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선생님의 칭찬 한마디가 식물학 반세기 나의 길 결정

과학외길


전 이화여대 식물분류학과 이영노 교수


나는 전북 옥구군 개정면 동정(東井)부락 양지 바른 농가에서 한학을 하신 엄친과 매사에 자상하신 모친의 막내 아들(4남)로 태어났다. 마을 주위는 소나무와 밤나무로 둘러싸인 동산으로 반 이상이 우리땅이었다.

어려서 서당에 조금 다니다가 개정국민학교에 입학, 4학년까지 다니고 대야국민학교로 옮겼다.

대야국민학교를 수석으로 졸업한 후에는 전주사범학교 심상과(尋常科)에 입학했다.

전주사범 1학년 시절인 4월 어느 날 식물학 담당 무라카미(村上一男) 선생님이 왕벚나무 꽃봉오리가 피기까지의 관찰도를 그려내라는 숙제를 내셨다. 전체 1백명 가운데 제일 잘 그려냈다는 평을 받은 나의 관찰도는 이학관(理學館)생물실 앞 게시판에 걸렸다.

이로 인해 내 이름은 많은 학생들에게 알려졌고 무라카미 선생님은 내게 더욱 각별한 사랑을 베풀어 주셨다. 선생님은 심지어 경성대학 모리(森爲三) 박사가 시찰하러 오셨을 때도 특별히 소개를 해주셨다.

이때 전주사범 부속국민학교 교사로 계시면서 전주사범학교에 출강, 동물학을 강의하셨던 최기철 선생님을 만나게 됐다. 최선생님께서는 일본 동물문검(動物文檢)을 합격하시고 식물문검 준비를 막 시작하신 분이어서 틈만 나면 산야로 식물공부를 하러 나가시는 것이었다. 나는 식물공부를 할 수 있는 절호의 기회라고 생각하고 최선생님이 청주사범학교 생물교사로 가실 때까지 2년 동안 그분과 함께 산야에서 식물을 채집하고 관찰했다.

3학년이 됐을 때 무라카미 선생님은 내게 교내 식물을 두루 찾아 명패를 달도록 지시하셨다. 그리고 내가 만든 남고산(南固山·학교뒷산)의 식물목록을 교지에 실어주시며 다음과 같은 말씀을 덧붙이셨다.

"식물공부는 이영노처럼 해야 한다."

이 한마디가 필자에게 식물학도의 외길을 걷게 했다.
 

1939년 12월30일 전주사범학교 생물교사실에서. 오른쪽부터 첫번째가 필자, 다섯번째는 생물담당교사 무라카미(村上一男)선생님, 여섯번째가 최기철 선생님이다.
 

1994년 11월 과학동아 정보

  • 이영노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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