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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요기사][TEST] 미생물이 빚은 과학과 예술의 즉흥 연주

 

재즈가 흐르는 작은 무대, 그러나 이 무대는 결코 평범하지 않다. 일곱 개의 페트리 접시 속에서 배양 중인 살아 있는 미생물이 재즈 연주자들의 형상을 그려낸다. 색을 띤 균주들이 자라면서 음악적 흐름을 담아내고 즉흥 연주처럼 자연스럽게 어우러지는 이 작품은 ‘2024년 미생물 아트 콘테스트(Agar Art Contest)’에서 1위를 차지했다. 독창적인 작품을 탄생시킨 이지영 박사의 이야기를 들어봤다.

 

“미생물 아트 콘테스트(Agar Art Contest)를 처음 알게 된 건 ‘과학동아를 비롯한 여러 과학 잡지’를 통해서였어요. 미생물을 단순한 연구 대상이 아니라 ‘물감’처럼 활용해 작품을 만든다는 개념이 굉장히 신선하게 다가왔죠.”


이지영 연세대 시스템생물학과 연구원은 미생물로 그림을 그리는 대회, 미생물 아트 콘테스트를 처음 접했을 때의 놀라움을 이렇게 표현했다. 미국미생물학회(ASM)에서 매년 개최하는 미생물 아트 콘테스트의 가장 큰 특징은, 살아 있는 미생물이 그림의 물감이 된다는 점이다. 때문에 미생물 아트는 시간이 흐르면 미생물이 자라면서 작품도 함께 변화한다. ‘생명이 자라며 스스로 완성하는 예술’이라는 매력은 그를 사로잡았고, 2019년과 2020년, 2023년 그리고 2024년까지 총 네 차례 대회에 출전한 결과, 마침내 2024년 대회에서 대상을 거머쥐었다.

 

 

재즈와 미생물에서 찾은 공통점

 

이 연구원에게 대상을 안겨준 ‘페트리 디쉬 재즈 클럽(Petri Dish Jazz Club·왼쪽 이미지)’은 제목 그대로 재즈를 주제로 한 작품이다. 넥타이를 매고 드럼을 치는 연주자, 빨간 드레스를 입고 노래하는 가수, 흥에 취한 듯 피아노를 치는 아티스트까지. 재즈 클럽에서 볼 수 있는 장면들이 일곱 개의 페트리 접시 위에 펼쳐져 있다. 2024년 대회의 주제는 ‘무엇이 당신에게 기쁨을 주는가’였다. 이 연구원은 주제를 보자마자 재즈를 떠올렸다. 그는 재즈 음악의 열렬한 팬이기 때문이다.


그의 취향이 작품의 주제를 결정하는 데 큰 역할을 한 것은 사실이지만, 보다 근본적인 이유는 재즈와 미생물이 공유하는 공통점 때문이었다. 이 연구원이 발견한 연결 고리는 바로 ‘적응력’이었다. 그는 재즈의 즉흥성과 미생물의 생존 방식에서 공통점을 찾았다. 재즈는 보통 연주자들이 악보에 얽매이지 않고 다른 악기 연주에 유기적으로 반응하며 음악을 만들어간다. 연주자들이 서로의 소리에 즉각적으로 적응하며 변화하는 과정이 재즈의 핵심이다.


“재즈는 연주자들이 상호작용하면서 음악을 만들어가는데 미생물도 마찬가지예요. 환경에 따라 예상치 못한 방식으로 성장하고, 적응하면서 형태를 바꿉니다. 그 모습이 재즈의 즉흥성과 닮았다고 생각했어요.”

 

▲ ASM
‘2024 미생물 아트 콘테스트(Agar Art Contest)’에서 이지영 연세대 시스템생물학과 연구원이 우승을 차지했다. 아래 이미지는 2등을 수상한 엘자 프리스토 프랑스 구조생물학센터 연구원의 작품 ‘The Path of Discovery’다. 다른 수상작은 미국미생물학회(ASM) 홈페이지에서 확인할 수 있다.
 
이지영 연구원이 2023년에 출품한 작품 ‘The Little Microbiologist’. 미국 캘리포니아 해안에 서식하는 거대 다시마에서 분리된 미생물로 우주의 모습을 페트리 접시에 담아냈다.

 

 

생명이 스스로 완성하는 예술

 

즉흥성을 극대화하기 위해 그는 이번 작품에서 극한 환경에서 채취한 미생물 균주를 활용했다. 전통 발효 식품에서 분리된 Bacillaceae 균주, 그린란드 북부의 토양, 남극의 극지 연구기지(세종기지, 다산기지)에서 분리된 Janthinobacterium lividum 균주와 조류 Parachlorella kessleri 등이다. 이 미생물들은 강추위, 높은 염도, 강한 자외선과 같은 극한 조건에서도 살아남기 위해 스스로 생존 전략을 바꿔가며 환경에 적응한다.


미생물로 작품을 만들기 위해 필요한 것은 여러 색을 띠는 미생물, 그 미생물을 배양할 배지, 그리고 미생물을 배양지에 바를 접종 루프나 멸균 면봉이다. 쉽게 말하면, 미생물이 물감, 배지가 도화지, 접종 루프가 붓이 되는 셈이다. 재료만 보면 일반적인 그림 그리기와 크게 다르지 않아 보이지만, 미생물 아트는 그 과정에 일반적인 회화와는 전혀 다른 특징이 있다.


첫 번째는 작품이 즉시 눈에 보이지 않는다는 점이다. 미생물 아트는 처음 붓질을 하는 순간은 그림을 확인할 수 없고 시간이 흘러 미생물이 자란 후에야 그 모습을 눈으로 볼 수 있다. 때문에 이 연구원은 처음 붓을 대는 순간부터 고민이 많아질 수밖에 없다는 고충을 털어놨다. 이러한 불확실성 속에서 각 균주의 고유한 특성은 작업의 복잡성을 한층 더한다. 균주에 따라 콜로니의 두께, 색상의 농도, 심지어 질감까지 모두 다르다. 어떤 균주는 얇고 투명한 막처럼 자라는 반면, 다른 균주는 두껍고 불투명한 층을 형성한다. 이러한 다양한 특성을 이해하고 조화롭게 활용하는 것이 작품 제작의 핵심이다.


일반 회화 작품과 또 다른 점은 미생물의 성장 속도다. 페트리 디쉬 재즈 클럽에는 하얀색, 노란색, 초록색, 주황색, 빨간색 등 다양한 색의 미생물이 사용됐다. 이때 하양, 노랑, 주황, 분홍은 Bacillaceae 균주, 빨강과 보라는 Janthinobacterium lividum 균주, 초록은 Parachlorella kessleri 조류를 사용한다.


각각의 미생물들은 단순히 색이 다를 뿐만 아니라 서로 다른 성장 특성을 가지고 있다. 예를 들어, 젓갈에서 분리된 Bacillaceae 균주는 염도가 포함된 배지에서 잘 자라는 반면, 극지에서 분리된 균주들은 염도가 없는 배지에서 더 잘 자란다. 성장 속도 또한 다르다. Bacillaceae 균주는 2~3일이면 충분히 자랐지만, 극지에서 분리한 Janthinobacterium lividum 균주는 4~5일이 걸려 상대적으로 성장 속도가 느렸다. 이 연구원은 100개 이상의 배지를 제작한 끝에 각각의 다른 균주들의 생장 환경을 모두 성공적으로 맞춘 7개의 작품을 얻을 수 있었다.

 

“거의 연구 실험을 방불케하는 작업이었지만, 배양 후 며칠이 지나 배지를 보러 갈 때마다 설렜어요. ‘이번에는 어떤 모습으로 성장했을까?’ 하는 기대감이 마치 깜짝 선물 같아서 행복한 기분으로 작업했답니다.”

 

 
이지영 연구원(위 사진)은 평소에도 직접 그림을 그리며 다양한 작품 활동을 이어오고 있다. 이 연구원은 “전공과 취미가 만나 좋은 결과를 얻을 수 있었다”고 말한다. 오른쪽 페트리 접시 사진은 재료로 쓰인 미생물들의 모습이다.

 

과학과 예술, 서로를 확장하는 관계

 

“과학이 논리적 분석과 실험을 기반으로 한다면, 예술은 직관과 감각을 통해 새로운 가능성을 탐색하는 과정이에요. 저는 이 두 가지가 결국 같은 맥락에서 만날 수 있다고 생각해요.”


과학은 논리와 실험을 통해 세상을 탐구하고, 예술은 감각과 창의성을 바탕으로 새로운 시각을 제시한다. 겉보기에는 전혀 다른 영역처럼 보이지만, 새로운 가능성을 발견하고 표현하는 과정이라는 점에서 본질적으로 닮아 있다. 인터뷰 말미 이 연구원이 남긴 말은 과학과 예술 모두를 꿰뚫는 통찰처럼 느껴졌다. “미생물이 환경에 적응하며 스스로 자라듯, 우리의 창의성도 예상치 못한 방식으로 흐르고 연결되며 새로운 것을 만들어 낼 수 있지 않을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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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5년 4월 과학동아 정보

  • 김미래
  • 사진

    이지영
  • 디자인

    박주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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