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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Origin] 그 많던 개미는 다 어디로 갔을까

도심 놀이터에서 흔히 볼 수 있는, 새끼 손톱만 한 검정색 개미의 정식 명칭은 일본왕개미(Camponotus japonicus)다. 그런데 겨울이 되면 그 흔했던 일본왕개미조차 눈에 잘 띄지 않는다. 왕개미뿐만이 아니다. 추운 겨울, 그 많던 개미는 다 어디로 갔을까. 최근 ‘한국 개미(자연과생태)’라는 책을 펴낸 동민수 씨(강원대 응용생물학과 2학년)와 개미를 찾아 나섰다. 그는 중학생 때부터 생물학연구정보센터(BRIC)의 곤충 종 동정위원으로 활동하면서 개미를 알리고자 노력해 온 ‘개미 마니아’다.

 

 

겨울 개미 찾기 TIP 1: 사람 발길 적은 곳으로 떠나라

스산한 바람이 불던 11월 10일 금요일 오전 9시, 서울 용산역에서 동 씨를 만났다. 초면이지만 한 눈에 그를 알아볼 수 있었다. 자기 몸집만큼 커다란 가방을 등에 매고 나타났기 때문이다. 인천국제공항에서 버스와 배를 이용해 30여분 더 이동해야 갈 수 있는 섬인 무의도로 향할 터였다.

 

겨울철 어딘가로 숨어버린 개미를 찾기 위해 처음 연락했을 때, 동 씨는 무의도를 제안했다. 산이 아닌 섬이라니, 뜻밖이었다. 이유를 묻자 “섬에서 더 다양하고 많은 수의 개미를 볼 수 있다”는 답이 돌아왔다.

 

같은 종이라도 섬이 내륙보다 분포 밀도가 높다. 아무래도 사람의 손길이 덜 닿아서다. 다른 나라에서는 발견됐지만 우리나라에서 기록되지 않았던 종이 섬에서 발견되는 경우도 종종 있다. 특히 국립공원은 채집 허가를 받기가 굉장히 까다로운데, 작은 섬에서는 허가를 받을 필요가 없다는 것도 장점이다.

 

흔히 잘 알려지지 않았지만, 개미도 겨울잠을 잔다. 11월 중순에 사람이 보일러를 틀고 장롱 속 전기장판을 꺼내듯 개미도 이맘때 월동 준비를 한다.

 

이 때 개미들은 단백질성 먹이를 주로 섭취한다. 단백질을 이용해 서둘러 산란을 해서 새로운 세대가 애벌레 상태로 겨울을 날 수 있게 준비시키고, 남은 단백질은 체내에서 당으로 변환한다. 이를 에너지원으로 삼아 12월부터 본격 겨울잠에 들어가 이듬해 3월 이후에 활동을 재개한다. 일반적으로 기존에 살던 곳이 아닌 다른 장소로 옮겨 월동한다.

 

동 씨는 “이맘때부터 개미들의 활동이 굼떠지고 한겨울에는 바위 밑에 웅크리고 있는 경우가 많다”며 “여름보다 겨울에 개미를 채집하기가 더 수월하다”고 말했다.

 

 

2시간여를 이동해 섬에 내리자마자 동 씨는 등산로로 앞장서서 올라갔다. 곧 평평한 지형을 찾아 가방을 풀고 준비물을 챙겼다. 장갑, 모종삽, 체, 쟁반, 핀셋, 드라이버, 채집용 튜브, 100% 에탄올, 헤드랜턴, 그리고 조명 두 개가 더듬이처럼 붙은 카메라 등이었다. 본격적으로 개미를 찾아 바닥을 훑기 시작했다.

 

겨울 개미 찾기 TIP 2: 큰 바위를 들춰라

가장 먼저 큰 바위들을 들췄다. 이유를 묻자 “지지대, 즉 천장 역할을 하는 바위가 있으면 그 밑에 집을 만들고 사는 경우가 많다”는 답이 돌아왔다.

 

흔히 개미들이 땅을 깊숙이 파고 들어가 미로 같은 소위 ‘개미굴’을 짓고 산다고 생각하지만, 개미굴을 짓지 않고 살아가는 종이 훨씬 많다. 주로 크기가 5mm미만으로 작은 축에 속하는 종들이 그렇다. 그는 “작은종은 큰 종보다 연구가 덜 돼있다”며 “새롭게 연구하려는 개미는 주로 바위 밑에서 찾는다”고 말했다.

 

물론 몸길이 7mm가량인 짱구개미(Messor aciculatus)등은 지하 5m까지 개미굴을 뚫고 살아간다. 겨울에 언 땅을 5m까지 파내기란 쉽지 않으므로, 개미굴을 파고사는 종은 겨울에 관찰하기 어렵다.

 

5분간 바위를 다섯 개쯤 들췄을까. 눈에 잘 보이지도 않을 만큼 작고 불그스름한 개미들이 얼핏 보였다. 동 씨는 “비늘개미속(Strumigenys)인 것 같다”며 땅에 바짝 엎드려 흙 위를 촬영했다. 디스플레이 액정으로 촬영한 사진을 확인한 그가 ‘비늘개미’가 맞다고 확인했다.

 

바위 밑에서 찾은 비늘개미. 그늘진 숲 속의 썩은 나무, 나무껍질 아래, 썩은 도토리 내부, 돌 틈, 돌 아래 낙엽층에 산다.

 

 

개미를 채집해 튜브에 넣은 뒤 100% 에탄올을 붓는 모습. 서로 싸워 더듬이가 떨어지는 등 표본의 가치가 떨어지지 않도록 하기 위해서다. 연구 목적으로 최소만 채집하는 게 동 씨의 원칙이다.

 

 

 

“이 군체는 이미 월동 준비가 끝난 것 같아요. 움직임이 눈에 띄게 느려진 상태에요.”

 

동 씨는 핀셋으로 개미를 네 마리쯤 집어 새끼손가락만한 튜브에 넣었다. 그는 “무리하게 채집하면 군체자체가 손상돼 복구가 불가능해진다”며 “흙 표면에서 일개미 몇 마리만 채집하고 끝내야 한다”고 당부했다. 동 씨는 그마저도 연구 목적일 때만 채집한다고 했다. 실제로 그는 이날 여섯 종 이상의 개미를 찾아냈지만, 그 중 현재 연구 중인 두 종만 채집했다.

 

그리고는 튜브 안에 100% 순수 에탄올을 부었다. 살려둔 채로 안에 넣어두면 서로 싸워서 더듬이나 다리가 떨어질 위험이 있다. 그렇게 되면 애써 채집한 표본의 가치가 떨어진다. 개미를 필요 이상 채집하지 않기 위해서라도 꼭 필요한 과정이다.

 

겨울 개미 찾기 TIP 3: 낙엽 섞인 흙을 체에 걸러보자

이번에 동 씨는 나무 밑에서 낙엽이 섞인 흙을 삽으로 퍼 체에 얹었다. 체를 흔들자 밑에 겹쳐 놓은 쟁반 위로 고운 흙만 떨어졌다.

 

11월 중순만 돼도 개미들이 월동 준비를 거의 마치기 때문에 먹이 활동을 잘 하지 않는다. 따라서 땅 위를 기어 다니는 개미를 보기가 쉽지 않다. 그럴 때 낙엽 부식층을 뒤지면 개미를 찾기가 수월하다. 습기가 유지되고 먹이가 많아 개미가 선호하는 환경이기 때문이다.

 

동 씨는 곱게 거른 흙 위를 헤드랜턴을 켜고 샅샅이 훑으면서 “개미 표면은 광택이 있어서 헤드랜턴을 쓰면 보다 수월하게 찾을 수 있다”고 귀띔했다.

 

체를 이용하는 이 방법은 주로 일본 학자들이 쓰는 방식인데, 동 씨가 e메일 등을 통해 일본 학자에게 직접 문의해서 알아냈다. 그는 “이렇게 하면 개미 외에도 다양한 토양 동물을 볼 수 있다는 장점도 있다”고 말했다.

 

곧 일본장다리개미(Aphaenogaster japonica), 장님침 개미(Cryptopone sauteri)가 발견됐다. 침개미류는 단백질 먹이를 선호해 사냥을 하는 종이다. 말벌과 유사한 수준의 독을 말벌처럼 침을 이용해 사람을 향해 쏜다. 사람의 손길이 닿자 몸을 웅크리고 죽은 척 하는 가시 방패개미(Myrmecina nipponica)도 발견됐다.

 

동 씨는 “가시방패개미는 군체를 보기가 어려운 종인데, 이렇게 낙엽이 쌓인 흙을 체에 거르는 방식으로 많이 찾았다”고 말했다.

 

겨울 개미 찾기 TIP 4: 죽은 가지 속을 주목하라

썩은 나뭇가지를 부수자 이토왕개미 (동그라미 부분)가 발견됐다. 이토왕개미는 중부지역에 많이 산다. 약간 마르고 단단한 나무를 좋아한다.

 

 

이번에 동 씨는 나무를 본격적으로 살피기 시작했다. 하얀 곰팡이가 핀 썩은 가지의 속을 파냈다. 살아있는 나무의 죽은 부위에서 겨울을 나는 종들이 있다고 했다. 바람을 효과적으로 막아주기 때문이다. 바위를 들추거나 흙을 체에 걸러서 보는 방법보다는 개미를 발견하기까지 더 긴 시간이 걸렸다.

 

20분쯤 지나 드디어 왕개미속 중 가장 작은 종인 이토왕개미(Camponotus itoi)가 나뭇가지 속에서 발견됐다. 동 씨가 나뭇가지를 두 동강 내자 새까만 개미 군체가 우수수 떨어졌던 것이다. 이토왕개미는 평소 나무속에 살면서 겨울잠도 원래 살던 나무 속에서 자는 종이다. 한참을 설명하던 그가 부러뜨린 나뭇가지를 땅위에 장작처럼 쌓은 뒤 “이렇게 해놓으면 알아서 잘 산다”며 자리를 떴다. 별도로 채집을 하지는 않았다.

 

마지막 팁은 갈라진 돌 틈, 혹은 돌 위에 얹어진 돌을 들춰보는 것이다. 그제서야 동 씨가 허리춤에 차고 있던 길다란 드라이버의 존재 이유가 이해됐다. 그는 “흙 표면에 사는 종들 가운데 겨울이 되면 월동을 하기 위해 바위 틈으로 옮겨 가는 종이 있다”며 “개미와 공생하는 동물들은 주로 개미굴 깊숙한 곳에 사는데, 개미들이 동면하러 바위 틈에 올라올 때 같이 올라오기도 한다”고 말했다.

 

그러나 결국 이 날 이 방법으로는 개미를 찾지 못했다. 일단 무의도 등산로에 큰 바위가 많지 않았다. 주말이면 등산객들로 북적인다고 하는데, 큰 바위 주변에 쓰레기가 많은 걸로 봐서 이미 사람 손을 많이 타서 개미가 잘 보이지 않는 듯했다. 오후 2시, 세찬 비가 내리기 시작해 동 씨와의 겨울철 개미 찾기는 막을 내렸다.

 

“관심 갖는 건 좋지만, 생명 소중히 해야”
동 씨는 “많은 사람들이 개미에 관심을 갖는 건 좋은 일이지만, 가능하면 눈으로만 관찰하고 필요한 경우 일개미 몇 마리만 채집해야 한다”고 재차 강조했다. 미수정된 여왕개미가 결혼비행을 통해 수정한 뒤 땅 위에 안착하면, 그 곳에서 새로운 군체가 번식한다. 그런데 소위 ‘싹쓸이’식 채집으로 한 군체, 즉 여왕개미 한 마리가 사라지면 향후 100군체가 사라지는 꼴이 된다. 동 씨는 “실제로 사람 손을 탄 곳과 안 탄 곳에서 볼 수있는 개미 종류나 개체 수가 확실히 다르다”고 말했다.

 

집으로 돌아가는 길, 동 씨에게서 메시지가 도착했다. 커다란 바위를 찍은 사진과, 그 바위 한 켠의 조각을 들어내고 발견한 개미의 사진이었다. 그렇게 찾아 헤맸던 바위 틈 개미인 등굽은꼬리치레개미(Crematogaster vagula)였다. 평상시에는 썩은 나무에 주로 살고, 겨울에 주로 바위 틈에서 발견되는 종이다. 이로써 네 가지 방법을 모두 이용해 겨울 개미를 찾는데 성공했다. 독자 여러분도 도전해 보시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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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7년 12월 과학동아 정보

  • 우아영 기자
  • 사진

    김인규
  • 기타

    [일러스트] 동아사이언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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