폐수처리공사가 끝나면 현재의 30종에서 50종으로까지는 물고기가 늘 수 있을 것이다
80종까지 달했던 '서울의 한강'물고기
1454년에 발간된 것으로 알려진 '세종실록지리지' 토산부(世宗実録地理誌 土産部)에 다음과 같은 구절이 나온다
"'每冬月極寒産白魚甚美最先上供楊花渡下主産'(매년 겨울 몹시 추울 때 뱅어가 산출된다. 대단히 아름다워, 가장 먼저 임금님에게 바친다. 주로 양화도 아래에서 산출된다).
양화도(楊花渡)는 현재의 양화대교가 놓인 자리로서 다리가 구축되기 전에는 그곳에서 마포쪽으로 배가 내왕했었다.
여기에 나오는 뱅어는 그 산출 시기로 보아 '붕퉁뱅어'였을 것이다. 1960년대까지도 마포 앞강에서 겨울에 어부들이 붕퉁뱅어를 잡았었다. 이런 사실을 알고 있는 사람은 서울시민 중에 적지 않다.
또 같은 세종실록에는 경기도 광주(廣卅)에서 은어가 나온다는 사실도 지적하고 있다. 이것은 어린 은어가 바다에서 올라와 서울을 통과했었음을 뜻하는 것이다.
이행(李荇)등 30여명이 1530년에 편찬했다는 '신증동국여지승람'(新増東國輿地勝覽)과 서명응(徐命應)이 1710∼1787년 사이에펴냈다고 전해지는 '고사신서'(故事新書) 등에도 광주에서 은어가 산출된다는 사실을 보고하고 있다.
한국통감부 농상공부 수산국이 수산국이 1908∼1911년 사이에 펴낸 '한국수산지'(韓國水産誌) 제4집에는 용산과 마포에서 쏘가리가 산출된다는 사실을 보고하고 있다.
이들 고문헌을 통해서 알 수 있는 것은 오늘날에 비하면 예전의 한강은 물이 맑고 물고기의 종류와 수가 많았다는 사실이다.
1400년대에서 1850년에 걸쳐서 우리의 조상들이 한강의 어류중, 기록을 남겨 관심을 표시한 종은 30종에 달한다.
또 1862년부터 1945년에 이르는 사이에 외국인들의 손으로 밝혀진 서울의 한강산 어류는 23종이다. 그러나 그중 버들매치와 다비라납지리는 인정할 수 없이 결국 21종이 된다. 1945년 이후, 오늘에 이르기까지 우리의 손으로 추가할 수 있었던 종은 21종이다. 결국 강동구 암사동에서 행주대교에 이르는 서울의 한강에서 산출된 것으로 밝혀진 종은 72종에 달한다. 그리고 서울에 나타났을 가능성이 있는 종까지 합하면 80종에 달하게 된다.
1988년까지 한강개발안이 최종 완성되어 서울의 한강물이 현재보다도 맑아진다면 이들 72종 내지 80종이 한종도 빠지지 않고 서울로 되돌아오게 되겠는가?
그동안의 빈약한 채집실적
1958년에 염창동에서 광장동에 이르는 사이를 조사한 기록이 있다. 이에 따르면 52종이 살고 있다는 것이 밝혀졌다, 그중 염창동에서는 25종, 광장동에서는 49종이 검출되었다. 염창동에서는 잉어와 붕어를 비롯하여 3급수에서 살 수 있는 종들이 풍부했고, 바다를 드나드는 싱어 웅어 붕퉁뱅어 뱀장어 농어 황복 등이 채집되어 그것들이 건재하다는 것을 보여주었다.
광장동에서는 새미 버들치 쉬리 피라미 줄납자루 각시붕어 납줄갱이 새코미꾸리 종개 꺽지 쏘가리 등이 채집되어 2급수가 흐르고 있었다는 것을 입증해주었다.
필자 등은 1967년 10월부터 1968년 3월 사이에 같은 광장동에서 담수어 채집을 실시하여 24종을 검출할 수 있었다. 그중에는 다묵장어 참마자 피라미 강준치 납지리 종개 쏘가리 밀어 등 2급수의 대표적인 어종들이 건재하고 있었다.
그러나 필자 등이 1978년 3월부터 10월 이르는 사이에 염창동 앞강, 안양천의 오염된 물을 직접 받는 지점에서 채집한 결과는 6종밖에 얻지 못했다. 붕어 6, 끄리 5, 피라미 22, 살처 3, 메기 1, 동자개 1가 전부였다.
서울의 한강 36㎞가 모두 이렇게 황폐화했던 것은 물론 아니다. 염창동보다 하류는 오염이 더욱 심해서 물고기라곤 한마리도 살 수 없었지만, 상류쪽은 이보다는 악화되지 않았을 것이다.
같은 시기에 염창동의 북쪽 난지도(蘭芝島)에 인접한 곳에서 조사한 결과는 앞의 것과 같지 않았다. 이곳은 안양천의 더러운 물이 직접 흘러 들어오지 않을 뿐 아니라 골재채취를 하기 위하여 구축된 둑으로 둘러싸인 호수 모양의 격리된 곳으로, 만조 때에만 표면수가 강물과 교류되는 곳이었다. 이곳에서는 17종이 채집되었다. 빙어 잉어 몰개 참마자 중고기 강준치 큰납지리 뱀장어 동사리 풀망둑 꺽정이의 11종은 앞의 지점에서는 채집하지 못한 종들이다. 그 당시 서울의 한강은 이보다 다양한 어종이 서식하고 있지는 못했을 것이다.
돌이켜 보면 한강의 역사는 어류에게는 수난의 역사였고 1977∼78년부터 81∼82년까지가 고비였다고 여겨진다.
먼 옛날의 한강생태계
1만년 전의 한강을 상상해본다. 그때는 황해(黃海)의 출현으로 한강은 이미 독립된 하나의 하천이었을 것이다. 그 당시의 한강유역은 산지나 평지나 할 것 없이 원시림으로 덮였었을 것이고, 새나 짐승이나 곤충 등은 오늘에 비하면 양적으로나 질적으로나 훨씬 풍부했을 것이다.
그때는 농경생활이 시작되기 이전이었으므로 논도 밭도 없었고, 조림(造林) 이나 목축도 시작되지 않았으며 농촌이나 도시도 형성되지 않았었다. 공장건설이나 광산개발도 시작되지 않아 대기 수질 및 토양 오염을 일으킬 요인도 거의 존재하지 않았다.
인간은 자연생태계의 일원으로 과일과 식물의 종자를 식량으로 했고 사냥을 했으며, 석기(石器)를 유일한 생활도구로 했을 뿐이다. 인구는 희박해서 자연생태계, 특히 한강생태계에 큰 영향을 끼쳤을 것이라고 생각할 수는 없다.
그 당시는 대형댐이나 저수지, 보 등은 구축되지 않았을 것이므로 한강은 대체로 원형을 유지할 수 있었을 것이다.
한강유역의 토양층은 오늘의 그것에 비하면 훨씬 두꺼웠고 비옥했을 것이므로 보수력(保水力)이 커서 가뭄과 홍수의 피해는 크지 않았을 것이다. 물은 현재보다 한결 맑고 깨끗해서 상류에서 하류에 이르기까지 1,2급수가 흐르고 있었고, 3급수도 많지 않았을 것이다. 수온은 현재에 비하면 여름에는 낮았고 겨울에는 높았을 것이다.
상류에서 하류에 이르기까지 버들치가 우세한 구역, 갈겨니가 풍부한 구역, 피라미가 우세한 구역, 붕어가 풍부한 구역이 순서를 어기지 않고 배열되었을 것이다. 버들치구역과 갈겨니구역은 현재의 그것들보다 넓었을 것이고 피라미구역과 붕어구역은 오늘보다 좁았을 것이다. 서울의 한강은 그 당시도 피라미구역이 대부분이었고, 위와 아래에 빈약한 갈겨니구역과 붕어구역이 불었을 것으로 추리된다.
한강개발과 어류생태계의 문제점
한강유역에서 우리 조상들의 농경생활이 시작되면서부터 오늘에 이르기까지 서울의 한강산 담수어는 줄곧 쇠퇴일로를 걸어왔다. 그러나 이제는 한숨을 돌릴 때가 온 것이다.
한강이 맑아졌다는 말이 1983년 가을부터 서울시민들 입에 오르내리게 되었다. 한강개발계획을 실시하는 과정에서 오염물질을 방출하는 많은 공장들이 이전되었고 강바닥에 퇴적된 부패물을 제거한 까닭이다.
그것을 입증이라도 하듯이 1984년 4월부터 8월에 이르는 사이에 구의수원지, 뚝섬, 동작대교밑, 성산대교밑에서 채집을 했고, 86년 6월에는 밤섬일대에서 조사를 실시했는데 그 결과 전기한 17종 외에 14종이 검출되었다. 그 중 새미 퉁가리 쏘가리 꺽지 등이 광장동에서 뚝섬에 걸쳐서 나타났다는 것은 특히 주목된다.
78년에 난지도 인접지에서 채집된 빙어나 이들 2급수에 사는 어종들이 일시적인 침입종이라고 보더라도 현재 서울의 한강에는 25종 내외의 어종이 살고 있는 것은 분명하다.
만일 88년까지 안양천을 비롯하여 서울의 한강으로 흘러오는 여러 지천(支川)들의 폐수를 처리하는 공사가 끝나서 암사동에서 양화대교 사이의 물이 2급수로 그 이하 행주대교와의 사이의 물이 3급수로 승격된다면 가까운 장래에 50종 내외까지 복구되리라고 본다.
일단 파괴된 생태계가 완전히 회복하는데는 수백년 수천년 걸리는 것이 통례이다. 따라서 한강개발계획이 완성되었다고 해서 당장에 70종 이상이 되돌아올 것을 기대할 수는 없다. 더구나 한강의 어류상을 예전의 상태로 되돌아갈 수 없게 하는 몇가지 요인이 있다.
첫째는 팔당댐에 어도(魚道)가 설치되어 있지 않다는 것이다. 이때문에 한강의 어류와 댐의 위와 아래를 자유롭게 내왕할 수 없다. 그뿐 아니라 댐에서 수시로 방출하는 물의 양이 많은 까닭에 한강의 수위변동이 심하여 어류번식을 저해하고 있다.
둘째, 잠실대교밑과 행주대교의 하류쪽 4㎞ 떨어진 곳에 수중보(水中洑)를 막아 수위를 일정하게 유지시키려 하면 필연적으로 한강은 호소화(湖沼化) 된다. 이때문에 한강의 어류도 호소성의 것들이 우세해지고 하천성 어류가 쇠퇴된다. 그뿐 아니라 조수를 따라 나타났던 싱어 웅어 뱅어무리 황복 등은 나타나지 않을 가능성이 있다.
셋째, 제방구축, 하상(河床)정리, 유로(流路)변경 등 한강 개수로 저질(底質), 수심, 유속 등이 옛모습과는 크게 달라진다. 따라서 어류상은 단순화될 수밖에 없다.
네째 한강개발계획이 완성된 후까지도 골재채취를 계속하면 한강생태계는 생산자를 잃게 되어 유지하기가 곤란하게 될 것이다.
다섯째 서울의 한강 36㎞가 정화되더라도 임진강과의 사이에 어류의 내왕이 불편하거나 불가능할 정도로 오염물이 남는다면 잃었던 어족자원을 어디에서 보충하겠는가.
여섯째 이들 조건들이 모드 개선된다고 하더라도 종어 칼상어 어름치 등 7∼8종이 돌아올 가능성은 없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