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평생 연구할 수 있는 분야를 찾다가 1999년부터 단백질 연구를 시작했습니다.”
장익수 대구경북과학기술원(DGIST) 뇌·인지과학전공 전공석좌교수는 물리학으로 박사학위를 받았지만 연구 주제는 생명과학 영역인 단백질이다. 박사학위를 받고 1991년 한국에 돌아온 뒤, 평생 연구할 수 있는 주제를 찾던 중 단백질이 눈에 띄었다. 단백질 연구에 물리학의 연구 기법을 적용하면 어떨까. 최근 과학계의 화두인 융합연구를 장 교수는 1999년부터 시작했다.
신경망 신호전달 과정 양자역학으로 계산
1950년대 DNA의 이중나선 구조가 밝혀진 이후 분자생물학 연구는 급속도로 발전했고, 1990년 RNA 간섭현상이 밝혀지는 등 1990년대 들어 단백질의 비밀이 하나씩 밝혀졌다. 이런 분위기에서 생물학자는 물론 화학자, 물리학자도 단백질을 연구하기 시작했다.
생명과학계에서는 생체 단백질의 기능이나 역할을 밝히는 현상론적인 연구가 주를 이뤘다. 반면 물리학계는 단백질 작용 원리를 밝히기 위해 단백질을 구성하는 아미노산을 구슬 하나로 생각하고 단백질을 이루는 아미노산의 상호작용을 구슬의 동역학으로 환원해 계산하는 연구를 시도했다.
화학계에서는 조금 더 세부적으로 들어가 아미노산을 이루는 원자를 분석해 단백질의 전체 구조를 원자수준에서 규명하는 연구가 활기를 띠었다. 올해 노벨화학상을 수상한 ‘극저온전자현미경(Cryo-EM)’이 이런연구에 쓰이는 도구다.
장 교수는 단백질에 대한 생물학적, 물리학적, 화학적인 관점을 통합하는 연구를 하고 있다. 단백질을 구성하는 원자들이 서로 상호작용하는 에너지를 계산해서 열역학적 및 동역학적인 결과가 생물학적으로 어떤 의미를 갖는지 밝히는 것이다.
엄청난 수의 원자들 사이의 상호작용 에너지를 계산하고 그 의미를 추론하기 위해서는 슈퍼컴퓨터가 필요했다. 장 교수는 결국 슈퍼컴퓨터를 직접 구축하고 이를 이용해 단백질을 시물레이션하는 연구까지 섭렵했다. 현재 DGIST에는 장 교수 주도로 구축된 슈퍼컴퓨터 ‘아이램(iREMB)’이 운영 중이다. 국내 민간 연구자들이 접근할 수 있는 슈퍼컴퓨터 중에서는 연산 처리 속도가 1130테라플롭스(TFlops·1TFlops는 1초에 1조 번 연산)로 가장 빠르다. 국내에서 가장 빠른 기상청 슈퍼컴퓨터와 비교하면 연산 속도가 약 50% 수준이며, 세계 슈퍼컴퓨터 순위 500위 안에 3번이나 등재됐다.
20년 가까이 단백질을 연구하면서 장 교수는 뇌 조직에 찌꺼기처럼 쌓여서 치매를 일으키는 것으로 알려진 단백질들이 어떤 과정을 거쳐서 형성되는지를 밝히는 등 중요한 연구 결과를 다수 발표했다.
최근에는 김상열 박사과정 연구원과 함께 신경망에서 일어나는 신호 전달 과정의 비밀도 밝히고 있다. 연구팀은 몸길이 1mm 정도인 예쁜꼬마선충을 연구 대상으로 삼았다. 예쁜꼬마선충은 신경세포가 302개에 불과해 신경망의 네트워크 연결구조가 상세히 밝혀져 있다. 연구팀은 이 신경망 네트워크 연결구조를 활용해 신경망에서 신경 신호가 어떻게 전파되는지 양자역학적으로 계산했다.
2년 이상 연구에 매달린 김 연구원은 “생물학적인 현상을 물리학적인 문제로 정의하는 게 가장 어려웠다”고 말했다. 문제를 제대로 정의해야 올바른 답을 얻을 수 있는 만큼 이 과정이 핵심이다. 김 연구원은 “동일한 신경세포에서 신호가 발생해도 그 신호의 진동수에 따라 전혀 다른 경로로 신호가 전달된다는 사실을 확인했다”고 말했다. 현재 김 연구원은 이 내용을 박사학위 논문으로 준비 중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