틴제국과 오스만투르크제국의 영토로 편입된다. 이처럼 카파토키야는 참으로 다양한 문명과 국가와 인연을 맺어 왔는데 현재에는 터키공화국에 속해 있다.
지하도시를 만들어
A.D. 3세기 초에는 카파토키야가 기독교 문명의 중심부에 자리잡고 있었다. 중동의 종교중심지였던 시리아 레바논 등지에서 콘스탄티노플(현재 터키의 이스탄불)과 로마로 가려면 반드시 카파토키야를 통과해야 했다.
수백년 동안 지속된 아랍의 이슬람교도와 비잔틴제국의 기독교도 간의 십자군 전쟁으로 말미암아 교통의 요지였던 카파토키야는 항상 전쟁속에 놓여 있었다. 당시 사람들은 계속되는 전쟁으로부터 자신을 보호하기 위해 부드러운 흙으로 이뤄진 바위를 깨고, 땅을 파서 거처할 집과 정신적 안식처(기도하는 곳)를 만들었다. 바위를 뚫어 그 안에 집을 만들고, 지하 85m까지 파 내려가 지하도시를 형성했다. 또 그들은 지하수를 식수로 이용했고 바위를 뚫어 만든 공기통을 통해 바깥 공기를 공급받았다.
인구 30만명이 넘기도
오래 계속된 전쟁을 피해 대도시에서 탈출해 나온 사람들은 카파토키야 주변에 산재해 있던 작은 마을에 정착했다. 당시 이곳에 정착한 이주민의 수는 자그마치 30만명이 넘었다고 한다.
19세기에 시작해 현재까지 계속되고 있는 카파토키야 지역에 대한 면밀한 조사덕분에 많은 유적들이 빛을 보게 되었다. 교회와 수도원 그리고 지하도시로 판명된 유적들이 속속 발굴되고 있는 것이다. 터키 정부는 이 유적들을 잘 보존해 관광객들에게 선을 보이고 있다. 많은 교회의 벽과 천장에는 종교적 메시지를 남기기 위해 1천4백여년 전에 제작한 프레스코(종교화)가 아직까지 생생하게 남아있다.
과거에는 화산지대
카파토키야의 주변에 있는 에르지예스산 하산산 코루산 귤류산 등은 원래 화산지대였다. 화산의 폭발이 거듭되자 이 지역은 용암과 화산재로 뒤덮히게 되었고 지층이 다양하고 두껍게 형성됐다. 이러한 다양한 형태의 지층들이 세월이 흐름에 따라 풍화작용과 기타 요인에 따른 변화과정을 거치게 되었다.
그 결과 기둥형 원뿔형 피라미드형 탑형 바위와 층층이 쌓여있는 형태의 바위 등 기묘한 형상이 만들어지게 되었다.
카파토키야는 분명히 자연의 작품이지만 그 지역에서 살았고 지금도 살고 있는 사람들이 자연을 적절히 변형시켰거나 자신들의 편리를 위해 인공적인 요소를 가미한 흔적을 여기저기서 엿볼 수 있다. 예컨대 사람들은 주변의 땅과 바위를 파고 깨서 집과 기도원 회의장 식품저장소 무덤 등을 만들었다. 그런데 주변에 숲이 형성돼 있지 않았기 때문에 이러한 작업은 대개 신속히 진행됐다.
환상의 관광명소로 떠올라
세계각국의 지질학자에게 큰 관심을 끌고 있는 카파토키야는 기독교 세계에는 불가사의한 자연의 모습으로 비쳐지고 있고 여행가들에게는 꿈과 환상의 관광명소로 이름이 나 있다.
카파토키야 - 이곳은 자연이 인간에게 부여한 가장 아름답고 기묘한 인류의 정원인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