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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주 행위예술' 환상의 개기일식 3분

태양의 대기 코로나가 모습을 드러냈다.


우리나라 천문대에서는 지난 11월3일(한국시간) 칠레북부 뿌뜨레에서 일어난 개기일식을 관측하기 위해 원정팀을 파견했다. 이 관측결과를 가지고 태양 표면층의 자기장분포와 플라스마의 흐름을 연구할 예정이다.

태양 표면에서는 플레어나 홍염, 흑점 등 다양한 현상이 일어나고 있으나, 광구에서 나오는 밝은 빛 때문에 우리에게 경이로운 현상들이 감추어진다. 뿐만 아니라 태양도 지구처럼 특유의 대기권을 형성하고 있으며 이를 채층과 코로나로 크게 구별한다. 그리고 이들 태양의 대기층은 그야말로 환상적인 아름다움을 가지고 있지만 역시 광구의 밝은 빛속에 감추어져 있다. 그러나 신은 우리에게 비록 짧지만 가끔씩 이 아름다운 현상을 보여주는 아량을 베풀고 있는데 이것이 바로 개기일식이다. 안타까운 사실은 이 환상적이고도 경이로운 현상을 우리 모두에게 보여주지 않고 지극히 제한된 지역에서 축복 받은 사람들에게만 보여 준다는 사실이다.

태양 관측자들에게 개기일식은 평소에 관측이 어려운 태양의 대기를 관측할 수 있는 최고의 조건이며 태양의 대기를 연구할 수 있는 좋은 실험장을 제공하여주기 때문에 언제나 기다려지는 천문 현상중의 하나이다. 1994년에 개기일식은 칠레 북부에서 브라질의 남부를 가로지르는 남미 중서부의 좁은 영역에서 발행했다. 천문대에서는 4명의 '개기일식 원정 관측팀(오병렬 필자 전영범 장비호)'을 구성하여 칠레 북부 국경 부근의 뿌뜨레라는 작은 마을에서 개기 일식을 관측했다.

뿌뜨레(남위18˚ 11', 서경69˚ 38')는 작은 인디오로 일식이 진행되는 시간이 가장 긴(1백82초)지역에 해당된다. 안데스산맥의 서쪽에 위치한 이곳은 고도가 높을 뿐만 아니라(3천5백22m) 사막기후의 특성을 가지고 있어서 다른 지역과 비교할 때 연중 구름이 없는 맑은 날이 많은 곳이다.

2박 3일 동안 비행기를 타고 찾아간 뿌뜨레는 완전히 다른 두 얼굴을 가지고 우리를 반겼다. 만년설로 덮힌 5천7백m 안데스의 한 봉우리를 등지고 있는 이 마을의 경치는 말 그대로 한 폭의 풍경화였으며 순박한 인디오들의 친절은 관측팀을 즐겁게 했다. 그러나 밤낮의 급격한 기온차(약 섭씨 30도)와 건조한 공기, 그리고 사막 지역 특유의 먼지와 고산 지방에서 나타나는 산소 결핍 현상은 숨쉬는 것에서부터 몸을 움직이는데까지 부담스럽게 만들었다. 한 예로 관측 캠프를 설치한 곳은 칠레 국경을 지키는 한 부대 안의 연병장이었는데, 고지대는 일반적으로 산소가 부족하기 때문에 이곳에서는 군인들이 구보를 하는 일이 없다. 아무리 바빠도 걸어서 간다. 뛰어가면 뛰어가는 시간보다 더 많은 시간동안 헉헉거리며 숨을 몰아쉬어야 하기 때문이다. 하물며 처음 가는 우리가 무거운 망원경을 운반하고 설치하는 중노동(?)을 하였으니 그 작업 효율이 오죽했겠는가? 그래도 옷이라는 옷은 있는데로 껴입고 난방이 전혀 되지 않는 군용 막사에서 서너장씩 모포를 뒤집어쓰고도 오들오들 떨면서 지내야하는 밤보다는 낮동안의 중노동이 한결 좋았다. 그곳에 있는 동안 내내 밤이 두려웠던 기억은 좀체로 잊혀지지 않을 것 같다.
 

달이 태양을 삼킬 때는 홍염도 관측된다.


우주의 행위예술

현지 시각으로 11월 3일 오전 8시 17분 3초(처음 천문과학자들은 17분 6초로 예상했지만 식은 3초 빨리 시작되었다.) 태양의 한쪽 귀퉁이가 정확히 달의 한쪽 귀통이와 맞물리는 순간, 구름이 비켜날 기미가 좀체 보이지 않기 때문이다. 부디 한시간 안에 저 엷게 깔린 구름이 사라져 주기를 모두가 애타게 빌 따름이었다. 우리가 목적하는 단색 사진인 H-알파(파장 6562.8Å)선과 코로나의 모양을 가장 극명하게 보여주는 코로나 녹색 휘선(파장 5303Å)은 필터의 투과폭이 상당히 좁기 때문에 엷은 구름에도 노출 시간이 크게 달라질 수 있다. 구름이 그렇게 원망스러울 수 없었다.

우리들의 애절한 바램이 아무런 효험을 보지 못한 채 개기 일식의 카운트 다운은 시작됐다. 3초, 2초, 1초, 접촉, 08시18분14.7초. 정확하게 달이 태양을 완전히 가리는 순간이다. 환호성과 카메라의 셔터 소리가 사방에서 들리기 시작했다. 오! 하느님, 그것은 말로 표현할 수 없었다. 갑자기 주위가 어두워지면서 하늘의 검은 원반 주위로 뻗어 나오는 휘광은 환상의 극치였고 보는 이들로 하여금 그 어떤 예술 작품보다 깊은 감탄을 자아내게 했다.

'우주의 행위 예술'은 길지 않았다. 3분의 예술 종료를 알리는 다이아몬드가 발생하는 순간 또한번의 탄성이 울러 퍼졌다. 1초도 못되는 다이아몬드 링(diamond ring)이 생김과 거의 동시에 주위가 밝아지면서 금방 사물의 그림자가 생긴다. 그리고 모든 것이 끝나버렸다. 살아온 짧은 인생에서 3분이 그토록 짧게 느껴본 적이 없었다. 아쉬움과 허탈감으로 한동안 움직일 수 없었다. 비록 엷은 구름이 있기는 하였으나 관측에 큰 지장은 없었다. 그리고 관측은 나름대로 성공적이었다.

우리의 개기일식 원정 관측 목적은 H-알파선과 코로나 녹색 휘선의 사진 관측을 통하여 태양 표면층에 분포하는 자기장의 분포와 플라스마 물질의 흐름을 연구하는 것이었다. 비록 엷은 구름이 있었으나 많은 사진 관측을 수행할 수 있었고, 이 필름을 분석함으로써 태양 활동 극소기의 자기장 분포와 물질의 운동 상태 연구에 중요한 정보를 얻을 수 있을 것으로 기대된다.

참석한 세계 각국의 관측 장비는 다양하였고 원정 관측을 위하여 많은 투자를 한 흔적들을 쉽게 볼 수 있었다. 일본 관측팀의 경우는 그곳에서 1개월 이상 머무르면서 장비와 관측자들의 현지 환경 적응 훈련을 쌓는가하면 인도와 프랑스팀은 이번 관측을 위하여 몇만달러짜리 장비를 포함하여 새로운 망원경을 직접 제작하기도 했다. 불과 소형 망원경 몇대와 절대적으로 부족한 카메라를 들고 간 우리와는 커다란 차이다.

비록 우리와 같이 빈약한 장비라도 가지고와서 관측할 수 있는 나라가 많지 않다며 자위를 해 보지만 세계화에 동참하기 위해서는 개기 일식 관측을 위한 많은 노력과 보완이 있어야 함을 절실히 깨달았다. 앞에서도 언급하였지만 개기 일식이 진행된 3분은 너무 짧았다. 비디오 영상을 보고 또 보았지만 지겹지 않은 이 천체 현상이 불과 3분만에 끝나버리는 아쉬움과 세상 모든 사람들이 볼 수 없다는 안타까움을 가슴에 묻어둔 채 귀국길에 올라야만 했다.
 

일식의 종료를 알리는 다이아몬드링
 

1995년 01월 과학동아 정보

  • 박영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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