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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비하인드로켓] 개발모델, 인증모델, 비행모델, 나로호 2단의 쌍둥이들

◇ 보통난이도 |  조광래의 '비하인드 로켓' ❾

 

 

2008년 여름, 나로우주센터 종합조립동은 뜨거운 열기로 가득했다. 낮 최고기온이 매일 30도를 웃돌던 전남 고흥군의 폭염 때문은 아니었다. 부품의 온도 유지를 위해 조립동 내부가 시원한데도 연구원들의 이마에선 굵은 땀방울이 흘렀다. 나로호 2단 비행모델(FM·Flight Model)을 완성하기 위해서였다. 

 

페어링 기술의 핵심은 분리 장치 

 

발사체를 개발할 땐 실물크기모형(MU·Mock-Up), 체계개발모델(EM·Engineering Model), 인증모델(QM·Qualification Model), 비행모델 등 다양한 모델을 제작한다. 각각의 모델은 사용 목적이 다르다. 


인증모델은 발사 전 각종 성능 검사와 시스템 검사를 하는 모델이고(지상에 묶어두고 엔진을 점화시켜 테스트한다), 비행모델은 검사를 완료한 인증모델과 똑같이 만든 ‘쌍둥이’로 실제 하늘로 쏘아 올린다. 비행모델이 완성되면 발사 준비의 9부 능선을 넘었다고 판단한다. 


2008년 8월 우리 연구진은 나로호 2단의 비행모델 조립을 마무리했다. 2003년 킥모터 개발에 돌입한 지 5년 만이었다. 나로호 2단을 제작하기 위해서는 킥모터뿐만 아니라 페어링, 인공위성, 위성분리장치 등도 직접 개발해야 했다. 


페어링은 나로호 2단 윗부분에 있는 인공위성 보호 덮개다. 길이가 약 5.3m인 원뿔 모양으로, 니어(near) 페어링과 파(far) 페어링이 양쪽으로 겹쳐져 있다. 페어링은 습기, 비, 햇빛, 소금기, 먼지 등으로부터 탑재물을 보호하는 역할을 한다. 비행 중에는 탑재물을 공력가열*로부터 보호하고, 더 보호할 필요가 없어지면 분리된다. 


페어링 개발의 핵심은 파이로 분리시스템과 음향하중저감장치였다. 파이로 분리시스템은 ‘파이로’라고 불리는 화약을 이용해 페어링을 분리하는 시스템이다. 화약이 터져 페어링이 분리되는 순간에는 중력가속도 1000배 이상의 충격파가 발생한다. 


이 충격파는 구조물을 통해 인공위성까지 순간적으로 전달된다. 한국항공우주연구원 연구팀은 충격하중 및 강도를 계산하고, 이를 토대로 파이로 분리기구의 형상을 설계해 페어링 시스템을 만들었다. 


음향하중저감장치는 나로호가 이륙하고 비행할 때 발생하는 다양한 소음과 진동이 2단에 실린 인공위성과 전자탑재물에 고장을 일으키지 않도록 페어링 내부에 설치하는 보호용 구조물이다. 소리와 진동을 가장 잘 흡수할 수 있는 구조물을 설계하기 위해 열, 음향, 진동, 진공 환경에서 무수한 성능시험을 거쳤다.  


이렇게 개발한 페어링은 구조하중 시험을 무사히 통과했다. 구조하중 시험은 비행 중 페어링에 지속적으로 가해지는 하중을 지상에서 인위적으로 부과하면서 페어링의 구조가 안정적인지 확인하는 시험이다. 그 후 진행된 페어링 분리 시험에서도 페어링은 완벽히 작동했다. 특히 비행 상황을 모사한 극한 환경에서도 안정적으로 분리되는 모습을 보였다. 

 

 

‘깡통 위성’ 비난받은 나로과학위성

 

같은 시기 인공위성 연구자들은 나로호 2단에 탑재할 인공위성 점검 작업에 매달리고 있었다. 나로호 발사를 목표로 개발된 인공위성은 총 4기였다. 검증위성 1기와 과학기술위성 2A호와 2B호, 그리고 나로과학위성이다. 


여기서 잠깐, 나로호 발사를 자세히 기억하는 사람이라면 검증위성의 존재 자체에 의문을 품을 수도 있겠다. 나로호 1, 2차 발사 때에는 각각 과학기술위성 2A, 2B호가, 나로호 3차 발사 때에는 나로과학위성이 발사체에 탑재됐으니 말이다. 


검증위성은 한국항공우주산업(KAI)이 나로호 성능을 검증하기 위해 개발한 위성이었다. 검증위성의 임무는 페어링 내부에서 위성이 겪는 진동과 음향을 측정하고, 위성의 목표 궤도 진입 및 궤도 위치를 측정하는 것이었다. 그밖에 지상과의 통신을 시험하고 나로호가 촬영한 비디오 영상 자료를 송신하는 임무도 맡았다. 


그러나 발사 계획은 계속 변경됐고, 검증위성은 한동안 창고 신세를 져야만 했다. 막판에는 결국 분해돼 일부 부품이 다른 위성에 재활용됐다. 그렇게 탄생한 게 바로 나로과학위성이다. 


과학기술위성 2A, 2B호는 KAIST 인공위성연구소가 주축이 돼 개발했다. 고도 약 300km의 지구 저궤도에서 지구의 온도분포 및 구름층의 수분량을 측정할 수 있는 라디오미터와 위성의 정확한 궤도 위치를 측정할 수 있는 레이저 반사경이 탑재된 우주과학실험용 위성이다. 하지만 과학기술위성 2A, 2B호는 아쉽게도 모두 목표 궤도에 진입하지 못했다(자세한 내용은 추후 나로호 발사 결과와 함께 얘기할 기회가 있을 것이다). 

 


나로과학위성은 이런 과학기술위성 2A, 2B호의 뒤를 잇기 위해 개발한 위성이었다. 나로과학위성의 가장 큰 임무는 위성의 궤도 진입을 확인해 나로호의 발사 성공 여부를 검증하는 것이었다. 


그 외에 우주이온층 관측센서와 우주방사선 측정센서 등을 달아 우주에서 과학 관측 임무를 수행하고, 펨토초 레이저, 자세제어용 반작용 휠, 적외선 영상센서, 태양전지판 등을 탑재해 이런 장비들이 우주환경에서 정상적으로 작동하는지 검증하는 임무도 주어졌다. 


KAIST 인공위성연구소 연구진은 이전 과학기술위성 2호 제작비(약 130억 원)의 6분의 1가량인 20억 원을 투입해 1년간 나로과학위성을 제작했다.


축소된 임무와 제작비를 두고 일각에서는 나로과학위성이 ‘깡통 위성’이라는 비난도 제기됐다. 지금은 웃으며 설명할 수 있지만, 당시에는 인공위성을 개발하고 쏘아 올리기 위해 수년을 바친 연구자들에게 정말 상처가 되는 말이었다. 

 

 

나로호 2단, 성공적인 신고식을 치르다

 

비행모델이 완성되고 약 1년이 지난 2009년 8월 25일, 나로호 2단은 인상적인 첫 비행시험을 치렀다. 사실 연구원들 상당수는 발사가 실패할 수 있는 가장 큰 위험요인으로 나로호 2단의 추진기관인 킥모터를 생각하고 있었다. 


과학로켓 ‘KSR(Korea Sounding Rocket)’ 시리즈를 개발하며 대부분의 발사체 개발 시스템은 이미 경험했고, 1단은 러시아와 기술협력으로 개발했으니 우리가 자체 개발한 킥모터만 정상적으로 작동하면 성공할 것으로 예측한 것이다. 이는 킥모터 개발이 그만큼 어렵고 힘들었다는 반증이기도 했다(킥모터 개발 에피소드는 과학동아 2020년 3월호 참조). 


하지만 킥모터는 이런 우려를 잠재우며 탁월한 성능을 보였다. 비행 후 약 444초가 지난 시점부터 가속도 및 노즐 회전각이 서서히 변화하는 문제점이 발견됐지만(카메라에 촬영된 영상을 분석해보니 킥모터 점화는 정상적으로 이뤄졌으나 점화 후 40초 뒤부터 자세 제어에 이상이 생겼다), 킥모터가 의미 있게 추력을 내는 구간이 당초 예상과 거의 유사했고, 비행 중 나로호 2단에 가해지는 압력 값도 예측했던 결과와 맞아떨어졌다. 노즐부의 연소 압력이나 노즐부 온도도 문제가 없었다. 


문제는 예상치 못한 페어링에서 발생했다. 계획대로라면 나로호 발사 216초 후 페어링이 분리돼야 하는데, 페어링 두 쪽 중 한쪽이 정상적으로 분리되지 않았다. 페어링을 한쪽만 단 채 날아오른 나로호 2단의 운명은 이번 호에서 얘기하기에는 지면이 부족해 다음 기회를 기약한다. 


여하튼 ‘모델’이라는 이름이 붙었을 뿐 나로호 2단 비행모델은 나로호 2단 그 자체였기에, 비행모델 조립은 본격적인 발사 준비의 시작을 의미했다. 나로호 1단의 지상시험을 완료하고, 1단과 2단을 함께 조립하고, 발사대 시스템 성능을 시험하는 등 발사 성공이라는 최종 목표를 이루기까지 끝까지 지치지 않도록, 우리는 새로운 시작점에서 다시 한번 파이팅을 외쳤다. 

 

 

 

조광래 


1988년 한국항공우주연구원의 전신인 천문우주과학연구소에서 과학로켓 개발을 시작해 이후 30년 넘게 발사체 개발에 몸담았다. 1993년 1단형 과학로켓 KSR-Ⅰ 개발에 주도적으로 참여했고, 1990년대 후반 KSR-III 사업부터 2002~2013년 나로호 사업까지 총책임자를 맡았다. 2014~2017년 한국항공우주연구원장을 맡아 2021년 발사 예정인 한국형발사체 누리호(KSLV-Ⅱ) 개발을 이끌었다. gwcho@kari.re.kr

 

 

용어정리

* 공력가열 : 비행체가 빠른 속도로 비행할 때 주변 공기와의 마찰로 인해 열이 발생하는 현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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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0년 04월 과학동아 정보

  • 조광래 전 한국항공우주연구원장(나로호개발책임자)
  • 사진

    한국항공우주연구원
  • 에디터

    이영혜 기자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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