입체적인 구조연구에 중점을 둬 온 단백질연구는 그 1차목표가 달성되자 이제는 유전자재조합기술과 결합해…
어떤 기계의 작동원리를 이해하려면 그 구조를 우선적으로 파악해야 하는 것이 순서다. 마찬가지로 단백질의 생물학적 기능을 분자 메커니즘 수준으로 밝혀내기 위해서는 단백질 자체 분자구조에 대한 물리적 화학적 이해가 선행돼야 한다. 그러므로 단백질 연구의 발전은 역사적으로 볼 때 구조연구에 그 바탕을 두고 있다.
1900년대 초에 피셔(Fischer)와 호프마이스터(Hofmeister)가 단백질을 이루는 아미노산들 사이의 화학결합이 펩티드(peptide) 결합임을 밝혀낸 후 단백질 분리에 사용될 수 있는 여러가지 화학적 분리방법이 고안되었다. 또 1940년대 말에 영국의 화학자 생거(Sanger)는 인슐린의 아미노산 결합순서(1차 구조)를 알아내는데 성공했다. 그러나 이때만 해도 단백질과 같은 거대 분자의 입체 구조를 해명하는 일은 거의 불가능하다고 여겼다.
그로부터 다시 10여년이 지난 후에는 켄드루(Kendrew)가 X선 회절방법을 사용, 미오글로빈(myoglobin)의 입체구조를 결정하는 개가를 올렸다. 말하자면 단백질의 구조가 비로소 밝혀지기 시작한 것이다. 곧이어 헤모글로빈(hemoglobin)의 입체구조가 페루츠(Perutz)에 의해 밝혀지게 되자 단백질연구는 본격적인 발전의 시대를 맞게 되었다. 최근에는 초원심분리기 고성능 핵자기공명 장치(NMR) 등을 비롯한 여러가지 첨단 연구기기와 슈퍼컴퓨터의 활용으로 단백질연구의 발전이 더욱 가속화되고 있다.
화학적으로 만든 단백질
근래에 이르러 생화학과 분자생물학의 급진적인 발전으로 말미암아 새로이 탄생된 단백질공학(protein engineering)은 각종 미생물을 활용, 이용가치가 높고 기능이 개선된 단백질의 대량생산을 가능하게 했다. 특히 1953년 왓슨(Watson)과 크릭(crick)이 유전물질인 DNA의 이중나선 구조를 밝힌 이래 코른베르크(Kornberg)의 DNA복제효소 발견, 니렌베르크(Nirenberg)와 코라나(Khorana)의 유전암호 해독, 스미스(Smith)의 제한효소 발견 등 굵직굵직한 연구업적을 토대로 성립된 유전자 재조합기술은 단백질공학의 중요한 기본수단이라고 할 수 있다.
이미 단백질공학은 희귀단백질의 대량생산이나 단백질 구조의 부분적 변형에 따른 기능향상을 통해 질병의 예방과 치료 진단 등 우리의 일상생활에 크게 기여하고 있다. B형 간염백신 인슐린 인터페론 성장호르몬 등이 대표적인 예다. 이밖에도 암 또는 유전병 치료를 비롯해 산업적 이용을 위한 단백질공학 연구가 끊임없이 계속되고 있다.
한편 1984년 노벨 화학상을 수상한 메리필드(Merrifield)는 유전자 재조합기술을 전혀 사용하지 않고 완전히 화학적인 방법으로 항(抗)바이러스 활성(活性)을 갖는 1백55개의 아미노산으로 구성된 인터페론과 RNA 가수분해효소 활성을 지닌 1백24개의 아미노산이 연결된 리보 뉴클레이스를 합성한 바 있다.
이처럼 유전자재조합 또는 화학적인 방법을 통해 단백질의 특성이나 기능을 사용목적에 적합하도록 변형시키거나, 전혀 새로운 기능의 단백질을 설계해 직접 인공단백질을 생산하게 하는 것이 단백질공학의 요체다. 이 분야는 그 이용성에 대한 무한한 잠재력이 널리 인정되고 있으며 인류복지와 산업발전에 중요한 역할을 할 것으로 기대되고 있다.
「가장중요하다」는 뜻
1838년 스웨덴의 화학자 베르질리우스(Berzelius)의 제안에 따라 '가장 중요하다'(of first importance)는 뜻으로 이름지어진 단백질(protein). 이것은 세포내에서 화학구조가 각기 다른 20종류의 아미노산들이 수십 내지 1천여개 이상 독특한 순서로 결합, 생명현상의 거의 모든 과정에 걸쳐 복잡하고 다양한 생물학적 기능을 수행하는 생체거대분자(biological macromolecule)다.
수분을 제외한 세포 구성성분의 절반 이상이 단백질이고 바이러스에서 고등세포에 이르기까지 수천종류의 단백질이 이미 알려져 있다. 심지어는 대장균과 같은 미생물도 2천 여종의 단백질을 합성할 수 있는 유전자를 가지고 있다. 단백질은 그 생물학적 기능이 매우 다양하지만 크게 분류해 보면(표1)과 같다.
대표적인 촉매단백질인 효소(enzyme)는 대단히 정교한 메커니즘으로 생체화학반응을 진행시킨다. 예컨대 우리가 섭취한 음식물을 분해해 생존에 필요한 에너지를 생산하는 과정, DNA가 갖고 있는 유전정보를 근거로 삼아 RNA를 거쳐 단백질을 생합성하는 이른바 유전정보의 전달체계, 그밖의 수많은 생화학반응들이 각기 다른 여러가지 효소의 촉매작용의 도움을 받아 이루어지고 있다.
또 일부 미생물들의 효소는 인체에 유독한 황화물 일산화탄소 또는 석유화학공업의 부산물인 탄화수소계 화합물 등을 무해한 물질로 전환시키는 반응을 도와주기도 한다. 그러므로 이와 같은 미생물을 잘만 활용한다면 인류가 직면하고 있는 심각한 환경 공해문제에 대해 물리적인 대응책이나 다른 화학반응을 이용하는 것보다 훨씬 간편하고 반영구적인 해결책을 제시할 수 있을 것이다.
한편 운반단백질(transport protein)은 생체 유기분자 또는 이온을 세포막 내외로 운반하는 역할을 담당하고 있다. 그 대표적인 예는 헤모글로빈(hemoglobin, Hb)이다. 알다시피 헤모글로빈은 폐에서 산소와 결합, 신체의 말단조직으로 산소를 공급하는 단백질이다. 저장단백질(storage protein)은 생명체의 에너지원으로 이용되는데 식물 씨앗의 단백질, 우유의 카제인, 계란 흰자의 알부민 등이 여기에 속한다.
수축성 단백질(contractile protein)이란 근육의 이완-수축운동에 대한 주체적 기능을 담당하는 단백질을 말한다. 머리카락 손톱 등을 이루는 케라틴과 같은 구조단백질(structural protein)은 일반적으로 생물학적 구조의 지지체 역할을 하고 있다. 그리고 방어단백질(defense protein)이라는 것도 있는데 항체가 그 대표격이다. 이 단백질은 외부의 공격인자로부터 생명현상을 보호하고 유지하는데 필수적이다.
알다시피 20세기의 흑사병으로 불리는 후천성 면역결핍증(AIDS)은 바이러스가 면역세포에 침입, 항체의 생성 능력을 파괴함으로써 생기는 병이다. 즉 항체 결핍을 초래해 궁극적으로는 항원에 의한 방어력을 상실시키는 것이다.
한편 조절단백질(regulatory protein)의 예로는 당대사를 조절하는 인슐린이나 고등세포의 성장과 분화를 조절하는 성장호르몬 등을 들 수 있다. 이 단백질은 광범위한 생체대사에 참여하고 생리활성을 조절하는 기능을 수행한다.
마치 커다란 공장에서 고도로 분업화된 수많은 전문인력들의 작업과정을 거쳐 완제품이 생산되고 기업이 운영되듯이 여러가지 단백질의 독특한 생물학적 기능들이 신비스런 조화를 이루어 생명체의 발생과 생존을 지배하는 것이라고 할 수 있다. 그러므로 이들 중 어느 한가지 단백질의 기능에 이상이 생기면 매우 심각하고 심지어는 생체에 치명적인 결과를 초래하기도 한다.
그 흔한 예로 당뇨병을 들 수 있다. 대표적인 성인병인 당뇨병은 인슐린의 작용기능에 결함이 있거나 인슐린의 생합성이 순조롭지 못할 때 일어나는 당대사의 장애로 인해 유발된다. 또 다른 예로 헤모글로빈의 산소 결합기능이 손상되면 빈혈이라는 증상으로 어려움을 겪게 된다.
각 단백질의 고유한 기능은 복잡하고 거대한 단백질분자의 입체구조에 따라 결정된다. 이러한 입체구조를 이루는데 필요한 정보, 즉 아미노산 결합순서는 유전자(DNA)에 수록돼 있다. 다시 말하면 DNA는 단백질의 생합성을 위한 설계도라고 말할 수 있다. 이 설계도는 전령RNA(mRNA)에 전달되고 이어서 전령RNA는 단백질 합성공장인 리보솜에 아미노산 결합순서에 대한 정보를 제공함으로써 단백질이 합성된다.
그러므로 유전자 자체에 손상이 있거나 유전정보의 전달과정에서 문제가 생기면 원래의 구조와 다른 단백질이 합성될 수 있다. 그 결과 단백질의 고유한 기능이 마비되기도 한다.
유전자재조합과 같은 이른바 유전공학기술은 유전자의 인위적인 변형을 통해 특정기능이 향상된 단백질 또는 전혀 새로운 생물학적 기능을 갖는 단백질을 만들어내기 위한 수단으로 이용되고 있다.
단백질의 구조와 기능 그리고 그 작용 메커니즘을 알아내는 것은 생명현상의 기본원리를 분자적 수준에서 이해하고자 하는 현대 생화학의 가장 중요한 연구분야 중 하나로 꼽힌다. 따라서 단백질연구는 물리 화학 의학 약학 등 자연과학분야와도 밀접한 연관성을 유지하고 있다.
예컨대 물리학에서는 X선 회절방법을 통한 단백질의 입체구조 해석에 역점을 두고 있다. 예컨대 광물리(photophysics) 등을 단백질의 구조분석연구에 이용하고 있다. 그런가 하면 화학자들도 다각도로 단백질연구에 매달리고 있다. 특히 효소의 촉매 메커니즘을 연구하는데 반응속도론 입체화학 전기 화학 유기합성반응 등이 유용하게 쓰이고 있다. 이밖에도 여러가지 화학적 분석수단이 단백질 연구에 필수적으로 적용된다. 의·약학 분야의 연구자들에게는 효소 촉매반응의 결함 또는 세포내 특정단백질 생합성과정의 이상에 따른 세포의 형질변형(암세포 형성)이 주된 관심사다. 또 질병유발의 원인규명 및 새로운 약품의 개발 등 인류 보건의 증진과 관련된 연구가 진행중이다. 농·수산·식품·영양분야에서도 수확량의 증대, 새로운 식량자원의 개발 또는 질적 향상 등과 관련된 단백질연구는 매우 큰 비중을 차지하고 있다.
국내외의 연구현황
단백질연구의 중요성을 확실히 인식하고 있는 과학선진국에서는 이미 오래 전부터 창의적인 연구분위기를 조성하고 대학에서의 연구가 활발하게 이루어질 수 있도록 과감한 지원을 아끼지 않고 있다. 뿐만 아니라 독립적인 연구소를 운영하면서 훌륭한 연구 업적을 쌓아왔다.
기초과학 분야에서의 단백질연구의 중요성은 그동안 세계적으로 크게 부각돼 왔다. 그 증거로 1954년 이후 매년 평균 1명씩의 노벨 화학상 또는 생리의학상 수상자가 단백질연구 분야에서 탄생되고 있다는 사실을 들 수있다.
생명현상의 본질을 기초학문적 시각에서 이해하고 나아가서는 그 응용의 폭을 넓히기 위한 시도가 지금도 세계 곳곳에서 이뤄지고 있다. 지금까지 알려진 단백질의 생합성 메커니즘을 밝히는 작업이 활발하게 진행되고 있을 뿐더러 새로운 단백질을 발견하고 그 생화학적 기능을 알아내려는 연구가 꾸준히 이뤄지고 있다. 이러한 방향으로 집중적인 연구를 추진하는 과정에서 유능한 과학자가 배출되고 그들의 풍부한 창의력이 개발되고 있다. 뿐만 아니라 새로운 연구방법의 고안 등이 효율적으로 또 매우 빠른 속도로 진전되고 있다.
그렇다면 국내에서의 단백질 연구는 어떤가. 과거에 비해 우수한 연구인력이 많이 확보되고 정부나 기업으로부터의 지원이 확대됨에 따라 연구환경이 개선돼 가고 있는 추세다. 한마디로 상당히 활성화 되었다고 볼 수 있다.
세계적인 연구집단들의 노력으로 단백질 연구에 관한 새로운 정보가 광범위하게 축적되면서 이를 토대로 유용한 단백질을 대량생산하고 신기능 단백질을 개발하는 것에 대한 이해와 관심이 고조되고 있다. 이런 국제적 동향에 발맞추어 국내에서도 기업단위의 연구소에서는 단백질의 응용연구에 대한 범위를 차츰 넓혀가고 있다.
우리가 누리고 있는 현대의 기술문명은 수많은 과학자들의 끊임없는 노력으로 다져진 기초연구의 바탕위에 피어난 꽃이라고 할 수 있다. 단백질연구에 있어서도 마찬가지다. 그 기초연구의 중요성은 모두에게 깊이 인식돼야 한다. 기초연구의 뒷받침 없이는 고도의 기술능력을 갖출 수 없다. 요컨대 기초를 홀대하면 날이 갈수록 확산되고 있는 보호무역주의에 대처할 수 있는 능력도 곧 상실하고 말 것이다.
그러나 기초연구를 담당해야 할 대부분의 우리나라 대학에서는 연구시설과 연구자금의 한계성 때문에 제 역할을 다하지 못하고 있다. 수많은 연구자들의 탐구의욕과 창의력이 발휘될 수 없는 상황인 것이다.
현재 국내의 여러 대학 및 연구소에서는 단백질의 입체구조, 유전자의 발현과 조절, 생체신호 전달과 관련된 단백질 효소의 기능, 단백질 호르몬 등에 대한 기초연구와 단백질공학 연구가 광범위하게 이루어지고 있다. 특히 필자가 소속된 연세대학교에서는 효소의 구조와 촉매반응 메커니즘, 콜레스테롤 운반과 관련된 단백질, 종양괴사 단백질, 단백질과 DNA의 상호작용, 단백질 생합성 메커니즘 등 기초연구가 중점적으로 진행되고 있다.
대뇌연구가 핵심과제로
국제적으로는 단백질 입체구조 연구가 하버드(Harvard)대학, 스위스의 바젤(Basel) 대학, 독일의 막스플랑크연구소, 일본의 오사카대학 등에서 꾸준히 진행되고 있다. 특히 최근 미국에서는 아직까지 잘 알려지지 않고 있는 대뇌를 중심으로 한 중추신경계의 단백질연구가 핵심과제로 부각되고 있다.
이와 관련해 하버드대학, 펜실베이니어대학 등에서는 노인성 치매(Alzheimer's disease)의 근본 원인을 이해하고자 하는 단백질 연구가 추진되고 있다. 또한 항체와 효소의 기능을 통합, 표적항원을 인식하는 즉시 분해시킴으로써 면역체계의 방어역량을 훨씬 높이는 새로운 단백질인 효소 항체(abzyme 또는 catalytic antibody)가 캘리포니아의 스크립스(Scripps)연구소와 버클리대학 연구진에 의해 개발됐다. 이와 같은 연구의 진전은 심장질환의 예방과 치료를 위한 응고혈액의 용해, 암세포의 추적 및 파괴 등 의학분야에 효과적으로 이용될 수 있을 것이다.
20세기 후반기는 생명과학의 시대라고 한다. 눈부신 물질문명의 발달에도 불구하고 생명현상의 심오한 비밀은 대부분이 아직도 신비의 세계에서 벗어나지 못하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