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근의 뇌연구는 노인들의 뇌기능이 기존의 속설과는 달리 젊은이와 큰 차이가 없음을 보여준다.
나이를 먹음에 따라 신체의 기능이 둔화되는 것은 피할 수 없는 일이다. 눈이 침침해지고 피부는 축 늘어지고 근육은 탄력을 잃는다. 그러나 정신까지 흐릿해진다고 믿어왔던 속설은 잘못된 것일지 모른다.
최근 뇌연구를 하는 일군의 학자들은 나이를 먹어감에 따라 두뇌가 반드시 기능이 떨어지거나 생각하는 능력을 잃는 것은 아니라고 주장하고 있다. 실제로는 전반적인 신체노화 때문이 아니라 질병때문에 정신적인 노화현상이 나타나는 것으로 새롭게 해석하고 있는 것이다.
"노화현상과 뇌기능 저하의 상관관계는 실제 사실보다는 그간 전해내려온 속설에 기초하고 있다. 실제로 노화현상에 대해 연구하며 특별한 질병이 없는 상태의 뇌를 관찰해보면 나이를 먹는 것 그 자체로 인식이나 지적인 활동의 기능이 떨어지거나 손실된다고 믿을 이유가 하나도 없다는 것을 알게된다." 미국 국립노화연구소(National Institute on Aging)의 연구총감독인 하차투리안 박사의 말이다.
수십년에 걸친 실험 필요
두뇌가 나이를 먹어가면서 변한다는 사실은 의심할 여지가 없다. 이 점은 노화현상에 대해 아무리 걱정하지 않는 학자라해도 인정하는 바다.
나이를 먹어감에 따라 두뇌는 작아진다. 무게가 10%정도 줄어들며, 어떤 큰 신경세포는 시들해지기도 한다. 그러나 이런 변화가 얼마나 중요한 의미를 갖는지는 아직 확실하게 밝혀지지 않았다. 두뇌의 작용에 대해 밝혀진 것 자체가 얼마 없기 때문이다. 단지 나이가 들면 퇴화한다고 생각하는 것이 자연스러우므로 일반인들 뿐 아니라 과학자들도 노인들이 젊은 이보다 지적 능력이 떨어지는 것으로 생각해왔다.
물론 직업상의 어떤 분야에서는 '노인의 현명함'을 인정해 주기도 한다. 예를 들면 연방판사에게는 은퇴연한이 없으며 대통령이나 국회의원도 마찬가지다. 그러나 다른 많은 분야에서는 사업이든 학문이든간에 인간의 정신능력이 나이에 따라 쇠퇴한다고 믿고 있다. 수학자의 가장 큰 명예인 필즈 메달(Fields medal)은 전통적으로 40세 미만의 사람들에게만 수여되고 있다. 이유는 그 나이 이후면 학문적으로 더 중요한 발견을 하지는 못할 것으로 간주하기 때문이다.
지금까지 두뇌의 노화현상에 대한 규명작업은 많지 않았다. 그 이유 중 하나는 필요한 연구를 하기가 쉽지않다는데 있다. 겨우 몇 십년전에야 노화에 대한 생각이 바뀌기 시작하면서 실험대상으로 사람들을 정해놓고 그들이 나이를 먹어가면서 겪는 정신능력의 변화를 관찰하기 시작했다. 이 연구의 결과가 이제 겨우 나오기 시작한 것이다.
대부분의 실험들이 아직 진행 중이지만 공통의 결론은 점차 뚜렷해지고 있다.
"그간 우리가 노화현상에 의한 것이라고 믿었던 뇌의 변화가 질병에 의한 것으로 이해되고 있다." 국립노화연구소의 진 코헨박사의 말이다.
노화연구소에서 행해온 실험 중 하나는 1958년에 시작됐으며 지금은 20세에서 97세에 이르기까지 2천명의 사람들이 관찰되고 있다. 이 사람들 중 70대의 노인들은 연구원들이 가 졌던 노화에 따른 뇌기능 퇴화의 개념을 뒤흔들어 놓고 있다.
노인들은 정신기능 테스트에서 부분적으로 반응이 늦을 뿐이었고 그 차이도 그리 중요하지 않은 것 같다. 그림에 그려진 눈에 익은 사물의 이름을 맞추는 실험에서는 70세된 사람들이 30세의 젊은이들보다 평균 0.25초정도 더 시간이 걸렸다. 여기에 대해 관련학자들은 노인들의 기억력이 좋지 않아서일 수도 있지만 노인들이 기억하고 있는 것이 훨씬 많기 때문에 그걸 찾는데 시간이 더 걸릴 수도 있는 것으로 해석하기도 한다.
다른 실험은 서로 관련이 없는 낱말들을 기억하게 하는 것이다. 20세 전후의 젊은이에게 단어리스트를 보여주고 그것을 5회에 걸쳐 테스트해 보면 평균 10단어 정도를 기억한다. 그러나 70세의 경우 평균적으로 젊은이들의 35% 정도를 기억한다. 이 차이는 나이 때문일지도 모르지만 기억이 훈련에 의해 향상되는 것이란 해석도 가능하게 한다. 학교를 막 졸업했거나 재학중인 젊은이들은 이런 리스트를 기억하는 데 더 익숙할 것이다. 이는 바꾸어 말하면 노인들도 훈련을 통해 기억력이 향상될 수 있다는 가능성을 보여주는 것이다.
훈련으로 뇌기능 강화유도
사고능력 테스트에서 나타난 보다 중요한 사실은 점수가 좋지 못한 노인들 대다수가 정신능력과 관련한 질병을 앓고 있다는 것이었다. 예를 들면 심리적 압박감이나 건망증 아니면 알츠하이머(Alzheimer, 노인성 치매) 등의 병이 있는 것으로 밝혀졌다. 이를 통해 나이가 들면 기억력이나 다른 인식기능에 놀랄만한 변화가 올 수 있지만 그것은 노화보다는 병리현상의 결과일 수 있다는 주장이 제기된다.
사실 지금까지의 지능테스트는 연령이 많을수록 같은 지능지수(IQ)를 받기위해 필요한 점수를 더 낮게 책정해 주고 있다. 그러나 연구진은 건강한 사람의 경우 나이가 들어도 테스트에서 받는 실제 점수는 젊은이들과 거의 같다는 것을 알아냈다. 나이에 따른 지능 테스트의 결과를 조정하는데 고려된 사람 속에는 질병으로 사고기능이 퇴화된 노인들이 포함돼 있었고 이 노인들의 점수로 노인 집단의 평균지능이 떨어진다는 것이다.
더욱 놀라운 것은 노인집단과 젊은 집단이 어휘구사능력과 일반 상식에 있어서는 거의 똑같은 평균점수를 받았다는 것이다.
한편 동물실험을 통해 두뇌의 놀랍도록 왕성한 재생능력을 발견한 학자도 있다. 캘리포니아대학의 코트만 박사는 노인의 두뇌가 젊은이의 두뇌와 똑같이 뇌세포간의 신경망을 재생시킬 수 있다는 사실을 알아냈다.
그의 연구팀은 늙은 쥐와 어린 쥐의 뇌 특정부위에 똑같이 손상을 입힌 뒤 그 회복과정을 관찰해 양자 모두에서 신경세포간의 새로운 망이 생겨나는 것을 알아냈다.
"우리는 모두 놀랐다. 사실 늙은 쥐의 경우 손상부위가 결코 회복될 수 없으리라고 보았기 때문이다." 코트만 박사의 말이다. 이에 더해 코트만 박사는 늙은 쥐나 어린 쥐 모두 뇌세포간의 연결을 회복하는 과정에서 새끼일 때 사용되고 그 이후로는 사용되지 않았던 유전자가 다시 가동되는 것을 밝혀냈다. 동물과는 달리 인체의 경우 살아있는 사람의 뇌를 실험용으로 손상시킬 수는 없기 때문에 대신 뇌질병을 갖고 있었던 사람의 시체해부를 통해 증거를 보충하고 있다.
한편 동물실험은 '훈련에 의한 뇌기능의 강화'라는 주장에도 힘을 불어넣고 있다. 미로에 갇힌 실험용동물이 빠져나가기 위해 분주히 움직이면 그들 뇌속의 신경세포들이 보다 분주하게 상호작용 한다는 사실이 밝혀졌기 때문이다. 따라서 인간의 경우에도 지적 훈련을 계속하면 뇌의 퇴화를 막을 수 있으리란 기대가 강해지고 있다.
많은 연구들이 아직 진행중에 있지만 관련학자들은 연구가 진행될수록 노화와 뇌기능 퇴화에 관한 지금까지의 속설이 대폭 수정돼야 할 필요를 느낀다고 말한다.
"중요한 것은 노화에 대한 사람들의 고정관념을 바꾸는 것이다. 그렇지 않으면 우리는 노인들을 우둔한 어린애로만 취급하는 끔찍한 사회에 살게 될 것이다." 노화연구소의 하차투리안 박사의 말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