삐삐(무선호출기)나 카폰(차량전화) 보다 편리한 무선통신수단인 생활무전기가 이달부터 10만~13만원을 주면 시중에서 구할 수 있다.
'생활무전기'의 등장으로 무전기의 대중화 시대가 열렸다.
지금까지 일반 시민이 자유롭게 구입해 쓸 수 있었던 무전기는 학교 앞 문구점에서 파는 '장난감 워키토키' 뿐이었다. 그러나 장난감 워키토키는 통신거리가 최대 1백m 정도에 불과, 그야말로 어린아이들의 놀이기구에 지나지 않았다.
물론 장난감 무전기 말고도 정부의 허가를 받아 쓸 수 있는 본격적인 무전기가 없지는 않았다. 하지만 정부는 통신보안 불온통신 등 여러 가지 이유로 사업체 법인 경찰 정부기관 등이 꼭 필요로 하는 경우에만 무전기 허가신청을 받아 허가해 주었기 때문에 일반인들에게는 '그림의 떡'이었다.
그런데 지난 8월 체신부가 일반인들이 허가나 신고없이 손쉽게 구입해 쓸 수 있는 무전기를 '생활무전기'란 이름으로 개방함에 따라 10월말부터 이들 무전기가 쏟아져 나오게된 것이다.
체신부가 정한 이 무전기의 출력은 0.5와트(W)로, 이 정도의 출력이라면 도심과 산간지역에서는 약 1.5km, 평지에서는 2.5km 떨어져 있는 상대방과 교신이 가능하다.
따라서 생활무전기는 △공사장 사업장 작업지시용 △각종 중소규모 배달업무용 △차량행렬간 상호연락용 △건물관리용 △선단을 구성한 선박간 통신용 △과수원 목장 등 농어촌용 △경기장 운동회 등 스포츠용 △등산 낚시 등 레저용 △집 안팎에서의 통화용 등 다양한 용도로 폭넓게 사용될 전망이다.
40개 채널 허용
중국음식점 배달원들은 얼마뒤면 무전기를 들고 배달을 나가 주인과 통화를 하면서 수금할 집이 어느 집인지를 묻게 될 것이다.
또 여러 명이 등산을 갔을 때도 앞에 가는 사람과 맨 뒷 사람이 무전기를 들고 있다면 길을 잃고 동료를 찾아 헤매는 일이 없어질 것이다.
시판될 생활무전기에는 26.965~27.405 메가 헤르츠(MHz) 사이에 약 0.01메가 헤르츠 간격으로 모두 40개의 채널이 있다.
따라서 이용자들은 교신할 상대방과 미리 채널을 맞추어 놓아야 버튼을 눌렀을 때 상대방이 호출된다. 또 혼신에 대비해 제2, 제3의 채널을 약속해 놓아야 확실한 교신을 보장받을 수 있다.
다만 9번채널(27.065 MHz)는 비상통신용으로, 19번 채널(27.185MHz)은 특수업무용으로 배정돼 특별한 경우 외에는 사용할 수 없게 된다.
비상통신용 채널은 이용자가 사고를 당했을 때 근처의 파출소나 병원 소방서 순찰차 등에 긴급히 연락하는 용도로만 쓸 수 인으며, 특수업무용 채널은 기상 및 교통안내 등을 위한 것으로 체신부는 곧 2개 채널의 구체적인 활용방안을 마련할 계획이다.
생활무전기는 지난 59년 미국정부가 27메가 헤르츠의 주파수 대역을 일반인을 위한 무전교신용으로 개방해 시민무전기(citizen band wireless) 생산을 허용한데서 비롯돼 현재 미국 유럽 일본 등지에서 다목적 통신수단으로 폭넓게 이용되고 있다.
특히 미국과 유럽에서는 최대 출력 5W(통신거리 16km)의 차량용 시민무전기도 나와 있어 차가 고장났을 때 또는 교통사고시 인근 순찰 차량을 부르는 용도로 가장 많이 이용되고 있다. 또한 교통경찰이 나타났을 때 차량들끼리 서로 연락, 딱지 떼이는 것을 방지하기 위한 목적으로도 널리 이용되고 있어 미국 경찰이 골치를 썩고 있기도 하다.
우리나라에서는 맥슨전자 승룡전자 등 7개 무전기제조업체들이 88년 한해 동안 2백98만대 총8천2백만 달러의 시민무전기를 수출, 대만과 함께 세계시장을 반분하고 있다.
이번에 이 시민무전기가 '생활무전기'란 이름으로 국내에서 시판되게 된 것도 이들 업체의 강력한 내수시장 개방 요구가 있었기 때문이며, 최근 미국의 통신시장 개방압력도 무전기 시판 허용의 요인으로 작용했다.
생활무전기를 가장 먼저 선보인 업체는 맥슨전자로, 체신부의 형식 검정이 끝나는 10월말부터 10만~13만원의 가격에 시판하고 있다.
또한 삼성과 금성이 국내 무전기 제조 중소업체인 영태전자 및 승룡전자와 OEM(주문자상표제품) 계약을 맺고 11월 중순께 생활무전기를 시판할 예정이고 현대와 대우도 대만산 무전기 수입을 추진중이어서 벌써부터 대기업간 시장 쟁탈전이 뜨겁게 불붙고 있다.
통신보안이 안된다
체신부는 생활무전기의 이용을 자유화하는 대신 전파이용질서를 유지하고 사회혼란을 일으키는 통신을 예방하기 위해 '이용자 준수 사항'을 만들어 이를 어길 경우 최고 3년 이하의 징역에 처하기로 했다.
이 준수사항은 △국가안보에 위해를 줄 수 있는 통화 △음란허위통신 △정부를 폭력으로 파괴할 것을 주장하는 등 사회질서교란 목적의 통신을 금지하는 한편 무전기 호출시 자신의 이름과 주민등록지를 반드시 먼저 밝히도록 했다.
또 여러사람이 골고루 이용할 수 있도록 1회 통신시간을 3분으로 제한하고 통신을 마친 뒤 1분 안에 같은 상대방과 교신할 수 없게 하는 한편 출력을 높이기 위해 무전기를 개조하지 못하도록 했다.
이와 함께 생활무전기 제조업자 또는 수입업자는 판매자로 하여금 무전기 판매시 구입자의 인적사항과 무전기 일련번호를 기록하고 조사관의 요청시 자료를 제출토록 했다. 이같은 까다로운 준수사항은 생활무전기가 자칫 대학생 시위대간의 교신 또는 범죄목적으로 이용되는 등 부작용을 막기 위한 조치로 풀이된다.
무전기는 이동중에도 통신을 할 수 있고 전화와 달리 동시에 2명 이상과도 교신할 수 있다는 것이 큰 장점이다. 그러나 무전기의 큰 단점은 통신보안이 지켜지지 않는다는 점이다.
생활무전기도 채널만 맞춰 놓으면 얼마든지 다른 사람들이 통화하는 내용을 엿들을 수 있으므로 문제가 될 만한 중요한 대화는 무전기를 통해서는 나누지 않는 것이 바람직하다.
1894년 마르코니에 의해 발명된 무선통신은 그로부터 18년 후 타이타닉호 침몰 때 무선구조 요청으로 7백여명이 구조됨으로써 그 가치가 입증됐다. 생활무전기도 앞으로 일상생활에 필수적인 통신수단으로 자리잡을 전망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