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금년도 대학입시를 치르고

깊은 이해가 없는 단순한 암기는 시험장에서 그 「사상누각」을 여지없이 드러낸다.

91학년도 학력고사가 끝났다. 이번 학력고사에서 당락에 가장 중요한 요인으로 작용한 과목은 역시 수학이었던 것 같다. 학력고사 직후 공식 발표된 출제위원들의 견해는 수학이 작년보다 쉬웠다는 것이었지만, 막상 긴장된 상태에서 시험을 치른 학생(물론 나 자신을 포함해서)의 입장에서 볼 때 이번 수학시험은 결코 쉽지 않았다.

평소 문제집에서 많이 보지 못했던 새로운 문제들도 꽤 출제돼 있어 너무 당황한 탓에 제 실력을 다 발휘하지 못한 학생들도 많았다. 어쨌든 내가 원하던 대학에 합격한 것에 감사하는 마음을 가지면서, 앞으로 학력고사를 치르게 될 후배들에게, 여러 해 동안 수학을 공부하면서 내가 느낀 점과 수학시험에서 좋은 성적을 거두었던 주위 사람들의 경험에 대해 몇가지 이야기해 보고자 한다.

수학공부를 하면서 내가 알게 된 점은, 많은 사람들이 누누이 하는 이야기지만, 기본적인 개념을 철저히 이해하고 있어야 문제를 좀 더 쉽게 풀 수 있고 응용력도 높일 수 있다는 것이다. 또 자기 스스로 문제를 직접 풀어 보는 가운데 수학실력이 조금씩 는다는 것이다.
 

희비가 교차하는 합격자발표 현장


●-공식유도 등을 해봐야

사실 기본개념을 이해하지 않고서는 수학을 공부했다고 볼 수 없다. 그러나 이런 원칙적인 이야기를 인정하면서도 현 입시의 수학문제 출제경향과는 동떨어진다고 생각, 문제의 유형과 그 풀이방법만을 참고서에 나오는대로 무조건 외는 식의 공부를 하는 학생들을 많이 봐 왔다. 그런데 나는 입시제도에 맞춘다는 핑계로 원칙을 무시하고 의미없는 공부를 하는 것에 늘 반감을 품어 왔다.

그래서 기본적 개념을 좀 더 철저히 이해하려는 의도로, 별로 알 필요가 없는 공식의 유도나 증명까지도 스스로 해 보려고 노력했다. 수학에 대한 이해를 넓히기 위해 교과서와 관련된 것 이외의 수학서적을 구해보기도 했다. 이런 방법이 단순히 문제를 기계적으로 계산해 푸는 식의 공부보다 수학을 더 흥미진진하게 했다.

때로는 공식의 유도과정 등에서 힌트를 얻어 해답의 풀이보다 더 간단하고 좋은 풀이방법을 발견한 적도 있었다. 이럴 때는 학문의 기쁨을 느끼기도 했다.

기본개념을 이해하는 것이 중요하다는 사실은 통계부분을 공부할 때 특히 절실히 느낄 수 있었다. 수험생이라면 다 아는 사실이듯이, 교과서의 통계부분에는 이해하기 어려운 내용들이 상당히 있다. 게다가 학교수업시간에는 통계를 소홀히 하는 경향이 있기 때문에 학생들이 단순히 공식 몇 개만을 암기하고 넘어가는 수가 많았다. 나도 처음 공부할 때는 예외가 아니어서, 공식을 보고서 '그냥 이렇게 계산하는 것이다'하고 외워버리고 말았다.

처음에는 별다른 무리가 없었으나, 점점 복잡하고 응용된 문제를 많이 풀게 됨에 따라 이해가 없는 단순한 암기는 절대로 수학실력의 향상에 도움이 되지 못한다는 것을 깨닫게 되었다. 그래서 통계부분의 첫장부터 책을 다시 볼 수밖에 없었다.

선배들이나 선생님들로부터 자주 듣는 충고겠지만 여기서 내가 또 한번 강조하고 싶은 말이 있다. 문제를 스스로 풀어보면 그만큼 자신의 수학실력이 는다는 것이다. 이것이 결코 진부한 잔소리가 아니라는 것은 나 자신 뿐만 아니라 주위의 다른 사람들의 경험에 비춰 볼 때 너무도 확실하다.

나는 수학참고서나 교과서에 나온 쉬운 예제나 연습 문제까지도 하나하나 다 풀어보고 넘어가는 식으로 공부했다. 그렇게 하는 동안에는 계산문제나 다름없는 쉬운 문제들을 왜 일일이 풀어야 하나 하고 짜증스럽게 생각하기도 했지만, 지금 생각해 보면 너무나 잘한 일이었다. 원리를 익힌 다음 막바로 그것에 해당하는 간단한 연습문제 너댓개를 풀어 보는 게 새로 익힌 기본개념을 확실히 머리 속에 정리해 두는 데 큰 도움이 되었다.

내 경우는 그렇다 치고, 내 주위를 돌아 보아도, 수학성적이 잘 나오는 학생과 그렇지 못한 학생의 차이점은 문제를 스스로 풀어 보느냐 그렇지 않느냐 하는 데에 달려 있었다. 한 친구는 늘 수학성적이 만점 가까이 나오는 학생이었는데, 공부하는 방법에 대해 물어보니, 어려운 문제 하나를 놓고 몇시간씩 씨름하는 것이라고 자신있게 대답했다. 어떤 문제건 해답에 의존하는 일이 거의 없다는 얘기였다.

●-답을 먼저 보면 이미 실패

반면 수학성적때문에 고민하는 학생들이 공통적으로 호소하는 것은 아무리 공부를 해도 막상 시험문제를 보면 그 풀이법이 기억나지 않는다는 것이었다. 내가 생각하기에 이렇게 되는 원인은 수학공부를 할 때 어려운 문제가 나오면 2~3분 생각해 보고 잘 안되면 곧장 해답에 의존하는 데 있다. 자신이 직접 푼 문제는 한참 후에 다시 보아도 곧 풀 수 있으나, 해답에 의존해서 안 문제는 나중에 다시 보면 그런 문제가 있었나 하는 것조차도 기억이 희미할 때가 자주 있었다.

잘못 들으면 마치 온종일 수학공부만 하라는 소리처럼 들리겠지만, 학교수업의 진도 등에 맞추어 매일 꾸준히 한다면 결코 무리가 없으리라고 본다. 신문에도 발표됐듯이 앞으로는 점차 개념의 이해와 응용에 관한 문제가 많이 출제될 것이라고 하지 않는가.

현 입시제도 하에서는 과거 본고사 시절처럼 조직적인 사고를 요하는 문제들이 출제된다는 것이 힘들겠지만 그에 준하는 문제의 비중이 점점 커지고 있다. 그런 만큼 거기에 알맞는 공부방법을 택하는 것이 고득점의 지름길이라고 생각한다.

현재의 우리나라 수학교육이 많은 비판을 받고 있음은 다 아는 사실이다. 특히 국제수학올림피아드에서 저조한 성적을 보인 이후 그 비판은 더욱 거세어졌다. 논리적 사고의 배양을 지향해야 할 수학교육이 입시제도에 맞추다 보니 어쩔 수 없이 그 기능을 제대로 발휘하지 못하고 있음이 지적되었다.

그러나 우리처럼 배우는 사람의 입장에서 생기는 가장 큰 불만은 뭐니뭐니해도 역시 수학이 너무 딱딱하다는 것과 실생활과 거리가 멀다는 것이다. 수학을 공부하면서 내가 왜 이런 것을 해야 하나 하고 생각해보지 않았다면 오히려 그것이 좀 비정상적일지도 모른다. 좀더 실생활과 밀접히 관련된 내용이 담겨 있고 논리적 사고를 기를 수 있는 수학교육이 되었으면 하는 바램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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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91년 02월 과학동아 정보

  • 허민섭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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