입시성적, 각종 수학 과학경시대회에서 발군의 실력을 발휘하고 있긴 하나…
과학고-KAIST 학사과정-KAIST 석·박사과정은 일류과학자가 되는 지름길인가. 이 질문에 대한 답을 현시점에서 내리기란 불가능한 일이다. 아직 세칭 일류과학자중에서 그 3단계를 거친 사람이 없기 때문이다. 최초의 과학고가 설립된지 이제 8년밖에 지나지 않았고, KAIST학사과정의 전신인 과기대 졸업생이 KAIST 석사과정에 입학한 것이 불과 두해 전이다. 따라서 과학고-KAIST학사-KAIST석사를 거친 뒤 KAIST박사과정을 밟고 있는 사람은 전무한 실정이다. 설령 과학고와 KKK(KAIST학사 석사 박사) 과정을 모두 마친다고 할지라도 막바로 일류과학자 대열에 설 수 있는 것은 아니다. 전통의 강자 서울대 이공대 출신들을 비롯해 국·사립명문대 포항공대 해외유학파 등과 치열한 경쟁을 벌여야 한다. 물론 이 경쟁은 상대적인 대결이 아니고 자기 스스로와 싸워야 하는 어쩌면 훨씬 더 어려운 싸움이다.
브롱스의 후예들
어느 나라나 학문적인 엘리트집단이 있게 마련이다. 고입 무시험제로 인해 15년 전에 그 맥이 끊겼지만 우리나라에도 소위 KS(경기고-서울대)로 지칭되는 우수집단이 있었다. 이웃 일본도 도쿄 제1고교에서 '아카몽'(도쿄대학)으로 이어지는 학맥을 통해 오늘날의 기술왕국을 선도하는 핵심인력을 공급받았다.
또 영국은 이튼고교에서 옥스브리지(옥스퍼드대와 케임브리지대)로 연결되는 '노벨상 생산공장'을 지금도 가동시키고 있다. 미국 역시 필립스고교와 하버드대학 출신들을 특수집단으로 인정하고 있다.
미국에는 특별히 과학영재만을 위한 고등학교가 설립돼 있다. 미국인 모두의 자존심을 추락시켰던 '스푸트니크 충격' 이후 떨어진 위신을 되살리기 위해 과학영재교육이라는 긴급 수혈을 한 것. 실제로 1957년 소련이 쏘아올린 인류최초의 인공위성 스푸트니크호 사건은 서방세계에 큰 충격을 주었을 뿐 아니라 과학영재교육에 있어서도 새로운 전환점이 되었다.
미국의 과학고교중 가장 유명한 곳은 브롱스과학고등학교. 1938년에 문을 연 브롱스고교는 이미 5명의 노벨상 수상자를 배출했다. 이 학교에서는 문답식으로 교육하고 있으며 개인연구에 많은 비중을 둬 여타 과학고교의 모델이 되고 있다.
이밖에도 노스캐롤라이나 과학수학고교, 일리노이수학과학고교, 볼스테이트대학 부설 영재학교, 노던 텍사스대학 부설 영재학교 등이 1983년 이후 잇따라 개교했다. 이 학교에는 현재 한국인 학생들도 다수 재학하고 있다.
순전히 학교수만 놓고 본다면 미국의 과학고 수는 우리보다 적다. 그러나 일반고교에서도 과학영재프로그램을 운영, 과학영재의 능력을 개발해 주고 있다는 점이 우리와 다르다. 대다수의 미국의 과학영재들은 방과후에 각종 과학서클에서 활동하고 있다.
스푸트니크를 쏘아올린 소련도 스푸트니크 충격을 받았다.스푸트니크호 발사후에 보인 미국인의 비장한 결의에 충격을 받은 것이다. 그래서 그들도 서둘러 과학영재학교의 문을 열었다. 소련 영재교육의 특징은 명문대학의 부설기관으로 운영되고 있다는 점. 현재 모스크바대학 노보시비르스크대학에서 키에프대학 레닌그라드대학 등에 부설된 수학물리영재학교에서 소련의 최고두뇌들을 집중적으로 교육시키고 있다. 학교명이 수학물리영재학교라고 해서 수학과 물리만을 가르치는 것은 아니고 자연과학 전반에 걸쳐 교육하고 있다.
3개월간의 탐색기간을 거치고
우리도 지난 83년 경기과학고의 개교와 더불어 본격적인 과학영재교육시대에 접어들었다. 이미 전국에서 7개교가 수료·졸업생을 배출했으며 금년에는 부산과학고와 전북과학고가 새로 신입생을 선발했다. 또 내년에는 서울 제2과학고(가칭 한성과학고,한 학년 정원 1백80명 예정)가 개교예정이므로 전국의 과학고는 모두 10개교로 늘어나게 된다.
어렵사리 관문을 뚫은 과학고 신입생들은 모두 기숙사에 들어가 사관학교식 교육을 받는다. 적어도 일반고교 학생들보다는 훨씬 많은 양의 공부를 할 것을 요구받으며 과제의 질도 차이가 난다.
과학고 학생들은 일반고 학생들과는 조금 다른 교육을 받는다. 우선 강의 자체가 토론식이고 직접 실험해 볼 기회가 많다. 특히 전산실 실험실이 방과후에도 개방돼 있어 학생들이 자유롭게 이용할 수 있다.
일반고 학생들이 전혀 접하지 못하는 과목도 여럿 개설돼 있다. 예컨대 수학Ⅲ 과학사 컴퓨터과학 등이다. 교재도 외국원서를 바탕으로 과학고측이 재구성한 고난도의 것이다. 특히 미국에서 개발한 SMSG수학 PSSC물리 BSCS생물 ESCP지구과학 교재가 많이 활용되고 있다.
이렇게 특수한 교육을 거친 과학고학생들은 KAIST학사과정 입시와 각종 수학·과학경시대회에서 발군의 실력을 과시하고 있다.
KAIST학사과정 금년 신입생중 65%(3백52명)가 과학고 출신이다. 그것도 거의가 고2수료생이고 합격률도 100%에 가깝다. 전체 수석과 여자수석도 과학고 학생 차지였다. 이쯤되면 KAIST학사과정은 과학고의 '동네잔치'라고 할만하다.
문교부가 주최하는 전국수학과학경시대회에서도 과학고 학생들의 독무대가 이어지고 있다. 89년 1회 입상자의 66.7%, 작년 2회 입상자의 72.5%를 과학고 학생들이 휩쓴 것이다. 점차 전국민적인 관심사가 되고 있는 국제수학올림피아드(IMO)한국대표선수단 내에서도 과학고 학생들이 다수파다.
그렇다면 과학고를 설립해 과학영재를 따로 교육시킨 것은 100% 잘한 일인가. 대다수의 교육학자들은 대체로 수긍하고 있다. 그들 중 일부는 한술 더떠 중학생에 대한 과학영재교육을 주장하기도 한다. 과학영재교육은 이르면 이를수록 좋다는 것이다. 그렇다고 과학고 교육에 대한 열렬한 지지자만 있는 것도 아니다. 실효가 없다고 생각하는 사람도 적지 않다.
과학고의 성과에 회의를 갖고 있는 사람들은 현행 과학고 교육체제에 냉소를 보낸다. 적어도 입시가 지상목표라는 점은 일반 고교와 전혀 다를게 없다는 것이다. 이에 대해 서울과학고 권오준교감은 "현실적으로 어쩔 수 없습니다. 이 학생들이 계속해서 학업을 받아야 그들이 목표로 하는 과학자가 될 수 있지 않아요"라고 고충을 털어 놓았다. 과학고가 KAIST학사과정 입시준비기간으로 전락하지 않으려면 무시험 입시제도가 하루 빨리 도입돼야 할 것이다. 그러나 여기에도 말못할 사정은 있다.
금년 입시의 「태풍의 핵」
충남 대덕연구단지 내에 있는 KAIST에는 학사 석사 박사과정이 설치돼 있다. 2년전까지 KAIST 학사과정은 과학기술대학이라는 독립대학이었으나 지금은 KAIST에 통합돼 있다. 통폐합 당시 이런저런 잡음이 있었지만 이제는 외관상 통폐합이 완료된 상태다.
KAIST학사과정 학생들은 전원 컴퓨터를 다루게 된다. 일반대학에서 흔한 결강은 꿈도 꿀 수 있다. 또 무학과제를 채택하고 있어 모든 과의 과목을 자유롭게 수강할 수 있다. 그리고 무학년제가 도입돼 능력이 있으면 남들보다 일찍 졸업할 수 있다. 여름방학 때도 학점을 따고 강의를 듣는다. 도서관도 24시간 개방돼 있고 세미나를 자주 열고 실험토론 중심의 수업을 받는다.
그러나 대학생활에 활기를 주는 서클활동과 과외활동이 거의 없어 조금 삭막하다는 느낌이 없지 않다. 학생회 활동도 다른 대학에 비해 활발치 않다. 몇 해전 과기대학생들이 본격적인 학생운동에 나서자 사회에서는 큰 관심과 충격을 나타내기도 했다.
과학고 속진과정 학생들은 거의 예외없이 KAIST학사과정에 지망한다. 그들은 지원서를 쓸 때 별 갈등을 느끼지 않는다. 게다가 KAIST가 무학과제를 채택하고 있으므로 전공학과를 정하는 일도 부담스럽지 않다.
그러나 일반고교 학생중에서 과학에 적성이 있는 학생은 대학입시철이 되면 무척 괴롭다. 일반대학에 진학할 것인가, KAIST학사과정에 지원할 것인가. 다행히 KAIST시험이 조금 일찍 치러지므로 KAIST에 낙방하면 일반대학에 응시할 수 있다.
그러나 이것은 '밑져도 본전'이 아니다. 현행 대학입시 학력고사 문제와 KAIST 학사과정 입시문제는 그 수준차가 현격하기 때문이다. 두마리 토끼를 좇다가는 한마리도 잡을 수 없는게 오늘의 치열한 입시 상황이므로 KAIST냐, 일반대냐를 되도록 일찍 정하는 것이 바람직하다.
금년 대학입시에는 서울과학고의 정규과정(3년) 학생들이 주로 서울대 이공계를 겨냥하고 있다고 하는데 입시관계자들은 벌써부터 이들이 '태풍의 핵'으로 떠오를 것이라고 예상하고 있다. 내년도 서울대 입시판도를 크게 바꿔놓을 것이라는 얘기다.
KAIST 학사과정은 무학년제를 채택하고 있으므로 대학을 3년 반 또는 3년만에 마칠 수도 있다. 실제로 그렇게 조기졸업을 한 사람의 수는 지난 해에 24명, 금년에는 19명에 이른다.
생각보다는 적은 숫자인데 거기에는 이유가 있다. 졸업생들을 보호하기 위해 일부러 조기졸업을 제한하고 있는 것이다. KAIST의 한 관계자는 "3학년 1학기를 마치고 졸업을 해도 대부분의 대학원 입시가 11월 이후에 치러지므로 조기졸업자들은 도리없이 이때까지 기다려야 합니다. 또한 KAIST 학사과정 학생들은 입시와는 무관하게 공부했으므로 일반대학원에 진학하기도 쉽지 않아요. 조기졸업을 시키는 대신 6개월동안 KAIST석사과정 입시준비를 시켜 실수없이 입학하도록 배려하고 있습니다"라고 고충을 털어 놓았다.
조기 졸업가가 행복한 고민을 하는 사람이라면 정말 우울한 고민을 하는 사람도 있다. 4년만에 졸업할 수 없는 사람들이다. 이들은 중도에 포기하거나 휴학을 하거나 1,2년을 더 캠퍼스에 머물게 되는데 일반 대학에 비해 낙오하는 사람이 많은 편이다.
KAIST학사과정은 금년에 2회졸업생을 배출했다. 이들중 대다수는 대학원에 진학, 학업을 계속하고 있다. 특히 KAIST 석사과정과 해외유학을 선호하고 있는데 금년 KAIST석사과정 신입생의 3분의 1이 KAIST학사출신이다. 올해부터는 무시험전형으로 KAIST 석사과정 학생의 30%를 뽑고 있는데, 성과가 좋으면 앞으로 그 비율을 점차 확대할 계획이다. 무시험전형의 경쟁률은 10대 1정도였다.
일반대학의 대학원이냐, KAIST 석사과정이냐. 이것은 자연과학을 전공하는 대학생들이 흔히 갖는 고민이다. 과거에는 KAIST 들어가면 입학과 동시에 병역특혜가 주어졌는데 이것은 대단한 '당근'이었다. 그러나 일반대학에 석사장교(특수전문요원)라는 특례제도가 도입되면서 그 당근의 위력은 반감되었다. 그러나 이제는 특수전문요원과 KAIST 병역특혜가 동시에 사라지게 되었다. 물론 앞으로도 KAIST에서 석사학위를 받은 뒤 KAIST내 지정연구소 등에서 5년간 복무하게 되면 혜택을 받을 수 있지만 특혜자의 수가 크게 줄 것만은 틀림없다. 가뜩이나 서울에서 대덕으로 옮겨와 지원자의 질이 떨어질까봐 전전긍긍하던 터에 병역특혜마저 대폭 줄어 KAIST 관계자들은 크게 당황하고 있다. 이 병역특혜 제한조처로 과학영재교육이 위축돼 20대 박사의 배출이 어렵게 되었다는 것이다.
23세 박사 탄생 임박
사실 20대 박사는 과학영재교육의 꽃이라고 볼 수 있다. 노벨물리학상 수상자 44명중 38명이 20대에 박사학위를 취득하고 그중 29명이 33세 이전에 성취한 연구업적으로 수상하게 되었다는 것이 '20대 박사예찬론'의 배경이다. 지금까지 국내에서는 78년 이후 6백19명의 20대 박사를 배출했는데 최연소박사의 나이는 25세(모두 8명)였다. 이 최연소 연령은 더욱 낮아져 멀지않아 23세 박사도 탄생할 것으로 보인다. 아마도 과학고에서 시작되는 과학영재라인(line)의 첫 졸업생중의 한사람이 새 기록을 세울 것이다.
일반적으로 KAIST 석사과정은 과제중심으로 운영되고, 서울대를 비롯한 일반대학의 석사과정은 기초에 더 주력하는 것으로 알려져 있다. 실제로 KAIST는 기업과 정부가 요구하는 굵직한 연구 프로젝트를 상대적으로 많이 수행하고 있으며, KAIST교수들은 프로젝트에 매달리기에도 바쁘다. 그래서 일반 대학원에서는 '과학자'를 양성하고 KAIST에서는 '기술자'를 기른다는 얘기도 나돌고 있다. KAIST석박사의 졸업논문중에는 프로젝트를 수행하다가 부수적으로 얻은 것이 많다.
한국과학의 큰 산인 KAIST는 벌써 20년의 전통을 쌓아 놓았다. 금년까지 석사 6천3백30명, 박사 1천48명을 배출했다.
졸업생들이 현재 일하고 있는 분야는 박사의 경우 교육기관 31.8%, 연구기관 36.6%, 산업체 종사 27.9%의 분포를 보이고 있다. 이들 중에는 직접 기술집약적인 벤처기업을 운영하고 있는 사람도 있는데, 예컨대 터보테크 메디슨 휴먼컴퓨터 등은 KAIST 박사가 사장이다.
또 석사는 산업체에 가장 많이 진출해 있으며(42.4%) 연구기관(24%) 박사과정(24%) 교육기관(6.8%)순으로 분포돼 있다. 산업체로 빠져나간 사람이 가장 많은 이유는 KAIST가 산업체종사자를 대상으로 한 전문석사제도를 운용하고 있기 때문. 하지만 최근에 KAIST 석·박사를 마친 사람은 진로가 예전처럼 확실하지 않다. 교육계와 연구기관이 인력포화상태를 보이고 있고 산업계의 유치열기도 다소 식었기 때문이다. 학위과정을 거치면서 창조성과 협력심을 잃고 적응력만 키웠다는 것이 KAIST 출신 배척의 변이다.
아무튼 과학영재를 잘 가꾸고 키워야 국가가 발전할 수 있다는 데는 이론이 없다. 이를 뒷받침하기 위해 금년에 한국과학영재학회(회장 이상희)가 설립됐으나 과학영재교육에 관한 법적 제도적지원이 극히 미미하다.
또 일부에서는 영재교육이 특권의식을 조장한다고 주장하고 있다. 이에 대해 한국교육개발원 한종하박사는 "그 점은 교육프로그램을 어떻게 구상하느냐에 따라 충분히 해결할 수 있다"고 반론을 편다.
한박사는 이어서 "영재는 그냥 두어도 잘 자란다는 잘못된 통념이 있어요. 단순히 학교성적만을 놓고 말한다면 그럴 듯하게 들릴 수도 있어요. 하지만 과학영재의 창의적 잠재력을 최대로 개발해준다는 영재교육의 본질에 비춰 보면 확실히 그릇된 생각임을 알 수 있어요"라고 말했다.
물론 20세기 과학자의 대명사 아인슈타인은 자신의 의지와 동기로 대성했다. 하지만 아인슈타인이 영재교육을 받았더라면 더 위대한 업적을 남겼을지도 모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