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금성이 반달처럼 보이는 이유

교사 천체관측회 참가기

실제 관측을 통한 천문학 학습방법이 천문현상을 가장 쉽게 이해할 수 있는 첩경임을 깨닫고…

지난 5월 18일, 19일 이틀간 한국아마추어천문학회(KAAS, The Korean Amateur Astronomical Society)는 경기도 가평 소재 제1관측소에서 지구과학교과교육연구회 소속 중고등학교 교사 18명과 함께 제1차 교사 연수회를 가졌다.

다행히 날씨까지 아주 맑아서 교사들은 저녁에 보인 금성 화성 목성은 물론 새벽에 뜬 토성까지 도합 4개의 행성을 관측하는 즐거움을 만끽할 수 있었다. 행성들 이외에도 많은 관측 대상 천체들을 섭렵해 참가 교사들은 짧은 투자 시간에 비해 두둑한 배당을 받았다고 입을 모았다.

연수회에 참가한 홍순관 지구과학교과교육연구회 회장(이화여고 교사) 이하 여러 교사들과 대화를 나누면서 우리나라 천문학 교육 현실에 아마추어 천문학의 '접목'이 얼마나 중요한 문제인지를 새삼 깊이 깨닫게 됐다. 이러한 관점에서 이번 연수회에 나타난 여러가지 일들을 재음미해보고자 한다.

가장 인상적인 천체
 

(그림 1)5월 중순에 보인 천체의 파노라마


상식적으로 별 관측회는 달빛을 피해야만 한다. 하지만 교사들 중에 혹시 천체 망원경을 통해 달을 못 본 분들이 있을까봐, 초저녁에 잠깐 떠 있다가 곧 서산으로 져서, 한밤중에는 별관측에 전혀 방해가 되지 않는 초승달을 관측 대상으로 잡았다. 5월 18, 19일은 음력으로 4월 5, 6일이었으므로 이러한 의미에서 아주 적합했다.

또한 달은 초승달이나 반달일 때 관측을 해야 구덩이나 산맥들이 그림자와 함께 뚜렷이 그 모습을 드러내기 때문에 가장 아름답게 보인다는 점도 고려된 것이다. 연수회 때 초승달은 저녁 놀에 붉게 물들어 환상적인 색조를 띠어 참가자들의 경탄을 자아냈다.

달은 관측 초보자가 천체 망원경을 통해 보았을 때 가장 인상적으로 기억에 길이 남게 되는 천체다. 아무리 사진에서 달 표면의 모습을 많이 보았다고 하더라도 실제로 자기 눈을 통해 보는 달의 자태란 신비하기 이를 데 없다. 특히 달은 5월 17일에는 금성과, 18일에는 화성과, 19일에는 목성과 나란히 있었기 때문에, 연수회에서 우리는 교사들에게 달이 매일 각거리로 약 13°씩 천구 상에서 동쪽으로 이동한다는 사실을 실감나게 설명해 줄 수 있었다(그림1).

즉 달은 지구의 자전 방향과 같은 방향(서→동)으로 약 27⅓일을 주기로 지구를 공전하므로 하루에 약 360°÷27⅓≃13°를 이동한다는 이야기다. 5월 중순에는 마침 금성 화성 목성이 황도 상에 거의 등간격으로 벌어져 빛나고 있어서 (그림1)과 같은 '천체의 파노라마'가 가능했던 것이었다. 이 상황은 (그림2)와 같이 설명할 수도 있다.

지구는 하루(24시간)에 1회(360°) 자전하므로 1°의 각거리는 24시간÷360=1/15시간=4분에 해당된다. 따라서 매일 약 13°씩 동진하는 달은 다음날 약 4분×13°=52분씩 늦게 뜬다. 예를 들어 오늘밤 달이 9시에 떴다면 내일밤에는 9시 50분쯤 뜬다는 이야기다.

달은 언제나 여러가지 모양으로 위상이 변하는데 이에 따라 출몰 시각도 같이 바뀜에 유의해야 한다. 예를 들어 이미 앞에서 설명 했듯이 초승달은 저녁에 진다. 따라서 깊은 밤인데도 불구하고 하늘에 초승달이 걸려 있는 장면이 TV에 나온다면 이는 '상식적인 차원에서' 문제가 있는 것이다.

상현달은 초저녁에 남중했다가 자정쯤 진다. 보름달은 저녁에 동녘 하늘에서 떠올라 자정쯤 남중하고 새벽에 진다. 추석날 저녁 온 가족이 모여 앉았을 때 운치있게 동산 위에 걸린 보름달의 모습은 '태평연월'이 아닐 수없다.

하현달은 상현달과 정반대로 자정쯤 떠서 새벽녘에 남중한다. 그믐달은 새벽에 떠서 곧 여명 속으로 사라진다. 그믐달이 '비련의 주인공'에 자주 비유되는 이유는 바로 이 때문이다.
 

(그림 2)천체의 파노라마가 일어난 까닭


내행성의 특성
 

(그림 3)수성과 금성의 최대이각


이제 이야기를 행성으로 돌려 보자. 몇 달에 걸쳐서 관측해 보면 행성들은 별자리에 대한 상대적 위치가 고정돼 있지 않음을 알게 된다. 즉 "화성은 가을철 별자리에 위치하고 있어서 가을에만 보인다"라는 식으로 잘라 말할 수 없다는 이야기다. 행성이란 이름은 바로 여기서 유래된 것인데, 이는 물론 태양에 대한 행성의 공전운동에서 비롯된 것이다.

수성 금성과 같은 내행성은 지구에서 볼 때 태양을 가운데에 두고 일정한 주기로 왕복운동을 한다. 이번 연수회 때 금성은 (그림1)에서 처럼 저녁 때 보였다. 즉 금성이 태양보다 더 동편에 있어서 태양이 먼저 지고 저녁 하늘에 남게 된 것. 물론 몇 달 후 금성이 태양의 서편으로 가게 되면 이제는 동녘 하늘의 샛별(새벽별)이 되는 것이다.
 

(그림 4)금성이 동방최대이각을 가질 때


내행성은 궤도의 크기가 정해져 있기 때문에 결코 태양으로부터 어떠한 각거리 이상 멀어질 수 없다. 바로 이 한계가 되는 각거리를 내행성의 최대이각이라고 한다. 내행성이 태양의 동편, 서편에 있을 때의 최대이각을 각각 동방최대이각, 서방최대이각이라고 부른다. 행성들의 궤도는 거의 원에 가깝기 때문에 동방최대이각과 서방최대이각은 크기가 같고, 수성의 경우는 약 28°, 금성의 경우는 약 48°가 된다.

최대이각은 흔히 천문학 교육 과정에서 (그림3)과 같이 강의된다. 하지만 실제로 우리 눈에는 (그림4)와 같이 관측된다는 사실을 강조해야 학생들의 이해와 기억에 큰 도움이 된다. (그림4)에는 금성이 동방최대 이각을 가질 때, 그리고 달이 마침 초승달의 모습을 하고 있을 때의 상황이 그려져 있다. 물론 이 그림에 초승달 대신 반달을 그려서도 안 된다. 그리고 금성이 지는 태양의 바로 위쪽이 아니고 좌측 상단에 있다는 점도 유념해야 한다. 왜냐하면 우리나라에서 볼 때는 황도가 경사를 유지하기 때문이다.
 

(그림 5)내행성의 위상 변화 원리


내행성은 태양과 지구의 상대적 위치에 따라 달처럼 위상 변화를 한다(그림5). 연수회 때 천체 망원경을 통해 본 금성은 반달과 비슷한 모습을 하고 있었다. 즉 금성은 당시 동방최대이각 근처에 위치하고 있었다고 말 할 수 있다. 반달처럼 보이는 금성의 모습은 천문학의 역사에서 매우 의미심장한 것이다. 왜냐하면 바로 이 관측 사실이 근세 천문학 혁명기에 천동설을 뒤엎은 결정적 증거가 됐기 때문이다.

갈릴레이(Galilei)가 쓴 천체망원경이란 고작 오늘날 성능 좋은 쌍안경 정도에 불과한 것이다. 하지만 갈릴레이도 반달, 때로는 더욱 볼록한 모습을 지닌 금성을 관측할 수 있었다. 이것은 (그림6)과 같은 천동설 우주관으로는 도저히 설명할 수 없는 것이었다. 왜냐하면 (그림6)에서 알 수 있듯이 천동설 우주에서는 수성과 금성이 기껏해야 초승달 모양으로밖에 보일 수 없기 때문이었다.

이외에도 몇가지 다른 관측 증거들로 인해 난공불락의 요새와 같던 천동설 우주관은 무너지게 됐던 것이다.
 

(그림 6)천동설의 우주관


프레세페와 목성을 한 시야에
 

서산으로 지고 있는 목성과 프레세페 성단


연수회의 날짜를 5월 중순으로 확정한 또 다른 이유 하나는, 이 때 목성이 게자리의 유명한 산개 성단 프레세페(Praesepe)에 접근했기 때문이다(사진 참조). 프레세페 성단은 지름이 보름달의 약 3배가 되는 영역에 약 75개의 별이 모여서 이루어져 있다. 따라서 연수회에 참가한 교사들은 비교적 배율이 낮은 천체 망원경으로 한 시야에 성단과 목성을 같이 관측하면서 탄성을 자아냈다.

연수회 때 밤하늘에는 늦은 봄의 별자리들이 펼쳐져 있었다. 큰곰(Ursa Major) 사자 (Leo) 처녀(Virgo) 목동(Bootes) 자리들이다. 연수회 참가자들은 이성주 가평관측소장(백석중 교사)과 KAAS 이태형 간사가 들려주는 별자리 이야기 '전설 따라 3천년'을 들으면서 목이 아프도록 밤하늘을 뚫어져라 응시했다.

프로그램 사이사이 천체 망원경의 조작법을 숙달하는 시간도 가졌다. 여기에는 대학부 회원들(서강대와 이화여대)이 교사들과 거의 1대1로 붙어서 같이 조작을 도와줬다.

연수회가 진행되는 도중 어느 교사는 천체 망원경에서 눈을 떼며, "야, 나도 우리 학생들에게 보여 줘야지"라고 말하기도 했다.

이 한마디는 우리나라 천문학 교육의 현실을 잘 대변해 주고도 남음이 있었다. 많은 내용을 가르쳐야 하는 우리나라 과학교육의 현실상 교사들이 천문학만을 붙들고 시간을 끌 수 없는 것이 우리 실정이다. 그리고 모든 과학 과목이 다 그렇듯이 천문학도 나열된 지식을 암기하는 식으로 학습돼서는 안된다. 고등학교에서 천문학을 배운 학생이 "형, 화성은 정말 붉어?"라고 묻는 동생의 질문에 대답할 수 없다면, 그 학생은 틀림없이 선생님이 칠판에 동그라미만 잔뜩 그렸다는 기억밖에 남지 않았을 것이다.

앞에서 여러 예를 든 것처럼, '관측을 통한' 천문학 학습 방법이 결국 입시에서도 좋은 성적을 거둘 수 있는 천문학 학습의 바른 길이라는 사실을 모두가 깨달아야 할 것 이다.

새벽에 떠오를 여름철의 별자리와 토성을 기다리며, 연수회에 참석한 모든 사람들은 캠프 파이어를 가졌다. 이 자리에서 천문학 교육에 관계된 여러 문제가 깊이 논의됐는데, 결론은 관련된 단체들, 특히 KAAS, 지구과학교과교육연구회, 우주소년단 지도교사협회가 긴밀하게 협조해야 한다는 쪽으로 모아졌다.

KAAS도 이에 발맞춰 교육간사를 중심으로 한 교육지원팀을 구성했다. 아울러 올여름 한국 아마추어 천문학 역사상 최대 규모의 별잔치(star party)를 열 예정이다. 자세한 문의는 전화 (02)453-8158로 하기 바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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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91년 07월 과학동아 정보

  • 박석재 강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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