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Ⅲ 각양각색 경기장 지붕에 숨은 의미

첨단공학과 조화 이룬 자연미

경기장 건축의 백미는 뭐니뭐니해도 지붕이다. 시야를 가리지 않도록 기둥을 없애면서도 장대한 공간을 덮어야 하는 지붕은 첨단 건축공학과 구조역학의 개가다. 별다른 특징없이 밋밋한 관중석과 그라운드, 기타시설과는 달리 지붕은 그 경기장의 특색을 말해주는 얼굴이다. 한국 월드컵 경기장을 둘러보며 우리 건축의 수준을 가늠해보자.


경기장 건축의 백미 - 서울 경기장
 

경기장 건축의 백미 서울 경기장


서울 월드컵 경기장의 설계개념은 전통소반, 방패연, 황포돛대다. 하지만 서로 연관성이 없을 듯한 이 세가지는 서울 경기장 내에서 훌륭히 소화되고 있다. 전통소반의 팔각형에서 모습을 따온 관중석 기단은 통상 타원형인 여타 축구장에 비해 형태적 차별성을 띤다. 원형에 가까우면서도 나무판으로 쉽고 싸게 만들 수 있는 팔각 전통소반의 이치를 잘 활용한 경우다.

지붕 역시 직사각형인 방패연 모서리를 본따 팔각형으로 만들어 기단과 형태적 일치를 이룬다. 더욱이 위로 도톰한 팔각형이기에 밑에서 보면, 기와의 무게로 자연스레 처진 한옥의 추녀선을 연상시킨다. 지붕은 그 무게를 땅으로 전달하기 위해 기둥에 매다는 방식을 취했다. 고도의 기술력을 요하는 방식이지만 배의 돛대가 그렇듯 훨씬 경쾌하고 경제적이다. 지붕 마감재로는 반투명 텐트와 투명 폴리카보네이트가 쓰였다. 창호지를 통해 들어오는 은은한 햇볕의 느낌은 큰 마스트(범선에서 돛을 다는데 필요한 기둥)와 어우러져 황포돛대를 완성시킨다.

서울 경기장은 이처럼 참신한 지붕개념이 고도의 기술력으로 지붕형태 속에 필연적으로 녹아있는 월드컵 경기장의 백미라 할 수 있다.


힘이 살아 흐르는 텐트 구조 - 인천 경기장

건축 역사상 가벼운 건축의 백미는 텐트다. 몽고인의 ‘빠오’를 비롯한 유목민의 거처로 쓰인 텐트는 항상 집을 들고 다녀야 했던 그들에게 유일한 대안이었다. 인천 경기장의 텐트 구조는 막이 지붕 마감재 노릇을 하며 동시에 힘까지 견디는 방식이다. 더욱이 국내 최초로 케이블에 지붕구조를 달아매는 공법을 채택했기에 경쾌함은 배가 된다. 경기장 설계자는 항구도시 인천을 상징하는 범선의 돛에서 개념을 가져왔다고 한다. 돛이 바람을 잔뜩 안아 배가 움직일 때 비로소 자기 형상을 드러내듯, 막구조는 힘이 팽팽히 걸려야 제 모습을 갖춘다. 두꺼운 벽으로 지어진 정착민의 집이 힘이 흐르는 길을 감추고 있는 죽은 구조라면 유목민의 텐트구조는 힘이 펄펄 살아서 흐르는 살아있는 구조다. 힘이 흐르는 선에만 구조가 있으니 당연히 가볍다. 항구와 범선, 유목민의 텐트 조합이 잘 어울리는 건축물이다.


한옥 처마 연상시키는 - 수원 경기장

경기장 지붕은 햇볕과 비를 피하기 위한 장치만은 아니다. 거대한 하나의 지붕 밑에서 관중들은 경기에 몰두하며 하나가 된다. 관중의 함성은 지붕에 의해 반사, 증폭, 집중돼 집단적 열기를 더욱 고양시킨다. 그래서 대부분의 경기장은 내향적으로 설계된다. 평면은 콜로세움처럼 타원형이고 지붕은 그라운드쪽으로 초점이 생기는 오목한 구조다.

그런데 수원 경기장은 전혀 다르다. 우선 지붕이 일체로 돼 있지 않다. 동쪽과 서쪽 관중석에만 지붕이 한채씩 있을 뿐 남북 측에는 없다. 더욱이 서측 본부석 지붕은 경기장 밖으로 연장돼 있다. 하늘에서 보면 ‘二’자 형상이다. 설계자는 전체 건물에 비해 큰 편인 동양건축의 지붕이 디자인 모티브라고 말한다. 이 전략은 성공한 듯 보인다. 한옥 지붕의 처마 밑은 내부가 아니지만 외부 공간도 아니다. 경기장 밖으로까지 뻗은 지붕 밑의 공간이 바로 그러하다. 수원 경기장의 미덕은 이같이 하나와 여럿, 안과 밖이 똑같이 중요하다는 사실을 건축적으로 구현한데 있다.


외팔 내밀어 지붕 맞잡는 - 대전 경기장

경기장 지붕의 고민 중 으뜸은 그라운드 쪽으로는 기둥을 둘 수 없기에 바깥으로 기둥을 두면서도 관중석 쪽으로 가급적 넓은 지붕을 덮어야 한다는데 있다. 이런 고민을 해소하는 가장 쉽고 통상적인 방법이 외팔 보를 내미는 방법이다. 대전 경기장이 채택한, 마치 다이빙대를 연상시키는 지붕 방식이다. 대지가 협소하고 축구전용구장의 특성을 살리려 사각평면을 만들다보니 어쩔 수 없는 선택이었을 것이다.

지붕 구조를 구성하고 있는 H형 강은 힘 가는 곳에만 살이 있는 매우 알뜰한 철골재다. 기성품이기도 한 이 부재를 썼기에 경기장은 경제적으로 지어졌고 경쾌해보인다. 그러나 노골적인 가벼움은 아쉬움을 남기기 마련이다. 필연적으로 홀쭉한 철의 초라함을 보완해주는 것은 풍성한 접합부인데 여기서는 무심히 처리됐다.


미는 힘과 당기는 힘의 미학적 조화 - 울산 경기장

여러모로 대전 경기장과 비교된다. 규모도 거의 같고 평면 형태도 사각형이다. 구조방식도 똑같이 경기장 외곽의 촘촘히 박힌 기둥에서 지붕이 내밀어진 외팔 보 형식이다. 굳이 다른 점을 찾는다면 대전의 지붕구조 지지 방식이 얹는 식이라면 울산은 매다는 식 정도다. 그런데 완성도에 있어 다르다. 대전이 미는 힘이나 당기는 힘이 생기는 부재에 모두 H형 강을 쓴 반면, 울산은 미는 힘에는 두툼한 H형 강을, 당기는 힘에는 가는 와이어를 썼다. 사소해 보여도 큰 차이다. 경기장 같이 구조체 자체가 건축물의 외관이 되는 경우, 힘의 종류와 흐름을 명확히 하는 것이 구조미를 얻는 첩경이기 때문이다. 접합 또한 다르다. 와이어와 형강이 만나는 부분, 철과 콘크리트가 만나는 부분이 마치 세공품처럼 만들어져 구조적·장식적 역할 모두를 훌륭히 해내고 있다.


경쾌한 삼각 구도의 사선기둥 - 대구 경기장

대구 경기장에서 도드라져 보이는 것은 외곽 기둥의 삼각형 구도다. 지붕의 무게를 땅으로 전달하는 기둥을 설계자는 사선으로 처리했다. 이 방법은 수직기둥보다 두가지 측면에서 효과를 본다. 먼저 구조적으로 보면 바람이나 지진 등에 의해 옆으로 미는 힘이 생길 때 평행사변형 꼴로 찌그러지는 수직 기둥보다 강하게 버틸 수 있다. 조형적으로는 수직 열주가 보여주는 경직성과 권위적 구도를 완화시켜 준다. 더욱이 이 사선 기둥들은 가운데는 두툼하고 끝은 뾰족한 배흘림 식으로 처리돼 힘의 흐름이 명확히 인지되는 동시에 텐트 구조로 된 지붕과 어울려 더욱 경쾌하게 보인다.


무등산 능선 닮은 쉘 지붕 - 광주 경기장

광주 경기장은 쉘구조의 지붕을 갖고 있다. 따라서 너비에 비해 가운데가 상당히 높다. 대규모 실내 공간을 만들고 싶을 때 평평한 슬래브보다는 얇고 가벼우면서도 강한 쉘구조가 안성맞춤이다. 그런데 쉘의 치명적 약점은 모서리가 약하다는 것이다. 달걀을 깰 때 먼저 금을 내 모서리를 만드는 것도 같은 이치다. 관중석에서 올려다보면 알 수 있지만 2백m나 가로지르는 지붕의 두께치고는 몹시 얇고 그것도 가는 철봉으로 짜여있다. 한편 모서리는 상당히 두툼하다. 쉘 표면에 골고루 퍼진 힘이 모여 땅으로 가는 길이기 때문이다. 설계자는 여기에 철판을 씌워 무등산의 이미지를 본 따 큰 아치처럼 보이게 했다. 그러나 그라운드 쪽의 거대한 아치에 비해 배면 쪽은 초라하게 앙상한 막대기들이 받치고 있다. 대구와 비교되는 부분이다.


그라운드 위로 뚫린 판테온 - 부산 경기장

전체적인 형상은 로마의 판테온처럼 구를 반으로 잘라 놓은 모습이다. 관중석 뒤에서 그라운드 쪽으로 넘어질 것 같은 지붕이 공중에 버티고 있는 이유는 럭비 선수처럼 서로 스크럼을 짜고 있기 때문이다. 종합 경기장으로 지어져 집중력이 다소 떨어지는 경기장의 스케일을 이런 방식으로 극복했다.

힘이 흐르는 이치 꿰뚫은 - 전주 경기장


힘이 흐르는 이치 꿰뚫은 전주 경기장


누르는 힘이 지나는 곳은 굵어야 하고 당기는 힘이 지나는 곳은 가늘어도 된다. 전주 경기장에서 이 이치를 볼 수 있다. 엄청난 지붕 무게를 당겨 올리는 와이어는 눈에 보이지 않을 정도로 가늘다. 반면 이 힘이 모여 누르는 힘이 생기는 기둥은 엄청나게 굵다. 전문 용어로 ‘서스펜디드 구조’라 불리는 이 방식은 말 그대로 서스펜스가 넘친다. 강함과 약함, 당김과 누름, 가늚과 굵음이 절묘하게 조화를 이루고 있기 때문이다.


머리에 새끼 오름 이고 있는 - 제주 경기장

제주 경기장의 지붕은 한쪽에만 있는 비대칭 구조로, 오히려 전체 구조를 역동적으로 만들고 있다. 또한 설계 개념이기도 한 ‘오름’의 형태도 여실히 잘 드러낸다. 지붕 전체의 모습도 오름 같거니와 지붕에 잔뜩 붙어 있는 작은 융기들도 새끼 오름 같아 보인다. 실제로 텐트의 융기들은 오름의 형성 원리와 같다. 막 안에 치받는 작은 막대를 두고 그것을 막의 장력이 누름으로써 팽팽한 작은 오름들이 생기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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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2년 05월 과학동아 정보

  • 함인선 소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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