d라이브러리









너무 먹어도 탈, 너무 안먹어도 탈

음식의 수난 단식·거식·걸식

신경성 식욕부진증과 게걸증은 국내에서 흔한 병은 아니지만 「말라깽이」 전성시대가 펼쳐짐에 따라…

"식이이상(食餌異常, eating disorder)에는 두가지가 있습니다. 하나는 아예 먹지 않는 식욕부진증이고 다른 하나는 너무 먹는 걸식증이지요. 물론 이 둘 다 흔한 질병은 아니지만, 우리에게도 이제 '강 건너 불'만은 아닙니다."

서울의대 조수철교수(정신과) 말처럼 이 두 식사관련질환은 아직 국내에서 빈번하게 발생하지는 않지만 서서히 그 '폭발력'을 축적하고 있다.

마른 여성이 잘 걸려

"신경성 식욕부진증은 주로 사춘기 소녀나 젊은 여성의 병이지요. 병명이 식욕부진증이라 마치 입맛이 없는 것처럼 들리지만 실제로는 먹고 싶어도 참는 것입니다."

서울의대 홍강의교수(정신과)는 거식증(拒食症)을 이렇게 설명했다.

70년대의 인기 팝가수 카렌 카펜터를 죽음으로 몰고간 병으로 더 유명해진 거식증에 왜 걸리게 되는 걸까.

거식증환자들의 '식사보이콧'은 살이 찌는 것을 두려워하기 때문에 나타나는 증세다. 적어도 표면적인 이유는 '날씬한 몸매를 유지하기 위해서'인 것이다. 그러나 심층적으로 파고 들면 또 다른 이유가 숨어 있다. 그들은 먹는 것과 성(性)에 대한 갈등을 심하게 겪고 있는 것이다.

'뚱뚱한 여자는 성적 매력이 없다'는 왜곡된 세태에 자극받은 일부 젊은 여성들은 자신의 체질도 무시한 채 무리한 식사제한을 해서라도 날씬해지고 싶어한다. 그 결과 뼈만 앙상한 볼품없는 몸매가 되어도 식사 거부를 멈추지 않는다. 이같은 무리한 '강행군'은 결국 환자를 소녀적 유아적 상태로 이끈다. 유방도 거의 발육하지 않게 되고 월경도 끊어져 버리고 만다. 상태가 이쯤에 이르면 성적 갈등은 사라지고 대신 먹는 것에 대한 갈등이 재발된다. 먹을 것인가, 안 먹을 것인가.

신경은 차츰 더 예민해지고 호르몬분비 등 대사기능에도 이상이 생긴다. 급기야는 굶어 죽는 일까지도 일어날 수 있다.

"체중이 40kg 전후인 마른 여성이 더 잘 걸립니다. 환자자신은 무척 살이 쪘다고 생각하기 때문이지요"라고 말한 조수철교수는 "이런 여성들에게는 내과적·정신과적 치료를 병행해야 합니다. 가볍게 생각하고 그냥 내버려두면 극히 위험한 지경에 빠질수도 있어요"라고 경고했다.

단식의 작용과 부작용

지난달 평민당의 김대중총재와 소속 국회의원들이 결행했던 단식(斷食)은 신경성식욕부진증으로 인한 거식과는 전혀 별개의 행동이지만 식사를 거부한다는 점만은 공통된다.

예전에는 단식이 자연요법중의 하나로 간주됐다. 최근에도 이를 임상에 적용하려는 시도가 일부에서 이뤄지고 있다. 몸안에 축적된 노폐물을 제거하고 인체의 자연치유력을 높여준다고 해서 '단식요법'이라는 용어가 등장했을 정도다. 특히 단기간에 체중을 삘 수 있는 체중감량법으로 '뚱보'들의 관심을 모으고 있다.

대체로 7~10일 단식하면 체중이 평균 10kg정도 빠지는 것으로 알려져 있다. 처음 1주간은 하루에 약 0.9kg씩 감소하나 그 후에는 감량속도가 줄어 들어 1~3주까지 1일 평균 0.3kg씩 체중이 준다.

경희대 한의대 정석희교수(물리요법과)는 단식의 요령을 다음과 같이 들려주었다.

"단식에 들어가기 전 이틀을 감식기 (減食期)로 잡아야 합니다. 감식기에는 현미 율무 등을 갈아 먹는데 첫날(8백60cal)보다 둘째날(2백60cal)에 더 감식을 해야 해요. 본격적으로 단식기에 들어서면 하루에 1천5백cc 이상의 생수를 마시고, 정장작용을 위한 감잎차와 위궤양을 방지하기 위한 한약재를 복용하는 게 좋아요. 또 하루에 4km이상 보행하고, 냉온욕을 함으로써 체력을 유지해 나가야 합니다."

단식이 신체에 무리를 주는 것은 확실하므로 단식기간중 몇몇 부작용이 나타나기도 한다. 어지러움증 전신무력감 구역질 두통 위산통 불면 가려움증 등을 일으키는 것이다. 그러나 회복식을 하기 시작하면 이런 증상은 대부분 사라진다.

단식은 반드시 전문의의 지도아래 실시해야 하는데 단식기간이 10일을 넘기는 것은 바람직하지 않다. 또 살찌는 것과 무관한 광물질 전해질 등은 반드시 공급해줘야 한다.

단식으로 체중을 줄이고자 하는 사람은 단식후를 더 신경써야 목적을 이룰 수 있다. 단식이 끝나기 만을 잔뜩 벼르고 있던 우리 몸의 소화 흡수기능이 단식 직후 섭취하는 영양소를 고스란히 '살'로 바꿔 놓기 때문이다. 따라서 단식 직후 갑자기 음식 섭취량을 늘려서는 곤란하다
.

단식을 체중감량법의 하나로 임상에 적용하려는 시도가 이뤄지고 있다.


「굶주린 소」가 되기도

'불리미아'(bulimia)라고 하면 아직 우리에게는 생소한 병이다. 그러나 흔히 걸식증 식탐증 게걸증 등으로 불리는 이 병은 곧 우리에게 낯설지 않은 병명으로 다가올 것으로 보인다. 점차 서양화되는 식생활 패턴과 식이요법의 보편화가 이 병의 국내 진출을 재촉하고 있기 때문이다.

앉은 자리에서 햄버거 세개와 애플파이 두개를 먹어 치운다면 그 사람은 어쩌면 걸식증의 초기단계에 놓여 있는지도 모른다. 이 걸식증은 서구에서도 비교적 최근에 알려진 것으로 그대로 방치하면 치명적일 수도 있는 두려운 병이다.

'굶주린 소'라는 그리스어에서 유래한 명칭인 '불리미아'에 걸린 사람의 식탐은 가위 상상을 초월한다. 그들은 어느 순간 음식의 유혹을 절대 뿌리치지 못한다. 때로는 구토를 하거가 완하제 또는 이뇨제를 다량 복용하기도 하는데 이런 행동은 다이어트를 실패했다는 좌절감과 그리고 자신과의 약속(음식섭취량을 줄이겠다는)을 어긴데 대한 죄의식이 발로다. 따라서 이 병은 대개 엄격한 다이어트를 하거나 단식을 하는 도중에 발병한다. 마치 무엇에 홀린 듯 갑자기 음식을 게걸스럽게 퍼붓는 것이다.

이같은 들쭉날쭉한 식사 그리고 심한 자기파괴적 행동에도 불구하고 걸식증환자들은 외견상 건강해 보인다. 체중도 정상이거나 정상에 가까운 상태를 유지한다.

그러나 그들은 늘 먹는 문제로 갈등을 겪고 있다. 특히 '말라깽이'가 되라는 사회적 요구(?)를 스스로 받아들이고 있기 때문에 뚱보가 되는 것을 끔찍하게 두려워 한다.

그래서 수시로 다이어트나 단식을 하기로 결심한다. 바로 그 결심이 깨지는 순간 그들은 1백80도 달라져 대단한 폭식가로 변하게 되는 것이다.

어떤 면에서 보면 아이러니컬하게도 신경성 식욕부진증환자와 비슷한 점이 많다. 적어도 뚱보가 되는 것을 몹시 두려워하고 자신의 체중을 억제하려는 강한 욕구를 갖는다는 점은 양자가 다를 바 없다. 이런 이유로 신경성 식욕부진증환자이면서 동시에 걸식증환자인 사람도 나온다.

그러나 굶다 죽을 정도로 '끈기있는' 식욕부진증환자들과는 달리 인내력에 한계가 있다. 걸식증환자에게는 자신의 체중을 25% 이상 줄일 때까지 굶으면서 버티는 의지력이 없다는 얘기다. 그들은 상대적으로 나이가 약간 더 든 편이고 외향적인 성격의 소유자일 가능성이 크다. 반면 신경성 식욕부진증환자의 대부분은 사춘기 소녀들이고 성격도 일반적으로 내향적이다.

이 걸식증이 최근에 알려지긴 했지만 완전히 새로운 현대병은 아니다. 그 역사는 고대 로마로까지 거슬러 올라간다. 풍요로운 삶을 만끽했던 고대 로마의 귀족들은 주연을 잘 열었다. 이 주연의 참가자들은 더 많은 음식을 먹기 위해 억지로 토하는 진풍경을 연출하곤 했다.

이 엉뚱한 폭식이 대학생 연령의 여성들에게 심각한 문제가 되고 있음을 알아낸 것은 1970년대 초반에 이르러서였다. 더욱이 미국의 정신의학회가 걸식증을 정신의학 교과서에 정신과적 증후군의 하나로 포함시킨 것은 80년대가 되어서였다.

걸식증환자의 대표적인 증상은 수시로 재발되는 폭식이다. 이 폭식기간에는 고칼로리 음식물만 골라서(?) 섭취하지만 본인은 이 사실을 전혀 의식하지 못한다. 과식으로 인한 복부의 통증 졸음 구토감이 있거나 또는 다른 사람이 알려줘야 비로소 자신이 지나치게 먹고 있음을 깨닫게 되는 것이다.

걸식증환자의 두번째 증상은 음식물을 자꾸 토해내고 완하제나 이뇨제를 복용하기 까지 하면서 끊임없이 체중을 줄이려고 안간힘을 쓰는 것이다. 셋째로 폭식과 단식을 반복, 체중이 단기간에 5kg이상 변하면 걸식증을 일단 의심해야 한다.

신경성 식욕부진증 환자들도 때때로 심한 걸식증세를 보인다. 이렇게 양다리를 걸친 사람들은 치료하기가 매우 어렵다.

한때는 직업병으로 인식돼

시카고의 마이클 리스병원 영양학자인 크레이그 존슨은 3백16명의 걸식증환자를 관찰했다. 그 결과 그들이 2시간 동안 섭취한 열량의 평균이 자그마치 4천8백cal나 됨을 알아냈다(범위는 1천~5만5천cal). 그 열량은 주로 달고 짭짤한 탄수화물성 음식물에서 나왔다.

걸식증은 한때 가냘픈 몸매를 유지하는데 관심이 큰 여자 운동선수 모델 배우에게 주로 발생하는 직업병의 하나로 간주됐다. 그러나 최근에는 살을 빼는 데 열중인 여고생이나 여대생이 잘 걸리는 병으로 인식되고 있다. 미국의 경우 놀랍게도 대학생 연령 여성의 5~20%가 이 걸식증세를 보이고 있다.

국내에서도 이미 걸식증환자가 발견되고 있다. 하지만 구토 완하제 이뇨제복용 등 '2단계'증세를 보이는 사람은 적은 편이다.

가톨릭의대 유태열교수(정신과)는 다음과 같이 현황을 소개한다.

"국내에도 '수입돼' 있다는 사실은 확실하지만 그에 대한 통계는 작성되지 않고 있습니다. 이 병이 잘못되면 젊은 여성을 죽음에 이르게 할 수도 있으므로 차츰 대책을 마련해둬야 합니다."

그렇다고 걸식증이 젊은 여성의 전유물은 아니다. 남성도 걸릴 수 있고 더 어리거나 나이든 여성에게도 간혹 나타난다. 특히 레슬링선수는 유독 잘 걸린다.

물론 걸식증환자의 주류는 20대 초반의 젊은 미혼여성이다. 평균 발병연령은 18세. 대개 대학교육을 받고 있는 중상류층 여성이 걸식증의 희생자다.

폭식의 빈도는 사람에 따라 그 범위가 매우 넓다. 1주일에 한번이 보통이나 심하게는 46번씩이나 폭식한 사람도 있었다. 폭식 그 자체도 문제지만 폭식후 죄의식 '사면'과정은 더 큰 건강장애요인이다. 체중을 다시 원상태로 되돌리기 위해 이뇨제나 완하제를 복용하거나 일부러 구토를 하는 행위가 건강에 큰 무리를 주는 것은 뻔한 길이다.

폭식이 엄격한 다이어트를 한 뒤에 이뤄지는 것은 다소 의외가 아닐 수 없다. 이는 다이어트를 하는 사람들이 늘 '시소'를 타고 있음을 확실히 보여준다. 한 쪽에는 마음껏 먹고싶은 욕망, 다른 쪽에는 그 욕망과 싸우는 자제력이 배치돼 치열한 갈등을 겪고 있는 것이다.

최초 폭식의 직접적인 원인이 무엇이든간에 다이어트를 깨뜨린 사람은 거의가 심한 낭패감을 느끼고 자신의 의지력 부족을 크게 책망한다. 그래서 그들은 곧 죽을 힘을 다해 구토를 하고 완화제나 이뇨제복용을 결정하고 만다. 이를테면 자신이 아는 가장 간단한 체중조절기술을 써먹는 것이다.

폭식을 한번 하고 나면 처음에는 그 사실에 전율하게 되고 자포자기상태에 이르지만 얼마 있다가 재차 다이어트를 시작한다. 그러나 오래지 않아 다이어트계획은 다시 깨뜨려지고 걸식이 재발되는 악순환을 거듭하게 된다. 이렇게 폭식이 되풀이됨에도 불구하고 걸식증환자는 '지난 번의 폭식'이 '이번 폭식'에 어떤 영향도 미치지 않았다고 생각한다. 마침내 환자는 이 악순환을 멈출 수 있는 힘이 자신에게 없음을 깨닫게 된다.

스스로를 아주 심하게 절제하는 사람도 어떤 계기로 자아지배력을 상실하면 오히려 아주 쉽게 폭식을 하는 경향이 있다. 대개는 감정적 혼란이 자아실종의 계기가 된다. 예를 들어 우울, 고독, 성적장애, 사랑하는 사람과의 사별 또는 이별, 극심한 굶주림 등으로 인해 감정의 격변을 일으킬 때 그 보상심리로 폭식을 하게 되는 것이다.

걸식증환자는 완벽주의자

대부분의 걸식증환자는 직업 학교생활 아르바이트를 그럭저럭 지속해 나간다. 그러나 증세가 점차 심해지면 스스로를 주변으로부터 고립시키고 정상적인 활동을 포기하기 시작한다. 이런 행동은 그의 걸식증세가 깊어졌음을 보여주는 강력한 증거가 된다.

미국 코넬대학의 심리학자인 보스킨드 화이트는 신경성 식욕부진증, 걸식증 모두 사회적 압박이 결정적인 발병인자라고 믿고 있다. 다시 말해 어떻게 해서라도 날씬해야 한다는 사회적 통념이 두 신종 정신질환을 등록시켰다는 것이다. 실제로 국내외를 막론하고 '가냘픔'이 여성미의 첫째 조건으로 꼽히고 있다. 각종 미인대회의 심사기준도 그 조건에서 크게 벗어나지 않는다.

이렇게 마른 사람을 선호하는 풍조가 여성들의 체격표준을 '비정상적으로' 창출해 내고 그 결과 다이어트 약물복용 에어로빅댄스 제인폰다체조 등 다양한 체중조절법이 등장하기에 이르렀다. 따지고 보면 거식증 걸식증환자도 이런 사회적 압력의 희생자라는 것이 화이트씨의 주장이다. 심지어 어떤 의사들은 대부분의 거식·걸식증환자가 완벽주의자라는 평가도 주저하지 않는다. 실제로 많은 환자들은 날씬해지기만 한다면 모든 것이 잘될 것이라는 신념을 갖고 있다.

미국 펜실베이니어대학 행동의학센터 마이클 퍼트스척박사는 이 여성들은 세상을 흑과 백의 관계로 보고, 만약 자신들이 완전하지 않으면 그것을 악으로 간주한다고 말했다.

우울 또한 걸식증의 원인이 될 수 있다. 그리고 약물중독 알코올중독에 빠진 사람도 걸식증에 쉽게 걸린다. 그런가 하면 뇌의 이상도 걸식증과 무관하지 않다.

이번에는 걸식증세로 인해 우리 몸이 어떻게 파괴돼 가는지 알아보자. 구토와 이뇨제 및 완하제 과다복용은 탈수(脫水)현상을 일으켜 체내 전해질의 평행을 심하게 깨뜨리게 된다. 아울러 몸안의 혈청 칼륨(K)농도를 낮춰버린다. 알다시피 칼륨은 정상적인 세포기능을 수행하는데 필수불가결한 성분이다. 따라서 이 원소의 농도가 저하되면 우울, 짜증, 근육의 경직, 요로(尿路)감염, 피로, 극도의 근육쇠약 등이 일어난다. 또 심장과 신장에도 막대한 타격을 입힌다. 실제로 구토로 인한 심장의 손상으로 환자가 사망한 사례도 있다.

완화제의 남용은 만성변비를 부른다. 내장이 그 고유의 기능을 상실하기 때문이다. 뿐만 아니라 직장의 출혈과 영양소(필수지방소 단백질 등)의 부적절한 흡수를 초래한다.

그밖에도 걸식증은 간의 손상, 위의 파열, 궤양 등을 유도하기도 한다. 여성의 경우 월경이 멈추기도 한다.

거식증과 걸식증의 치료법으로 현재 다섯 가지 요법이 쓰이고 있다. 열거하면 영양학적 카운셀링, 행동치료, 인지치료, 정신의학적치료, 그룹치료, 약물치료 등을 활용하고 있는데 그중 '억지로 먹이거나' '숟가락을 뺏는' 행동치료가 대표적이다.

이 기사의 내용이 궁금하신가요?

기사 전문을 보시려면500(500원)이 필요합니다.

1990년 11월 과학동아 정보

  • 박태균 기자

🎓️ 진로 추천

  • 심리학
  • 의학
  • 사회학
이 기사를 읽은 분이 본
다른 인기기사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