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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ART Ⅲ 인간의 의식이란 무엇인가?

뇌의 현상학

인간의 의식과 행동은 신경세포나 신경전달물질 분석만으로 해명되지 않는다.

최근 많은 영화팬들의 눈물을 자아내고 있는 '사랑과 영혼'이라는 영화를 보면, 못다한 인연을 남겨두고 아깝게 죽은 한 남자의 애절한 사랑이야기가 감동적으로 펼쳐지고 있다.

이 영화를 볼 때 대다수의 관객은 영혼의 존재에 별다른 저항감이나 당혹감을 느끼지 않고 쉽게 그 경험에 동참하게 되는데, 이는 우리 모두가 체험하고 있는 문화적 심리적 공동인식에 기인한다고 볼 수 있다. 즉 우리의 정신과 의식상태는 마치 아무런 물질이나 육체적 구속을 받지 않고 자발적으로 자유롭게 진행되고 있는 것처럼 느껴진다.

일찍이 철학자 데카르트가 주장했듯이 우리의 삶은 육체와 정신으로 양분될 수 있으며 정신은 독립적이고 자유로운 실체일까. 몇가지 예를 생각해 보자. 우리가 태어날 때 눈과 귀가 없고 모든 감각신경이 손상된 상태로 출생했다면 과연 '나'라는 정신적 존재는 무엇을 느끼고 무엇을 생각하며 지내고 있을까. 우리가 잠자는 동안 우리의 영혼은 어디에 가 있는 것일까.

만약 미래에 두뇌를 심하게 다쳐 다른 사람의 뇌를 머리속에 이식한다면 그 사람은 나일까, 아니면 다른 사람일까. 나의 기억이 손상을 받아 5초만 지나도 다 잊어버린다면 나의 인격과 인간성은 어떻게 유지될까. 언어중추에 손상을 받아 심한 실어증에 빠졌을 경우 우리는 이 세상을 어떻게 경험하며 어떻게 논리적 사고를 할 수 있을까.

하드웨어로서 두뇌

현대 신경과학은 우리의 정신이나 의식이 결코 독립적인 실체가 아니며 튼튼하고 잘돌아가는 하드웨어로서 두뇌를 필요로 한다고 주장한다. 극단적인 예를 들면 우리의 의식 세계 속에서만 존재할 것 같은 행복이나 고통도, 뇌의 특정 부위에 전극을 삽입해 전기 자극을 주면 아무런 외부세계의 변동없이도 똑같은 체험을 유발할 수 있다.

실제로 정신분열증 같이 황당한 생각에 빠져있는 사람이나 극심한 우울증에 걸려있는 환자들을, 양자방출단층촬영기(PET Scan)라는 첨단 장비로 찍어보면 그 사람의 뇌속에서 작용하고 있는 세포집단의 활동이나 특정 화학물질의 비정상적 분포를 발견할 수 있다.

이러한 연구의 결론은 '우리의 삶은 곧 우리 머리속에 들어 있는 두뇌의 작용'이라는 것이다. 나의 실체 그리고 나를 둘러싼 바깥 세계가 존재한다는 확신의 근거는 곧 나의 두뇌가 살아있고, 두뇌속에 세계의 모습과 관념들이 표상되고 있다는 사실이다. 나의 뇌속에 일어나는 현상이면 그것이 꿈이든 환상이든 나에게는 생생한 실존으로 체험된다는 것이다.

요즘 심리철학계에서는 이러한 신경과학적 자료를 근거로 해 '정신의 상태는 곧 두뇌의 상태'라는 '심신동일론'이나, '물질들의 적절한 조합에 의해 여러가지의 다양한 기능들이 재현될 수 있다'는 '기능주의'들이 판을 치고 있는 것도 사실이다. 이러한 논란들은 인간 실존의 위상을 근본적으로 흔들어버릴 수도 있는데, 이러한 혼란속에서 우리자신의 위치를 확고히 하려면, 머리 속에 조용히 숨쉬고 있는 두부같은 회백색의 뇌덩어리를 잘 이해해야 할 것이다.

뇌와 연계되는 행동의 문제를 과학적으로 접근하려 할 때 과학자들이 추구하는 방법론을 검토하지 않을 수 없다. 현재까지 신경과학의 연구방법은 원칙적으로 분석적이며 환원적인 방향으로 진행돼왔다. 정신과 의식을 규명하기 위해 그 행동을 창출해내는 두뇌를 발견했고, 두뇌 현상을 알아내기 위해 두뇌를 구성하는 신경세포를 찾았고, 다시 신경 세포를 작동시키는 전기화학적원리를 탐구했으며 이제는 그 기전을 조절하는 유전자의 수준까지 파고 내려갔다.

그러나 이러한 접근방법은 마치 저 밀림속에 살고 있는 미개인이 어쩌다 문명인들이 버리고 간 컴퓨터를 찾아내서 껍질을 뜯어본 후 그속에 이리저리 얽혀있는 집적회로를 발견하고는, 다시 회로를 구성하고 있는 반도체를 분해해 돌도끼를 두드려 가루로 만든 후 냄새를 맡아보는 것에도 비유될 수 있다.

인간의 인식과 행동은 신경세포 하나만으로, 몇가지의 신경전달물질의 측정만으로 분석되는 것은 아니다. 수십억개의 신경세포들이 모여서 구성하는 거시체계 신경그물망(large scale neural network)의 개념으로 접근하지 않으면 안된다. 미시구조의 연구만으로 거시현상을 예측할 수 없다는 '시스템이론'이 필요하게 된 것이다. 이러한 맥락에서 볼때 기존의 신경과학은, 자료는 산더미처럼 쌓여있지만 이를 통괄해 승화시키지 못하는(data rich-theory poor)학문이다. 인간의 고등정신 현상을 연구하기 위해서는 신경세포 수준에서 복합체계에 대한 두뇌이론으로의 전환이 절실하게 요구된다 하겠다.

일종의 튜링기계

불과 20년전까지만 해도 심리적 현상의 연구는 금세기를 풍미한 행동주의(behaviorism)의 강세를 타고, 외부자극과 반응 사이의 인과적 관계만을 연구하는데 중심을 두어왔으며, 그 사이에 내재하는 중간과정을 처리하는 두뇌는 마치 바닷속 깊숙이 가라 앉아 있는 '블랙박스'처럼 쉽게 접근하지 못하는 존재로 취급됐다.

최근 하드웨어로서 두뇌의 구성을 심도있게 파헤친 신경과학의 발전과 아울러 수학과 논리철학의 발전, 특히 컴퓨터의 이론들은 두뇌속에서 일어나리라 생각되는 과정에 대한 논리적 접근을 가능케 했다. 영국의 수학자 튜링(Turing)은 복잡한 문제를 풀어나가는 지적사고의 과정은 정신세계에서만 가능한 추상적이고 불가해한 과정이 아니라고 주장했다. 아무리 복잡한 데이터라도 극히 단순한 이진법의 기호(symbol)로 기술될 수 있으며, 이 기호들을 수학적 논리로 변용 조작하는 과정을 통해서, 지능(intelligence)의 현상을 명확히 기술하거나 시뮬레이션 할 수 있는 이론을 확립했다. 그는 이러한 일을 가능케하는 이론적인 차원에서의 기계를 튜링기계(Turing machine)라 제창했다.

이러한 형식논리와 물질적 기호조작의 이론을 근거로 할 때, 두뇌도 일종의 '튜링기계 '라고 볼수 있지 않을까 하는 추측이 가능해진다. 즉 우리가 매일 보고 듣고 느끼고 결단하고 행동하는 복잡하고 다양한 삶의 모습들도, 긍극적으로는 말초의 감각신경들이 부호화(coding)된 외부세계의 정보들을 수십억개의 신경세포로 구성된 중추신경회로망속에 표상시켜(representation), 신경세포 특유의 전기화학적 작용을 거쳐 여러단계로 종합하고 변형해 출력하는 컴퓨테이션(computation)의 과정이라고 볼 수 있는 것이다.

실제로 두뇌의 의식과 정신세계는 극도로 복잡하지만, 그 작동을 주도하는 신경세포는 튜링기계처럼 단순히 0과 1만을 표현하는 2진법적 디지털 논리에 의해 움직이고 있는지도 모른다. 즉 인간의 정신작용이란 곧 두뇌 속에서 이루어지는 합목적적 정보처리 과정이며 이 과정은 수학적으로나 논리적으로 명확히 기술되거나 모델링이 가능하다는 것이다.
 

인간의 인식과정은 이제서야 조금씩 밝혀지고 있다.


컴퓨터와 두뇌의 차이

그렇다면 두뇌는 물리적으로 어떠한 구성을 이루며 어떠한 메커니즘으로 이러한 기능을 수행하는가 하는 것이다. 두뇌는 주판알을 튕기듯이, 아니면 백지에 연필로 덧셈을 하듯이, 아니면 전광판에 불이 켜지듯이, 아니면 어떤 다른 방법으로 작동되고 있는 것일까.

얼핏 눈으로 보기에도 두뇌의 생김새는 네모반듯한 컴퓨터와는 판이하게 다르며, 두뇌를 구성하는 신경세포도 집적회로속의 반도체외는 전혀 다른 물질적 성상을 가지고 있다. 두부처럼 물렁물렁하며, 맥박에 따라 꿈틀꿈틀 박동하는 뇌는 컴퓨터와는 그 하는 일이 다른 점도 많다.

기존의 컴퓨터는 원주율 π를 계산하는 수치계산이나, 엄청나게 많은 숫자들을 통계처리하는 것 같이 내장된 프로그램에 따라 순차적으로 수행하는 일에는 인간보다 뛰어난 능력을 발휘한다. 인간의 두뇌는 이런 복잡한 수치계산이나 수십단계의 순차적 정보처리에는 매우 취약해 많은 시간을 필요로 하며 오차의 범위도 엄청나다. 그러나 눈으로 보고 단숨에 물체를 식별해내는 시각적 영상 인식이나 소리를 듣고 음성과 언어로 인지하는 음성인식, 그리고 매우 불충분한 자료를 가지고도 훌륭히 학습해 낼 수 있는 능력들은 아무리 용량이 크고 속도가 빠른 슈퍼컴퓨터라도 인간의 두뇌를 따라올 재간이 없다.

인간의 두뇌는 그 속도와 신뢰도는 떨어지지만 어떠한 상황에서나 자극의 형태를 융통성 있게 소화하고 스스로 정보화해 입력처리 할 수 있는 매우 가변적인 작동법을 가지고 있다고 볼 수 있다. 실제로 두뇌는 인간이 제조한 기계들과는 달리 종류가 극히 제한된 부속품 즉 신경세포들로, 매우 단순한 구성과정을 통해 1백억개 이상의 세포가 1조개 정도의 회로망을 이루어, 적응성(adaptiveness)과 여유성(redundancy)을 가지고 작업을 훌륭히 수행해내고 있는 것이다. 이 때문에 우리는, 마치 의식은 물질에 구애되지 않고 매끄럽고 자연스럽게 진행된다는 느낌을 갖고 있는지 모른다. 분명한 사실은 두뇌는 이론적으로는 일종의 튜링기계라고 볼 수 있을지라도, 그 물리적 구현은 인간이 창조한 컴퓨터와는 근본적으로 다른 생체시스템이라는 점이다.

대뇌의 해부학적 구조 및 생리적 작용은 요즘 컴퓨터계에서 추구하고 있는 병렬처리 방식에 가깝다. 인간의 고등인지기능을 담당하는 대뇌피질은 수많은 원주형의 모듈(module)로 구성되며, 상호간에 풍부한 피드백 루프로 연결돼 있어서, 외부에서의 경미한 자극이라도 광범위하게 모듈들 속에 확률적 분산적으로 표상된다. 이러한 자극의 패턴들이 특정한 출력, 즉 행동을 창출한다고 신경 과학자들은 믿고 있다.
 

두뇌는 이론적으로는 정보처리기계지만, 실제로는 컴퓨터와는 근본적으로 다른 생체시스템이다.


이제 시작 단계

앞서 본바와 같이 두뇌에 대한 이론적 접근은 현대 신경과학의 새로운 장으로 우리를 몹시 흥분하게 한다. 그러나 이러한 논리적 작업을 연장해서 생각해볼 때 우리는 막다른 골목으로 달려가고 있는 듯한 느낌을 지울 수 없다. 두뇌가 합목적적 정보처리기계라 할 때 우리가 매일같이 느끼며 스스로 생각하고 선택하고 결정하는 자유의지는 어디에서 찾아볼 수 있을까. 우리가 양자선택의 기로에 섰을 때 과감히 결단을 내리는 것은 단지 내 머리속의 전두엽 신경세포들이 이러이러하게 방전하는 양상에 불과한 것인가.

'나는 두뇌를 가지고 있다'(I have a brain)와 '나는 곧 두뇌다'(I am a brain)라는 명제중 어느 것이 옳은 것일까. 우리가 매일 기뻐하고 슬퍼하고 느끼는 생각과 감정의 절실한 체험은 1백억개의 번뜩이는 신경세포의 작동속에 물거품처럼 사라져 버리는 것일까.

미래에 나의 신경세포들이 작동하는 모습 그대로 컴퓨터를 설계했을 때 그 컴퓨터는 나와 똑같이 사고하고 판단할 것인데, 내가 죽고나면 나의 영혼은 그 컴퓨터속에 불멸의 존재로 남을 것인가. 들어와보지 않고는 내가 무슨 생각을 하는지 아무도 알 수 없는 지극히 사적인 '나'라는 자의식의 경험은 양자방출촬영(PET Scan)사진의 어디에서 흔적을 찾아 볼 수 있을까. 신경과학은 이러한 매우 주관적이며 종교적인 비과학적 질문에 어떻게 답해야 할까.

이와 유사한 질문을 우리는 인접학문에서 쉽게 만날 수 있다. 즉 정신분석에서의 무의식, 심리철학에서의 감각질(sensory qualia) 또는 지향성(intentionality)의 문제가 그것이며, 언어학에서의 의미론(semantics)이 비슷한 질문이다.

이러한 현상에 대해 만족스런 답변은 커녕, 아직 시작의 근거조차 확보돼 있지 않다. 아마도 두뇌란 인간의 이성이 논리하고 추론하는 방법과는 달리 비선형(non-linear)구조를 가지고 있는 것으로 추론해볼 수 있다. 우리의 논리가 성립되는 평형상태로부터 두뇌의 작동은 상당히 멀리 떨어져서 혼돈(chaos)에 가까운 역동적 구조를 하고 있으며, 혼돈은 예상치 못할 시공간에 새로운 질서를 생성하는지도 모른다. 이러한 비선형적 시공간에 정신현상은 창출되고 있는 것인지 모른다.

과학은 진리를 밝혀내는 도구이어야 하지만, 동시에 현상을 부정하거나 상상력을 매도해서는 안된다. 두뇌의 세계, 그것은 이제 막 우리앞에 극히 일부분에 지나지 않는 모습을 보여주었을 뿐이다.

IQ에 얽힌 논쟁들 지능은 유전하는가?

IQ는 정말로 인간의 지능을 정확히 표현해주는 것일까? 또한 지능은 유전하는 것일까, 아니면 환경적 요인에 의해 결정되는 것일까?

세계의 진기록이 게재되는 기네스북 1971년,72년 판을 보면 한국인 소년(김웅용)이 세계에서 가장 지능지수가 높은 사람으로 기록된 것을 발견하게 된다. 그 소년의 지능지수, 즉 IQ는 2백10으로 네살때 이미 대학 강의를 들을 정도였다고 한다.

신동, 천재의 지표로 우리는 흔히 지능테스트의 결과, 즉 IQ지수를 든다. '우리 아이의 IQ는' '나의 IQ는' 하고 일상적으로 쓰고 있는 이 단어는 어떻게 탄생했을까. 이 지수는 정말로 사람의 지능을 정확히 나타내는 것일까. 지능테스트는 바람직한 것인가. 이 IQ를 둘러싼 논쟁은 과학사상 유례없이 격렬하게 전개됐다. 지능을 측정할 수 있는가 없는가 하는 문제에서부터 지능의 인종차, 성차, 지능의 항상성에 관한 문제들이 논쟁의 쟁점들이었다.

그 중에서도 지능은 유전적인 요인에 의해서 결정되는가, 아니면 환경요인에 의해서 결정되는가가 학자들을 비롯한 일반인들의 주된 관심사였다.

비네 테스트가 시초

지능 테스트의 창시자로 프랑스의 A. 비네가 유명하다. 그는 1905년에 의과 대학생 한명과 공동으로 30개의 테스트 항목으로 이루어진 지능 검사척도를 만들었다. 최초의 지능테스트인 비네 테스트는 학업성적이나 사회적 적응과 직접 결부되는 고차원의 정신능력을 알아보려고 기억력, 이해력, 논리적 추리능력 등을 측정하는 것이었다.

이것은 비네 이전에 지능 테스트를 연구했던 우생학의 창시자, 영국의 골든이나 미국의 케텔의 반사나 감각능력 측정 테스트와는 근본적으로 다른 것이었다. 내용뿐만 아니라 그 연구의 배경도 아주 판이한 것이었는데, 비네는 국민학교의 특수학급에서 특별한 교육을 받을 필요가 있는 아이들을 어떻게 선별해야 할 것인가 하는 고민에서 출발했다. 즉 골든 연구의 배경에는 다윈이나 스펜서의 진화론에 입각한 인류나 민족의 개선, 향상이라는 우생학적인 사상이 있었던데 비해, 비네의 경우에는 프랑스 정신의학의 전통을 배경으로 해 사람들의 임상적 진단을 목적으로 했다는 점에서 큰 차이를 보인다.

비네가 창안한 지능테스트는 우생학이 전성기를 누리던 영국과 미국에서 우생학 신봉자들에 의해 적극적으로 사용됐다. 특히 미국에서는 제1차세계 대전을 계기로 비약적으로 보급됐다.

오늘날 우리가 접하는 IQ는 비네가 죽은 후, 독일 심리학자 슈테른이 1912년에 제안했던 것을 1916년에 미국의 L.M.타만이 비네의 테스트를 번안해 스탠퍼드-비네 개정판이 만들어지면서 나온 것이다. 이 IQ는 지능테스트에 의해서 측정된 정신연령과 나이의 비에 100을 곱해서 계산해낸다. 비네의 경우는 발달에 근거해 어림한 정신연령만을 고려했던 것으로, 이 점이 IQ와 비네 테스트의 차이이다.

인종차별의 도구

IQ를 둘러싼 논쟁으로 가장 쟁점이 됐던 것은 IQ가 유전에 의해서 결정되는가 하는 문제. IQ를 탄생시킨 미국의 심리학자 타만을 비롯하여 캘리포니아 대학의 젠센은 유전에 의한 결정을 강력히 주장했다. 특히 젠센은 '젠센이즘'이라는 신조어까지 탄생시킬 정도였는데 그는 IQ의 유전율이 0.81이라고 주장하는 한편, 흑인의 지적수준이 낮은 것은 유전요인에 의한 것이라고 주장했다.

이들 유전론자들에 대해 프린스턴 대학의 카민은 데이터 수치가 조작됐음을 증명해 이들을 비판했고 학생들은 '인종차별주의자'라고 격렬하게 항의하기도 했다. 이들 주장에 대한 의혹은 지능테스트의 연구로 '경(卿)'의 호칭까지 받은 영국의 C.버트의 데이터 조작사건 '버트 스캔들'로 극에 달했다. 버트가 '쌍둥이법'에서 얻은 데이터에는 상식적으로는 생각할 수 없는 곳이 몇군데나 있었고 버트의 공동연구자라고 명시한 여성들은 실제 인물이 아니었다고 한다.

이들 유전론자에는 심리학자들외에 다른 분야의 학자들도 기세했는데 그 중에는 쇼클리도 포함돼 있다. 트랜지스터를 개발해 노벨상을 수상한 그는, 미국 백인에 평균 43% 포함된 유전자가 아프리카 흑인에게는 1% 밖에 없다고 하는 유전학자 리드의 연구를 기초로, 이 유전자가 내용적으로 지능에 관계하고 있다고 주장했다. 그리고 이 유전자가 1% 증가하면 IQ가 한층 높아진다는 황당무계한 설을 제창하기까지 했다. 이것은 '쇼클리 조크(joke)'라 불린다(그는 그후 우수한 자손을 남기기 위해서 정액은행에 자신의 정액을 제공한 것으로 알려졌다).

1971년 하버드 대학의 심리학자 슈타인은 "IQ의 대부분은 유전으로 결정되고 IQ가 높을수록 직업 수준도 높다. 환경이 개선되고 평균화될수록 유전에 의한 능력차가 잔존하게돼 결국 사회적 지위는 유전에 의해서 결정된다"고 해 학생들로부터 '파시스트'라는 비판까지 받았다. 이들은 대개 우생학 사상의 신봉자들로 미국에서 배타적인 이민법과 비인도적 단종법 제정에 결정적으로 기여한 학자들이었다.

유전설과 관련해 IQ의 항상성에 관한 논쟁, 성차에 관한 논쟁 등이 있다. 앞서 타만에 의하면 IQ는 80% 정도의 항상성을 보인다고 주장해 IQ의 유전성을 옹호하고 있다. 그러나 우리의 천재 한국인 소년이 지금은 아주 평범한 개인으로 살고 있다는 예에서도 볼 수 있듯이 이 IQ의 항상성에 의문을 제기하는 예가 많다.

지능의 성차에 대해서도 언어적 능력은 여자가 뛰어나나 수리적 능력은 남자가 뛰어난 경우가 많으므로 IQ만을 '지능'의 척도로 볼 수 없다는 반론들이 제기되고 있다.

이들 유전론자들에 대해서 환경적 요인을 주창하는 사람들, 지능의 다인지설을 주창하는 사람들도 있지만 이들 유전론에 명백한 반론을 펴고 있지는 못하다. 비록 지능 테스트가 백인 중산계급의 입장을 반영하고 있어 백인에게 유리하다는 점은 명백해졌지만 이러한 문화적인 요인들로부터 완전히 객관적인 척도를 만들어내기란 불가능하기 때문이다. 또한 환경론자들 역시 자신의 주장을 옹호하기 위해 데이터를 조작할 위험성도 있고, 이들 유전적인 요인과 환경적인 요인을 정확히 구분해내기란 사실상 불가능하기 때문이다. 이러한 점들 때문에 '지능'의 객관적이고 정확한 측정 자체에 의문을 제기하기도 한다.

그러나 IQ와 관련하여 가장 문제가 되는 것은 이 IQ 논쟁이 인종차별의 도구로 이용되고 있다는 점이다. 앞서 언급했던 단종법 이민법이 이에 근거해 이루어졌고 흑인들의 격리나 인체실험 등이 IQ 테스트로 합리화되고 있다는 점이다. 그리고 이 IQ 논쟁은 우생학 사상, 스펜서의 사회 진화설과 같은 이데올로기를 배경으로 하고 있어 이데올로기의 대립이 그치지 않는한 계속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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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91년 03월 과학동아 정보

  • 박진희 과학 저널리스트
  • 허균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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