d라이브러리









한국수학교육학회장 박만구 교수 "수학교육의 목표는 깊고 넓게 세상을 이해하게 하는 것"

수학교육에 이토록 열의가 높은 나라는 세계 어디에서도 찾기 어렵다. 그런데 정작 수학을 불편하게 느끼는 학생이 많은 건 왜 그럴까? 한국수학교육학회장 박만구 교수를 만나 한국 수학교육이 직면한 문제와 앞으로 나아갈 방향에 관한 이야기를 들어봤다.

 

우리나라 수학교육의 특징이 있다면 뭘까요?


성적에 너무 연연한다는 것이죠. 교수법은 해외, 국내 모두 다양해요. 하지만 대학수학능력시험(수능)에서 수학이 차지하는 비중이 크기 때문에 일반적으로 초등학교에서는 교과서의 방법에서 크게 벗어나지 않고, 중고등학교에서는 문제풀이 위주의 교사 주도 교수법으로 수업이 이뤄집니다. 열정 있는 선생님이 새로운 걸 시도하고 싶어도 수능 위주가 아니라는 이유로 학부모가 싫어하는 경우가 있어요. 


따라서 우리나라 수학교육의 장점은 그 어느 나라보다 학생들이 수학 공부를 많이 한다는 것이고, 단점은 그렇기에 수학을 좋아서 공부하는 학생이 많지 않다는 겁니다.


학업 부담을 줄이기 위해 수학 교육과정의 내용을 줄이는 것은 어떻게 생각하세요?


2009, 2015 개정 수학과 교육과정의 특징 중 하나가 수학에 대한 부담을 줄이기 위해 학습 내용을 줄이는 것이었습니다. 당연히 너무 과도한 학습량은 교사와 학생 모두에게 부담입니다. 하지만 중요한 것은 기계적으로 학습량을 줄이는 것이 아니라, 학생에게 꼭 필요한 수학이 무엇인지 고민하고 논의하는 것입니다. 


그동안 단순히 어렵다고 생각하는 걸 빼거나 위 학년으로 올리는 작업을 했는데 그러면서 고등학교의 ‘기하와 벡터’는 교육과정에서 제외했다가 수학, 과학계의 반발에 선택 과목으로 재지정하기도 했죠.

 

‘꼭 필요한 수학’이란 어떤 것인가요?


미래 사회의 주역이 될 학생들에게 필요한 수학입니다. 현재 초등학생이 어른이 돼 살아갈 시대는 지금과 아주 다른 모습일 겁니다. 정확하게 예측하기는 어렵지만 인공지능이 일반화된 사회일 거고, 단순 노동은 다 사라졌을 거예요. 


지금 교육과정이 과거 사회를 살아가기에 적합하게 짜였다면 이제는 미래 사회에 기반이 되는 수학교육으로 바뀌어야 해요. 당연히 기초 수학은 다 가르쳐야 하지만 여전히 30, 40년 전과 비슷한 교육과정이라면 문제가 있다는 거죠. AI 교사를 5,000명 길러낸다는 소식도 들었지만, 그런 정도로 미래에 대응하는 것이 가능할까 싶고, 현장에서는 아직 변화가 와닿지 않습니다. 조만간 개정할 교육과정은 좀 더 충분히 논의해 학생들에게 가장 도움이 되는 최선의 방안을 마련해야 합니다. 
수학 흥미를 일깨우는 수학교육은 어떤 방향이 돼야 할까요?


학습은 모르는 것을 아는 과정이고, 여기에 가장 강력한 원동력이 되는 것은 ‘호기심’입니다. 호기심을 일으키는 방법에는 여러 가지가 있겠지요. 스토리텔링일 수도 있고, 생활 속 문제를 해결하는 것일 수도 있고, 사회의 어느 부분에 쓰이는지 알려주는 것일 수도 있죠. 다만 어떤 것이든 정교한 맥락 안에서 이뤄져야 합니다. 학생들이 진짜 자신의 문제로 공감할 수 있도록 말이죠. 


초등학교 수학 교과서는 새로운 걸 배울 때 ‘생각 열기’라고 해서 ‘~해봅시다’라는 말로 시작하는데 어떤 학생들은 ‘하기 싫은데요~’라고 해요. 그럴 수 있죠. 관련도 없는 문제를 왜 고민해보고 싶겠어요. 그러니 자기가 실제로 처할 수 있는 상황에 맞춰서 문제를 제시해보는 겁니다. 매번 그렇게 공부할 수는 없겠지만, 적어도 한 달에 한두 번이라도 수학으로 생활 속 문제를 해결하는 경험을 하면 수학의 힘을 자연스럽게 느끼게 될 거예요.

 


예를 들면 어떤 문제가 있을까요?


삶에는 단순 계산으로 해결할 수 없는 문제가 있습니다. 영화관에 가면 보통 작은 크기의 팝콘은 5,000원 정도예요. 큰 팝콘은 작은 팝콘의 2.5배 정도 양이죠. 그럼 큰 팝콘은 얼마여야 할까요? 비율로만 따지면 적어도 1만 원 이상은 돼야 해요. 그런데 실제로는 500원 밖에 차이가 안 나요. 왜 일까요? 


여기에는 마케팅 전략이 숨어있는 것이겠지요. 교과서의 비율 문제와 달리 이는 답이 딱 떨어지지 않습니다. 하지만 실제로 영화관에서 이렇게 팔고 있으니 더 좋은 소재라고 생각합니다. 이런 사례를 찾으면서 학생들은 수학이 단순히 문제 속의 개념이 아니라 세상을 이해하는 실제적인 도구란 걸 알 거예요. 최근 제가 번역한 ‘사회정의를 위한 수학교육’도 이런 맥락에서 수학교육을 통해 사회를 이해하는 접근 방법이 될 수 있죠.

 

사회 정의를 위한 수학교육이란 무엇인가요?


수학교육을 통해 학생들로 하여금 인간과 세상을 더 잘 이해하도록 하는 방법입니다. 수학의 비판적이고 분석적인 힘을 통해 타인과 더불어 살아가는 방식을 고민하게 하는 거죠. 점점 다문화사회가 되어가는 요즘 더 필요한 교육이라고 생각해요. 


예를 들어 요즘 초중고 교실에서 언어폭력이 심각해요. 하지만 문제라고 인식할 뿐 직접 이 부분을 개선하기 위해 고민한 경우는 적을 거예요. 그런데 만약 교실에서 어떤 욕이 나오는지 통계를 내보고 가장 많이 쓰는 욕이 어떤 것인지, 어떤 의미인지도 따져 본다면 자연스럽게 언어폭력의 문제점을 논리적으로 바라보게 될 거예요. 물론 이런 이슈는 항상 어렵고 조심스럽습니다. 그러나 먼 나라 이야기 말고 우리 삶 속에서 학생들이 체험할 수 있는 문제로 수학의 힘을 느끼게 하는 건 필요하다고 봐요.

 


수학이 해보지 않은 일을 가능하게 한다고요? 


1969년 닐 암스트롱이 인류 역사상 최초로 달에 착륙했어요. 말 그대로 한 번도 해보지 않은 일을 가능하게 만든 거예요. 어떻게 할 수 있었죠? ‘그냥 일단 날아가 봐~’ 할 순 없잖아요. 모두 과학자와 수학자가 계산을 해서 만든 결과였어요. 그게 수학이에요. 해보지 않은 것을 상상력만으로 해내도록 만드는 것! 


이런 논리력은 어디에서나 쓰여요. 실제로 수를 다루지 않아도 수학적 사고력은 계속 필요하죠. 토론하거나 대화할 때도 마찬가지예요. 수학은 사고를 위한 엔진이에요. 그래서 직업과 관계없이 누구나 수학을 배워야 하죠. 


엔진을 잘 돌아가게 하려면 어떻게 해야 하죠?


정답을 찾겠다는 생각보다는 천천히 오래 풀어보는 연습을 해보세요. 수학의 논리성이 주는 희열도 맛보고요. 수학교육을 하는 입장에서는 학생들이 호기심을 갖고 적극적으로 공부해나갈 수 있도록 선생님들이 도왔으면 좋겠어요. 그러려면 예비교사를 길러내는 대학도 바뀌어야 해요. 학생들은 자신이 대학에서 수업받은 대로 현장에 나가 가르칠 테니까 수학교육의 변화를 일으키려면 교수님들부터 변해야 해요. 


현장에 대한 이해를 높이고 교수법 등의 역량도 기를 수 있도록 시스템과 지원이 갖춰져야 하겠죠. 교실 안에서의 변화뿐 아니라 대학에서부터의 변화를 동반할 때 진짜 학생들의 현실에 맞는 교육이 될 거예요.


마지막으로 하고 싶은 말이 있다면?


올해 한국수학교육학회장이 됐는데, 그동안 학회가 주로 대학 교수님들 위주로 활동하다 보니 현장과 동떨어져 있다는 비판이 있었어요. 그래서 올해는 학술적인 것과 현장을 접목하는 시도를 많이 해보려 해요. 일본에 가보니 ‘레슨스터디’라고 해서 수업에 대해 온종일 활발한 토의를 하더라고요. 우리도 올해는 교수와 교사가 함께 수업데 대해 고민하는 자리를 열어볼까 해요. 


곧 총선인데 정말 교육에 진정으로 관심을 갖고 고민하시는 분이 많이 나왔으면 좋겠어요. 교육이 당장은 경제 논리에 밀릴 수 있지만 진정한 우리나라 미래를 위해 중요한 부분이니까요. 미래를 살아갈 학생들을 위해 노력을 기울이고 교육 시스템을 바람직한 방향으로 바꿔가길 바라요. 

 

2020년 04월 수학동아 정보

  • 박현선 기자

🎓️ 진로 추천

  • 수학
  • 교육학
  • 통계학
이 기사를 읽은 분이 본
다른 인기기사는?