꽃향기가 아닌 인간의 땀냄새가 현대인의 불안 스트레스를 달래줄 지도 모른다.
근심 스트레스 불면 등에 시달리는 현대인들은 흔히 그 정신적 압박을 덜기 위해 신경안정제류의 약물에 의존하는 경우가 많다. 그러나 진정제의 효과는 단기간에 그칠 뿐이어서 한번 복용을 시작하면 으레 습관성 중독증세에 빠지게 마련이다. 또 다량복용으로 체내에 축적된 약물은 인체에 치명적인 해를 입히기도 한다. 이런 이유로 많은 과학자들은 인체에 해가 없는 대안적인 형태의 진정제를 찾기 위해 고심하고 있다.
최근 영국에서는 특정한 체취를 들이마심으로써 불안이나 스트레스가 완화될 수 있다는 연구결과가 나와 학계의 관심을 모으고 있다. 화제의 주인공은 워익대학교 후각 연구팀의 조지 도드와 돈 젠킨스.
이들은 남성의 겨드랑이에서 나는 체취와 똑같은 화학구조를 가진 오스몬(Osmone) 1이라는 물질을 만들어 이미 성공적인 임상실험결과까지 얻어냈다. 즉 여러가지 신경불안증세로 진정제를 사용하고 있는 사람들에게 오스몬1을 하루에 네번 정도씩 들이마시게 한 결과, 많은 사람들이 안정을 찾아 진정제 투약 용량을 줄일 수 있었다는 것이다.
체취와 인간의 사회적 행동과의 관계를 연구한 사람은 도드나 젠킨스가 처음은 아니다. 영국에서는 이미 70년대에 성호르몬이 만드는 스테로이드향(香)과 인간행동의 관계를 살펴본 연구자들이 있었다. 대표적인 것이 클락의 연구.
그는 번호 지정이 없는 극장의 좌석에 선택적으로 스테로이드향을 뿌리고 관찰한 결과, 여자들이 냄새가 나는 좌석을 골라 앉았다고 보고했다. 신생아들이 어머니를 인지하는 과정에서도 냄새와 행동의 상관관계는 뚜렷하다. 엄마젖을 먹고 자라는 생후 1주일의 신생아는 시각과 청각이 완전하지 않음에도 기저귀를 갈아주는 사람이 엄마인지 아닌지를 구별할 수 있다.
그러나 우유를 먹고 자라는 신생아의 경우 이런 구별은 불가능하다. 왜냐하면 신생아들이 어머니를 기억할 수 있는 근거는 유선(乳腺)에서 나는 냄새이기 때문이다.
이런 사실들을 밑받침으로 도드와 젠킨스는 후각과 감정의 관계는 선천적인 것일 뿐 아니라, 이를 역이용해 특정한 냄새를 들이마시게 함으로써 심리적으로 안정을 줄 수 있다고 주장한다.
그러나 모든 사람들이 이들의 의견에 수긍하는 것은 아니다. 특히 심리학자들의 경우 냄새와 감정의 관계는 생물학적인 것이 아니라 사회적인 것이라고 주장한다. 어떤 냄새로 마음의 위안을 얻거나 즐거움을 느끼는 이유는 본능때문이 아니라 그 냄새를 맡았을 때의 사회적인 관계를 추억해 내기 때문이라는 것이다.
사실 워익 대학연구팀은 아직 어떻게 특정한 냄새가 사람들의 마음에 평안을 가져오는지 그 메커니즘은 해명해 내지 못하고 있다. 다만 뇌의 해마가 장기적인 기억과 관계되는 부위이므로 이것과 냄새의 인자가 관계 있으리라는 정도를 설명할 뿐이다. 이렇게 메커니즘이 설명되기 어려운 데는 그간 후각연구가 상대적으로 경시된 영향도 있다. 후각은 뇌 구조 중 비교적 진화가 덜 된 대뇌변연계에서 담당해, 대뇌피질이 떠맡는 시각이나 청각보다 예민하지 못하다. 따라서 인체에 대한 연구 중에서도 후각은 크게 주목받지 못하는 감각이었다.
앞으로 이들의 임상실험이 계속 성공을 거두고, 뇌구조와 체취의 관계도 보다 자세히 설명된다면 현대인은 인체에 무해한 새로운 진정제를 자연으로부터 얻을 수 있을지도 모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