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살찌지 않는 건강식 문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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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느새 3월이다. 초목의 싹이 돋고, 겨울잠에서 깨어난 벌레들이 하나둘 기어 나온다는 경칩이 눈앞이다. 과연 양지바른 곳을 내다보니 파릇한 기운이 느껴지고, 어디선가 곤충의 날갯짓 소리가 들려오는 듯하다. 만물이 생동하는 새봄을 맞아 맛있는 문어 요리를 즐기며 겨우내 까칠해진 입맛을 되찾아보는 것은 어떨까.

문어는 오징어와 달리 날로 먹는 경우가 드물다. 살짝 데치거나 익혀서 초고추장에 찍어 먹는 것이 보통인데, 달콤한 고깃살과 쫄깃하게 씹히는 맛이 일품이다. 술꾼에게는 문어포도 오징어포만큼이나 인기 있는 안주거리다. 잘 말린 문어포를 불에 구워 먹으면 오징어와는 또 다른 맛을 느낄 수 있다. 또 명절을 앞둔 어시장에서 가장 많이 거래되는 것 중의 하나가 바로 문어다. 통으로 삶은 문어나 말린 문어를 여러 가지 모양으로 오려서 만든 문어오림은 크고 작은 예식상의 필수품이다.

이 밖에도 문어는 조림, 무침, 볶음, 죽처럼 다양한 방식으로 조리돼 특유의 맛을 선사한다. 문어는 각종 성인병을 예방하고 시력 개선이나 피로 회복에 좋은 타우린을 다량으로 함유하고 있다. 단백질의 함량이 높고 열량이 낮아 살찌지 않는 건강식으로도 인기가 높다.

문어는 지역에 따라 참문어, 대문어, 물문어, 피문어, 수문어, 왜문어 등 다양한 이름으로 불린다. 그러나 이 이름들이 각각 하나씩의 종을 뜻하는 것은 아니다. 우리가 시장에서 만나볼 수 있는 문어는 대문어(Enteroctopus dofleini )와 참문어(Octopus vulgaris) 둘 중의 하나라고 보면 틀림없다.동해안에서 주로 나는 것은 대문어다. 이름처럼 매우 큰 몸집을 하고 있어 웬만하면 10kg을 넘어가며, 가장 큰 것은 30kg에 길이가 3m에 이른다. 수명도 8년 정도로 긴 편이다. 대문어는 살이 연해서 물문어나 수문어라고 불리기도 한다.

일본의 대표적인 간식 요리 타코야키는 밀가루 반죽에 잘게 썬 문어를 넣고 국화빵이나 붕어빵처럼 구워낸다. 이렇게 문어는 일반적으로 날로 먹기보다 데치거나 익혀서 먹는다.

대문어와 달리 참문어의 주산지는 수온이 높은 남해안이다. 참문어는 몸 크기가 0.6cm 안팎으로(최대 1.3m) 대문어에 비해 작은 편이며, 수명도 2년 정도에 불과하다. 왜문어라는 별칭도 여기에서 유래했다. 참문어는 대문어에 비해 몸이 비교적 단단하며, 색깔이 붉다고 해서 피문어로도 불린다.

갑옷을 벗어 던진 연체동물

문어는 연체동물이지만 친척인 조개나 고둥과는 전혀 다른 모습을 하고 있다. 단단한 껍데기가 없고, 눈이 잘 발달해 있으며, 빨판이 달린 8개의 다리로 활발하게 움직이는 것이 어딜 봐도 비슷한 구석이 없다. 이 수수께끼를 풀기 위해서는 진화의 역사를 들여다봐야 한다. 5억 년 전쯤에 살았던 문어의 조상은 원래 딱딱한 껍질로 싸여 있었고 동작도 느렸다. 그러나 등뼈를 가진 재빠른 물고기들이 출현하면서 문어나 오징어 같은 일부 연체동물들은 새로운 적과 경쟁하기 위해 두꺼운 방어용 갑옷을 벗어 던지게 됐다. 몸이 가벼워지고 빨리 움직일 수 있게 된 것은 좋았지만 무방비상태로 노출된 연약한 몸이 문제였다.

문어는 이를 보완하기 위해 동물세계에서 가장 뛰어난 위장술을 개발했다. 문어는 그야말로 순식간에 몸의 색깔을 바꿀 수 있다. 피부에 퍼져 있는 색소주머니를 신경자극을 통해 수축, 이완함으로써 몸 색깔을 변화시켜 순식간에 천적의 시야에서 사라져 버린다. 천적의 입장에서는 말랑말랑하게 입맛 당기는 먹이가 갑자기 모래나 바위, 산호초로 변해 버렸으니 당황할 수밖에. 호주의 ‘흉내 문어(mimic octopus)’는 문어 중에서도 변신술의 달인이다. 자세와 피부색을 바꿔 넙치나 새우, 바다뱀, 가오리, 불가사리, 큰게 같은 다른 동물의 모습으로 변신해 천적을 피하고 먹이를 사냥한다.

문어는 뛰어난 시력으로 천적이나 먹이의 출현을 사전에 감지하며, 예기치 못한 상황이 닥치면 오징어처럼 먹물을 뿜어 위기를 모면하기도 한다.

그러나 문어의 가장 뛰어난 무기는 역시 근육질의 다리다. 문어는 8개의 다리를 차례로 내뻗으면서 물 밑바닥을 빠른 속도로 걸어다닌다. 다리에는 빨판이 2줄로 늘어서 있는데, 문어는 이 빨판을 이용해 주위를 탐색하고 먹이를 사냥한다. 1000개에 이르는 빨판은 정교하게 움직이며 게나 조개 따위를 찾아내 잡는다. 빨판은 힘이 매우 강력해서 사람 피부에 붙었다 떼어내면 빨갛게 자국이 남을 정도다.


밤바다 최고 사냥꾼의 희생적인 자식 사랑

문어는 야행성이므로 낮에는 바위의 구멍 등에 숨어있다가 밤이 되면 활발하게 움직인다. 문어가 활동을시작하면 밤바다에는 공포의 기운이 감돈다. 문어는 잔혹한 ‘사냥의 명수’이기 때문이다. 문어는 게, 새우, 소라, 조개처럼 먹을 수 있는 것이면 무엇이든 가리지 않고 잡아먹는다. 일단 먹이를 발견하면 미끄러지듯 빠르게 이동해 다리로 감싼 뒤, 다리 중심부에 있는 입으로 가져온다. 그리고 먹이에 신경을 마비시키는 독소를 주입하고 살점을 녹이는 효소를 뿜어낸다.

어부들이 말하는 문어가 전복을 사냥하는 장면은 놀랍기까지 하다. 문어는 바위 표면에 강하게 달라붙어 있는 전복을 잡아먹기 위해 전복껍질에 나 있는 호흡공을 막아 버린다고 한다. 전복을 질식시켜 바위에서 떨어지게 한 뒤 알맹이만 빼먹는다는 것이다.

문어는 게걸스럽게 먹어대며 빠르게 성장해 몇 주 또는 몇 달 만에 성체가 된다. 그러나 수명이 짧아 2~3년을 넘기지 못하고 번식도 단 한 번의 기회밖에 갖지 못한다. 그래서 문어의 짝짓기는 치열하다. 한창 교미 중인 문어는 이리저리 몸을 뒤틀고 붉으락푸르락 몸 색깔을 변화시키며 전쟁 같은 사랑을 나눈다.

문어의 교미에는 다리가 중요한 역할을 한다. 문어는 오징어에 비해 2개가 적은 8개의 다리가 있다. 다리가 6개나 7개밖에 없는 개체가 발견되기도 하지만 이는 비정상적인 것이다. 곰치 같은 물고기에게 뜯어 먹혔거나 스트레스를 받으면 스스로 다리를 뜯어먹는 습성 때문에 다리가 떨어져나간 것이다. 그런데 문어의 수놈은 8개의 다리 중에서 다른 7개의 다리보다 짧은 다리를 하나 가지고 있다. 이 다리를 생식팔 혹은 교접팔이라고 한다. 생식팔은 수놈의 생식기 역할을 하는데, 다른 팔보다 가늘고 끝부분에 빨판이 없다.

수놈은 생식팔을 사용해 외투막 속의 정자를 담고 있는 긴 통(정협)을 꺼내 암놈의 외투막 속에 집어넣는다. 암컷 몸속에서 정협이 녹으면서 정자를 내보내면 수정이 일어난다.

짝짓기가 끝나면 수컷의 임무는 끝이다. 아무것도 먹지 않고 급속히 쇠약해져 죽고 만다. 혼자 남은 암놈은 바위 밑에 길고 끈끈한 수만 개의 알을 낳아 붙여놓고 그 자리에 머물면서 알을 지킨다. 알을 노리고 몰려드는 적들을 쫓아내고, 쉴 새 없이 부채질을 해 알에 신선한 산소를 공급한다. 정성을 다해 알을 보호하던 암놈은 새끼가 부화할 때쯤이면 힘을 잃고 죽어간다. 오늘날 문어가 이토록 번성하게 된 이면에는 지극한 자식사랑이 있었던 것이다. 기껏 소개해 놓고 괜스레 문어 먹기가 미안해진다.


 
문어대가리의 비밀

“배와 장이 머리 속에 있고, 눈은 목 부분에 있다.”

‘현산어보(자산어보)’에서 정약전이 문어의 형태를 묘사한 부분이다. 우리는 200년이 지난 지금도 정약전이 했던 실수를 되풀이하곤 한다. 우리가 흔히 문어대가리라고 부르는 부분은 사실 머리가 아니라 몸통이다. 따라서 창자가 머리 속에 있다는 것은 창자가 몸통 속에 있다는 말로 바뀌어야 한다. 문어의 몸통 아래쪽으로는 다리가 나 있으며, 몸통과 다리의 연결부에는 눈과 뇌 같은 중요한 기관이 모여 있다. 문어의 눈은 척추동물의 눈에 필적할 정도로 정교하고 뛰어난 기능을 갖고 있으며, 눈과 나란히 자리 잡은 뇌도 높은 지능을 자랑한다.

과학자들은 문어의 지능이 무척추동물 중에서 가장뛰어나다고 말하며, 심지어 개의 지능에 맞먹는다고까지 주장하는 이들도 있다. 실제로 문어는 미로학습에서 우수한 능력을 보이고, 병뚜껑을 돌려 따는 재주를 가진 놈들도 있다. 무엇보다 놀라운 점은 문어가 고등한 동물에게서 볼 수 있는 특징인 놀이행동을 보인다는 사실이다. 놀이행동이란 수면이나 포식, 생식처럼 생존을 위한 활동 외에 행하는, 얼핏 봐 무가치해 보이는 활동을 말한다. 실제로 사육 중인 문어가 물결이 찰랑이는 수조에서 빈 병을 물의 흐름에 거스르게 던져놓고 그 떠다니는 모습을 지켜보는 행동을 반복했다는 보고가 있다. 이처럼 뛰어난 문어의 지능은 다른 생물들과의 경쟁에서 살아남기 위한 중요한 수단이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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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0년 03월 과학동아 정보

  • 이태원 서울세화고 생물 교사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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