d라이브러리









뭘 먹느냐가 성격을 결정한다

세계사에서 그 증거 찾아내

솔잎을 먹는 송충이와 배추잎을 먹는 배추벌레의 성격이 다르다. 하물며 만물의 영장인 인간의 경우는…

우리는 상대방의 얼굴 생김새를 보고 그 사람의 성격과 운명을 알아내기도 하고 손바닥의 손금을 보고 성격과 인생을 점치기도 한다. 또 그 사람이 주로 먹는 음식의 재료와 맛에 따라 성격이 달라질 수도 있다. 세계에는 50억 이상의 인류가 살고 있는데 대체로 자신들이 살고 있는 곳의 기후와 풍토에 따라 섭취하는 음식의 종류가 다르다. 뿐만 아니라 주부식의 조리 법도 각각이다. 이런 식생활의 차이에 따라 생활양식과 습성이 달라지게 된다.

오늘의 세계는 교통 통신의 발달로 사람들의 왕래가 빈번하고 식료품의 교역이 성행, 각 지역의 고유식품이 전세계적으로 소개되고 있으며 식생활의 개선도 지속적으로 진행되고 있다. 하지만 그렇다고 해서 그 민족 특유의 식생활 습성을 간단히 저버리지는 않는다. 지금부터 식품과 성격의 여러 모형에 대해 알아 보자.

4백70 대 67

브라질이 낳은 노벨상 수상자 카스트로박사는 그의 저서 '기아의 지리학'에서 아프리카의 오지에 사는 문명이 뒤떨어진 족속은 1년동안 약 4백70종의 식품을 먹는다고 기록하고 있다. 그에 비해 서구의 문명인들은 겨우 67종을 먹는데 불과하다고 지적했다.

카스트로박사는 식품의 종류가 단순한 문명인들에게 관절염 고혈압 당뇨병 등 이른바 문명병이 많이 발생하는데 반해 다양한 식품을 섭취하는 비문명인들에게는 소위 문명병 현상이 나타나지 않는다고 보고하고 있다.

또 이런 가설이 있다. 다윈의 진화론대로 현재의 인류가 유원인, 즉 원숭이에서 진화 해 오늘날처럼 다기하게 분화했다면 지구의 생성과정으로 보아 적어도 1백만년 쯤 전에는 지구자체가 화산의 폭발과 해일 등에 의해 일대 혼란에 빠진 적이 있었을 것이다.

이때 오늘의 양극지방은 심한 추위에 휩싸였을 것으로 추정된다. 따라서 고위도 지방에서 살던 많은 유원인들이 지구폭발과 냉해를 피해 적도쪽으로 내려왔을 것이다.

그중 1년 내내 더위가 계속되는 적도근방까지 내려가 정착한, 당시로서는 가장 억척스러운 집단은 그후 그 주변의 풍요한 먹이 때문에 가장 게으른 종족으로 전락하고 말았으리라는 가정이 가능하다. 따라서 그곳에서는 문명이 발달하지 못했다. 그러나 온대와 극지 근처에 정착한, 원래는 게으르고 힘이 약한 집단은 그들이 처한 가혹한 환경에 늘 맞서 싸워야만 했다. 겨울에는 온통 얼어붙어 먹이를 구하기 어려웠기 때문에 그들은 여름에 먹이를 마련, 혹독한 겨울을 대비 했다. 또 그들은 농사를 짓기 시작했으며 여러가지 도구를 제작해 사용했다. 가혹한 환경이 그들의 문명발달을 촉진했던 것이다.

알다시피 현재의 지구문명은 열대지방 보다 온대지방이 앞서 있다. 그 이유는 온대의 생활환경이 아열대나 열대지방보다 더 가혹한데 있다는 것이 학자들의 대체적인 견해다.

세계의 문명발상지로 꼽히는 티그리스 유프라테스강 나일강 황하 등 세곳이 모두 온대에 속한다는 사실도 우연이 아니다. 근대 문명을 대표하는 그리스 로마의 문명이나 중국문명 역시 온대지방이라는 공통된 배경을 갖고 있다. 우리는 여기서 이 지역들이 비교적 먹이를 얻기가 쉬운 곳이라는 공통점도 있다는 사실을 눈여겨 볼 필요가 있다.

만일 문명의 발상지나 발전기지가 극도로 식품을 얻기 어려운 곳이었거나 또는 너무 쉽게 먹이를 구할 수 있는 곳이었다면 그곳에서 문명의 꽃이 피었을 리 만무하다.

겨자와 식민지사냥

근세의 문명은 유럽대륙에서 비롯됐다. 세계사를 되돌아 보면 북유럽의 바이킹족은 일찌기 항해술을 익혀 북해를 비롯, 유럽각지에서 노략질을 일삼았다. 하지만 그들은 세계의 탐험사에도 빛나는 공적을 남겼다.

바이킹족의 바다진출은 그들이 자리잡은 북유럽이라는 곳의 지형과 기후가 너무도 가혹한데서 원인을 찾을 수 있다. 이 지방은 겨울이 길고 봄이 늦게 오며 1년내내 계절풍이 불기 때문에 농사에 아주 부적합하다. 겨우 호밀을 경작할 정도이고 지금도 호밀과 감자가 그들의 주식이다. 그래서 오래 전부터 이 지방사람들은 사슴을 사냥해 그 고기를 먹었기 때문에 동작이 빨랐다. 일찍부터 배를 만들기 시작한 그들은 항해에도 능했다. 이런 기질을 잘 활용, 바이킹족은 해적질로 국가의 부를 쌓아 나갔으며 항해와 조선의 기술을 발달시켰다.

중부유럽의 경우도 마찬가지였다. 안개가 짙고 땅은 모래땅으로 메마르며 수리가 좋지 않아 겨우 밀 보리가 자랄 정도였다. 자연히 밀과 보리가 주식이 되고 그러다 보니 밀가루와 보릿가루를 발효시켜 찐 빵을 주식으로 삼게 되었다.

이런 지역에서 농사를 짓기 위해서는 특별한 농사기술이 필요했다. 밀가루만 먹는데서 오는 영양의 불균형을 바로 잡기 위해 그들은 부득이 우유를 마시게 되었다. 그러다 보니 더 기름진 땅, 좀 더 쉽게 농사를 지을 수 있는 곳을 찾아 나섰고 자연히 전쟁을 일삼게 되었다. 이때부터 그 지역에서는 땅을 뺏고 빼앗기는 일이 되풀이됐다.

14세기의 일이라고 한다. 유럽대륙에 극심한 흉년이 들어 어쩔 수 없이 유일한 가축인 젖소를 잡아먹지 않을 수 없게 되었다. 이때 발달한 것이 훈제의 기술이다. 고기를 연기에 그을려 익히면 상당기간이 지나도 변하지 않는다는 사실을 안 것이다.

고기를 오래 저장하면 변질은 필연적이다. 따라서 유럽인들에게는, 그 변질된 고기의 맛을 유지하고 썩은 냄새와 누린내를 없애주는 후추와 겨자가 절실했다. 그들은 후추를 얻기 위해 아프리카와 인도를 식민지로 만들었다.

그 이후 그들은 육식을 주로 하게 되었고 식민지를 더 개척하기 위해 바다로 나가게 되었다. 육식을 즐기기 위해 그들은 돼지와 소를 번식시켰는데 그 결과 영국의 버크셔와 요크셔지방에서는 우수한 돼지 품종을 내놓게 되었고 우량 고기소를 계속 육종했다.

이렇게 육식을 일삼게 되면서 그들은 개나 고양이 등 애완동물에 대해서는 이상하리 만큼 강한 집착을 갖게 되었다. 반면 소 돼지는 식품으로 간주, 도축에 대한 연민을 조금도 느끼지 않는다.

이로써 유럽인 특유의 잔인성이 생기게 되었다. 동양에서는 소나 돼지를 잡아먹기는 해도 도축장 한구석에서 그 영혼의 구원을 빌어준다. 아무튼 백인들의 공격적이고 진취적인 성격은 모두 이런 식품사정과 상통하는 바가 있다.
 

육식을 즐기는 민족에게 있어서 후추와 겨자는 절실한 것이었다. 그래서 그들은 해욍 식민지를 개척하게 되고…
 

기도하면 세가지 물질 분비돼

기독교인들은 식사 때마다 "하나님 오늘도 일용할 양식을 주셔서 감사합니다"라고 꼭 기도한 뒤에 숟가락을 든다. 간식을 먹을 경우에도 마찬가지다. 심지어는 차를 한잔 마셔도 기도한다.

구약성서에 나오는 최초의 인간인 아담은 빵을 먹기까지 15단계를 거치는 노력을 했다고 한다. 밭을 갈고, 씨를 뿌리고, 가꾸고, 수확하고, 가루로 만들고, 빵을 만들고 등등.

중동이나 유럽의 일기는 매우 불순하고 땅이 척박하다. 농사도 흉년이 들기 일쑤여서 곡식은 물론 우유와 고기도 마음대로 얻기가 어려웠다. 그래서 그들은 구약시대인 아득한 옛날부터 하나님에게 양식을 먹도록 해준 데 대한 감사를 드려왔다.

이에 비해 우리가 먹는 쌀은 쌀 미(米)자가 의미하듯이 무려 88단계를 거쳐 생산되는 데도 식사시에 감사의 기도를 올리는 일은 드물다. 그저 농사짓는데 수고한 농부들의 노고에 감사하는 정도다.

좀 더 생각해 보면 그 이유가 도출된다. 중국이나 우리나라는 땅이 비옥하고 비가 때 맞춰 내리기 때문에 벼농사가 발달했고 밀 보리도 잘되는 편이었다. 흉년이 가끔 들기는 해도 유럽과 같은 그런 혹독한 흉년이 들지는 않았다. 또 목축보다는 논 밭농사가 주였기 때문에 성질이 유순하고 느긋하다. 그래서 굳이 바다로 나가 식민지를 구하는 일을 할 필요가 없었다. 식사에 대해서도 특별히 감사의 기도를 드릴 필요성을 느끼지 않았다. 이러한 자연조건의 차이가 동서양 사람들의 성격이나 의식의 차이로까지 이어져 왔다고 생각할 수 있다.

기도와 관련된 재미있는 연구가 있다. 식사를 하기 전에 감사하는 마음을 갖고 기도 하면(그 기도가 하느님을 향한 것이든, 농사 짓는데 수고한 농부에 대한 것이든) 사람의 몸에 세가지의 분비물이 생겨 소화를 돕고 입맛을 돋군다는 미국의 의사 존 자웻의 연구결과다.

그는 기도를 하면 일종의 백신(vaccine)이 생성돼 분비된다고 주장한다. 아직 화학적으로 정확히 알려지지 않은 이 백신이 모든 질병을 예방하는 기능을 갖고 있다고 자웻은 믿고 있다. 실제로 이 '기도백신'이 질병을 예방하고 면역기능을 항진시킨다는 연구결과가 계속 발표되고 있다.


또 기도 후에 항독소(antitoxin)라는 물질도 분비된다고 한다. 이것은 항체 역할을 담당, 각종 질병의 진행을 억제시켜 주고 병균의 침입을 막고 살균해 주기 때문에 질병예방에 도움이 된다는 것이 자웻의 설명이다.

셋째로 '앤티셉틴'(antiseptin)이라는 물질이 분비된다고 한다. 이것은 방부제의 구실을 함으로써 위장 내에서 음식물이 이상발효하거나 부패하는 것을 방지, 소화흡수를 돕고 건강을 증진시킨다고 자웻은 얘기한다.

백인들은 자기만의 기술, 자신만의 비밀을 좋아한다. 어쩌면 이런 습관이 오늘날의 특허제도로 이어졌는지도 모른다. 잘 알다시피 특허권은 철저히 배타적으로 보호받게 돼 있다.

훈제기술이나 치즈 버터제조기술 등이 오래도록 널리 소개되지 않은 까닭도 서양인의 성격에서 그 실마리를 찾을 수 있다.

그에 비해 동양에는 비밀이라는 것이 거의 없다. 넓은 들판에서 서로 사이좋게 농사를 짓고 음식을 나눠 먹었기 때문에 어떤 기술이 개발되면 거리낌없이 서로 비밀을 털어 놓고 사방으로 전하게 된다. 그래서 동양에서는 별다른 비밀이 없었고 특허라는 제도도 발달되지 않았다.

동양에도 흔히 비방이라는 것이 있다. 주로 식품을 만들거나 의약품을 제조할 때 이 비방이 등장한다. 동양인은 자신의 비방조차 다른 사람에게 굳이 감추지 않았다. 단지 정보유통이 늦어서 다른 사람에게 전해질 기회가 많지 않았을 뿐이다. 실제로 다른 사람이 그 비방대로 음식이나 약을 만들어도 별로 탓하지 않는다. 또 비방을 도용하는 사람도 그 행위를 죄스럽게 생각하지 않는다. 이것이 동양에서 특허제도가 발달하지 않은 이유다.

우리는 이처럼 여유있고 후덕하고 각박하지 않은 사회에서 살아왔기 때문에 지금도 매우 유순하다.

우리 속담에 '인심은 뒤주에서 난다'는 말이 있다. 먹을 것이 모자라지 않아야 인심을 쓸 여유가 있지 배가 고파서는 인심을 쓰기 힘들얘기다.

극지에 사는 에스키모의 세계에서는 네것 내것의 관념이 희박하다. 길손은 누구나 숙식을 제공받으며 그것을 당연한 것으로 여긴다.

그런 관념도 극지라는 특수한 환경이 낳았다. 에스키모의 양식인 사슴 연어 대구 등을 잡는 철이 한정돼 있는데다 수확량이 많지 않았기 때문에 서로 나눠 먹지 않으면 생명을 유지하기조차 힘들었기 때문이다. 만일 네것 내것을 엄격히 구분했다면 양식때문에 서로 죽고 죽이는 참극이 끊이지 않았을 것이다. 따라서 그런 비극을 막고 종족의 평화와 번영을 위해서는 부락민이 잡아온 먹거리를 부락공동의 것으로 간주할 수밖에 없었다. 그 결과 길가는 나그네도 어디서나 안심하고 먹이를 구할 수가 있게 되었다.

이런 습관은 아프리카의 오지에 사는 수렵 민족 가운데서도 찾아볼 수 있다.

중동지역 아랍민족의 경우 부자는 반드시 빈민을 구제해야 한다. 빈민도 부자에게 손을 내미는 것을 당연한 권리로 알고 있다.

아마도 사막이라는 극한적인 환경에서 가난한 사람도 살아나갈 수 있게끔 율법으로 그렇게 정해 놓았을 것이다.
 

서양인들은 간식을 하기 전에도 기도를 한다. 토양과 기후조건이 나빠 먹는 일이 용이하지 않았기 때문이다. 사진은 이탈리아 음식인 피자
 

감자농사는 망쳤지만…

일반적으로 세계사에 기록될만한 사건의 이면에는 '먹고 사는 문제'가 숨겨져 있다. 영국 독일 등지에서 봉건영주제가 발달한 것도 그들의 식량사정과 결코 무관한 일이 아니다. 그곳은 토양이 척박하고 단위 수확량이 적었기 때문에 영주제를 통한 대규모의 농업이 성행했다.

또한 신대륙으로 청교도들이 이주한 이면을 들춰 봐도 먹는 문제와 무관하지 않음을 금세 알 수 있다. 당시 영국의 영주들은 유럽대륙으로 수출하기 위한 감자농사만을 강요했는데 마침 감자에 치명적인 병충해가 엄습, 흉년이 들게 되었다 그래서 수많은 소작인들이 굶주림에 못이겨 신대륙으로 이주 한 것이 오늘의 미국을 탄생케 했다.

또 프랑스가 정치적으로 항상 불안정하지만 굳건히 나라를 유지하는 것도 다름아닌 농토가 넓기 때문이다. 농업생산이 안정돼 먹는 일에 신경을 쓰지 않아도 되었기에 오늘날의 위치를 고수하고 있는 것이다.

한편 공산주의가 당시 유럽에서 가장 낙후 됐던 러시아에서 최초로 성공한 것도 봉건시대의 영주들이 농노들을 너무 압제했기 때문이다. 굶주림에 시달린 농민들이 들고 일어나 왕정을 뒤엎은 것이다. 따지고 보면 여기에도 먹는 일이 도화선이 된다.

중국이나 우리나라에서는 종(노예)을 부려도 밥만은 한솥에 지어 먹었다. 그에 반해 백인들은 노예들이 따로 양식을 지어 먹게 했다. '톰아저씨의 오막살이'에서 등장하는 미국의 노예들은 각자 취사를 하고 있다. 주인과 노예는 먹는 것도 달라야 한는 차별 의식이 명백히 드러난다. 하지만 동양인은 비록 신분이 다를지라도 먹는 것에는 귀천이 없다는 사상이 근본적으로 배어 있다.

끝으로 명절이야기 한 토막을 해 본다.

서양 사람들은 부활절을 대단한 명절로 친다. 긴 겨울이 지나고 봄이 찾아와 새싹이 돋아나면 가축이 제 철을 만나 햇풀을 먹게 되고, 싱싱하고 풍부한 우유를 짤 수 있게 된다. 그래서 햇풀이 돋는 봄축제를 가장 즐겁게 맞는다. '

이에 비해 농사가 주업인 동양에서는 추석 설 등 중요한 명절이 가을과 겨울에 있다. 가을이 돼야 햇곡식을 수확하기 때문에 축제 가 가을에 집중돼 있는 것이다. 민속의 하나인 축제도 역시 식품을 얻는 것과 밀접한 관계가 있다.

크리스마스 때 각자 자기 집에서 케이크를 만들어 먹는 유럽인의 습관은 17세기 이후부터 생겼다는 설이 있다. 그 이전에는 영주 집에서 큰 케이크를 만들어 소작인에게 한쪽 씩 나누어 주었을 뿐이다.
 

우리의 추석 상. 동양의 중요한 명절은 가을 겨울에 집중돼 있다. 가을이 돼야 햇곡식을 먹을 수 있었기 때문이다.

이 기사의 내용이 궁금하신가요?

기사 전문을 보시려면500(500원)이 필요합니다.

1991년 08월 과학동아 정보

  • 원종익 과학 저널리스트

🎓️ 진로 추천

  • 문화인류학
  • 역사·고고학
  • 사회학
이 기사를 읽은 분이 본
다른 인기기사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