하이델베르크 성명서를 채택한 과학자들은 환경보호운동이 새로운 전체주의를잉태하고 있다고 주장한다.
리우에서 UN환경개발회의가 열리기 하루 전인 지난 6월 1일 프랑스의 유력 일간지 '르 피가로'는 이색적인 성명서를 단독 게재했다. 이른바 하이델베르크 성명서로 불리게 된 이 문건은 일단 서명자 명단부터 세인의 주목을 끌기에 충분하다. 91년도 노벨물리학상 수상자인 피에르 질르 드젠, 기호학자이며 소설가인 움베르토 에코, 부조리극의 대가 위젠느 이 오네스코 등 전세계 29개국의 내로라하는 과학기술자 문필가 등 2백64명의 사인 중에는 노벨상 수상자의 것도 52개나 눈에 띈다.
그러나 무엇보다도 파격적인 것은 이 성명서의 내용이다. 리우회의에 참가하는 전세계 지도자들에게 보낸 이 글에서 서명자들은 먼저 '지구정상회담의 취지에 적극 동의한다'고 운을 뗀 뒤 그럼에도 현재의 환경론자들의 주장은 비합리적인 이데올로기며 이런 흐름이 발전에 족쇄를 채울지도 모른다고 엄중 경고하고 있다. 다음은 성명서의 일부를 발췌한 것.
'우리는 21세기가 밝아오는 지금 과학과 산업의 진보를 가로막고 사회경제적 발전에 해가 되는 비합리적 이데올로기가 출현하고 있는 것을 목격하며 불안해 하고 있다. 과거지향성이 강한 환경론자들의 운동에 의해서 관념화된 자연상태란 것은 인류가 시작된 이래 단 한번도 없었으며 앞으로도 존재하지 않을 것이다. 인류가 항상 자연을 이용하면서 진보해왔으며 그 역이 아닌 한에서는.
우리는 특히 인간이 스스로에게도 위험한 생활수단(예를 들어 이산화탄소나 CFC 등)을 취급하고 운용하는 것이 인류의 행복을 증대시키기 위해 적대적인 요소들을 제압해온 역사라고 보며 이것이야말로 인간이 물질문명을 발전시키는 가장 본질적이며 필수불가결한 요소였음을 강조하고 싶다.'
서명사의 한 사람이며 노벨화학상을 수상한 파리대학의 장 마리 렝교수는 르 피가로지와의 인터뷰에서 지금은 과학자들이 '돈키호테처럼 풍차에 대항해서 싸우는 용기를 보여야 할 때'라고 역설했다. 그는 서방산업국가 생태학자들의 오염감시는 불면증환자 수준이라고 꼬집으며 생태학의 이름으로 다른 분야의 진보를 가로막는 전체주의가 출현해서는 안될 것이라는 우려를 나타냈다.
UNCED 프로그램의 하나인 과학포럼에서도 발표된 이 성명서는 지난 4월부터 유럽지역의 과학자들을 중심으로 만들어진 것으로 알려졌다. 공식적으로는 파리에 본부를 둔 세계과학협회(World Institute of Science)가 주관하고 UNESCO가 후원한 것으로 돼 있으나 UNESCO 측은 성명서 발표 이후 이것이 자신들의 공식적인 입장은 아니라고 해명했다.
환경보호론자들의 주장을 장 자크 루소의 '자연 그대로의 야만'으로의 복귀 정도로 몰아부치는 이들의 신랄한 논조는 얼핏 기술진보에 따른 부작용을 합리화하고 발전에만 박차를 가하려는 과학자들의 집단이기주의로도 읽힌다. 그러나 서명자들 중에는 1972년 최초로 발전 위주 성장의 한계를 지적했던 로마클럽의 과학자들도 있으며 20년전 스톡홀름의 UN인간환경회의에서 생태학의 기치를 높이 들었던 사람들도 있다.
결국 하이델베르크 성명서는 편견에 사로잡힌 몇몇 과학자들이 꾸민 이벤트라기보다는 '환경보존과 과학기술의 진보는 공존할 수 없는가'라는 근본적인 질문을 수면위에 다시 띄워올린 것이라고 할 수 있다. 서구에서 환경운동이 발달해온 지난 수십년간 과학자들은 현대과학기술이 환경파괴의 주범만은 아니며 보존에도 일익을 담당할 수 있다고 주장해 왔고 실제로 새로운 돈벌이로 떠오른 환경기술개발에 성과를 거두어 왔다. 그러나 환경운동가들은 이 정도의 대안으로는 지구파멸을 막을 수 없으며 이산화탄소 배출량의 동결, CFC 사용의 전문 중지 등 소비생활의 패턴을 바꾸는 급진적인 대안이 필요하다는 주장으로 과학의 수준을 앞지른 과학자들을 위축시켜온 것이 사실이다.
성명서 제작의 주관단체인 세계과학협회는 후속작읍으로 오는 9월 스페인의 마드리드에서 국제회의를 가질 계획이다. 여기서 이들의 주장을 입증할 과학적인 데이터들이 발표된다면 생태학적인 관점을 제시하는 환경운동가들과의 적잖은 논쟁이 뒤따를 것으로 예상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