87년 고온초전도의 열풍이 세계과학계를 휩쓸고 지나간 후 여러나라들은 국가적 차원의 프로젝트를 세우고 치열한 기술개발 경쟁을 벌이고 있다.
1987년 3월 18일, 미국 물리학회가 열리는 뉴욕 힐튼호텔의 대회의장에서는 정원의 3배가 넘는 3천여명의 물리학자들이 '고온초전도체에 관한 특별 논문발표회'를 보기위해 몰려 들었다. 오후 7시 30분부터 시작하여 새벽 3시까지 계속된 이 모임에서 IBM 취리히연구소의 뮐러박사, 도쿄대의 다나카교수, 휴스턴대학의 추교수, 중국과학원의 자오교수 등이 연구결과를 발표할 때마다 회의장은 온통 흥분과 박수의 도가니였다. 학술회의장이기보다 로큰롤연주회같은 들뜬 분위기였다.
이 사건을 계기로 고온초전도 열기는 빠른 속도로 전세계로 전파되어 갔다. 수많은 물리학자 화학자 재료공학자들이 더 높은 임계온도(Tc)의 초전도체를 발견하기 위해 밤잠을 설치며 경쟁적인 연구를 하였으며, 새로운 물질의 구조와 물리적 특성 규명에 몰두하게 되었다.
AP통신이 꼽은「80년대 첫번째 발견」
시사주간지 '타임'(TIME)이 고온초전도체를 특집으로 다루는가 하면, 87년 7월에는 백악관 주관으로 '고온초전도체의 상업화에 관한 회의'가 열렸고 레이건 대통령은 11개 항의 특별지원 정책을 발표했다. 이에 뒤질세라 일본에서도 통산성 지원하에 국제초전도기술연구소(ISTEC)가 신설돼 50여개의 기업체가 공동연구에 나섰다. 미국과 일본의 뒤를 이어 소련 중국 대만 등도 국가적 지원하에 고온초전도 개발경쟁에 뛰어들었다.
이와같은 경쟁적인 연구결과로 지난 4년간 미국에서만 고온초전도체에 관한 학술회의가 7백여회 개최되었으며 일본에서 1백50여회, 우리나라에서도 14회의 고온초전도 워크숍이 열릴 정도로 많은 연구가 이루어졌다.
그러면 AP 통신이 80년대에 이룩된 10대 과학업적의 첫번째로 꼽은 발견이며, 일본이 추진하고 있는 21세기를 개척하는 기초기술 중 신소재 분야에서 첫번째인 고온초전도체 개발이 지난 4년간에 어떤 연구결과를 얻었으며, 앞으로의 전망은 어떤지에 대해 살펴보기로 한다.
고온초전도체가 처음 발견됐던 당시의 초전도체 연구현황을 보면 임계온도는 ${Nb}_{3}$Ge의 27K(-2백46℃)가 최고였으며, 응용면에서는 핵자기공명 단층촬영장치 (NMR-CT)가 실질적으로 상용화된 유일한 예였다. 이 밖에 입자가속기(미국 페르미연구소의 테바트론)를 비롯하여 실험실에서는 초전도자석을 이용했으나 비싸고 다루기 힘든 액체헬륨을 반드시 사용해야만 했다. 따라서 질소의 액화온도(77K, -1백96℃)보다 높은 임계온도를 갖는 초전도체의 발견은 많은 물리학자들의 오랜 꿈이었다.
임계온도 1백25K에 머물러
1987년 2월 추교수가 임계온도 95K의 YBaCuO를 발견한 이래로 88년 1월에는 일본 금속재료연구소의 마에다박사에 의해 비스무트(Bi)계(Tc 1백8K), 3월에는 미국 아칸소대학의 허만 교수에 의해서 탈륨(Tl)계 (Tc 1백25K) 고온초전도체가 발견되었다. 당시의 분위기는 이런 속도로 임계온도가 향상된다면 멀지않아 2백K(드라이아이스로 냉각 가능한 온도)는 물론 상온(3백K)초전도체도 개발되리라는 희망에 차 있었다. 이를 뒷받침하듯이 심심찮게 임계온도가 2백K 이상인 초전도체가 발견되었다는 뉴스가 보도 됐다. 그러나 번번히 인정 받지 못하고 아직 최고 임계온도는 1백25K에 머무르고 있다.
고온초전도체를 응용하기 위해 임계온도에 못지 않게 중요한 특성인 임계전류(Jc)도 발견 초기의 예상과는 달리 향상시키는데 많은 어려움이 있었다. 고온초전도체 결정구조가 규명되고 단결정을 제작할 수 있게 되면서 박막(薄膜)의 임계전류는 ${10}^{6}$/㎠를 넘어섰으나, 벌크(bulk)의 임계전류는 오랫동안 ${10}^{3}$/㎠ 수준이었으며 초전도 자석을 만드는데 필수적인 선재의 경우에는 더 낮은 상황이었다.
고온초전도체가 산화물이기 때문에 생기는 입계(grain boundary)와 자속의 움직임(flux creep)에서 생기는 근본적인 문제 때문에 한때는 '임계전류를 향상시키는 것이 불가능 하지 않을까' 하는 우려도 있었으나, 그후에 개발된 용융방향성 성장(melt-textured-growth) 방법으로 임계전류는 점차 향상되었으며 근본적인 문제점은 없는 것으로 밝혀졌다. 벌크의 경우 임계전류가 77K에서 최고 8만A/㎠에 이르고 있어서 대전류 응용에 필요한 값에 상당히 가까워지고 있다. 또한 고온초전도체의 실용화와 관련하여 문제가 되었던 것은 0.1T(테슬라, 1T=1만 가우스)정도의 약한 자장만 걸어 주더라도 '임계전류가 수십 A/㎠ 정도로 급격히 감소하는 특성이었다. 현재 사용되고 있는 초전도 자석의 세기가 NMR-CT의 경우 2T이고, 미국에서 건설중에 있는 차세대 입자가속기인 초전도 거대가속기(SSC)에 사용되는 초전도 자석이 6T인 것을 고려하면 이 문제는 매우 심각한 것이었다.
그런데 최근 미국표준기술원(NIST)에서 나온 보고에 따르면 77K, 15T에서 임계전류가 5천A/㎠, 20T에서 4천A/㎠인 YBaCuO시료가 개발되었다고 하므로 자장에 관한 문제도 해결되어가고 있는 듯하다. 고온 초전도체를 초전도 자석으로 제작하여 응용하기 위해서는 적어도 7T의 자장하에서 10만 A/㎠의 임계전류를 갖는 선재 개발이 필요하므로 현재보다 대략 10~20배 정도의 향상이 필요한 셈이다.
일본의 스미토모전기는 77K, 1T에서 임계전류가 1만1천A/㎠인 은피복의 비스무트계 테이프제작에 성공했으며 수년내에 1백m 길이의 테이프를 제작하는 것을 목표로 하고 있다. 미국의 퍼시픽초전도사는 1천m길이의 고온초전도 섬유를 생산하여 이 섬유를 여러개 합쳐서 임계전류가 50K에서 6천A/㎠인 선재를 20m 길이로 만드는데 성공했는데, 금년내에 2만A/㎠까지 임계전류를 향상시킬 목표로 연구를 진행중에 있다.
적외선 센서, 실험실 규모에서 성공
고온초전도체의 발견 초기에는 5년이내에 많은 분야에서 응용이 가능할 것으로 예상하는 낙관론이 지배적이었다. 특히 연구자들의 대부분이 초전도체 연구경험이 없는 사람들이었으므로, 고온초전도체를 전기로에서 구워내어 은이나 구리같은 금속관 안에 넣은 후 선재로 만들어서 자석으로 감고, 액체질소 안에 넣기만 하면 전기를 사용하는 거의 모든 분야에서 응용될 수 있다고 막연하게 생각했다.
그러나 1911년 금속초전도체가 발견된지 50년이 지난 후에야 정작 쓸모있는 초전도체인 NbTi 합금이 개발되었으며 이로부터 20년이 지난 80년대에 와서야 NMR-CT나 입자가속기에 사용할 수 있는 초전도 자석이 개발된 역사를 볼 때 이러한 낙관론은 사실 지나친 것이었다. 더욱이 고온초전도체는 물질 자체가 4,5종의 원소로 이루어진 산화물인 것을 생각하면 제조공정의 복잡성 외에 화학적 안정성 등도 고려되어야 하므로 종전의 금속초전도체 보다도 몇배나 어려움이 있을 것으로 예상된다.
이와 같은 어려움에도 불구하고 최근에는 마이크로파 공명기(microwave resonator)가 상용화 되었으며, 적외선센서 초전도양자 간섭장치(SQUID) 등이 실험실 규모에서 제작됐다. 이를 통해 볼때 20세기가 끝나기전에 몇가지 고온초전도 상품이 전자공학분야에서 시장에 나올 것임은 틀림없는 사실이다. 그러나 초전도 자석을 제작하여 사용하게 될 대전류용용은 아무래도 2000년 이후에 가야만 가능할 것으로 전망된다. 다만 이러한 전망은 임계온도가 현재 수준일 경우이고 만일 내일이라도 상온초전도체가 발견된다면 전혀 다른 얘기가 될 수도 있다.
그간 우리나라의 연구현황을 보면, 87년 과학기술처에서 주관하는 특정연구과제의 일환으로 표준연구소 과학기술연구원 기계연구소 등 8개 출연연구소와 서울대 부산대 연세대 등 10여개 대학팀, 그리고 산기연(포철부설)등이 87~89년 사이에 35억원의 연구비로 공동연구를 수행하여 임계온도 1백10K 수준의 물질합성, 단결정 및 박막의 제조, 그리고 임계전류가 1천A/㎠급의 선재제작에 성공했으나 미국 일본 등과는 많은 수준 차이를 보이고 있다.
고온초전도기술개발사업단 발족
90년도부터 시작된 국책과제 '고온초전도 기술 개발'에서는 초전도양자간섭장치, 적외선 센서, ㎜파 감지기 등의 개발과 임계전류 ${10}^{5}$A/㎠급의 선재제작을 목표로 연구가 수행되고 있다. 금년에는 한국표준연구소에 고온초전도 기술개발사업단을 설치하고 본격적인 핵심기술개발에 들어갈 예정이다.
고온초전도체는 발견된지 4년 남짓한 짧은 기간 동안에 놀랄만한 발전이 있었다. 임계온도가 1백25K 수준에 달해 액체질소를 냉매로 사용하는데 어려움이 없으며 더 올라갈 가능성도 있다. 응용과 관련하여 관심의 대상인 임계전류도 꾸준히 향상되어 박막의 경우에는 ${10}^{5}$A/㎠를 넘어섰고, 선재의 경우도 ${10}^{4}$A/㎠에 이르므로 대전류 응용도 점차 실현될 것으로 예상된다.
우리나라의 고온초전도 연구는 그간 과기처 지원의 특정연구과제로 수행되면서 연구 기반확립 시설 및 인력확보의 성과를 얻었고, 이제 본격적인 핵심기술 개발 단계에 와있다. 현재 세계적으로 연 10억달러 정도가 고온초전도 연구에 사용되고 있다. 우리나라가 적은 연구비와 어려운 여건하에서 미국 일본 등 선진국과 경쟁하기 위해서는 명확한 연구목표와 잘 구성된 연구팀의 원활한 협력을 통해서만 가능할 것이다. 고온초전도 연구없이 선진국 대열에 참여할 수는 없기 때문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