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과 독일의 제약회사가 치열하게 경쟁하는 배경에는 막대한 시장성과 신비한 효능이 있기 때문이다.
은행나무잎을 둘러싼 한독(韓獨)간의 경쟁은 실로 치열하다. 한국대표 동방제약과 독일대표 슈바베제약회사가 죽기 살기로 이전투구를 벌이고 있는 것이다. 여기에 최근 선경이 뛰어들어 그 싸움판은 더욱 점입가경이다.
세차례에 걸친 특허권 쟁탈전은 동방측이 승리를 거둬 일단 기선은 제압한 셈이다. 승자와 패자가 확실히 가려지는 이 '과학재판'은 슈바베사의 자충수로 동방의 손이 올라갔지만 곧이어 통상싸움으로 비화됐다. 여기서도 통상법 301조의 특례조항(은행잎은 전면개방에서 제외시킨다) 덕택으로 동방이 슈바베를 일단 압도하고 있다.
'제2의 아스피린'이라고도 불리는 은행잎의 엄청난 이권을 앞에 놓고 벌어지는 경쟁의 여파는 엉뚱하게도 북한에까지 미쳤다. 독일측이 한국에서 은행잎을 확보하기가 어렵게 되자 북한에 눈을 돌린 것이다. 그 결과 현재 개성 등지에는 3년전부터 재배단지가 형성되고 있다고 한다.
생산수율이 높아
은행나무는 2억년 전부터 지구상에 존재하고 있다. 현재까지 생존하고 있는 식물중 가장 '연장자'인 이 나무는 '종의 기원'으로 유명한 생물학자 다윈으로부터 '살아 있는 화석'이라는 별명을 얻었다. 이 나무의 원산지는 극동아시아인데 다년생 관목으로 발생학상 침엽수와 비슷하다.
자웅이종(남성과 여성으로 구별되는)인이 은행나무는 공해에 잘 견딜 뿐더러 병충해에 강한 면을 보인다. 그래서 가로수로 많이 활용돼 왔고 이 나무 주변에는 벌레가 없다는 말이 생겼을 정도다.
국내에는 천연기념물로 지정된 장수거목이 전국에 12그루가 있다. 보호목으로 선정된 은행나무도 8백17그루나 된다. 특히 천연기념물 30호인 용문사 은행나무는 수령이 1천1백27년으로 이 부문에서 가위 세계 챔피언급이다. 이 나무에는 전설도 많이 남아 있다. 그중 신라의 마지막 왕인 경순왕의 세자였던 마의태자가 나라를 잃은 슬픔을 달래기 위해 금강산에 가면서 짚고 가던 지팡이를 꽂았는데 그 지팡이가 뿌리를 내려 오늘에 이르렀다는 전설이 널리 알려져 있다.
은행나무는 태풍이나 불에도 강한 면을 갖고 있다. 1788년 도쿄대화재가 났을 때 긴자(銀座)거리에는 유일하게 은행나무만 살아 남았다는 기록이 그 내화성(耐火性)을 입증한다. 또 유럽에서는 태풍에 강한 특성을 활용, 방풍림으로 이용하고 있다. 이런 '물불 안가리는' 성질 탓인지 일본에서는 '물을 뿜어내는 나무'로, 중국에서는 '불을 먹는 나무'로 통하고 있다.
실제로 은행나무는 어디 한 군데 버릴데가 없다. 나무의 몸체는 고급가구용 목재로 쓰인다. 소나무보다 가볍고 뒤틀리지 않으며 광택이 아름답기 때문이다. 또 은행 열매는 저장이 쉽고 맛이 좋아 고급 요리의 재료로 활용된다. 단백질, 식물성 지방, 무기질이 듬뿍 든 이 열매는 고급 영양식품으로도 그만이다. 한방에서도 귀하게 여긴다. 기침 가래 천식의 특효약으로 쓰일 뿐만 아니라 채종유에 1년 이상 담갔다가 폐결핵 환자에게 먹이기도 한다.
은행잎은 은행나무 중에서도 백미다. 더욱이 독일 프랑스를 중심으로 오래전부터 연구가 진행돼 그 신비가 상당부분 벗겨져 있다. 특히 현대생활에서 가장 문제가 되는 고혈압 뇌졸증 당뇨병 심장병 등 성인병을 근본적으로 치료해주고 있어 의학계의 이목을 집중시키고 있다. 게다가 부작용도 거의 없어 금상첨화가 아닐 수 없다. 현재 은행잎에서 추출한 의약품에 대한 연구논문만 2백여편을 헤아리며 전문과학자도 3백여명에 이르고 있다.
정제 드링크제 주사제 등 의약품 외에도 용처는 많다. 유럽에서는 비누 샴푸 화장품 등에도 은행잎에서 뽑은 성분을 활용하고 있다.
은행잎은 세계도처에서 구할 수 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독일기업이 한국의 은행잎만을 고집스럽게 수입하려고 하는 이유는 무엇일까.
첫째는 한국산 은행잎이 약리작용을 나타내는 '징코플라본 글리코사이드'란 성분을 가장 많이 추출할 수 있기 때문이다. 다시 말해 생산수율이 높다는 것. 다른 나라 은행잎보다 한국의 은행잎이 약이 되는 성분을 10~20배 더 함유하고 있다.
동방제약의 박화목 사장은 "우리도 전세계의 은행잎을 끌어 모아 그 성분을 조사해 보았습니다. 참으로 놀랍게도 다른 나라의 은행잎에서는 약리효과를 지닐 수 있는 화학조성을 발견할 수 없었어요. 우리와 유사한 분석을 독일의 제약회사는 훨씬 더 먼저 실시했을 것입니다. 세계 각지의 은행잎을 분석한 뒤 성분함량이 월등한 한국산 은행잎의 수입에 나섰던 거예요"라고 그 경위를 설명했다.
게다가 한국의 은행잎은 약리작용까지 뛰어난 것으로 밝혀지고 있다. 1천여종의 성분으로 구성된 은행잎의 약효물질 배합구조가 다른 나라의 것과는 크게 달랐다. 특히 피속의 노폐물을 녹여주고 이뇨작용을 도와주는 성분이 있어 피를 맑게 해준다고 한다.
한국산은행잎이 피를 깨끗하게 해준다는 연구결과는 옛날부터 한방에서 은행잎이 청혈제로 쓰였다는 사실과 일맥상통한다. 인간이 오래 살려면 피가 맑아야 하는데 현대 성인병의 대부분이 피와 관련된 순환기질환에 속하기 때문에 유럽에서 점점 인기를 더해가고 있는 것이다.
서울대 박만기교수(약학)는 "우리나라 은행잎에만 '아이소람네틴' 등 일부성분이 잘조화를 이뤄 외국에서 인기를 얻고 있습니다. 실제로 한국산 은행잎의 독특한 점은 학계에서도 인정하고 있어요"라고 '한국산 은행잎 예찬론'을 폈다.
인삼이 잘 되는 곳에서…
그렇다면 왜 하필 한국산만 그런 장점을 가질까. 대부분의 관련자들은 기후와 토질에서 그 이유를 찾고 있다. 일부 과학자들은 한국산 은행잎이 탁효를 갖는 까닭은 우리의 고려인삼이 한반도의 특정지역에서 재배했기 때문에 특별한 약효를 갖는 것과 같은 이치라고 결론 짓는다. 그러나 그 견해가 주먹구구식이라는 견해도 만만찮다. 좀 더 과학적이고 치밀한 원인진단을 할 때까지 '확진'은 유보해야 한다는 것.
아무튼 은행잎은 인삼과 공유하는 특성이 많다. 우선 재배지의 근접성을 들 수 있다. 다시 말해 인삼이 잘 되는 지역에서 따온 은행잎이 약효와 생산수율이 높은 것이다.
또 은행잎 자원의 보호도 국익차원에서 인삼처럼 철저하게 해야 한다는 주장도 나오고 있다. 업계에서는 은행잎을 6백만 달러 어치 수출하는 것 보다 이를 가공해 2억달러의 고부가가치를 창출해야 할 때라고 목소리를 높인다. 물론 그 반대의 의견도 함께 나왔다. 활용되지 못하는 은행잎이 많은데 국내제약회사가 서둘러 수출금지를 주장하는 것은 어불성설이라는 게 반대측의 입장이었다. 이 논쟁은 한동안 뜨겁게 번졌지만 동방이 생산라인을 확충하는 내년초쯤에는 가라 앉을 전망이다.
한국산 은행잎이라고 해서 모두 약효가 뛰어난 것은 아니다. 지역에 따라 현저한 차이를 보이는 것이다. 예를 들어 제주도나 거제도에서 따온 은행잎은 별볼일 없다. 이렇게 해안과 가까운 곳에서 채취한 은행잎은 대개가 약의 원료로 '함량미달'이다. 단 예외가 있다. 강화도산 은행잎이다.
반면 내륙에서는 약재 자격이 충분한 은행잎이 수거된다. 국내에서 약으로 쓰기에 가장 좋은 은행잎으로는 전북 정읍 고창산(産), 경기 안성산, 대구산을 꼽는다.
경험적으로 보아 유황성분이 많은 토양에서 자란 은행잎 그리고 인삼농사가 잘 되었던 곳에서 딴 은행잎이 약효가 좋다고 한다. 실제로 인삼의 고장, 금산 익산 강화도에서 약으로 쓰기에 딱 알맞은 은행잎이 생산된다. 특히 강화도는 은행잎과는 '상극'인 해안지역임에도 불구하고.
불과 몇년 전까지는 가로수에서 직접 은행잎을 따 써도 훌륭한 약재가 돼 주었다. 그러나 이제는 전체 은행잎의 20~30%에 해당하는 가로수채취 은행잎은 거의 무용지물이 되었다. 극심한 공해로 인해 오염물질이 잎에 덕지덕지 붙어 버렸기 때문이다. 이런 경향은 3년전부터 두드러지게 나타나고 있다고 한다. 가로수에서 얻은 은행잎은 이제 벽지용 공장에나 실려가는 신세가 되었다.
은행잎의 약리효과를 처음 연구하기 시작한 나라는 일본이었다. 그러나 곧 일본은 백기를 들고 대신 생약에 관한한 세계제일임을 자부하는 독일이 이 일을 넘겨 받았다. 독일에서 마침내 은행잎의 혈액순환 촉진효과가 밝혀지고 노인성 심혈관질환 치료제로 약학교과서에 수록되기에 이르렀다. 이때부터 은행잎은 나무에 달려 있을 때는 임산물, 땅에 떨어지면 의약품으로 취급을 받게 되었다. 통상법 301조에서도 은행잎을 의약품으로 간주하고 있다.
항암작용을 할 수도
은행잎의 용도가 바로 알려지면서 가격도 엄청나게 뛰었다. 예컨대 지난 86년에는 건조를 마친 원료 1kg의 내수가가 2백원, 수출가가 5백원에 불과했다. 그야말로 '거저' 사들였으나 현재는 내수가 수출가가 모두 1kg당(건조를 마친 원료) 4천원선이다. 대개 은행잎 4kg을 채취해 건조하면 1kg의 제약원료가 나온다.
이 은행잎이 항암작용을 하리라는 연구결과도 계속 나오고 있다. 주로 미국에서 이 방면의 연구를 하고 있는데 미국립암연구소와 하버드대학(은행잎을 이용한 항암제 징코-B 개발)이 그 선두주자다.
은행잎은 황금빛 단풍으로 물들기 직전인 9월경에 따는 것이 가장 약효가 높다. 낙엽이 져 엽록소가 파괴되면 그 속의 유효성분도 함께 '증발하기' 때문이다.
연간 국내에서 생산되는 은행잎은 2천t 정도. 전국 75개소의 재배단지와 '가로수 등에서 확보되는 물량이다. 우리의 은행잎이 유럽에 수출되기 시작한 것은 10여년 전부터다. 지난 해 1년만도 유럽의 은행잎 시장 규모는 50억 달러에 달했다고 한다.
아무리 은행잎이 몸에 좋다고 해도 직접 끓여 먹으면 곤란하다. 부틸산 등 불필요한 화학성분을 제거하지 않으면 오히려 인체에 해를 줄 수도 있기 때문이다.
은행잎을 둘러싼 동방과 슈바베의 한판은 앞으로도 두고두고 얘기거리가 될 만하다. 지난 69년 이래 슈바베사는 프랑스의 입센사와 합작, 은행잎 약의 유럽시장을 석권하고 있었다. 물론 그 원료공급처는 한국이었다. 당시 수출만능주의에 빠져 있던 한국인들은 은행잎이 어디에 쓰이는지도 모르고 그저 수출하기에 바빴다. 슈바베측도 자신들의 수입이유가 들통날까봐 그 이유를 묻는 사람들에게 적당히 둘러댔다. 화학공급약품으로 쓴다, 색소원료로 사용한다가 바로 급조된 이유였다. 아무도 의심하지 않았다. 해외정보의 부재 탓이었다.
그러나 지난 77년부터 슈바베사의 의뢰를 받아 국산 은행잎을 수출하던 동방의 박사장의 눈을 피할 수는 없었다. 왜 쓸모없는 은행잎을 사가는 것일까. 혹시 다른 용도가 있지 않을까.
생각이 여기에 미친 박사장은 독일 대학에서 생화학을 연구하는 한국과학자 5명을 찾아내 이들에게 은행잎 추출물질을 연구하게 했다. 마침내 1980년 징코플라본 글리코사이드(Ginkoflavon glycoside)가 개발되고 국제특허를 신청했다.
그러자 곧 바로 슈바베측의 제소가 들어왔다. 자기들이 이미 특허를 받은 물질이므로 동방의 특허요구는 무효라는 주장이었다.
이 특허분쟁은 동방이 크게 불리할 것으로 여겨졌으나 의외의 변수로 승부가 뒤바뀌었다. 자신들의 노하우가 들통날까봐 노심 초사한 슈바베측이 화학구조를 거짓으로 특허출원해 놓았기 때문이다. 당연히 그 반사이익이 동방으로 돌아갔고 동방의 특허가 유효하다는 판정을 받은 것이다.
일반의 상식으로 말한다면 이제 슈바베측은 동방에 로열티를 주어야 하는 입장이 되고 말았다. 그러나 특허가 효력을 발휘하기 전에 생산된 제품은 기득권을 인정한다는 특허법의 예외조항에 따라 슈바베도 한시름을 덜게 되었다.
제1차 특허분쟁에 이어 전개된 제2차 통상싸움은 그 과정에서 치열한 로비가 있었다는 소리가 공공연하게 떠돌 정도로 격렬했다. 은행잎을 수출해야 하느냐, 국내에 남겨야 하느냐를 놓고 관계부처간에도 이견을 보이는 등 청정한 은행잎과는 다른 양상으로 사태가 흘러갔다. 당시 상공부는 '수출반대'의 입장이었고 보사부는 '수출허가'로 기울어져 있었다.
결국 사안을 산업연구원에 넘겨 그곳에서 타당성 분석검사를 실시했다. 그 결과는 은행잎을 국내에서 보호 육성해야 하고 개발을 서둘러야 한다는 것이었다.
은행잎에 사운을 걸고 있는 슈바베는 통상법 301조를 들고 나왔다. 이런 배경때문에 지난 해 9월에 열렸던 한미통상회의는 양자의 신경을 곤두서게 했다. 당시 우리 정부는 금년 1월 1일 전면개방되는 의약품 중 간염백신 알부민 은행잎, 이 세품목을 개방에서 제외시켜 달라고 요청했다. 최종적으로 개방제외 의약품은 은행잎 한 종류만 남게 되었다.
그뒤 슈바베측은 보사부를 상대로 행정소송까지 벌였으나 곧 취하했다. 국내법보다 통상법이 우선이므로 재판에 이겨봤자 실익이 없다고 판단한 것으로 보인다.
아무튼 이 두 회사의 경쟁은 은행잎의 가격을 크게 올려 놓기도 했다. 여기에 선경이라는 재벌기업이 뛰어들고 있다. 이제 새롭게 전개될 2대 1의 싸움은 그 양상이 어떤 것일지 귀추가 주목되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